# 139-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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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쏴아아.
파도는 해변으로 끝없이 밀려들었다. 닿을 수 없고, 머물 수 없을 대지를 향해 순결한 소원을 말하듯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강릉시 청해도의 해변이었지만 해변을 향하는 세상의 모든 파도가 그려낼 운명이기도 했다.
“역시.”
그 해변에 세워진 비치파라솔 밑에서 일행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미래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까지 그녀는 환한 태양 아래 수영복만 입은 다섯 남자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었다. 다섯 남자란 물론 은결, 민성, 동물원 삼총사였다. 그리고 수영복을 제하고는 소재(素材) 그 자체만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는 이 해변에서 은결의 모습이 단연 돋보인다는 것을 확인했고,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에 만족할 수 있었다. 아니. 과장을 보태지 않고, 소재 자체의 수준을 말하자면 오빠인 은결이 다른 네 명과 넘을 수 없는 벽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기에 사견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자신했다.
“후훗.”
그래서 미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근처의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 오늘 사용할 음료수와 물, 음식과 과일 등을 차게 재워두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얼음의 감촉에 坪倖??치며 아이스박스를 한동안 뒤지다가 겨우 사이다를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사이다를 꺼냈을 때, 그녀의 손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추위에 빨갛게 질려 있었다. 사뒀던 음료수가 거의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런 때에 음료수 소비율은 높기 마련이라, 그걸 생각하면 아마 점심때 까지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작게 찌푸려졌다.
“미래야.”
캔의 뚜껑을 따고 시원한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키던 그녀를, 파라솔 아래로 들어오던 은결이 불렀다. 미래는 반갑게 미소를 되돌리며 말했다.
“아, 오빠, 무슨 일이야? 설마 책 보러 온 것은 아니겠지?”
반가워하던 미소를 죽이고, 눈을 좁혀 의심어린 눈초리를 만들어 미래가 물었다. 가져온 짐 가운데 제목만으로 주변에서 사람을 쫒아버릴 듯 한 책이 몇 권 포함되어 있었으니, 평소 은결의 행태를 생각하자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은결은 실소를 보내며 답했다.
“아냐. 애들 음료수 마시게 몇 캔 가져가려고. 그러는 너야말로 바다에 가지 않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좀 쉬었다가 들어가려고. 너무 햇빛 오래 받으면 피부 상하잖아. 번거로워서 크림도 제대로 못 바르고 왔는데.”
조금 불만스런 얼굴로 미래가 답했다. 수영에 앞서 선크림을 바르는 것은 꽤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라 미래는 충분히 바르지 못했다. 더구나 등을 바르려면 다른 사람의 손이 필요한데, 연인도 아닌 남자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적(!)인 쿠로사카에게 부탁할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그녀는 적당히 시간을 조절해 가며 놀고 있는 중이었다.
“흐응. 그것도 그런가. 그런데 미래 너도 그런데 의외로 신경 쓰는구나.”
“그럼! 꽃 같은 처녀가!”
“음.”
버럭, 화내듯이 미래가 답하는데 은결은 그 기세에 밀려 뒤로 주춤 물러섰다. 아무래도 은결의 말에서 자신이 꾸미는데 신경 쓰지 않고, 고로 여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결론까지 논리적 도약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에 살찐다고 했더니 ‘미소녀는 살 안 쪄.’ 라고 무성의하게 받아넘겼던 것은 누구란 말인가? 미래는 이어 불만스럽게 시선을 다른 반향으로 돌렸다.
“그런데-”
은결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미래의 시선 끝에는 쿠로사카가 어제와 같이 관조적인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의 정취와 소녀의 분위기가 더해져 지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은결은 몇 번이고 실감한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쿠로사카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녀는 놀라운 미소녀다.
“-저 쪽은 무슨 수를 썼길래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햇볕을 받는 건지 몰라. 좋은 선크림이라도 있는걸까? 응?”
미래가 투덜거리며 은결을 향해 물었다. 은결은 답을 알고 있다. 그녀가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지절단에 준하는 상처를 입어도 금세 멀쩡해지는 판에 자외선은 문제거리가 아니다. 쿠로사카의 아름다움은 아마 그 힘에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걸 밝힐 수야 없는 일이다.
“글쎄다...”
그러면서 은결은 아이스박스를 뒤져 음료수를 찾았다. 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드물게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 음료수 거의 다 떨어진 모양이야.”
미래가 지적했다. 은결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러모은 캔을 봉지에 넣었다.
“으음, 겨우 인수에 맞출 정도는 되는군. 아무래도 사러 갔다와야 겠군. 그럼 나는 가볼테니 너도 쉬고 있어.”
“응.”
그리고 미래는 멀어지는 은결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아직 반 이상 남은 사이다를 마셨다. 시원한 청량감이 식도를 타고 퍼져나갔다. 바다에는 조금 더 있다 들어갈 생각이었다.
“쿠로사카.”
쿠로사카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야로 빙빙 도는 캔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차분한 동작으로 그것을 받았다. 아직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는 탄산음료 캔이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은결이 보였다. 문득, 자신이 윗옷을 입었지만 수영복 차림이라는 것이 의식됐다. 괜스런 창피함에 다리를 모으며, 답했다.
“고마워, 잘 마시지.”
“별 말씀을.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바다에는 통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곳에 놀러온 게 아냐.”
“굳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은결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쿠로사카는 작게 이를 물었다. 굳이 그렇게 딱딱하지 않아도 좋은 모든 부분에 대해, 은결 그 자신이야 말로 완고한 자기의 기준을 철저하게 관철시키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나도 좋은 구경하고 말야.”
그러면서 은결은 가볍게 뛰어 쿠로사카의 옆에 섰다. 그녀는 방금 은결이 한 말에 심장 박동이 높아진 것을 느꼈다. 물론 은결의 말은 가벼운 농이었고, 쿠로사카도 그 정도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억지로 평정을 유지하며 그 말을 가볍게 흘렸다.
“흥. 이번에는 뺨만으로 끝나지 않아.”
“음.”
하지만 듣는 쪽으로서는 가볍다기 보다 스산했던 모양이다. 한 순간, 은결은 얼굴을 굳혔다가 풀었다. 하기야 지난번 옥상에서 맞이했던 쿠로사카의 손바닥을 기억하는 은결로서는 쉽게 받아들일만한 이야기가 아니긴 했다. 그때 되게 아팠다. 쿠로사카는 기대하지 않았던 그 반응을 유쾌하게 즐기며 작은 미소를 보였다. 은결은 그녀의 작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네가 해 준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어.”
“......”
털어놓듯이 가볍게 답하는 그녀에게, 은결은 아무 말도 돌릴 수 없었다. 그는 가만히 쿠로사카와 함께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은 바다 위에 쪼개지는 빛살은 모두 곱고 아름다웠다. 그것만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겼다!”
“후후훗!”
“억!”
“헉!”
희비가 교차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것은 고릴라와 늑대였고, 진 것은 민성과 여우였다. 네 사람은 음료수가 다 떨어졌다는 은결의 말에 사러가기로 결정하고 누가 사러갈지를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고 있었다. 고릴라가 건장한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밀며 패배자이자 평소 자신에게 지은 죄가 많던 민성을 향해 설교조로 말했다.
“후후, 어딜 딴데 신경 팔고 있냐. 그러니까 깨지지.”
“큼...”
할 말이 없었던 듯, 민성은 그저 코밑을 훔쳤다. 고릴라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는 은결과 쿠로사카가 함께 있는 모습에 보고 거기 주의를 집중하느라 깨지고 말았다. 어차피 저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교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지만, 지금 함께 있는 장면이 굉장히 잘 어울려 좀 불안을 느꼈다. 사실 해변에 오고 나서 은결의 외견에 자기가 밀린다는 걸 명백히 느낀 것도 불안의 이유 중 하나였다. 외계인 같은 짓을 하고, 그래서 외계인 취급을 받아서 그렇지, 생각해 보면 반에서 은결보다 괜찮게 생긴 녀석도 없는 것 같았다. 침묵하는 민성 대신에 여우가 옆에서 짜증나는 태도로 투덜거리며 승리자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쳇! 겨우 가위바위보 따위에 이긴데 득의양양 하긴!”
“훗.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나는 펩시다. 잊지 말고! 코카콜라 사오면 빠꾸다!”
늑대가 낄낄대며 말했다. 그리고 민성과 여우는 함께 툴툴대며 음료수를 사러 길을 떠났다. 가면서 민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두 사람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은결은 막 쿠로사카 곁을 떠나고 있었다. 민성은 안심하고 걸었다.
*돌아왔습니다. 명절 잘 보내셨길.
*이 글이 하렘물이든 깽판물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고, 글 쓰는 욕심으로 좋은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원성원성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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