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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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높게 떠 있었다. 출렁이는 바다는 파도로 그 달빛을 쪼개고, 다시 쪼개고, 그리고 쪼개어, 자신의 드넓은 물결 위에 유리알을 태운 것 처럼 그들 빛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청해도의 별장에서는 간단한 바베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숯불통 안의 불잉걸이 그릴 중앙을 새빨갛게 데우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에 주변의 모습은 일그러져 보였다. 그 위로, 신선한 고기가 차곡차곡 올려졌다. 치이익, 치이익, 하고 열기에 타오르며 육즙을 눈물처럼 흘리기 시작하는 고기의 분홍 빛 신선함은, 그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했을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도록 인식에 차곡차곡 겹을 씌웠다.
"......"
주변에서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다소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물원 삼총사와 민성이었다. 옆에서 계속 그릴 위에 고기를 올리던 은결로서는 '이것들이 미쳤나.'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즐거운 바베큐 파티 앞에 두고 표정이 다 뭐란 말인가. 더구나, 이걸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다름아닌 그들이지 않았던가?
"표정이 다 왜 그 꼴이냐?"
그래서, 은결은 물었다.
"크흠, 그게-"
"-그러니까-"
"-니가 저녁을 안 만든다는게-"
"-좀 유감스럽다는 거지. 음."
네 사람은 차례대로 말했다. 오늘 점심 때 은결이 만든 음식을 먹어본 그들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요리만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퍼포먼스가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은결이 만들었던 카레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다. 그 맛이 아직 혀끝에 머문 채 지워지지도 않은 것 같으니. 아무런 기교도 없이 그저 고기나 구워 먹는 바베큐는 별 기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미래는 자기가 만들었던 요리도 아니면서 뻐기는 표정으로 양 손을 허리에 가져다 댔고,(그녀는 점심 때도 카레를 한입 먹고 충격에 빠진 일행 앞에서 같은 자세를 취했다.) 쿠로사카는 아무말도 하지 않음으로서 내심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은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내일도 해 줄 건데 잔소리말고 지금은 바베큐나 먹어."
"으응."
일행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는 그릴 위에서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익어갔고, 때때로 흘러내린 육즙이 숯불 위에서 치익- 소리를 내며 수증기로 변했다. 익은 고기의 향기로운 냄새가 달빛처럼 주변을 짙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결은 적당히 익었다 싶은 고기를 들고 가위로 알맞은 크기로 잘라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민성은 헤- 하고 작게 입을 벌리다가 말했다.
"너, 굉장하다."
"뭐가?"
"으음- 뭐랄까? 장인의 포스가 느껴진달까? 서 있기만 하려니 미안해서 같이 하려고 해도, 되려 방해만 될 것 같은 안정감이랄까? 그런게 느껴진단 말야."
민성이 잠깐 애매한 얼굴로 말을 고르다가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입을 열었다. 동물원 삼총사가 그 감상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아, 그거 나도 느꼈어."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 십년 쯤 하면 저리 될까 싶은 그런 분위기 말이지. 음, 나도 그렇게 여겼어."
"맨날 어려운 책만 보고 외계인 같은 소리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데도 재주가 있을 줄이야. 요리도 그렇지만,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곤 모른다니까."
일동의 수근거림을 들으며 은결은 잠시 '이것들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기분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거나, 자신의 노력에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기뻐해 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타자를 슬프게 만들어야만 '성공'이라는 것을 쥘 수 있는 것이 보편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노력이 타자의 슬픔이 아니어도 좋은, 제로 섬 게임에서 벗어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고, 은결은 생각했다.
"아, 잠깐."
갑자기 민성이 그렇게 말하며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갑자기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곧, 고등학생에게는 익숙하기 힘든, 아니 익숙해선 안 되는, 큰 갈색 플라스틱 병을 두 통 들고 나왔다. 이미 이 자리에 마련되어 있는 다른 음료수와는 명백히 잘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동물원 삼총사는 오오-! 하고 탄성을 올렸고, 바른 생활 사나이 은결은 눈쌀을 찌푸렸다. 미래와 쿠로사카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 그저 소요를 즐기듯이 웃었다. 민성은 갈색 통을 얼굴에 대어보고는 싱긋 웃고 말했다.
"딱 좋게 차가워 졌으니 다 한잔씩 들자."
"으음- 20세 미만은-"
"아 거 딱딱하게 굴기는."
은결이 제지하려 했지만 민성은 딱 그 말을 자르고는 성급하게 뚜겅을 열었다. 피식, 가스 새는 소리가 났고, 그는 근처에 있는 잔을 하나하나 채워 친구들에게 넘겼다. 쿨렁쿨렁 소리가 나며 반투명한 갈색 액체가 유리잔에 흰 거품과 더불어 담기는 모습은 기이한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쿠로사카와 은결, 미래는 거절했지만, 동물원 삼총사는 즐겁게 그 잔을 받아넘겼다. 그리고 다 익은 고기를 한 점씩 쥐고는 "건배-"하고 높게 외쳤다.
고기 굽히는 소리에 뒤섞여 그들 소리는 높게 퍼졌다. 불편한 표정을 짓던 은결이지만, 얼마 있지 않아 부드럽게 웃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은결을 바라보고 있던 미래가 그 표정의 변화를 읽고 반가운 표정으로 은결에게 다가갔다.
"저기 오빠."
"응?"
"이야기 하나 해 줘."
미래가 요청했다. 은결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야기?"
"음, 아빠가 언젠가 오빠한테 해 줬다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 말야. 슬픈 이야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전혀 기억이 안 나서 말야. 오늘 꿈에 나왔는데. 재채기가 나오려다 만 것 같은 느낌?"
미래가 조금 주저하는 태도로 설명했다. 그 말을 하면서 미래는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낮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꿈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던 오빠의 슬픔은 짙고 컸던 것 같았다. 이 자그마한 모임 가운데서 오빠가 보여준 부드러운 웃음에 용기를 얻어 요청하긴 했지만 혹시라도 이 질문이 그 미소를 깨뜨리고 꿈에서 보았던 짙은 슬픔을 불러 깨우지 않을지, 저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걸 우화라고 해야할지 동화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아버지가 말한 천국과 지옥이란 일상적인 의미의 천국과 지옥이 아냐. 천국도 지옥도 아무 것도 다른 것이 없이 똑같지. 그곳은, 같은 놀이거리가 제공되고, 그곳은 같은 음식이 제공되고, 그곳은 같은 침대가 제공되고, 그곳은 같은 풍경과, 같은 빛이 그리고 같은 책이 제공되는 거야."
다행히, 은결은 미래의 요청에 조금 당혹해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별 막힘 없이 말을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민성이 미성년자에게 금지된 글색 액체를 한 모금 들이키며 볼맨 소리로 은결에게 말했다.
"그럼 그게 무슨 천국이며 지옥이야?"
"사람이 다르거든."
은결은 차분하게 답했다.
"사람?"
"그래. 천국에는 선량한 사람들만이 가는 거고, 지옥에는 나쁜 사람들만 가는거야. 그리고 그곳이 현실과 큰 차이를 지닌다면, 그건 다른 것이기보다 식사시간이지. 그곳에서는 반드시 젓가락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데, 그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도무지 그냥은 식사를 할 수가 없거든."
여우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확 쳐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슴을 펴고 유쾌하게 아는체를 했다.
"아, 나 그 이야기 알아! 천국에서는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먹여주고, 지옥에서는 혼자서만 먹으려 하니 쫄쫄 굶는다는 얘기 아냐?"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래서 결국 천국도, 지옥도, 고정된 어떤 장소라기보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 뿐이라는 주제를 담는거지."
여우가 자신의 예측이 맞은 데 대해 만족스럽게 웃어보였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쿠로사카가 은결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은결을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뒷 이야기가 있어. 어떤 거냐면... 천국에서, 그리고 지옥에서 사고가 나는거야. 거기 살던 한 사람이 양팔을 못쓰게 되지. 지옥에서는 그것을 보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천국에서는 그를 모두들 도와주려 하지. 그리고 여러날이 지나. 지옥에서는 보다 못한 한 사람이 양팔을 못 쓰는 그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지. 그리고 천국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던 그 사람이 '아, 편하다-'라고 생각하게 돼."
"헤? 그래서?"
입안 가득한 기름기를 씻어내려는 듯 컵을 기울이며, 고릴라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지옥에서, 다른 사람이 먹여주었던 것을 기억하는 그 시람은 그때의 쾌감을 기억하는거야. 그것은 혼자서 먹고자 했을 때와는 비교됴 할 수 없을만큼 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맛도 있었지.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돕기보다 자기자신을 위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을 먹여 주었던 사람에게 가서 제안하는 거야. '우리 서로 먹여주도록 합시다.'라고.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의 호의 속에서 편하게 지냈던 그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을 먹여주면서 생각하는거야. '아, 귀찮다.' 그는 다시 다른 사람을 먹여준다는게 너무 귀찮았어. 팔을 사용하지 못할 때, 입만 벌리고 있으면 맛있는 것이 들어왔었던 경험이 아주 강렬했던 거지. '모두 착하잖아? 나 하나쯤은 아무 상관도 없을거야.' 그는 두 팔을 못 쓰는 척 하기로 결심해."
어떤 불길한 예감이, 부정형의 이미지가 되어 듣고 있던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떠올랐다.
"지옥에서, 서로 먹여주는 두 사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말하지, '저거, 편할 것 같은데?' 그리고 점차, 그들도 그와 같이 행동하기 시작해. 그리고 천국에서, 두 팔을 못 쓰는 척 하는 사람을 먹여주던 사람은 생각해. '이거, 편할 것 같은데. 먹여주기만 하긴 억울하잖아.' 그리고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구성원이 늘어나지."
은결은 들고 있던 집게로 그릴 위의 익어가는 고기조각을 한점한점 차분한 얼굴로 정리했다. 그의 눈동자는 불꽃 위에 고정된 채 차가웠다. 그 표정을 보고 미래는 얼굴을 작게 찡그렸다. 역시 자신이 실수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진하게 스쳤다. 은결은 불꽃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거야. 지옥에서는 협력하는 자가 늘어나고, 천국에서는 배반하는 자가 늘어나는 거야. 그래서 종래에, 지옥은 신뢰가 증가해서 천국이 되고, 천국은 불신이 팽배해서 지옥이 되고 말지. 그리고 이후에, 이 지옥과 천국은 비슷한 과정을 겪어 다시 역전이 되고 말겠지.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
그리고 침묵. 타타닥, 하고 마른 나무조각 사이의 남았던 튀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불가루가 대기를 타고 높이 오르다가 꺼졌다. 미래는 어째서 이것이 슬픈 이야기였던지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째서 오늘 낮에 그런 꿈을 꾸었던지도...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민성과 고릴라가 마뜩찮은 얼굴로 감상을 말했다.
"으음... 뭔가 찝찝한 이야기다."
"그래. 뒷맛이 좋지 않아."
그들은 그 이야기에서 희미한 데자뷰를 느꼈다. 먼 곳의 추상성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바로 곁에 와 있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은결은 웃으며 말했다.
"진실에 밀착시킨 대개의 이야기는 불편한 법이야. 거기엔 아무런 위안도 없으니까. 그래서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현실은 진실보다 강할 수 있는 거겠지. 위안 없는 진실을 사람들은 외면하거든. 그건 그렇고, 컵에 들어 있는 건 적당히 마시고, 고기나 먹어. 아직도 많이 있으니까."
"음, 그렇지!"
"다시 건배!"
높에 울려퍼진 목소리와 함께 다시 즐거운 분위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은결도 얼마전 같은 웃음을 머금고,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 참석했다. 은결의 이야기는 마주하기 힘든 껄끄러움을 날것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다만,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쿠로사카는 여전히 깊은 눈으로 은결을 바라봤다.
"......"
그녀는 근처의 잔을 들어 음료수를 마셨다. 입안에서 기포가 터지며 단맛이 끓어오르듯이 퍼졌다. 그녀는 그 단맛을 식도로 넘기면서 이것이 알콜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아쉽게 생각했다. 진정되기에, 지금 은결이 해준 이야기에 이미 가슴은 많이 뛰고 있었다.
*이 글은 시체의 산 위에 쌓아올려진 글입니다. 뭔 말인가 하면, 이 글에 인용하려던 정보들 가운데는 아깝게 생각하면서 버린게 굉장히 많다는거죠. 글 전체의 조화라는걸 생각하면 그것 자체로는 아무리 중요해도 못 넣을게 참 많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있거든요. 이 부분의 극치가 바로 수행의 사설입니다! 도무지 그 분량에 다룰 수 있는 게 아닌데...(한숨) 그래서 이글 완결내면 다 모아서 제대로 정리할 생각.
*그런데 완결은 언제?(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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