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34화 (134/300)

#   135-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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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 제국주의 팽창의 한 모습인 문화재 약탈에 대해, 뻔뻔하게도 물건을 구매하면 돌려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마저도 지키지 않음으로서 그네들이 예술과 철학, '똘레랑스'의 나라라는 인식이 가소로운 기만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는 철마의 안에서, 은결 일행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으음-"

고릴라가 심각한 얼굴로 들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고 있다. 창가로는 풍경이 시속 300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게임의 제안은 민성이 했다. 가는 길까지 지루할테니 게임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냐는 거였다. 거기에 찬성하고 살을 붙인 것은 의외로 은결이었다. 그러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게 될 여러 일들의 분배를 게임을 통해 정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좋아라고 찬성했다.

"음."

고릴라의 맞은 편에서는 민성이 마주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쥐고 있는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의 내용도 은결이 제안했다. 그것은 일종의 점수따기 게임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일단 게임은 일대 일이고, 서로 o혹은 x를 선택할 수 있다. 이때 양 측에서 o를 낼 경우 서로 2점씩을 벌고, 양측에서 x를 낼 경우 1점씩을 깐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o을 한 쪽에서는 x를 낼 경우 x를 낸 쪽은 4점을, o을 낸 쪽은 -2점을 얻게 된다.

"으응~"

다른 한 쪽에서는 미래가 종이를 쥔채 고심하고 있었고, 맞은 편에는 쿠로사카가 무덤덤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를 바꿔가면서 한 사람당 3번씩 만나도록 시스템에 짜여져 있었다. 이번 게임에서 결정되는 것은 심부름꾼의 역할을 누가 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점수가 가장 낮은 두 사람이 맡게 될 터였다. 또 꼴찌에게 벌칙만 있으면 재미없으니, 1등에게 한 사람당 1000원씩 모아 상금을 주기로 했다. 후자에 대해 은결은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민성은 이런 게임은 돈이 끼지 않으면 타오르지 않는다고 열렬히 주장했고, 동물원 삼총사가 동조함으로서 결국 추진되었다.

"후."

그 뒷쪽 좌석에서는 은결이 여우와 마주한 채, 손가락으로 꺽고 있었다. 이번 턴에서 상대가 없던 늑대는 손을 놓은 채 지루한 얼굴을 했다. 이내 은결은 손가락을 몇번 꺾고 뒷 좌석을 향해 말했다.

"시간 됐으니까 내."

그리고 일동은 종이를 모두 앞으로 내밀었다. 희비가 엇갈렸다.

"엇! 이 치사한 유인원!"

"푸하핫!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지! 믿다가 뒤통수 맞는 놈이 병신인거야!"

"젠장, 이러니까 니가 애니멀이지! 인간의 세상에서 야생의 법칙을 주장하다니!"

"뭣이 어째!"

"흥. 내 말이 틀렸냐!"

아무래도 민성은 o를 내고 고릴라는 x를 낸 듯한 대화 내용이었다.

"쳇!"

"음..."

어조를 볼 때 미래와 쿠로사카의 대결은 양자 모두 x를 낸 모양이다. 하지만 은결이 기억하기로 처음에 쿠로사카는 o를 내었다가 미래에게 당했으니 이번에 x를 낸 것은 전략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패를 확인할 차례였다. 여우는 o을 냈다. 은결도 o을 냈다.

"오오."

"좋아."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었다. 옆에서 지루하게 있던 늑대가 여우를 들어다 다른 곳에 앉히고 자기가 은결과 마주했다. 다른 좌석에서도 부산스럽게 파트너 교환이 이루어졌다. 늑대는 손을 비비며 은결에게 잔뜩 독이 오른 기색으로 말했다.

"자, 얼른 하자고!"

그는 은결에게 먼저 x를 내놓고 은결이 o을 냄으로서 상당한 점수를 벌었고, 다른 게임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함으로서 현재 상금에 가장 가까이 가 있었다. 여우는 옆에서 '이런 늑대같은 새퀴!'라고 그의 전력을 감평했다.

"흐음. 그럼 상대는 다 골랐지? 시작한다."

은결이 늑대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응!" "얼른 시작해!" 라는 대답이 금세 돌아왔다. 은결은 가볍게 "시작." 하고 말했고, 손가락을 꺽어가며 원자시계 수준의 정확함으로 초를 측정했다. 또 10초가 흘러 서로의 답을 내놓았고, 희비가 교차됐고, 점수의 순위가 달라졌다.

몇 번의 게임이 지속되고, 결과가 드러났다. 오늘의 잔심부름은 늑대와 고릴라가 맡게 되었다. 고릴라는 몰라도 늑대는 의외의 결과였는데, 그것은 게임이 중반을 지나게 되자 그가 처음에는 주로 x를 낸다는 것이 드러나게 됨에 따라 늑대는 단 한 번도 o을 내미는 상대를 만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릴라도 초반에 궁지에 몰리고 미래를 제외한 상대는 주로 x를 낸 것 때문에 o을 내밀어 주는 상대를 만나지 못해 꼴찌를 했다. 여우와 민성은 그에 대해 인과응보라고 낄낄대며 좋아했다.

"(고마워.)"

일동이 건내는 1000원 지폐 여섯장을 받으며 쿠로사카가 방긋 웃었다. 그녀는 특별히 독특한 계책을 취하기 보다 o을 낸 상대에게 o을, x를 낸 상대에게 x를 내는 방식으로 대처했고, 결과적으로 일등을 했다. 미래는 고릴라의 희생정신으로 꽤 점수를 벌었지만 아쉽게 삼등에 그쳤다. 그녀의 o, x를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냈는데, 그 탓에 상대가 주로 x를 내밀어 왔던 탁이다. 은결은 무조건 o을 냈는데, -너무나 오빠다워서 재미가 없다! 라고 미래가 평했다.- 결과, 꼴찌 바로 위에 올라섰다. 2등은 그러니까 여우였다. 쿠로사카와는 근소한 차였다.

"으윽! 어서 다음 게임을 하자!"

잘 나가다가 역전당한 것이 매우매우 분했던지, 늑대가 분한 얼굴로 말했다. 옆에서 고릴라도 "그래!"하고 울분을 토했다. 은결은 곤혹스런 얼굴을 했다. 시계를 보자니 슬슬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또 게임을 하기엔 좀 급했다. 페너트레이스 식으로 게임을 하는 것은 꽤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럼 토너먼트 식으로 간단히 하지. 승자는 승자끼리 진출하고, 패자는 패자끼리 진출하는거야. 일등은 상금. 꼴찌는 요리하는 걸로 하고..."

"좋아!"

"단판 승부고, 무승부일 경우 재승부. 단, 5점씩 가지고 동시에 0점 또는 그 이하가 되면 두 사람은 동시 탈락."

"응."

마치 준비해 뒀던 것 처럼 은결이 서슴없이 제안했고, 다른 사람들은 간단히 받아들였다. 이어 은결은 무작위로 대진표를 결정했고, 승부가 시작됐다. 고릴라와 늑대는 핏발선 눈으로 자신의 용지를 바라봤고, 미래가 은결에게 두 사람이 너무 과열된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은결은 돈이 낀데다 역전 당하면 대게 저렇게 된다고, 도박의 위험함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기차가 강릉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은결 일행이 섞여 있었더. 먼저 나온 것은 은결이었고, 그 뒤를 늑대와 고릴라가 아쉬운 얼굴로 쫒았다.

"후, 일등은 못 했다만, 하여간 맛있는 요리 부탁한다."

그리고 늑대가 승리자의 얼굴로 은결에게 말했다. 뒤에서는 고릴라가 차마 미래가 보고 있으니 대놓고 조롱할 수는 없다는 얼굴로 그에게 충고했다.

"그러니 전부다 o내는 녀석이 어딨냐. 너무 뻔하니까 그렇게 당하지. 좀 섞어 가면서 교묘한 전략을 수행해야 하는 거야. 나 처럼."

"어이구, 그래서 공동소멸이셨습니까?"

은결이 냉소적인 얼굴로 고릴라에게 말을 돌렸다. 고릴라는 늑대와 같이 결슴까지 진출했지만 둘다 끈질기게 x를 내는 바람에 공동소멸했다.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었다. 뒤에서 민성이 차라리 한쪽이 양보에서 같이 상금을 나눠먹지 그러냐? 라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지만 그것은 시끄러! 라는 말로 일축당했다. 덕분에 상금도 다시 일행의 주머니로 돌아갔다. 되다만 일등이라는 별 위로되지 못할 타이틀만 얻고 만 것이다.

"큼... 뭐, 그, 그렇긴 해도 아쉽게 놓쳤다 뿐이지 일등 가까이 까지 같잖아."

"그러시겠지. 심부름조 두 분."

은결의 냉혹한 대답에 고릴라와 늑대의 얼굴이 구겨졌다. 확실히, 일거리를 떠안은 데다 상금을 못 얻었다는 결과를 보자면 그들이나 은결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미래는 깔깔대며 그 대화를 즐거워 했다. 민성도 쿠로사카 곁에 다가가 세 사람의 대화를 화제 삼아 대화의 맥을 뚫기 위해 노력했다. 고릴라는 뻘쭘해져서 변명하듯 말했다.

"하여간 승부의 세계는 비정한 거라니까."

"그래. 승부의 세계는 비정한 것이겠지."

은결은 서늘하게 그 말을 받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쿠로사카는 불편한 얼굴로 은결의 등을 주시했다.

*추천해 주신 쿨 님과 부평초님께 감사를! 물론 좋은 감상 남겨주신 설죽 님께도. 하여간 열심히 쓰겠습니다.

*은결의 일본어가 읽기 쓰기에 비해 말하기에서 취약하지만, 취약하더라도 학적인 내용을 말할 정도는 됩니다. 은결은 초딩때 한국에 번역이 나오지 않은 책들 가운데 원서를 읽을 수 없는 것들은 일본어로 주로 읽었습니다. 참고로 은결은 일본어 외에도 외국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은결은 절대적으로 승리하기를 피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거부라면 쿠로사카에게 '슬픈'이라는 수사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30%는 타협의 결과입니다. 너무 낮으면 깔보이게 될 것이고, 너무 높으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상대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빼앗게 됩니다. 과거 밝혔듯, 은결은 '주인'이 되기 싫음 만큼 '노예' 역시 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몇 권의 중요한 책을 다시 읽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연결해 봤습니다. 아마 이 글을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이득 중 한 가지는 그런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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