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희망을 위한 찬가 - 이 곳에는 타자가 없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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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점심시간이다. 미래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얼른 은결네 반으로 올라갔다. 간간히 아직 식사를 하는 학생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특히 남자들의 대다수는 식사를 끝내고 교실에서 유유자적하거나 운동장으로 직행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런 시선으로 반 안을 살폈다.
곧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교실 한 구석에 앉아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하고 있는 동물원 삼총사와 민성이 보였다. 은결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 시간대면 요즘 은결이 교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온 차였기 때문에 별반 놀랍거나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 네 사람이 앉아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뒷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던 여우와 늑대가 미래를 알아보고 조금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고릴라는 갑자기 두 사람의 표정이 변하자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여우가 손가락을 미래 쪽으로 가리켰다. 고릴라는 그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고, 돌처럼 경직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래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 선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나요?"
"무, 물론!"
고릴라는 결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여우와 늑대, 그리고 민성의 얼굴은 돌연한 사태에 의아함을 넘어서, 경악을 그려내고 있었다. 미녀와 야수도 이런 미녀와 야수가 다시 없을 조합인 탓이다.
은결은 손을 들었다. 동작과 연계하는 힘의 흐름이 허공에 물리적 집결을 이루어 장막을 형성했다. 다음 순간, 예리하게 빛을 반사하는 새파란 금속날이 육안으로 잡아낼 수 없는 속도로 그 장막을 내리쳤다.
-키아앙-!!
예리한 충격음이 주변으로 파도치듯 퍼졌다. 은결이 형성한 역장도 미미하지만 대기를 뒤흔든 충격파처럼 출렁였다가 이내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역장의 방어에 막힌 검이 기세를 얻기 위해 뒤로 돌아갔다. 그 짧은 틈을 타고 은결은 오른쪽 발을 앞으로 세게 내 딛으며 공격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다른 쪽 손을 내질렀다.
-후앙-!
대기가 휘감기듯 그 손에 달라붙어 저항했다. 그러나 탄환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은결의 팔은 대기의 저항을 간단히 꿰뚫었다. 무자비하게 내찢긴 공기의 장막은 콰쾅! 하는 비명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 소리에 앞서, 그의 팔은 상대의 복부의 바로 앞까지 가 있었다. 하나, 이미 상대는 검의 손잡이 끝을 내리치며 은결의 공격을 방어했다. 쿵! 은결의 손등으로 검 손잡이 끝이 내려앉으며 그 공격을 궤도를 틀었다. 희미한 틈을 타고, 상대는 몸을 돌려 은결의 공세권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상대는 발을 세게 내려 찍으면서 다시 그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은결은 위험을 직감하고 양 손을 교차해 공격을 막아나갔다. 양 팔에서 형성된 에너지가 하나로 합해지며 견고한 장막을 형성했다. 동시적이라 할만한 순간에, 검날과 역장이 충돌했고, 폭발했고, 서로에게서 튕겨져 나갔다.
은결은 어렵사리 자세를 정리하며 착지했다. 맞은 편에서도 검은 비단을 흩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상대가, 쿠로사카가 겨우 자세를 바로 잡았다. 하지만 쿠로사카가 찰나의 시간 더 빨랐고, 지금 두 사람은 찰나가 치명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기회다!'
쿠로사카는 땅을 박찼다. 쿠웅- 하고 낮게 울리며 그녀의 몸이 아름답게 날았다. 전신이 마찰로 뜨겁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쿠로사카는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때 은결은 겨우 손을 들어 역장을 형성하려 하고 있었다. 다시, 검격과 역장이 충돌했다. 하지만 방금전 까지의 충돌과 달리 충분한 힘을 얻지 못한 은결의 역장은 금세 흐트러지며 구성이 해체당했다. 은결은 서둘러 다른 손을 더해 역장의 구성을 보강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쿠로사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웃!"
결국, 은결의 역장이 냉큼 베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탄성조의 비명을 내지른 것은 수세에 몰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장이 칼에 베였다.' 그 상황 자체가 예측하고 있지 않던 것이란 점이 더 컸다. 두 사람의 대결은 어디까지나 대련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역장을 직접 베어들어오는 수준의 위험한 공격은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뒤늦게 쿠로사카의 검이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검과 달리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은결이 반사적으로 내지른 경호성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검을 회수한 쿠로사카가 춤추듯이 몸을 공중에서 놀리며 그의 관자놀리에 그대로 무릎을 날렸다. 빠각! 하는 속 시원한 타격음이 나고, 은결의 동체는 멀리까지 데굴데굴 굴렀다. 옥상에 설치한 진법의 수준과 효과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도록 아팠을 만한 공격이다.
"내가 이겼어."
쿠로사카가 키리야미를 검집에 넣으며,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시원스런 표정으로 은결에게 차갑게 말했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벌레처럼 부들부들 떨던 은결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 선언을 긍정했다.
"그래. 네가 이겼어."
방금전까지 아픔에 전신을 떨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은결의 표정은 별반 유감을 담고 있지 않았다. 쿠로사카는 와락, 표정을 구겼다. 좋던 기분까지 같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승부에 초연한 은결의 이러한 태도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한층 불쾌했다. 이유는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 초연함이, 은결이 자신을 전력을 다해야할 상대라고, 패하거나 진다는 것이 분하거나 기쁜, 대등한 상대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격지심일 수 있지만, 충분히 자격지심이 아닐 수도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꽤 쓰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은결은 주저주저하며 물었다.
"...표정이 또 왜 그래? 이번에 시험도 그렇고, 진 사람은 난데 화는 맨날 네가 내니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걸 말이라고 해? 네겐 아무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지면 이렇게나 늘어진 네게도 진거니 화날 수밖에 없고, 이기면 전력을 다하지 않은 상대에게 이기고 뻐기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 시험도 그랬잖아!"
쿠로사카는 은결에게 버럭 소리질렀다. 그녀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 찔끔, 몸을 움치렸던 은결은 주저하는 태도로 그녀에게 제안했다.
"음- 그럼 앞으로 대련 그만 둘까?"
"---"
당장 주변의 온도가 내려갔다. 좀더 끌면 영하권 까지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은결도 자신의 말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리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두 손을 내저으며 방금 한 말을 취소했다.
"뻥이야. 뻥. 그렇게 화 내지 마."
"알면 앞으로는 좀더 성의껏 해."
쿠로사카는 던지듯이 말했다. 은결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불지 않는 이질적인 공간에서의 침묵은 다른 곳에서의 침묵보다 한결 진하고 끈적끈적해서, 그 안에 있는 이들을 그 끈적함으로 휘감아 이어 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쿠로사카. 그런데, 그렇게 승리를 원하는 나와 싸워 이기면... 기뻐?"
"...승리해서 기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승리라면, 지금도 했잖아. 꼭 승리를 원하던 나에게 이겨야 기쁘냐는 거야."
"그건... 진정성이 없는 상대에게는 원래 이겨도 기쁘지 않은 법이잖아? 그런게 기쁘지 않은건... 당연하잖아?"
쿠로사카는 더듬더듬 답했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동어반복으로 무의미한 답이란건 그녀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은결과 달리 '근본적인'것에 대한 질문이나 답에 익숙하지 못하다. 승리하면 기쁜 것은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에 의문스러워 할 어떤 여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가... 나는 정말로 이기고 싶어서, 그래서 싸우고 싸워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너와 싸워서, 그랬는데도 네가 이겨야만... 가치있는 승리인거야?"
은결은 슬프게 말했다.
"그-"
쿠로사카는 그 말에 답하기 어려웠다. 어떤 충격이 그녀를 덥쳤다. 그것은 성취를 위해 타자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시 하나의 '노예'일 뿐이었다. 은결은 다시 슬프게 말했다.
"쿠로사카, 다른 사람의 소망을 자신의 힘과 소망으로 깨뜨려 이길 때에야만 기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슬픈게 아닐까? 이긴 사람은 이겨서 기쁘겠지만, 진심으로 이기고 싶었던 다른 사람도 그곳에는 패배자가 되어 분명하게 있는 거잖아. 그런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가 슬퍼해야만 기뻐할 수 있는 승리란건... 사실 슬픈게 아닐까? 타자를 만들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승리라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할 수 있다는게 진정한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
쿠로사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은결은 몸을 돌려 도천시를 돌아보며 서글픈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이었다.
"쿠로사카. 그래서 나는 승리하기 싫어. 승리자를 떠받드는 세상도... 그래서 꽤 싫어. 너라면, 알아 줄 것 같았는데."
쿠로사카는 마지막 말의 마지막 쓸쓸한 말은 특히 저리다고, 어쩔 수 없이 생각했다.
*저는 블루보이 아닙니다. 밝고 쾌활한 명랑청년!
*어떤 방식으로 이 글을 읽든, 어쨌거나 독자 여러분이 즐거이 읽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댓글, 감상을 남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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