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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17화 (117/300)

#   118-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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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치고 나서야 은결은 깨어났다. 쿠로사카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은결이 눈을 뜬 것을 보고 쿠로사카가 물었다.

“기분은 어때?”

“아... 이제 괜찮아.”

“다행이군. 귀찮은 소요를 피하기 위해서 반에다가는 간단히 최면을 해 뒀어. 교실로 내려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몸 상태 체크해 보도록 해.”

그리고 쿠로사카는 은결이 대답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검처럼 섬연한 태도였다. 여름을 맞이한 모든 바람이 그녀의 곁에서는 습기를 잃고 가을바람의 서늘함을 닮는 것 같았다. 은결은 다소 허둥대는 태도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 잠깐만.”

“뭐지?”

재깍 몸을 돌리며 쿠로사카가 물었다. 은결은 약간 쑥스러운 기색으로 머리를 긁었다. 정신적 혼란이 크긴 했지만 자신이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저기, 고마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네가 사념의 후유증을 계속 껴안고 있는 쪽이 나로서는 더 껄끄럽고, 그게 아니더라도 네게는 빚이 있으니까. 그리고-”

쿠로사카는 말을 이으려 했다가 흠, 하고 가볍게 말을 죽였다. 은결은 잠시간 그녀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쿠로사카는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그녀는 꺼냈던 화제를 죽이며 은결에게 말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내려가자.”

“응.”

은결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교실로 내려갔다. 옥상 문을 닫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서, 쿠로사카는 방금 전 자신이 은결에게 하려던 말을 생각했다. ‘네 상담역은 될 수 없겠지만, 이야기 정도는 언제든지 들어 줄 수 있어-’라고, 그녀는 은결에게 말하려고 했었다. 다시 생각해 보건데, 입이 찢어져도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방금전, 자신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앞서가는 쿠로사카의 전신으로 피가 빠르게 돌았다. 자연,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 저- 쿠로사카, 아직 화났어?”

갑자기 뒤에서 은결이 껄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은결은 쿠로사카의 체내 변화를 간단히 감지한 것 같았다. 비일상적인 감각능력이다. 아마도 은결은 쿠로사카의 말에 따라 기를 활성화해 몸 상태를 확인하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 작은 짜증을 느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건 은결이 나빴다. 그날, 이야기할 상대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한 주제에, 사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사념이 혼자서 감내할 만한 것이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홀로 그것을 삭였을 것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체계를 다시금 세우고 깎아내리며. 혼자서, 오직 혼자서. 그래서 이런 사태를 겪게 된 것이다.

“그래!”

쿠로사카는 강하게 말하며 성큼 내려갔다. 은결은 지은 죄도 있고, 그녀의 불벼락이 무서워서 뒤에서 좀 쫄다가 따라 내려갔다. 오늘 확실히 체험한 바, 쿠로사카는 칼만 무서운게 아니었다.

자전거 한 대가 골목길을 부드럽게 달리고 있었다. 아침 꽃잎이 머금은 이슬처럼 상쾌한 유영이었다. 거기에는 성천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교복과 검은 머리칼이 바람을 타며 건강한 풀잎처럼 흔들렸다. 은결과 미래다. 쓸어내리듯이 페달을 밟으며 은결이 말했다.

“-미래야. 오늘 나는 볼일이 있어서 집에 좀 늦게 들어갈 거야. 반찬은 아침에 만들어서 냉장고 넣어 뒀으니까 데워 먹어. 뭣하면 레토르트도 몇 개 있으니 그걸로 하던가.”

“에- 다음 주가 시험인데, 학생이 무슨 볼일이야. 오빠가 독서실 갈 리도 없고!”

미래는 불만에 들어찬 말로 응수했다.

“음, 별 것 아냐. 그냥 말 그대로 볼일 이 좀 있는 거지. 네가 말한 것처럼 다음 주가 시험이니까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혹시, 그 교환학생하고 약속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어제 미래가 수업을 마치고 은결네 교실에서 그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은결은 쿠로사칸가 구린사칸가 하는 무척 마음에 안 드는 여자와 함께 등장했다. 은결에 앞서 오며 조금 화난 얼굴로, 약하게 얼굴을 붉히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미래는 아주 불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은결은 ‘허-’ 하고 헛웃음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양자터널 효과를 맨몸으로 체험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본다.”

양자터널 효과란 양자가 일종의 공간 도약을 통해 장벽을 투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단위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간 수준의 거대한 물체를 이루는 물질 전체가 그러한 효과를 발생시킬 확률은 원숭이가 아무렇게나 친 타자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일 가능성과 비견할만 하다. 요컨대, ‘그럴리가!’의 아주아주아주 강한 표현이다.

“그럼 뭐야?”

그렇게 강한 수사에도 아직 의혹이 풀리지 않았던지, 미래는 은결의 등에 얼굴을 붙이고 새침하게 물었다. 은결은 후- 하고 힘없이 한숨을 쉬고는 답했다.

“다소 귀찮은 약속을 좀 해둔 게 있어서, 그걸 좀 해결하려고.”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기쁜 약속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꺼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기지 않지만 꺼려하는 것은 아닌 은결에게 이건 드문 태도였다.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았다. 미래는 경계모드를 풀고 투정을 이었다.

“흐응- 일찍 들어와야 해! 야식 만들어 줘야지!”

“음, 그러다 너 살찐다.”

은결이 경고했다. 아직 집에서 바퀴벌레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해서 야식은 좀 피하고 싶었다. 오밤중에 청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는 가사 마스터인 오빠의 마음은 모르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진리를 설하는 것처럼 답했다.

“미소녀는 살 안쪄.”

“...그러세요.”

자전거가 골목을 꺾었다. 학생들의 수가 갑자기 많아지며, 성천 고등학교가 보였다.

“좋은 아침.”

상쾌한 태도로 인사하며 은결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아아-”하고 먼저 와 있던 쿠로사카가 그의 말을 받았다. 은결을 맞이하는 그녀의 태도가 조금 어색해 보였다. 하여간 이 자리에 주변이 붐비지 않는 것을 보아 아직 민성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민성이 왔다면 쿠로사카에게 설레발이 치기 바쁜 그의 일과상 자리가 선선할리 없는 탓이다.

“흠- 그런데, 은결.”

갑자기 쿠로사카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은결은 고개를 돌렸다.

“응?”

“오늘 집에서 네가 알려준 레시피를 가지고 닭죽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억지로 만든 양,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 느긋한 목소리로 쿠로사카가 말했다. 가사 마스터의 피가 끓은 은결은 잃은 점수도 좀 벌어보고자,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헤, 그래? 뭐 물어볼 거라도 있어?”

“아니, 그보다 그 아이를 초대할 생각인데, 아마 음식이 좀 남을 것 같아. 냉장고도 없으니 오래 보관할 수 없는데, 버리긴 아까우니 시간이 빈다면 와서 들지 않겠어?”

돌아온 쿠로사카의 말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은결은 다소 놀랍게 생각하며 미안한 얼굴을 했다. 유감스럽지만 오늘은 세연과의 선약이 있다.

“아, 제안은 고맙지만 선약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미안. 다음 기회에 초대해 줘. 대신에 애매하다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봐. 성심성의껏 답해줄게.”

“...그래. 선약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쿠로사카는 담담하게 은결의 대답을 받아들였다. 그런 전혀 의외의 대화가 있은 뒤, 얼마 있지 않아 민성이 도착했다. 그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언제나 그러하듯 쿠로사카가 있는 쪽으로 오더니, 평소보다 한결 들뜬 태도로 말했다.

“오늘 다 함께 영화 보러 가자. 물론 쿠로사카도 포함해서!”

“다음주가 시험인데, 무슨 영화냐, 얼어 죽을 영화는.”

은결이 재깍 대답을 돌렸다. 쿠로사카도 평소처럼 상냥함의 가면을 쓴 다음, 그것을 곤혹스럽게 바꾼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그 의견에 동참했다. 그러자 민성은 손가락을 내밀어 흔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쯧쯧, 원래 큰일을 앞두고서 더욱 릴렉스가 필요한 법이라고!”

“그건 공부 열심히 하고 난 다음에 할 말이라고 본다만...”

은결이 매우 온당한 대답을 되돌렸다. 웃, 하고 말문이 막혔던 민성이 이내 책상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치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탁 까놓고 우리 일당 가운데 주말에 좀 논다고 성적에 지장 있는 인간이 어딨냐! 그런 영화 보나 안 보나 성적이야 그게 그거지.”

은결과 민성, 동물원 삼총사라면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에 도매금으로 넘어간 쿠로사카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무척 성적이 좋은 모범생이었다. 그녀의 학교에서는 쿠로사카가 장래 동경대생이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듯, 민성은 얼른 웃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쿠로사카 양은 빼고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한국에 와서 첫 시험인데, 영화라도 한 편 보면서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것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은결이 서둘러 그를 제지했다.

“쿠로사카는 오늘 따로 약속이 있어서 안 돼. 그리고 나도 영화보기로 선약이 되 있어서 곤란하지.”

“설마-”

민성의 얼굴이 시퍼래졌다. 아무래도 최악의 예상을 한 모양이다. 은결은 한숨을 쉬며 친우의 넘쳐흐르는 상상력에 제동을 걸었다.

“같잖은 오해는 말도록. 오늘 내가 같이 영화보기로 한 상대가 여자인건 맞는데, 상대가 쿠로사카인 건 아니니까.”

“헉!”

민성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얼굴은 한층 더 파래졌다. 그로서는 반가운 소식일 텐데 왜 그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은결은 “왜?”하고 되물었다. 민성은 진지한 얼굴로 답을 되돌렸다.

“으음, 네가 같이 영화 볼 상대가 쿠로사카 말고 달리 있었다는 게 더 놀라우니까. 역시 네 동생이겠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쿠로사카야 니가 일어실력 때문에 친해진 거지...”

이어서, 민성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꼴을 보며 은결은 진지하게 민성을 ‘때릴까?’하고 고민했고, 그 옆에서 쿠로사카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이를 갈고 있었다. 뭔가 용서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성탄 시즌을 위한 특별 염장편(...)

*이 글에 소외감을 느끼시는 이과 분들을 위해 과학적 수사를 사용해 봤습니다.(...) 양자터널효과. 음. 설명 없이 이해하는 사람에 한해서 정말 강력한 수사일 것 같기는 합니다.

*클라우스와는 성격이 달라서 은결과 대등한 대화가 가능한 캐릭터를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연이 좀 약해지긴 했는데, 사실 은결과 대등한 대화가 가능한, 그러나 사상적으로 반대지점에 선 캐릭터를 집어넣으면 다루고 있는 내용 상 논쟁이 길어지고 그래서 ‘대화록’이 될 위험이 너무 높습니다...-_-;;

클라우스 학원에서 논쟁은 그 자체가 주로 ‘논리가 진리를 이끈다고 믿지 않는 캐릭터(알렉)’에 의해 수행됨으로서 그 글이 목표로 하는 테제였던 ‘논리의 힘을 부정하기’에 봉사하도록 구성하고 있었던 거라서, 중심주제에도 동시에 분명하게 봉사하고 있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런 것도 아니니 그런 위험과 수고를 무릎을 가치가 없는 편이죠.

*그나저나 무척 피곤합니다... 두 개를 동시에 쓴다는 건 정말 할 짓이 아닌 듯... 언젠가 코피 쏟고 쓰러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ㄷㄷㄷ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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