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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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고, 은결이 옥상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곳에 올라 허리춤에 키리야미를 맨 채 바람을 맞이하던 쿠로사카가 은결을 맞이했다.
“어제 카미가 적잖게 날뛰었는데, 들키진 않았어?”
“결계와 역장이 충분히 강력해서 할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능력자들에게도 들키지 않았어. 푸른 이빨이 바보가 아니란건 내가 완벽하게 그의 함정에 걸려들었던 때부터 분명한 것이겠지. 다만 그때 걸었던 최면 때문에 작은 교통사고가 몇 개 있었던 모양이야. 피해자분들에게는 죄송하게 생각해.”
은결이 답했다. 쿠로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군. 그럼 결계 형성하고 이 악물어.”
가녀린 손이 쥐어진다 싶더니 은결의 얼굴을 향해 날았다. 뻐억! 소리가 났다. 은결은 발걸음을 휘청이다가 결국 땅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각오하고 맞았지만 그래도 되게 아팠다. 결계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자주포탄의 사정거리만큼 날았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여전히 어금니가 없어 이가 상할 일은 없다는 정도다. 은결의 어금니는 이번에 카미의 몸을 빌린 동안에도 크게 자라지 않았다. 부상이 전혀 없었던 때문인 것 같았다.
“일단, 이 정도로 해 두지.”
싸늘한 눈으로 은결을 내려다보며 쿠로사카가 말했다. 그녀는 빨갛게 물든 자신의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드문드문 엷은 핏자국도 보였다. 은결의 피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피였다. 그녀의 손은 은결을 때리며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은결은 “응.”하고 담백하게 답했다.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가벼운 대답이었다.
쿠로사카는 분했다. 자신의 분노가 그에게는 무의미한 것 같아서 분했다. 이 주먹질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 분했다. 그는 다음번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게 분했다. 그래, 자신의 생각은 그에게 가 닿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것이 분했다. 곧 은결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사념체가 이번에 자살했던 사람과 관련이 있었던 모양이지?”
쿠로사카는 지나가는 어조로 물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 이번 일을 생각하면서 그녀도 은결의 질문이 담고 있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은결은 쿠로사카에게 맞은 볼을 한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푸른 이빨의 행위는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에서 내게 기억되어 있어. 그가 겪은 감정도... 그리고 사념체를 해체하면서, 그는 막대한 사념을 접했어. 그건 정말 엄청난 사념이었지. 그러나 그 내용은 결국 한 사람의 감정이었어. 그 사람의 사념이 확대되어서 이번 사념체가 형성된 것이지, 다른 무수한 사념이 모인 사념체의 중핵을 그 사념이 맡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념체의 자아라 할 만한 것은 그 사람의 것이었어. 사념체의 형태가 바퀴벌레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지.”
“...일부러 바퀴벌레를 선택했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렇지는 않아. 다만...”
은결의 말문이 막혔다. 그는 “아, 아,”하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쿠로사카에게, 그것은 토해낼 말이 비어 나오는 쉰 소리라기보다 너무 큰 말의 덩어리를 토해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은결이 침묵했다. 그는 한 동안 땅바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바람이 두 번 불어, 두 사람 사이를 쓸고, 다시 은결이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밑이 붉었다. 그 눈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은결은 말했다.
“-다만, 그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첫 문장을 떠올렸을 뿐이야.”
자살하면서 변신을 떠올리고, 죽어 바퀴가 되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쿠로사카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눈살을 잠깐 찌푸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곧 질문임을 이해한 것처럼, 은결은 말했다.
“그는, 그 사람은 그렇게 자기를 바퀴벌레마냥 쓰레기 같다고 느꼈어. 그는 열심히 일했지만, 노동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상황은 그에게 주어져 있지 않았어. 그의 힘으론 어쩔 수 없었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당했어.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고, 모멸 받았어. 주변의 모두가 그를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여겼어. 실패한 인생이라고 수군거렸어. 사랑하던 아내도 냉정하게 그를 버렸어. 아무도 그를 가치있는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그를 구성하던 모든 주변 관계는 해체 당했어. 그는 그런 규정에 저항 할 수 없었어... 그래서 그는 자신을 쓰레기 같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는, 그레고리 잠자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던 거야... 결국 그는 자살을 택하고, 죽음의 순간에 변신을 떠올렸고, 변신을 떠올린 그는 자신 역시 변신했다는 것을 결국 깨달았을 뿐이야. 그는 변신했어. 그렇게 혐오스런, 무의미한 한 마리 바퀴벌레로...”
은결은 열띤 어조로 말했다.
“-쿠로사카, 나는 변신이라는 소설이 무서워. 그 소설이 담고 있는 상황의 절망성이 무서워. 그레고리 잠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그는 그냥 그렇게 된 거야. 원인도 결과도 그에게 주어져 있지 않았어. 그 글이 담고 있는 가족이란 집단의 연대에 대한 비웃음이 무서워. 그레고리 잠자는 가족에게 살해당했어. 그의 죽음에 가족들은 기뻐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야, 그 소설을 무엇보다 무섭게 만드는 것은, 그 소설이 담고 있는 ‘변신’이라는 상황의 보편성이야. 이 사람은 전혀 특별하지 않아.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남성이었을 뿐이야. 그렇지만 그는 그레고리 잠자와 똑같았어. 그렇다면 모든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에게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거야.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게 무서워. 어느 날 아침 벌레가 되어버린다는 공포는... 환상이 아니야. 일회적이거나 예외적이지 않아. 그것은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거야.”
그는 어느 사인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다시 죽은 이의 기억과 감각이 은결의 뇌리 가운데서 재생된 모양이었다. 절망적인 소외감 가운데 죽었던 이의 감정에 취한 은결은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쿠로사카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렇게 고통스러워할 이유는 없잖아?”
“...그래. 내 잘못이 아니겠지?”
잠시간 말을 멈췄던 은결은 구원을 찾은 듯이 애원하는 눈길로 쿠로사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은결을 껴안았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언제나 노력하는걸. 이건 내 잘못이 아냐. 나는...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사념체도 성실하게 처리하는걸.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도, 우리나라의 실업자가 천 만 명에 달하는 것도, 그런 실업자의 대군을 배후에 두고 무수한 노동자가 ‘변신’의 위기에 놓여 있는 것도 내 잘못이 아냐...”
쿠로사카의 가녀린 어깨에 턱을 올리고, 은결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쿠로사카는 그 말 역시 긍정했다.
“그래. 너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내 잘못이 아냐... 자본을 증식할 수 있는 노동만이 가치 있게 된 것은, 그래서 자본을 증식시킬 수 없는 노동이 혐오스런 바퀴벌레 취급을 받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냐... 수단으로서의 타자만이 진정 의미있는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가 된 것도,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냐...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은결은 이어서 말했다. 그의 눈물에 쿠로사카의 교복이 젖었다.
“너는, 결백해.”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은결은 그녀의 품 안에서 쓰러지듯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는 과정에서 그는 무언가 쿠로사카에게 말하려 했지만 그것은 말이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쿠로사카는 한동안 은결을 안은 채로 한숨을 쉬었다가 그는 바닥에 누이고 그 곁에 앉았다.
“...”
쿠로사카는 은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흘린 눈물과 콧물, 그리고 그녀가 직접 만든 부어오른 볼까지 다해 엉망이었다. 쿠로사카는 손수건을 꺼내 은결의 얼굴을 닦아줬다.
“사념체의 감정이 이렇게 까지 잔재를 남기리라고는... 그 녀석은 정말로 엄청났었군.”
곧 그녀는 은결의 얼굴을 다 닦을 수 있었다. 쿠로사카는 수건을 접어 품에 넣고는 다시 은결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물을 다 씻어낸 그의 얼굴은, 하지만 여전히 슬퍼보였다.
“단지 그것 만인 것 같지는 앉지만...”
쿠로사카는 작게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은결의 옆에 앉아 조용히 시간이 흐르길, 그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크록스 님의 추천에 감사의 마음을. 진서림님도 원성 듣지 말고 열심히 쓰시길.(푸하하)
*‘카미’와 ‘신’간의 용어 선택의 엄격성에 대해 지적해 대해서는 숙고하겠습니다. 수사적인 측면에서 역시 ‘신’이 더 뽀대가 나다보니 다소 남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댓글에 잡담 붙이기는... 음, 매력적인 제안입니다.-_-;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양철학에 기반하는건 거기 익숙하기 때문이지 동양철학을 낮게보거나 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제와서 공부해봐야 제대로 개념 익히기도 오래걸리고, 파던걸 계속 파야 더 좋은 글이 가능하겠지요.
*아, 그리고 답하는 걸 까먹었는데, 은결은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하고, 유행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논리를 따라갈 수 있다면 외국인이 듣기는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한국어를 무척 어려운 텍스트로 공부했지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글에서 서브라임 광고를 해야하는 게 아니라 서브라임에 이 글 광고를 해야하는 위치의 역전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매한 기분이네용;;
*피곤해서 오늘은 이 정도로.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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