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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14화 (114/300)

#   115-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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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기를 가르며 쿠로사카는 날았다. 그녀의 발아래 펼쳐진 콘크리트 정글의 욕망은 형형의 네온사인으로 물상화되어 무수한 도시인의 삶을 반영했다. 그 도시 위에서 별빛은 이제 뜨지 않고, 달은 혼탁에 젖었다.

그런 도심의 대기 가운데서 쿠로사카는 은결을 생각했다.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희미한 미소일 뿐이다. 그 미소 앞에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희미한 미소였다. 그 미소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도 알기 어려웠고, 그 미소가 정말로 미소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그의 미소는 아무 것도 노리고 있지 않았다. 서글픈 안개를 향한 위로 같은 미소였다. 그녀는 밝게 웃는, 활발한 은결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슬픔을 숙명으로 껴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은결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쿠로사카는 은결을 생각하면 열등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 만큼 강했고, 거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 쿠로사카보다 뛰어났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성취였다. 객관적으로, 쿠로사카는 스스로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만이 아니었다. 그녀를 인정한 것은 다름 아닌 미즈하라였고, 아버지 였고, 어머니 였고, 이세의 고위 신관들이었다. 그들은 입 모아 쿠로사카의 재능과 성취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그 재능과 성취는 은결 앞에서 빛이 바랬다. 그는 그녀만큼 강했고, 기호를 다루는데 그녀를 완벽하게 압도했고, 그녀가 모르는 무수한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못하는 무수한 것을 거뜬히 해 냈다. 쿠로사카는 입밖에 꺼내 말한 적은 없지만 은결을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나이에서 그가 이루고 있는 것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노력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녀도 노력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은결은 언제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 처럼 보였다. 그는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허망해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며, 그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가 책을 읽으며 얻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만 같았다. 그는 마치-

‘-절망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 같아.’

쿠로사카는 그렇게 보았다. 그는 완고한 절망의 체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 것처럼만 보였다. 처음 그와 검을 나누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완고하게 그녀의 검 앞에서 삶을 지속했다. 그때 은결이 살아난 것은 그녀의 망설임과 그의 끈질김 때문이었지만 양자 가운데 더 중요했던 것은 그의 생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생명에 대한 그녀의 말을 듣고 조소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

다시 쿠로사카는 은결을 생각했다. 그의 미소는 희미하고 전망이 없다. 너무 먼 것을 보기 때문인지, 아무 것도 보지 않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너무 먼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쿠로사카는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은결을 동정했다. 그녀는 그가 좀 더 진실하게 웃을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보는 그의 웃음은 밝고 아름다웠다.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쿠로사카는 재빨리 방향을 바꿔 근처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예리한 눈이 도시의 외곽으로 향했다.

‘나타났다!’

“나타났구나!”

쿠로사카의 맞은편에서 순찰하던 은결도 그것을 느꼈다. 그는 서둘러 팔찌에 기를 주입하고, 쿠로사카에게 연락했다.

“쿠로사카! 내가 갈게. 너는 오지 마. 어차피 와 바야 아무 것도 못 할 거 아냐.”

-으음... 그렇지만 너 혼자만 보낼 수는-

“수가 있어.”

그리고 은결은 연락을 끊고 역장을 밟았다. 쿠로사카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봉인 수호자인 그녀와 푸른 이빨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빙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면전에서 그런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몸이 먼 곳까지 날았다. 곧 은결은 크고 검은 사념체가 있는 곳 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가로등 아래서 그것은 더듬이를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쓰러진 중년의 남자가 한 명 보였다.

“으음...”

언제봐도 두려운 모습이다. 벌써부터 어떤 혐오와 절망의 아우라가 주변을 잠식한 것 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은결은 침을 한번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대고 한동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의 앞으로 푸른 빛의 마법진이 떠올라 재깍재깍 시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폭을 위한 진이 동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와라!’

그리고 은결은 속으로 염원하듯 강하게 말하며 전신의 기를 휘돌렸다. 평소에도 은결의 전신으로는 기가 한강처럼 도도하게 흐르지만 지금은 장마철 아마존 강처럼 무지막지했다. 곧, 무언가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은결의 정신은 동시에 격리되었고, 그의 눈매가 오만하고 위험하게 바뀌었다. 그는 키득대며 손을 들어올렸다. 푸른 전류가 장갑처럼 그의 손을 휘감았다. 파직, 파직 하고 대기가 그 전격에 타오르는 소리를 냈다.

“후- 언제 들어와도 놀랍단 말야. 이 새낀 뭘 처먹었기에 몸이 이렇게 좋지? 세연인가 하는 그 계집애만 해도 정말 희귀한데 여기 대면 쓰레기통이나 다름없으니.”

카미, 푸른 이빨은 다시 한 번 은결의 몸에 감탄하며, 자신의 힘을 점검했다.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압도적인 용량과 순도의 기였다. 가히 물화된 신성. 그는 도도한 시선으로 아래를 깔아봤다. 압도적으로 크고 검은 것이 거기 있었다. 가로등의 불빛이 갈색 등 위에서 매끈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하여간, 저 찌끄레기를 처리 해 주면 된다는 거지? 한동안 놀아볼까.”

그리고 푸른 이빨은 천천히 내려갔다. 허공에 계단이 있는 것 처럼 그의 동작은 자연스러웠다. 사념체는 압도적인 힘을 느끼고 쓰러진 인간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도망 갔다. 푸른 이빨은 키드키득 웃었고, 다음 순간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순간에 이 일대 전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가 겨우 진정됐다. 결계를 치지 않았다면 주변은 모두 괴멸되었을 것이다. 압도적인 속도였다.

“더럽게 약하군.”

그가 나타난 곳은 도주하는 바퀴의 앞이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그 앞에 서 있다가, 바퀴가 다가오자 발로 그 머리를 내리 찍었다. 퍼석, 하고 은결의 발이 키틴질의 껍질을 꿰뚫고 들어갔다.

-끼에에에!!!

짙은 체액과 껍질 조각이 그의 바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바퀴는 그 거대한 몸은 부들부들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그것은 날개를 퍼덕여 은결의 발에서 벗어나고자 하기도 했고, 더듬이로 그를 찔러 벗어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무의미했다. 히죽이 웃으며 오만하게 팔짱을 낀 푸른 이빨의 발에서, 바퀴는 벗어날 수 없었다.

이내 푸른 이빨은 오만한 미소를 한층 강화하더니 바퀴를 머리를 꿰뚫은 발을 다시 한 번 밟았다. 와그작- 소리가 나며 바퀴의 머리가 완전히 부서졌다. 그리고 머리를 잃은 바퀴는 초록색 체액을 뚝뚝 흘리며 부들부들 뒤로 멀어져 갔다.

“보자- 이 녀석도 꽤 끈질기다지? 어디 한 번 시험 해 볼까?”

푸른 이빨은 머리를 잃은 바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가 박살난 부근의 키틴질을 잡았다. 그리고 맨손으로, 지난번 늑대를 그러했던 것 처럼, 하나하나 해체하기 시작했다. 바퀴의 키틴질이 하나하나 분쇄됐다. 근육이 찢어졌다. 내장이 찢겨나갔다. 날개가 뜯겼다. 더듬이가 조각났다. 앞 다리가 뜯어졌다. 배가 찢겼다. 찢어졌다. 갈라졌다. 베어졌다. 부서졌다. 끝이 없을 것 처럼, 푸른 이빨은 사념체를 잘게 쪼갰다. 그러고도, 계속 살아서 꿈틀거렸다.

“오오- 굉장하군.”

주변은 초록색 체액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널부러진 내장이 멀리까지 끈적대며 펼쳐졌고, 제 체액에 젖은 갈색 날개는 힘없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푸른 이빨의 표정도 변했다.

“뭐야 이건-!”

그는 불쾌해 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파괴에 열중하면서도, 그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이 끈적한 점액질의 내용물 가운데서, 그는 짙은 불쾌감을 느꼈다. 절망과 회한이 혐오로 변환된 것 같은 끔찍한 감정이다.

“젠장... 뭐 이런 재수 없는 종자가 다 있지?”

퉷! 하고 그는 침을 땅바닥에 뱉았다. 초록 체액의 바다에, 그것은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졌다. 다시, 푸른 이빨의 발이 바퀴의 키틴 갑질을 와그작 밟았고, 이어 허리를 굽힌 그는 그 부근을 유지하는 근육을 잡아 뜯었다. 으지직- 하고 거대한 고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바퀴가 해체 될수록, 푸른 이빨의 표정은 굳어졌다.

“씨발...”

즐겁지 않았다. 푸른 이빨은 관성으로 이 일을 지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멀리 빌딩의 옥상에서 딱딱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봉인 수호자가 보였다. 그는 키득, 웃고는 전신으로 전격을 일으켰다. 일대가 푸른 전격의 빛에 휘말리며 꽈르릉! 하는 폭음이 났다. 그리고 해체되던 사념체는 일순간에 재로 변했다. 빛이 사라졌다. 일대의 대지와 대기로는 막대한 양의 전기가 남아 지직 거리고 있었다. 가볍게 움직이기만 해도 푸른 전격이 일어날 정도였다.

“저 쪽이 낫겠군.”

푸른 이빨은 간단히 말하고는 바닥을 박찼다. 자동적으로 생성된 진이 그 힘을 수용하며 그를 허공으로 떠올렸다. 그는 로켓처럼 빠르게 대기를 꿰뚫었다. 푸른 이빨은 금세 쿠로사카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키리야미를 내밀고 있었다. 그가 이곳으로 향할 것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푸른 이빨은 거칠게 말했다.

“계집! 싸우자.”

“은결은 어떻게 된 거지?”

쿠로사카가 물었다.

“아, 그 새끼 걱정하고 있었냐? 걱정마라. 잠깐 빙의한 것 뿐이야. 앞으로 20분 뒤에 제자리에 돌려줄 테니까. 하지만 이건 끔찍하군. 저런 기분 나쁜 새끼가 상대일 줄 알았다면 싸우지 않는 게 나았어. 뭐 이런 재수 없는... 하여간 그래서 내가 무척 불쾌하다.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기쁘지 않을 만큼. 퉷!”

푸른 이빨은 불쾌하게 다시 침을 뱉았다. 그의 태도와 얼굴 모두에서, 손으로 쥐어짜려면 쥐어짤 수 있을만큼 불쾌감이 물씬물씬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 쿠로사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 너, 키리야미를 해방하고 남은 시간동안 나와 싸우자.”

“싫다면?”

짧은 침묵 다음, 쿠로사카가 반문했다. 푸른 이빨이 키득거렸다. 이어 무시무시한 힘과 위엄을 내뿜으며 푸른 이빨이 선언했다.

“병신 같은 년. 네게 거부권이 있는 줄 알아? 힘 있는 자만이 선택하는 거야. 힘 있는 나는 기분이 존내 더러워서, 좀 설쳐야겠고, 네가 가장 적합한 상대지. 은결인가 하는 이 쪼다새끼가 지랄발광을 할 테니 죽이진 않겠다만, 얻어터지고만 있겠다면 그렇게 하던가.”

쿠로사카는 이를 악물었다. 은결이 정신을 차리면 한 소리 해 줘야 할 모양이었다.

*이것으로 최장챕터 확정.

*아, 황폐한 기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텐데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찌질함이라고나 할까... 털썩.

*벌써 12월입니다. 슬슬 올해의~ 시리즈를 준비해야겠네요.

*성원을 합시다!

*서브라임 감상 비평 기타 등등 받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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