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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11화 (111/300)

#   112-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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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과의 간단한 대화가 끝나고 세연은 곧 정신을 차렸다. 푸른 이빨의 조작으로 시간의 결락은 부드럽게 처리되어 세연은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두 사람은 어색하게 대화하며 웃었다. 서로의 어색함이 맞물리며 맷돌이 갈리는 것처럼 시간은 거칠게 지나갔지만, 느리게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연은 은결네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수행의 은결 자랑을 들었고, 그 자랑에 은결이 당황하는 모습도 보았다. 식사를 끝내고 디저트로 간단히 과일까지 먹었을 때, 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었다.

세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소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었지만 이곳에 길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은결은 버스 정류장까지 세연은 배웅했다. 긴 골목은 인적이 드물었다. 세연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은결은 별반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런 느린 발걸음이 이어지길 어느새 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줄곧 은결의 옆얼굴을 훔쳐보며 머뭇머뭇 거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은결은 모르는 체 했다. 곧 버스가 도착했다.

“그럼 저는 이만.”

“아, 잠시만요.”

간단히 인사만을 마치고 은결은 몸을 돌리려 하자 세연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제지했다. 그녀의 오른손이 은결의 왼손을 잡았다. 세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은결도 다소 붉어진 얼굴로 그녀를 되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

“저,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으신가 하고...”

우물주물하며, 시선을 무의미하게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세연이 물었다. 은결은 다소간의 당황 가운데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역시 거부감이 들었다. 세연이 싫다거나 좋다거나 이전에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탓이다. 그러나 카미의 건도 잃고 그녀와 얼굴보는게 서먹해 지는 것도 많이 곤란했다.

“...시간이야 있습니다만.”

은결이 답했다. 백합이 피어나듯 그녀의 얼굴이 피어났다. 그때 버스가 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헤드라이트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불들이며 그 청초함에 기묘한 색감을 더했다. 세연은 버스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기쁨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함께 영화보지 않으실래요? 표를 두 장 얻었거든요. 오빠가 과 이벤트용으로 쓰고 남은 거라고 하던데, 마침 이번 주말 영화고...”

“알겠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토요일에 휴대폰으로 연락해 주세요.”

시간이 있다고 답해 놓고 여기서 거절한다면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마땅하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세연은 기쁨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보다 버스를 놓쳐서 꽤 기다리셔야 겠네요.”

“아, 괜찮아요. 그냥 택시타고 가면 되니까.”

세연은 생긋 웃으며 그렇게 답하고는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개인택시였다. 그녀는 택시 안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은결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리고 개인택시는 금세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중한 안색으로 택시를 바라보던 은결은 이제 시선을 돌려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세연에게 잡혔던 손이었다.

“음... 어느 쪽으로 때려잡았더라?”

은결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리던 것은 바람에 흔들렸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은결은 문을 열고 옥상으로 갔다. 결계는 펼쳐져 있지 않았다. 먼저 왔거니 하고 은결은 옥상으로 들어섰다.

“어?”

은결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쿠로사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녀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검을 꼿꼿이 바닥에 세워 그 위에 자신의 두 손을 겹쳐 얹고, 먼 시선으로 도천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결은 그 모습을 보고 그 시선이 포착하는 것은 도천시의 한 곳이기 보다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은결이 근처로 다가가 물었다. 쿠로사카는 깊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답했다.

“...너 같은 생각.”

“나 같은... 생각?”

당혹한 표정으로 은결이 되묻는 것은 당연했다. 자기 같은 생각이라고 해 봐야, 은결은 그게 어떤 생각을 말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던 탓이다. 은결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본 해석이이다. 쿠로사카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본 해석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은결의 당혹을 이어진 쿠로사카의 한 마디가 간명하게 정리했다.

“요컨대, 쓸데없는 고민이란 거지.”

“......”

“그런 못마땅한 표정 짓지 말고, 오랜만에 다시 대련이라도 해 볼까?”

그러면서 가을하늘처럼 서늘하고도 상쾌하게 웃으며 쿠로사카는 키리야미의 날끝을 은결을 향해 내밀어 보였다. 처음에는 괜찮겠느냐고 물으려던 은결이었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강대한 에너지의 파동에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뒤로 세 발자국 물러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질문이 무의미할 만큼 그녀의 상태는 완벽했다.

“후-”

숨을 가다듬으며 쿠로사카가 정신을 집중했다. 그 순간 결계가 완성되며 옥상을 덮었다. 대기가 무겁게 주변을 짓눌렀다. 두 사람은 동시라고 해도 좋은 순간,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포착할 수 없을 신속한 동작으로 서로를 향해 날았다.

은결의 주먹이 실용화된 리니어 레일 건의 탄환 같은 속도로 쿠로사카의 복부를 노리고 날았다. 그녀는 이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발을 바닥에 박차며 검을 세워 그 공격을 받았다. 은결의 주먹 끝에 형성된 역장이 키리야미의 날과 충돌했다. 쾅! 폭발 같은 소리가 터지며 쿠로사카는 멀리 뒤로까지 날렸다.

쿠로사카는 공중에서 아름답게 제비를 돌며 착지를 시도했다. 그 순간 은결은 이미 그녀의 착지점까지 접근해 역장을 밟고 뛰어 쿠로사카에게 발을 날렸다. 쿠로사카는 다시 공중에서 키리야미를 세워 그 공격을 받고는 그 기세를 곧장 에너지로 환원해 검날로 배출했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막대한 열량에 주변이 강렬하게 달아오른 것이다.

“큿!”

하지만 은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몸과 옷을 기로 보호하며 그 겁화 같은 공간 가운데 오히려 돌진했다. 그러면서 은결은 역장을 하나 만들어 밟고는 그대로 오른쪽 발 뒤꿈치로 쿠로사카를 내리 찍었다. 쿠앙! 하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또 났다. 쿠로사카는 다시 키리야미의 검면으로 그 공격을 받았지만 무릎이 휘청 꺾여지는 것은 어쩌기 힘들었다. 결계와 진이 아니었다면 쿠로사카가 건물을 관통해 지하까지 떨어졌을만한 공격이다.

“후!”

은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닥에 착지하며 몸 전체를 쿠로사카에게 날렸다. 그러나 이미 그때 쿠로사카는 행동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은결의 몸통치기를 억지로 막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춤추는 듯 부드럽게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은결의 몸통치기는 그 회전에 말려들며 그녀의 몸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마치 태풍을 맞이한 갈대 같은 움직임이었다.

“좋은 기술!”

다시금 발을 대지에 대며 은결은 진심어린 감탄을 전했다.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한다. 말이 쉽지만 은결이 다루는 운동에너지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물줄기도 충분한 힘을 얻는다면 금석을 간단히 잘라내는데, 은결은 뼈와 살로 그런 속도를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저항이라는 것과 가장 거리가 먼 것중 하나인 대기 그 자체가 은결에게는 강철처럼 강하게 반발한다. 그걸 쿠로사카는 마치 질량이 없는 것 처럼 받아넘겼다. 운동의 방향에 미리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쪽이야 말로.”

하지만 그런 감탄은 쿠로사카에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은결이 다루는 에너지의 크기에 새삼 놀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감히 그녀가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에너지를 다루고 있다. 그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사실 이 학교를 모두 무너뜨릴만한 힘을 품고 있다. 도구나 그것을 다루는 솜씨 역시 틀림없는 일류다. 언제 이렇게 발전한 것일까.

“그, 그래?”

그런데 그녀의 대답에 은결이 이어야할 공격은 잇지 않고 놀란 표정을 한 채 굳어서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쿠로사카는 잔뜩 달아오른 긴장이 한 번에 팍 식어버리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아니, 네가 나보고 그렇게 말해준거 처음이잖아. 맨날 면도날 같은 말만 하다가 칭찬하는 소리 들으니까, 좀, 그게 뭐랄까, 하여간 충격적이랄까...”

은결은 곤혹스러워 보였지만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답했다.

“......”

쿠로사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가, 이내 뜨거운 열기의 도착과 더불어 도화빛으로 풀렸다. 그녀는 치솟는 열기를 분노로 바꿔 해석하고는 짤막한 한 마디 말과 더불어 한줄기 번개가 되어 은결에게 도약했다.

“어, 엇! 너, 키리야미 봉인 풀었지? 그렇지! 반칙이야!”

은결은 파랗게 질린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쿠로사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키리야미의 봉인을 푼 그녀는 세계에서도 상대할 사람이 몇 없는 절대강자다. 은결은 한동안 그녀에게 꽤나 시달려야 했다.

*가정법님의 꼽사리 추천에 감사의 마음을. 장문 쪽이 날아갔다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만. 그리고 마셜님의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에 대한 감상문에도 감사의 마음을. 큰 줄기가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제 분석으로 받아보는 첫 감상평이었던 것 같네요. 하기야 클라우스의 주제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던 쪽이었죠.(...)

*외전은 괴물시절의 수행을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뱀파이어 퇴치를 위해 외국으로 간 수행의 이야기입니다. 은결의 이름이 왜 은결인지 나오는 부분이죠. 언젠가 적을 겁니다. 꽤 중요한 부분이고. 아, 그러고보니 데일♥알렉도 적어야...(...)

*아레는 이틀 전을 의미합니다.

*서브라임에도 관심과 사랑을! 사실 이쪽은 잘 적히고 있는지 쓰면서 맨날 불안해서.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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