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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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어?”
서툰 발음으로 쿠로사카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많이 어색하고 어려웠다. 하기야 한국에 온지 석달이 지나지 않았다. 듣고 읽는 거야 큰 문제가 없지만 일본어에는 없는 발음이 만재한 한국어에 그새 능숙해질 리는 없다. 그녀의 한국어 공부는 순전히 수행의 기호이론을 읽기 위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소년은 맑았던 얼굴을 흐리며 답했다.
“그냥... 아빠 생각이 나서 여기 와 있었어요.”
“아바?”
“응. 내가 아기 때 아빠도 저렇게 돌아가셨거든요.”
그 말을 들으며 쿠로사카는 가슴이 아팠다. 내용의 무게도 그러하지만, 소년이 그런 내용을 별 꺼림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슬프게 여겨졌다. 그것은 이 소년에게 아버지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한다.
“IMF사태 때문이었니?”
“응.”
입맛이 썼다. 그 재난은 역시 이 나라에 많은 상흔을 남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은결의 아버지인 수행 역시 그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여의주를 잃은 용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을 IMF 사태라는 사건 전체에 완전히 귀속시킬 수 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어떠한 종류의 경제적 재난에서도 발견된 적 없던 미증유의 사태가 수반됐고, 수행은 그것을 상대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집이 가난해졌대요. 옛날에는 이런 아파트에서 살았데요. 술 드시면 엄마는 항상 울면서 그렇게 말해요. 안 그랬으면 여기 아이들하고 놀 수 있었을텐데.”
풀죽은 얼굴로 소년은 계속 말했다. 쿠로사카는 그 말을 들으며 불교 사성제 중의 ‘고(苦)’를 생각했다. 그것은 ‘인생의 고통의 바다’라는 말이다. 삶은 고통이다, 라는 명제는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명제가 이런 어린 아이에게 까지 이토록 정명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쿠로사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진실이 선한 것은 아니었다. 소년은 그녀의 조용한 얼굴 이면에 격랑치는 마음은 모른 채, 풀죽었던 얼굴에서 순결한 정의감에 충만한 분노를 피워내며 말했다.
“그래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싫어요. 그 사람들 때문에 엄마는 맨날 일자리 찾는다고 고민하는걸요. 저번에는 그래도 오래 일해서 월급도 오르려고 했는데 외국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월급도 안 오르고 금방 그만둬야 했대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 사람들 다 불법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 안 떠나고 있대요. 나쁜 사람들이예요. 일하지 말라는데 계속 와서 일하려고 한대요. 그래서 엄마처럼 일을 뺏긴 사람들이 많대요.”
소년은 계속 말했다. TV에 나오는 악당을 바라보며 하는 말 같았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이는 자신의 말이 ‘정의롭다’고 믿고 있었다. 쿠로사카는, 어떻게든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나도, 외쿡인인데? 그것도 한국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닐본 사람.”
“누나는... 일본 사람이라도 괜찮아요. 착하니까. 헤헤. 그리고 오지 말라는데 온 것도 아니잖아요.”
소년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럽게 말했다. 그 호의는 순결했고, 그런 만큼 따스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순수하기에, 그 토양에서 자라는 증오와 분노는 본능처럼 크고 튼튼한 것이 될 위험이 있었다. 쿠로사카는 다시 말했다.
“그러니... 고마운걸. 하지만 그 사람들도 사실은 착한 사람들이 아닐까? 그냥 살기 어려운게 아니었을까?”
“음... 그래도 나쁜 짓은 나쁜 짓이잖아요. 엄마도 그 사람들 싫어해요. 그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예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그런 사람들 다 쫒아낼 거예요.”
“......”
쿠로사카는 은결을 부럽게 생각했다. 그라면 지금 이 소년에게 무언가 괜찮은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그만한 재간은 없었다. 쿠로사카는 슬픔을 느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것은 어쨌거나 슬픈 일이었다. 미워서 미운 사람을 없을 텐데, 그렇게 되고 만다. 누구 탓일까?
“밤, 먹었니?”
“아직요.”
“누나가 사쥬테니 같이 갈래?”
“예.”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 노을은 멀었고, 그 아래의 빛을 받으며 회색빛 아스팔트에 그려진 죽음의 흔적은 쓸쓸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음, 귀가 가렵군.’
청소를 막 끝낸 은결은 가려웠던 오른쪽 귀를 긁으며 소파에 앉았다. 저절로 “하-”하는 한숨이 나왔다. 육체적으로는 피로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세상이 다 무거워 보였다. 바퀴벌레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도 고민거리였지만 오늘 아침에 민성이 말했던 ‘하나님께 기도라도 하는 수밖에 없군.’ 이라는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나는 신앙을 받아들일 장소를 얻기 위해 지식을 제거해야 했다.’
은결은 칸트의 말을 떠올렸다. 순수이성비판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종교는 의문을 불허하는 최종적인 진리의 담지자다. 이는 신앙의 본질이고, 그러하기에 지극히 위대하며 동시에 위험하다. 때문에 은결은 나약함의 도피처로서 종교는 인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실로 건강한 사람만이 종교를 가져야 한다.
건강한 사람의 종교는 신이라는 절대타자를 통해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한다. 침묵 가운데 옷깃을 여미는 겸손이 그곳에서 피어나고, 자기가 가진 것을 돌이켜 타자를 향해 손을 내뻗게 한다. 모든 타자를 향한 사랑에 찬 포옹.
그러나 종교가 고통의 도피처가 될 때, 종교는 자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적 은유인 ‘아편’에 들어맞게 된다. 종교는 아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편에 취한, 그래서 반성을 거부하는 지성은 세상의 구획을 가장 편리하고, 필연적으로 위험한 기준으로 나눈다.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래서 아편으로서의 종교는 터무니없는 적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은결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종교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짓밟힌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인 거겠지...’
짓밟힌 인간. 거기서 은결이 연상하는 것은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는 종교의 본질은 대상화된 인간이라 말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정식화해서 말하면 신이란 ‘소외된 인간’이다. 신의 본질이 인간이라면-이것은 수행의 기호이론의 최고명제이기도 하다-인간이 짓밟히고 있다는 것은 신이 짓밟히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인간을 세우는 것 만이 진정으로 종교를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를 위한 인간의 자기소외는 이상적인 수준에서지만 궁극적인 통합을 향해 아름다운 나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을... 세운다라.’
은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본다면 물음은 무엇이 인간을 짓밟고 소외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즉, 인간이 도피로서의 종교를 갈구하게 되는 이유다. 이 부분을 명료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종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단순한 형이상학일 뿐이다. 형이상학은 인간을 세우지 못한다. 그래서 위대한 종교사상가들은 모두 정치적이었다. 붓다가, 예수가 그러했다.
-띵동,
은결이 생각을 이어가기 전에 벨소리가 들렸다. 은결은 퍼득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을 확인했다. 아버지였다. 집에 왔을 때 보이지 않더라니, 잠깐 밖에 나갔다 돌아오신 모양이다. 은결은 얼른 문을 열어 웃으며 수행을 맞았다.
“몸도 안 좋으신데, 어딜 다녀오셨어요?”
“교수님을 좀 뵈러 갔다 왔단다. 그리고 요즘은 몸이 많이 괜찮아져서 오래지 않으면 외출도 할만 하더구나. 걱정말아라.”
수행은 한 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니 안에는 많은 양의 종이가 들어 있었다. 논문이거니 싶었다. 그는 방을 휘 둘러보고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 평소보다 한층 힘이 들어갔구나. 아주 반짝반짝한걸.”
“음, 바퀴벌레가 나와서요. 그래서 미래 군것질도 금하고 있어요.”
은결은 씩씩하게 말했다. 군것질 금지를 선언했을 때 미래가 보였던 울상을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필요한 처치였다. 또, 미안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바퀴벌레?”
“어제 꽤 큰 녀석이 집에 있었거든요.”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듯, 수행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것 주의해야 하겠군. 내일 세연양도 오는데.”
“예?”
청천벽력 같은 말에 은결은 황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들의 표정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던 듯, 수행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보이고는 사정을 설명했다.
“아, 아직 얘기를 안 했구나. 어제 전화가 와서 내일쯤 놀러와도 좋겠냐고 묻길래 그러려무나, 하고 답했지. 그런데 바퀴 따위가 나오면 네 덕분에 바퀴 구경도 못했다고 자랑했던 내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니.”
“그런...”
“필요하면 얘기하렴. 이 아버지가 데이트 비용 정도는 대줄 수 있다. 고료도 크진 않지만 들어오는 게 있고.”
수행은 기쁜 듯 환한 얼굴로 아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은결은 답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데이트 비용 따위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사태의 결정권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더구나 기뻐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면 이 일을 말하는 걸 잊었던 것도 정말인지 의심스러웠다. 계획한 것이 아닐까? 하여간 골치 아팠다.
*저도 두통.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이만 다음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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