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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08화 (108/300)

#   108-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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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아직도 속이 안 좋았다. 어제 상대한 녀석이 워낙 비위에 친절한 놈이었던 탓이다. 세상에, 거대한 바퀴벌레라니! 더구나 직접 공격은 보조적인 것이고, 실질적인 공격은 혐오감으로 정신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물론 생긴대로 논다면 생긴대로 논다고 할 수 있는, 외형에 잘 어울리는 공격방식이지만 실질적으로 정형체가 정신공격 위주로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신공격을 중심으로 한다면 정형화된 실체가 없는 쪽이 훨씬 수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바퀴벌레와 혐오감의 결합이라니, 너무 딱 들어맞았다.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놈들’ 이었다. 아주 악질이다. 악의가 물씬물씬 풍긴다. 정신에 관련된 기술을 여기까지 철저히 궁구해 사념체에 적용해 내는 이들이 아니고서는 지난번 사념체와 같은 것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다행이라면 아버지와의 상담 결과 이번 사념체가 지난번과 같은 함정일 가능성은 배제해도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만한 정신공격을 발휘하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정신공격에 대한 어떤 기척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 수행의 의견은 세계제일의 권위를 가진다.

그렇지만, 혐오감을 일으키는 힘이 즉물적이긴 하지만 너무 강했다. 이것만 해도 상대하기 힘들었다. 제대로 공격 한 번 하고 났더니 구역질을 하느라 다른 아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니, 뇌에다 직접 전극을 꼽아 혐오감을 자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원거리 공격을 하면 되겠지만 등의 코팅을 볼 때 원거리 공격으로 처리하기는 힘들 듯 했다. 쿠로사카의 칼에 기대기도 힘들었다. 정신공격을 피하기엔 그 역시 너무 가까웠다. 자칫 베었다간 혐오감에 거식증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답도 없다.

혐오감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투 지역에 신성을 일으키는 것인데, 진이 너무 고급이라 암기하거나 그려갈 수 없었다. 그 진이 그려지는 환경과의 조화가 고려되지 않으면 실패한다. 지금의 은결로서는 무리였다. 설사 진이 그려져도, 너무 고귀한 분위기 때문에 사념체가 올 리가 없었다. 신성을 지닌 카미 조차 껄끄러워했던 진이다. 그러니 전투중에 그려야 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간단한 진이 아니다.

결국 지금 이대로는 그냥 피해가 많이 나지 않게 적당히 제어하는 것 밖에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답이 없는 상태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그때 옆에서 민성이 껄렁대며 말했다.

“오오, 뭐 조회시간에 담임이 한 말 듣고 너도 뭐 느낀게 있냐? 한숨을 다 쉬고.”

그 말에 은결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주변은 소란에 왁자지껄했다. 쿠로사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를 언제 왔는지 민성과 동물우 삼총사가 채우고 있었다. 민성이 쿠로사카에게 꼬리치느라 반쯤 여기가 일당의 회합장소가 되어 있었다. 바퀴에 대해 생각하는 도중 조회시간 까지 후딱 지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좀 속이 안 좋아지는 일에 대해 생각할게 있어서. 그보다 담임선생님이 뭐라 했는데 담임 이야기가 나오냐?”

어딘지 무거워 보이는 일당의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끼며 은결이 물었다. 민성은 어깨를 으쓱이고 냉소적으로 답했다.

“안 듣고 있었냐. 뭐 이 시기에 나올 이야기가 별거 있겠냐, 시험 이야기지. 당장 다음준데.”

그러고보니 다음 주가 시험이었다. 시험에 대한 관심을 끊은지 오래 된 은결이야 시험주간은 집에 일찍 가서 가사를 정리하고 책을 읽을 수 있어 반가운 때였지만, 민성과 동물원 삼총사에게는 그렇지 않을 터였다.

“거기 더해 시험 점수와 장래 인생의 연관관계에 대한 서슬퍼런 이야기를 하고 갔지.”

고릴라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평소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지만 막상 닥치자니 마음이 많이 무거운 모양이었다. 장래 문제까지 얽어서 얘기한 탓에 이야기의 무게가 한결 더했던 모양이다.

“흐음.”

“뭐야 그 여유만만한 표정은. 30% 주제에!”

은결이 생각 외로 가볍게 받아넘기자 울화가 솟았던 듯, 민성이 강하게 말했다. 은결은 그 꼴을 보고 ‘넌 몇%’하고 되돌려 주려다가, 그건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냉소적인 미소를 입꼬리에 물리고 말했다.

“헤, 아Q정전 읽은 모양이지.”

“욱.”

민성은 격침됐다. 동물원 삼총사는 그걸 보고 ‘속 좁고 잔인한 놈’이라고 은결을 평했다. 아큐정전 얘기 나왔던 게 언젠데 그걸 기억했다가 지금 써먹는단 말인가. 화제를 다시 담임의 이야기로 돌려 고릴라가 말했다.

“그런데 방금 담임이 이야기한 것도 그렇고, 우리나라 실업률이 뉴스 보니까 5%가 안 되는 것 같던데 왜 이렇게 일자리 구하기 힘들다고 난린지 몰라.”

“아, 그건 실업자로 분류되기가 어려워서 그래. 일단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일했으면 실업자가 아닌데다가, 소극적이라도 구직활동만 하고 있어도 통계상 실업자에 안 넣거든. 실제로는 경제활동가능인구 중에 천만 명 이상이 실업상태일 거라던데.”

은결이 고릴라의 의문에 답했다.

“뭐야 그게! 정치하는 놈들이 표 생각해서 통계로 장난치는 거잖아! 그렇게 따지면 실업자 되는게 안 되는 것 보다 더 힘들겠다.”

“그러게. 그런 기준으로 5% 넘으면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나저나 천만이면 이건 뭐, 거의 실업시대군. 실업시대. 하여간 우리나라는...”

동물원 삼총사가 정부 통계발표치를 뜨겁게 성토했다. 은결은 늑대가 말한 실업시대란 표현이 꽤 적절하다고 생각하면서 입술을 쪼개 그 뜨거운 현장 가운데 들어섰다.

“뭐 니들 말도 틀렸다고는 못하겠지만, 실업자 기준은 명확해.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별 차이가 없지. 다 같이 국제노동기구가 마련한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거든. 그리고 실업 문제는 다른 곳도 그렇게 나을게 없는 형편이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 경향이야. 경제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중국도 그런걸.”

말하던 은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올봄 처리했던 황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황사가 일 정도로 빠른 경제개발을 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들의 현재 실업률은 도리어 20년만의 최고라고 한다. 본래 성장가도에서는 실업률이 높지 않은 법이다. 이것은 현대 세계 경제 자체의 패러다임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설명한다. 은결은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수출중심 국가인데, 수출과 내수의 고리가 끊어진 상태라 이 문제를 극복하기 더 힘들긴 하지만. 원래는 수출이 잘 되면 그걸로 번 돈이 국내에 투자로 돌아와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선순환이 끊어졌지.”

“으음...”

은결의 말을 듣고 세 사람의 안색이 무겁게 침잠했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은결은 실업예비군이라던가, 이노베이션(기술혁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필요 인력감소라던가 하는, 다른 이야기를 더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는 충분히 무거웠다. 다른 이야기를 더할 필요는 없었다.

“큼, 그럼 뭐 하나님께 기도라도 하는 수밖에 없겠군.”

이야기를 듣던 민성이 옆에서 농담처럼 말했다. 다시 은결의 표정이 잠시간 찌푸려졌다가,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펴졌다. 은결은 고개를 흔들었다.

쿠로사카는 비탈진 도로 옆의 인도를 걷고 있었다. 주변에는 무수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지만 여전히 날은 밝았다. 아직 여름의 초입이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해서 길어질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와 스치며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곤 했다. 단정한 교복으로 몸을 감싼 그녀의 존재감은 어디서라도 특별했다.

그녀 옆을 지나던 자동차의 운전자가 쿠로사카를 바라보느라 사고라도 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장면을 연출했을 즈음,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곳은 한 아파트의 입구였다. 근처에는 파란 유니폼을 입은 노인이 앉아 있는 경비실이 있었고, 거기서 머지않은 곳에는 회색빛 아스팔트 바닥 위에 흰 분필로 진하게 그려진 사람 모양의 형상이 있었다. 이틀 전 자살한 사람의 사체가 있던 장소였다.

지금은 부서진 뇌수도, 핏자국도, 사체도 없이, 허망한 흰색 줄만이 그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한 순간에 휑하니 비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망한 기분이 느껴졌다. 결국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은 저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줄곧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소용없게 이렇게 죽어버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

그녀는 은결의 우울한 얼굴을 떠올렸지만 이내 억지로 지웠다. 신을 믿지 않는 그로서는 그런 표정이 용납될지 몰라도, 엄연히 신을 믿고, 신앙을 통해 이루어진 체계로 힘을 발휘하는 쿠로사카로서는 그런 표정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그런 표정을 하는 이에게 힘은 용납되지 않는다. 지닌바 힘으로 세계에 개입하고자 하는 얼토당토않은 욕망을 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은 사마(邪魔)와 싸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위대한 신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지고, 스스로의 무능을 이해함으로서 감히 세상을 불완전한 지식으로 바꾸려 들지 않게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성의 광란을 계몽의 자기파괴, 계몽의 변증법이라고 하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미즈하라 아저씨에게 쿠로사카는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은 신이 대신 해 주리라고 확신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많은 살해, 그 많은 폭력, 그 많은 강간, 그 많은 울음. 힘을 가진 자로서, 그 비참의 면면들을 알고서도 흔들리지 않기는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신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신을 믿는다. 확고하게. 쿠로사카는 멈췄던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어, 누나!”

밝은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쿠로사카는 목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경비실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곳에 꼬마애가 하나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소년은 쿠로사카에게 밝은 표정으로 달려왔다. 쿠로사카와, 그리고 은결과 우연찮은 인연으로 알게 된 그 아이였다. 그녀는 웃으며 소년을 맞았다.

*바퀴벌레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이 뜨거워서 좀 놀랐습니다. 껄껄.

*아, 별로 할 말도 없습니다만 선착 4000을 넘겼는데, 모두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제가 올려봐야 1밖에 안 오르고 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5000고지를 밟도록 모쪼록 관심과 사랑을! 이만.

*자매품 서브라임에도.(...)

*수능 보신 분들은 결과가 만족스러웠길 바랍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분들은 한층 노력해 다음에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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