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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06화 (106/300)

#   106-희망을 위한 찬가 - 변신시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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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파우스트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양장의 책은 텁, 하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그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었다. 멀지 않은 곳에 ‘변신’이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파우스트와 변신이라...”

두 작품 모두 근대의 극한을 다룬다. 나는 신과 닮지 않았다고 절망하는 파우스트, 어느 날 갑자기 (바퀴!!!)벌레가 된 그레고리 잠자. 주체와 세계의 분열. 소여된 세상. 그렇지만 한 작품은 계몽의 이상이 구현되어 있고, 다른 작품에는 계몽의 절망이 구현되어 있다. 신에게 구원받은 파우스트, 가족에게 살해당한 그레고리 잠자. 같은 환상성을 다루지만 그 환상성의 구현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극적으로 대치된다.

‘아냐.’

은결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두 작품은 그렇게 대치되어 있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신에게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은 사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유일신에게만 가능한 권능을 통한 사기. 그것은, 괴테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했던 그 계몽의, 근대의 이상에, 이미 신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절망이 담겨져 있었음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Werd’ ich zum Augenblicke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나는 순간을 향하여 말하노니,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노동하는 노동자의 땀을 향한 파우스트의 마지막 말. 노동하는 인간의 위대함. 노동.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위대한 절대 신이 아니고선 그를 구할 수 없었다.

‘신이 아니고선 구원 불가능한 절망이라...’

그렇기에, 역시 변신은 파시즘과 동떨어져 읽힐 수 없는 무서운 걸작일 것이다. 그 글은 신을 갈구하게 만든다. 라고 은결은 생각했다가 “후-”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봤다. 생각이 뿌연 형광등 빛처럼 이어서 떠올랐다.

‘그렇지만 계몽은 실패했는걸...’

패배한 계몽은 해석이란 작업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타자에의 문제를 드러낸다. 해석이 극복될 수 없듯 타자는 극복될 수 없고, 해석이 타자를 향할 때 그것은 권력의 문제가 된다. 노예와 주인의 변증법. 넘어설 수 없는 질곡. 그렇기에--- 은결이 그런 잡스런 생각을 하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였다.

“오, 오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미래가 은결을 불렀다. 은결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은결이 물었다. 미래가 TV앞 소파에 발을 올린 채 앉아 질린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며 시선이 가 있는 쪽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시커먼 무언가가 바닥을 뽈뽈 기어가고 있었다. 저 윤기 흐르는 등의 표면과 유선형의 몸체, 재빠른 더듬이의 움직임까지, 정체는 명백했다. 은결의 얼굴색이 변했다. 석 달 만에 다시 보는 바퀴벌레다. 크기도 상당해서, 은결의 엄지반만 했다.

은결은 순식간에 근처의 신문을 하나 가져와 돌돌 말고는 바퀴벌레를 향해 내리쳤다. 본디 일반적인 인간의 공격 따위는 어렵지 않게 피하는 바퀴벌레지만 은결은 일반인이 아니다. 바퀴 따위가 그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뿌직, 소리가 섬연하게 나며 바퀴벌레는 신문지 아래서 산산조각이 났다. 은결은 신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지로 참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으, 응.”

하지만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미래는 거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소녀다운 감수성이랄까, 그런 게 꽤 귀엽게 여겨졌다. 은결은 휴지를 버리고 미래 옆에 다가갔다. 그러자 미래가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 은결에게서 거리를 뒀다.

“......”

“헤, 헤헤헤...”

“저기, 미래야. 내가 전에 너한테 프레이져 얘기해 준 적 있지? 미래도 그런 미신적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그러니 오빠가 직접 바퀴벌레 잡은 것도 아니고, 휴지로 처리한 건데 그런데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하면 곤란하겠지?”

은결은 웃는 낮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으, 응, 오빠 말이 맞아.”

미래는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은결은 웃으며 미래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그렇지만 미래는 굳은 얼굴로 웃으면서 좁아진 거리만큼 다시 멀어졌다. 하하하, 호호호하고, 은결과 미래는 건조한 웃음을 교환했다. 그리고 은결은 심한 좌절감과 더불어 어째서 계몽의 이상이 패배하고, 그 사상 전체가 부르주아지 철학으로 전락하는 것이 인류사의 필연인지 재삼 실감할 수 있었다.

쿠로사카는 빌딩의 벽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며 도천시 전역이 그녀의 시야 앞에 열렸다. 먼저 와 있던 은결이 역장에 앉아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우울해 보이는데.”

언제는 안 우울했냐 마는, 이란 말을 속으로 더하며, 쿠로사카가 물었다.

“음... 집에 바퀴가 등장했거든. 그것도 꽤 큰 녀석으로. 그걸 생각하면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지. 음, 앞으로는 한층 더 열심히 청소하고 음식 찌꺼기를 남겨놓지 않도록 해야겠어.”

특히, 미래 고 계집애가 과자를 집안에 들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아야 하겠다. 고, 은결은 원한 섞인 대책을 세웠다. 좀 쪼잔한 대책이긴 해도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미래만 빼면 은결네 집안에서는 음식 찌꺼기 생길 일이 없었으니까. 바퀴는 비누도 먹는다지만, 은결네 집에서 사용하는 비누는 용기에 담아 쓰는 소프트 타입이다.

“바퀴벌레...”

쿠로사카가 은결의 말을 듣고 싫은 표정을 했다.

“그러고보니, 너희 집에는 바퀴 없어?”

“없어!”

“하기야, 네 집이라면 생길려고 해도 생길 구석이 없지.”

쿠로사카의 단호한 대답에 은결은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녀의 집안은 심플이란 단어의 한 이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은결의 말이 맞지만, 쿠로사카는 그 납득하는 은결의 모양새가 상당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조롱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지만 여기서 무어라 반론하면 더 궁지에 몰릴 것 같아서, 쿠로사카는 현명하게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그 패에서 네 아버지는 무언가 알아내신게 있어?”

“음... 아직은 별로. 아버지가 지금은 힘을 대부분 잃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작업을 수행하기가 힘드시거든.”

은결이 슬프게 말했다. 쿠로사카는 한숨을 쉬며 그 말을 받았다.

“...새삼 유감이군.”

“새삼?”

은결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녀가 이전부터 수행을 존경했다는 말이니까. 그녀와 대화 가운데 이세가 아버지에 대해 적잖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녀 개인의 존경심이 포함된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존경하는 이의 아들을 칼로 썰어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잖는가.

“사적인 영역에서, 나는 네 아버지를 오래전부터 존경했어. 아니, 이 세계 사람들 가운데, 그에 대해 경외를 가지지 않았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은결의 놀람과는 달리, 쿠로사카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과거 수행의 명성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단순한 강함으로도 그는 비견할 사람이 없었던 강자지만, 이 세계에 소속된 모든 이들이 그에 대해 전율스런 경외를 느끼게 된 것은 그가 공개한 자신의 기호이론 덕분이다.

그것은 그가 이룩해낸 전체 체계의 일부에 불과했다. 다른 이질적인 기호체계와 비교할 때 기호의 궁극이 인간 자신을 향했다. 그래서 다른 체계와 양립해 성립시킬 방법론도 없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을 실용적이라 본다면 그것은 쓰레기 같은 기호이론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야를 백년, 이백년 단위로 넓힌다면 그것은 이제까지 성립된 가장 뛰어난 기호체계임에 틀림없었다. 적어도 삼백년 안에는 그것을 뛰어넘는 세련된 체계가 나타날리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때문에 수행이 발표한 기호이론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었고, 그것이 차이를 통해 성립되는 무수한 기호의 체계를 유기적으로 종합해 들어가 일원으로 돌리고자 하는, 가히 태초의 언어를 추구하는 듯한 기호의 체계임이 드러났다. 결국 눈 밝은 이들은 그것이야 말로 ‘현자의 돌’을 향한 이제까지 밝혀진 가장 완벽한 방법론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도달했다. 모두 전율했고, 감격했고, 두려움에 떨었다. 일본의 미즈하라는 그런 사람의 한 명이었고, 쿠로사카는 그 밑에서 기호를 배웠다. 그 체계를 이해한다면 수행을 존경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경외라...”

은결은 허망하게 웃었다.

“그래서 8년 전의 일은 정말로 유감이야.”

8년 전, 수행은 그의 힘을 잃었다. 그가 폐인이 된 것은 지난 세기 가장 충격적인 사건에 꼽힐만한 것이다. 그의 강함은 정말 절대적이어서, 아무도 그가 몰락한 이카루스처럼 추락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4500만의 절망을 ‘혼자’서 상대했으니 아직 살아계신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겠지.”

“......”

은결의 답변은 담담했지만, 쿠로사카는 그 담담함이 이면에 부글거리는 마그마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은결의 답변 가운데 섞여든 ‘혼자’에 대한 강조는 그녀의 그 느낌을 한층 강조했다. 그리고 은결이 역장에서 일어났다.

“--뭔가 하나 나타났군. 가자.”

“그래.”

두 사람은 날았다.

*대한협회고 이세고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능력자의 폭주를 막는 겁니다. 폭주하면 초국가적 사태고, 협회가 말 안해도 누구할 것 없이 그것부터 때려잡는데 주력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건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일은 주로 종교인이 하고, 그들은 거의 체주태급의, 그러니까 그들 자신이 어떤 종교적 아이콘으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의 신앙을 이룩한 사람들이라서(세인트) 민간에 피해를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신념의 문제로 그들끼리 충돌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그래도 민간에 피해를 입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기입니다. 이 사람들이 폭주하는건 대부분 빙의당해서 그렇습니다. 신을 안 믿는 수행이나 은결이 특이한거죠.

*식신은 고렘같은거. 주술로 부리는 영적 존재입니다.

*오타 지적해 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날 잡아서 싹 쓸어야 하는데 이게 참 발견하기도 어렵고...-_-;

*대충 신변의 일이 정리되었습니다. 그럭저럭 살만하네요. 아웅. 역시 사람은 게으르게 사는게 최고입니다. 이번 챕터 끝나면 인기투표 발표하겠습니다.

*성원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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