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01화 (101/300)

#   101-희망을 위한 찬가 - 길가메시와 근친금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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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 금기...요?”

은결은 의아함을 담은 채 수행에게 물었다. 길가메시에서 근친금기로의 도약을 그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수행은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로 머금고, 그 미소로 은결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며 답했다.

“그래. 근친 금기. 길가메시의 필연적인 무모함은 근친금기와 아주 많이 닮았지.”

“...아.”

은결의 눈망울로 짧은 번뜩임이 스치는 것을 수행을 알았다. 그는 아아, 하고 가슴 속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이 짧은 순간에, 은결은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아냈다. 그 도약은 경이적이었다. 은결은, 이 여린 아이는, 정말로 총명했다. 그래서 더욱 슬픈 아이였다. 수행은 입을 열어 천천히 말했다.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인하기 위해서.

“근친금기는 보편적이지. 모든 문명사회에서, 살인과 더불어 최악의 금기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근친상간이니까. 대부분의 신화와 문학과 실증법과 관습법에서, 자의든 불가항력이든 이 금기를 범한 이들은 반드시 파멸을 맞이하거나 그제까지의 삶 전체를 부정함으로서 신생해야만 하지.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오염을 겪은 것이니까. 이 금기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심성은 확고한 것이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다. 실질적으로 근친 금기에 대한 현실적인 설명 모델은 두 가지다만, 그것들은 우리의 근친상간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를 진실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들 모델은, 도리어 근친금기에 대한 우리의 혐오를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같은 수준으로 돌려놓을 뿐이다.”

근친금기 성립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모델은 두 가지란 이런 것이다. 하나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근친 자체가 본능적 혐오로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진화론적인 입장으로, 근친금기를 성립시키지 않는 사회는 근친 교배로 인해 인간관계가 가족 내 관계로 환원되게 되고, 이는 사회의 규모와 결속을 강화하지 못함으로 다른 문명에게 도태되어 버리게 됨으로 근친금기가 성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개인주의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인정되는 현대 사회에서 근친금기를 인정하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로서 작동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근친금기는 동성애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동성애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삶의 한 양식이다.

포스트모던. 그 무한한 잡식의 세계에서, 근친에 대해 부여되었던 금단의 오오라는 이미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레비스트로스는 문명과 비문명을 근친금기로 갈랐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구조주의적 작업을 통해 문명과 비문명의 구분을 파괴했다. 포스트모던. 가능한 것은 모두 실천되는 세계. 그럼으로 부정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부정되는 세계. 무서운 생각이다.

“...그럼으로 그것은 길가메시의 쓸쓸함과 닮았습니다. 얻을 수 없는 영생을 추구해 모험을 했던 길가메시의 의지처럼, 근친 금기는 그 이면의 논리적 정당성과 무관하게 추구됩니다. 그것은 불모하거나 불모하지 않거나와 무관하게 추구된다는 점에서, 길가메시의 모험과 유사합니다.”

은결은 말했다. 수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결은 수행이 기대했던 것 처럼 명확하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논리적 구조를 읽어냈다. 어쩌면, 작은 가능성이지만, 어쩌면, 은결이는 나를 넘어설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수행은 기쁘게 생각했다. 모든 위대한 작업이 그러했듯 기호를 다룬다는 것 역시 ‘가장 정밀한’이 아니라, ‘가장 큰 도약’이 경이에 도착한다.

“그래. 그런 동시에 근친 금기는 그것을 파괴함으로서 많은 신화에서 인류를 시작하도록 한다는 역설을 지니지. 수많은 홍수와 장마 신화에서, 아버지와 딸, 오누이간의 성교를 통해 멸망한 인류는 재삼 시작하지. 그것은 근친금기를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입구로 보았던 레비스트로스의 의견을 떠올리게 한단다. 그러하기에, 근친금기는 무엇보다도 가장 인간적인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계몽의 이상이 패배하고 낭만이 승리한 것 처럼. 이라고, 은결은 속으로 짧게 말했다.

“나는... 그것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구나. 다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의 도약은, 아마 거기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 위태롭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웃음지은 수행의 말을 들으며 은결은 그람시를 떠올렸다. 이성이 절망을 고하는 가운데서도 감성은 사태를 낙관하고 있었다는, 가장 이성적인, 그러나 가장 열정적이었던 20세기 최대의 지성. 별빛을 찾아 전진했던 게오르그 루카치와 달리, 새카만 어둠 가운데서 굳건히 별빛을 향해 걸어갔기에, 그는 더욱 길가메시와 닮아 있는 것일까?

“이만 가봐라. 아침 준비는 내가 다 해두마. 이번 사념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일이 진정되고 난 이후로 미뤄 두자꾸나.”

“예.”

은결은 여전히, 슬픈, 그러나 쓸쓸함은 진정되어, 정겨운 아름다움이 머문 미소를 수행에게 되돌리며 답하고는 망설임 없는 모습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그는 발을 박차고 하늘에 올라 터오는 여명에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을 한 눈에 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길가메시와 근친금기. 그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의, 의미나 무의미를 넘어선, 필연적인 추구라는 관념을 통한 연결과 도약. 현실적인 논리와 무관하게 근친금기를 인정하듯, 우리는 우리의 조건들을 인정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

‘----’

잘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은결은 아버지의 말에서 ‘일부러’ 마련된 빈 공간 같은 것을 느꼈다.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준 같은, 그런 공간을. 은결은 한층 강하게 날았고, 자신이 한층 굳건해지길 기대하며 바람을 맞이했다.

어제 심하게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학교를 쉬었던 은결은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한 안색으로 학교로 향했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미래는 기분 좋은 얼굴로 그의 등을 꼭 껴안고 있었다.

“헤헤.”

“좋은 꿈이라도 꿨어?”

“아니. 그냥.”

미래는 실없이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분이 좋은 것은 ‘그냥’이 아니다. 어제 학교를 쉴 정도로 아팠던 은결이 지금은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한 것이 무척 기뻤던 것일 뿐이다. 어제는 수행이 은결의 얼굴도 못 보도록 하고 학교로 등을 떠밀어 보낸 탓에 하루 종일 마음에 콩 밭에 가 있었다. 은결이 학교를 결석하는 사태라는 것은 범상하지 않은 일이란 의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가해서 은결은 다소 지친 안색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봤을 때, 미래는 정말로 울뻔 했다. 그 기분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는 달렸고, 교복은 그 대기를 타고 부드럽게 나풀거렸다. 곧 두 사람은 성천 고등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두 사람은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좋은 아침!)”

일본어로, 경쾌한 인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발랄한 미소를 머금은 아름다운 소녀가 이쪽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쿠로사카였다.

“아, 좋은 아침.”

“(언제나처럼 사이가 좋네.)”

쿠로사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결은 그녀의 웃음이 평소보다 조금 더 살가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은결은 어제 집 청소하고, 밥 만들어 줄 때 겪었던 한층 가시 돋았던 그녀의 태도를 떠올리고 그 환상을 떨쳐냈다.

“물론이지.”

“......”

미래는 평소처럼 뚱한 표정으로 쿠로사카를 대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더 무거운 태도였다. 오늘 아침 드물게 기분이 좋았던 만큼 그 낙차가 큰 것일까?

“(후후, 그럼 교실에서 봐.)”

“아아.”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놀라운 태도의 전환이었다. 그는 쿠로사카가 거진 다 회복한 모양이구나 하고 안심했다. 한때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불가능해질 만큼의 정신적 위기에 몰렸던 사람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깔끔한 모습이었다. 저런 명료한 페르소나(가면)는 아무나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명료한 페르소나야 말로 그녀가 품고 있던 ‘균열’의 증거였지만 말야...’

쓰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린 은결은 다시 자전거를 몰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미래가 따라오고 있지 않았다. 돌아보니 쿠로사카가 있는 쪽을 줄곧 바라(노려)보고 서 있었다. 은결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불렀다.

“미래야.”

“...응.”

그리고 미래는 마지못해서라는 듯이 은결 옆으로 돌아왔다. 은결은 다소 훈계하는 어조로 미래에게 말했다.

“평소에도 별로 저 애를 안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그러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냥, 왠지 저 사람, 갑자기 굉장히 불길하게 느껴져서.”

“불길하다니?”

“음, 그런 게 있어. 여자의 감이지. 본능이 저 사람이 적이라고 신호를 보내온달까.”

미래가 진지하게 답했다. 평소에도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유독 불길하게 느껴졌다. 평화로운 미소 뒤에 무언가 무서운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달까. 그 ‘세연’인가 뭔가 하는 부잣집 바보 딸내미 같았다. 그래서 미래는 그녀를 좋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은결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을 쉬고 말을 던졌다.

“...그 여자의 감에 대해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결과를 보니 남자의 감이 더 적중률이 높다더라. 여자의 감이니 뭐니, 그런 거 없어.”

미래가 웃, 하는 표정을 지으며 냉큼 대꾸했다.

“이건 그런 시시껄렁한 거 아냐!”

“그러냐.”

은결은 평화로운 조소로 그 대답을 받았다. 미래는 한층 열이 뻗쳐오른 얼굴로 으르렁 대며 외쳤다.

“그러니까 시시한 거 아니라니까. 진짜야!”

미래의 목소리는 컸다. 각자의 교실로 향하던 주변의 학생들이 기이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 평화로운 싸움의 광경에 킥킥 웃으며 지나갔다. 은결의 얼굴이 벌게졌다. 역시 타자의 시선은 쉽사리 극복되지 않는다.

*100화입니다. 흑흑. 많이도 썼군요.

*꼽사리나마 추천해 주신 스텔라, 암흑신마, 북악님께 감사의 마음을! 열심히 쓰겠습니다.

*사실 이때 써먹으려고 앞에서 은결이 레비스트로스 읽는 장면을 넣었던 거였죠. 복선이랄까. 기억하시는 분?

*외전은 쓴다면 틀림없이 수행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수행의 학창시절, 학생운동 시절, 현자의 돌 탐구 시절 가운데 하나가 되겠죠. 학창 시절 수행은 엄친아고, 학생운동 시절 수행은 까칠까칠하고, 현자의 돌 시절은 그냥 괴물입니다.

*프로이트도 조심스러워서 근친금기 다루면서 오이디푸스 얘기가 안 나오는 판에 라캉 가지고 장난칠 수야 없죠.

*인기투표 끝났습니다.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곧 정리해서 결과 발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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