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100화 (100/300)

#   100-희망을 위한 찬가 - 길가메시와 근친금기(9)

#

대화가 끝나고 침묵이 찾아왔다. 드물게 편안한 침묵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깊었던 어둠이 희미한 푸르름을 띄었다. 은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피에 젖고, 여기저기 찢어져 넝마처럼 된 자신의 옷이 깔끄럽게 느껴졌다.

“쿠로사카, 옷 갈아입고 올게.”

“...안, 와도 돼.”

쿠로사카가 답했다. 그녀의 대답은 '코나쿠데, 이이'였는데, ‘안’ 그러니까 '나쿠데' 뒤로 상당한 망설임이 있었다. 그래서 은결은 웃었다.

“옷도 갈아입고, 몸도 좀 씻소, 집에 아침밥도 차려놓아야 하니 두 시간 정도 있다가 올거야. 그리고 배고플텐데, 무언가 먹고 싶은 거 없어?”

“...닭죽.”

대답이 돌아왔다. 은결은 ‘안 와도 된다.’는 다음 이어진 대답이다. 그는 다시 웃었다. 은결은 잠시 망설였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멀지 않은 곳에 새벽시장이 문을 열었을테니 그 쪽에서 사면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게. 너도 씻고 정리 좀 해 둬.”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은결은 여전히 웃으며 베란다로 나갔다. 기묘하게 휘어진 베란다의 스테인레스 골조는 움푹 파인 부분이 소녀의 발자국을 생각나게 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 발자국을 만들면서 쿠로사카는 다소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은결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몸을 허공으로 띄웠다.

아직 채 밝지 않은 세계와 차가운 공기가 마주하는 곳에서, 공허가 그를 안았다. 은결은 그 공허에 안기며, 다시 그 공허를 박차며, 긴 바람의 손길을 느꼈고, 그 바람 가운데서, 가슴 깊숙한 곳 이끌어내지는 뜨거움을 알았다.

‘아아...’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역시 무서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은결은 과거, 자신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눈길들을 봤다. 그 눈길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공유하며 그들의 결속을 강화한다는 것도 알았다. 타자 만들기와, 의미부여와, 차별화가 연계된 기괴한 트라이앵글. 끔찍한 일이었다. 은결은 그 이후로 ‘친구’라는 것을 갈망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은결은 쿠로사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똑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친구’를 갈망한 적이 없지만, 그 타자 만들기에, 무의미한 의미부여하기에, 무의미한 의미에 순위를 매기기에, 동참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렇지만, 이토록이나, 자신은 쓸쓸했다는 것을, 무섭도록 선명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은결은 그 역시도 하얗게 식기를 바랐다. 길가메시가 읽고 싶었다.

은결은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집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작은 숨결도 그 정적을 방해하는 불청객일 것 같았다. 은결은 제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꺼낸 다음,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실을 빠져나온 은결은 방으로 돌아가 책을 한권 꺼낸 다음, 부엌에 들어서 식사를 준비했다. 밥을 짓고, 음식을 굽거나 튀기는 소리가 가족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게 결계를 펼쳤다. 그리고 은결은 압력 밥솥의 딸랑이는 희미한 소리를 들으며 식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 책은 길가메시 서사시였다. 오래전 수행과 함께 읽었던 책이다.

폭군 길가메시가 엔키두를 만나고, 그와 함께 마수 훔바바를 죽이고, 엔키두가 숫소에게 죽고, 그로서 죽음이 두려워진 길가메시는 영생을 찾아 헤메고, 그렇지만 결국은 회춘초를 뱀에게 빼앗기고 죽게 된다는, 짧은, 인류 최초의 신화.

이미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은결의 손길은 바쁘지는 않았으나 빨랐다. 그는 곧 길가메시 서사시를 모두 읽을 수 있었다. 뒤는 해설이었다. 은결은 페이지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글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것 처럼 깊은 눈망울로 그 페이지를 바라봤다.

그곳은 길가메시가 우바라투투의 아들 우투나피시팀을 찾아 헤매던 가운데 시두리라는 술 만드는 여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은결은 영생을 찾는다는 길가메시의 말에 대한 시두리의 대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낮고 쓸쓸하게 소리내어 읽었다.

“...길가메시여 어디로 급히 가려 하십니까?

당신은 생명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에게 죽음도 함께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만은 그들이 보살피도록 남겨두었습니다.

길가메시여 당신에게 충고를 드리죠.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낮으로 밤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십시오.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아줄 어린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 안에 꼭 안아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리고 은결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책에서 때고, 천정을 향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미는 것 같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은결은 아직 저 문장처럼 깊은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시두리의 말은 물질적인 쾌락만이 진실하다는 이야기다. 그 이상을, 가령 영생과 같은 것을 추구하려는 것은 무모할 뿐, 결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길가메시는 그녀의 말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녀가 예언했던 것 처럼 죽는다.

그래, 죽는다.

그 불모함. 어떤 아등바등도 무의미하게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그렇기에 목숨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 것도, 한갓 물질적 쾌락을 넘어서는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더라는 그 불모함. 기의에 닿지 못하는 기표. 타자에 닿지 못하는 주체. 물자체를 담지 못하는 인식. 그런, 넘을 수 없는 ‘벽’의 절대성. 그것이 태초의 사람들에게도 이미 알려져 있다는 것이, 수 천 년의 시간을 격해 은결에게는 저리도록 쓸쓸하게 느껴졌다.

은결은 책을 덮었다. 이것은 이열치열 같은 것이다. 쓸쓸함을 쓸쓸함으로 넘어서는, 그런 노력. 기대 했던 대로 자신의 쓸쓸함은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인류의 원형적 고독 앞에서 침묵했다. 말끔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가슴 한 구석을 차고 나올 것 같은 흔들림은 없었다.

그리고 작은 달칵 소리와 함께 아버지 방의 문이 열렸다. 수행이 나왔다. 은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맞았다.

“아, 아버지.”

“좋은 냄새구나. 그런데 그 아이와 더 있어 주지 않고?”

“많이 괜찮아 졌거든요. 그리고 보셨듯이 그 애 집이 무척 황량해서 밥이라도 한 끼 해 먹이려면 이쪽에서 준비를 해 가야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많이 썰렁했지.”

쓴웃음과 함께 수행이 답했다. 그렇지만 그의 미소는 넉넉함을 품고 있었다. 짤막한 이 대화에서 은결이 자신이 기대한 대로 그녀를 파멸적인 정신적 위기에서 구해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응?”

웃으며 주변을 무의미하게 쓸던 수행의 시야로 한 권의 책이 들어섰다. 은결이 읽고 있던 길가메시 서사시다. 수행은 조용히 그 책 앞으로 다가가 연인의 몸을 쓰다듬듯 부드러운 손길로 그 표지를 만졌다.

“길가메시라, 바벨의 언어를 읽은 다음 너와 읽었었지?”

“예. 바벨의 신화 다음이었습니다. 무척, 쓸쓸한... 신화지요.”

수행은 그 대답에서 역시 자신이 은결에게 못 할 일을 시켰음을 이해했다. 은결은 쿠로사카와 자신의 접점을 찾기 위해 스스로의 상처를 헤집어야 했다. 그것은 많이, 아주 많이 아팠을 것이다. 길가메시의 재독은 그 상처의 봉합 같은 것이다. 은결은 가장 크고 보편적인 것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과 욕망을 짓밟아 죽이는 것에 이미 익숙하니까. 이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수행은 자문했다. 은결. 언제나 빛나기를 바라며 이름지은, 그러나 이토록 슬픈 자신의 아들을 위해. 깊은 슬픔과 애정 가운데서 수행은 입을 열었다.

“그래. 길가메시는, 무척 쓸쓸한 신화지. 하지만 은결아, 길가메시는 단지 쓸쓸한 신화이지만은 않단다.”

은결은 놀란 얼굴로 즉각 반박했다.

“예? 그러나 길가메시는 실패하고, 시두리의 말만이 긍정됩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없고, 그러하기에 물질적, 즉자적인 쾌락만이 진실하다고요.”

수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단다. 길가메시는, 그 실패를 통해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사실은 매우 용감무쌍한 신화지.”

“모르... 겠습니다. 그의 불요불굴함은 불모 했습니다. 아무 것도, 낳지 못했지요. 그는 죽었을 뿐입니다.”

은결은 주저하는 태도로 말했다. 수행은 은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장성한 아들의 껴안으며 말했다.

“은결아, 나는 길가메시를 읽음에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두리의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시두리의 노래는 지나칠 정도로 현실에 닿아 있고, 길가메시는 죽고 말아서, 분명히 가슴이 아프지. 그렇지만 동시에 잊지 말거라. 길가메시는 왕이었단다. 가장 강대한 왕이었지.”

“아...”

수행의 온기 가운데 은결의 눈이 커졌다. 길가메시는 왕이었다. 모든 자국의 처녀들은 자기의 침소로 불러들이는 무서운 왕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원성에 그를 막기 위해 엔키두가 탄생되었을 만큼, 그는 무서운 폭군이었다. 물질적 쾌락만이 진실이라면 강대한 폭군 길가메시를 넘어서는 쾌락을 대체 그 누가 영위했으랴?

“그는 언제나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웠고, 밤낮으로 춤을 췄고, 깨끗한 옷을 입고 물로 씻었단다. 자식은 없었지만 많은 여자들을 내키는 대로 취했지. 그는 인간이 물질을 통해 취할 수 있는 즉자적 쾌락의 극한을 맛보았던 사람이란다. 그렇지만 길가메시는 영생을, 즉자적 쾌락을 넘어선 의미를 찾아 고통스럽게 헤매었지. 그러니까 은결아, 나는 네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시두리의 노래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단다. 그것은 그 이상의 것이거든.”

“......”

은결은 수행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작은 흥분과 깊은 따스함에 벅차는 가슴과 함께 조용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수행은 말했다.

“나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쾌락을 넘어서고자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읽고 싶구나. 그것이 불모하든 불모하지 않든 무관계 하게 말이다. 심지어 시두리 그녀조차, ‘물질적 쾌락 이상의 것은 없다.’는 세계관을, 그 의미세계를 드러내고 말지. 길가메시를 측은히 여겨 말이다.

누군가를 측은히 여긴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쾌락만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결론이지. 더구나 그 측은함으로 타자를 도우려 한다는 것은, 물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만 가능한 일이란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지. 반드시 의미를, 죽음을 넘어선 것을 추구하게 되지. 내가 보기에, 그것은 마치 근친금기 같은 걸로 보이더구나...”

*유후님과 샤이나크 님의 추천에 감사의 마음을! 사실은 쉬려 했는데 두 분의 낚시에 코가 꿰여 이렇게 올립니다.(...)

*수행의 길가메시 신화 해석은 제 독자적인 것입니다. 정통적인 거 아닙니다. 신화 해석에 정통적인 게 있나 싶긴 하지만. 하여간 경고했으니 어디 가서 얘기하다가 헛소리한다고 당해도 저는 모릅니다! 슈퍼맨도 그랬지만. 음.

*개인적으로는 좀 널럴하고 속편한 사건도 집어넣고 싶습니다. 러브 코메디나 단순한 활극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에피소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빡빡하게 진행되어 온 글이라 갑자기 풀어진 사건 집어넣으면 전체적인 조화가 깨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죠. 큼.

*다음 화 올라갈 때까지 투표 받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참여합시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