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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97화 (97/300)

#   97-희망을 위한 찬가 - 길가메시와 근친금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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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사카의 아파트에 도착한 은결은 베란다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물고 있던 키리야미를 바닥에 떨구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황량한 방이다. 그나마 몇 점의 식물이 늘어서 그 황량함을 덜고 있었다. 은결은 쿠로사카를 껴안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은결은 입으로 식을 외워 역장의 결속을 다시 회복시켰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왼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키리야미와 떨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력하다.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역장은 그녀의 힘에 대해 잘 저항했다. 양 손 모두로 그녀를 구속하지 않아도 괜찮을 성 싶었다. 은결은 가볍게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주먹으로 자신의 다리에 난 상처를 내리쳤다.퍽, 하고 상처가 터졌다. 붉은 피가 흥건하게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은결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고 단호한 표정으로 그 피를 한 손 가득 묻혀 바닥을 꽝, 내려쳤다. 공허한 방바닥으로 선명한 손자국이 찍혔다. 은결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방의 사면과 천정에까지 모두 방바닥과 같은 손자국을 찍었다. 그리고 한 쪽 발을 자신의 피가 고인 곳에 대고는 한 손으로 간단한 수인을 맺고 식을 외우기 시작했다. 피가 붉은 빛을 내며 반응하더니 기호의 형상을 띄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얼마 있지 않아 은결이 찍은 손바닥을 중심으로 방진의 마법진을 형성했고, 각각의 방진들은 시계톱니가 운동하듯 운동하며 맞물렸다.

그제서야 은결은 다소 안심을 한 듯, 표정을 풀고 쿠로사카에게서 양손을 모두 떼냈다. 곧장 그녀는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역장이 그녀를 구속하고는 있지만 그래봐야 구속복을 입힌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녀는 전신을 사용해서 주변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녀의 전신에 실려 있을 막대한 힘에도 그 공간에서는 소리조차 일지 않았다. 은결이 펼친 진법 덕분이다. 그녀의 힘을 봉쇄, 해소, 감금하는 강력한 구속진이다. 저 진이라면 아버지가 올 때까지 별 문제 없이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은결은 한숨을 쉬며 방을 빠져나갔다.

베란다에서 비춰 나오는 도심의 빛을 받으며 키리야미가 쓸쓸하게 누워 있었다. 그 검의 신격을 생각하면 감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은결은 고소 짓고는 그 검을 들어 벽에 기대 세웠다. 그리고 자신도 등을 벽에 기대고 주저 않았다. 다리의 상처는 그새 지혈됐다. 전력으로 힘을 운동하는 가운데 육체의 치유능력은 과연 굉장한 것이다. 그러니 재생될리 없는 어금니도 심지어 과도한 힘을 받으면 다시 나는 것이 아닐까. 은결은 그런 생각을 하며 피곤한 정신을 추스렸다.

“아!”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할아버지다. 은결은 기쁜 표정으로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 희미한 점 같은 것이 급속도로 가까워 지고 있었다. 곧 그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고, 이내 한 중년의 남자를 업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은결은 반갑게 두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은 베란다를 통해 쿠로사카의 집 안으로 들어왔고, 할아버지는 은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고했다.”라고 간단하게 칭찬의 말을 건냈다. 그에 대해 은결이 대답할 사이도 없이 수행이 긴장한 얼굴로 은결에게 물었다.

“쿠로사카는?”

수행은 은결이 자신을 찾은 것에서, 대강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방에... 저 방입니다.”

은결이 가리키자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평범한 인간의 육체인 수행으로서는 어떤 돌발적인 일이 발생해도 치명적일 수 있다. 주의하는 게 옳았다. 문이 열렸다. 열려진 문으로 부족한 숨을 억지로 견디는 것 처럼 새된 호흡을 하며 온몸을 뒤트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역장에 상반신이 봉쇄당해 있었지만 발과 머리, 어깨들을 이용해 주변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을 주변에 그려진 붉은 진이 운동하며 흡수, 해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로 이채가 스쳤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쓰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 급하다. 수행은 은결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간략한 상황을 설명해 다오.”

“예.”

은결은 아버지에게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수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버지, 소녀의 구속을 부탁합니다.”

“그러마.”

그리고 할아버지는 방안으로 들어가 쿠로사카의 양손을 잡고는 그녀를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동시에 쿠로사카의 사지로 역장이 발생하며 그녀의 전신이 구속됐다. 그녀는 유일하게 자유로운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악을 썼지만 무의미한 짓이다. 전체 기 용량은 어쩌면 그녀가 할아버지 보다 높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활용을 해선 할아버지의 기술에 대항 할 수 없다. 그제서야 수행과 은결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은결아, 저 아이의 상의와 하의를 벗겨라.”

은결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쿠로사카의 옷을 찢었다. 벗기려면 구속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금세 하얀 브레지어와 팬티만 남기고 전라가 되었다. 그녀의 하얀 사지는 물이 흐르는 것 처럼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하나로 이어져 나갔고, 종래에 종결되었다. 어느 한 곳 할 것 없이 섬세한 곡선이다. 은결은 순수하게 그녀의 육체가 그리는 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했다. 새삼 느끼지만 쿠로사카는 아름다운 소녀다.

그리고 수행이 쿠로사카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팬을 꺼내 그녀의 배 위에서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결이 그 진을 흘낏 바라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은결이 저 기호를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그가 그리고 있는 진은 상대의 정신과 접속하는 진이다. 이제 범인과 큰 차이가 없는 수행이 시도하기에는 위험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곧 진을 다 그리고 수행은 은결을 바라봤다. 그는 은결의 얼굴로 걱정이 어려 있는 것을 알아챘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그녀의 상태를 올바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 작업이 필수적이지 않느냐.”

단지 그렇게만 말하고 수행은 은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결은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를 불어넣었다. 수행의 얼굴로 희미하지만 자랑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은결의 높은 성취가 기뻤다. 지난 카미 때 이후로 은결은 한층 높은 진전을 이루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달리 집중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수행은 기를 운행해 오른손에 힘을 집중하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배 위에 그려진 진을 감쌌다. 힘이 진과 접촉하자 운행을 시작했다.

빛이 짧은 순간 일었다가 사라졌다.

수행은 찌푸린 얼굴로 양 눈 사이를 지긋이 누르며 얼굴을 들었다. 그의 얼굴로는 상당한 피로와 고통이 읽혔다. 지켜보던 두 사람의 얼굴로 걱정이 어렸다.

“괜찮으냐?”

“...예에. 괜찮습니다. 객관적 방식의 대자적 접근을 취했기 때문에 지금의 저라도 버티기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이 소녀가 어떻게 버텼는지를 모르겠군요.”

할아버지의 말에 수행이 피로한 어조로 말했다. 은결의 조금 주저하는 어조로 반론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강건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만...”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내 계산이 옳다면 그녀는 자아가 완전히 파괴당해 있어야 하니까. 그녀가 또래에 비해, 혹은 이 일을 하는 사람 가운데서도 강건한 정신력을 가졌다고 볼 수는 있다만 그래봐야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수행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은결의 말을 부정했다. 은결은 곧장 다른 의견을 꺼냈다.

“그렇다면 키리야미 덕분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녀는 요즘 몸 상태가 좋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키리야미의 활성도 높아졌을 테고, 그 덕에 정신이 보호받았을 수도 있겠죠. 저 검은 놀라운 신기니까요.”

“언어로 구성된 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이, 언어로 구성된 정신을 지켜준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구나, 그건 가난뱅이가 부자의 파산을 막는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니까. ...하지만 어쩌면 네 말대로 일지도 모르지. 그 검은 신이 물화된, 놀라운 것이니.”

수행은 다소 애매한 방식으로 은결의 말을 긍정했다. 그로서도 키리야미는 잘 알지 못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종류의 정신 공격이었기에 이 아이가 버틴 것이 ‘이상하다’고 까지 말하는 것이냐?”

수행은 침중한 안색으로 답했다.

“이에 대해 버티기 위해서는 최소한 감각차단결계를 극복할 수 있을만한 강건한 자아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그것도 버티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상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대상의 정신이 그것을 버틴다는 전제하에 성립된 정신공격입니다. ...이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교육 암시, 아니 세뇌공격입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공격은 공격 대상을 분명하게 정해놓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지요. 일단 버틸 수 있는 정신을 지닌 사람 자체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에, 그, 그럼...”

감각차단결계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강건한 자아의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세뇌공격.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은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수행은 한층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소녀가 당한 것은 단순한 사고다. 이건 너를 노리고 마련된 것이다.”

“......”

은결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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