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89화 (89/300)

#   89-희망을 위한 찬가 - 열쇠(11)

#

“전신이 따뜻하게 느껴지지요?”

“예.”

“손을 좀.”

세연은 수줍어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은결은 세연의 손목을 잡았다. 동시에 세연은 자신의 내부를 채우던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몰려들어 심장에서 점처럼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제가 ‘하나’ 하면 숨을 들이키고, 둘 하면 숨을 내쉬세요.”

“예에...”

“하나.”

은결의 지시에 따라 세연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에 모여 있던 점 같은 에너지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

세연은 숨을 내쉬었다. 빠르게 동작하던 기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면서 멈췄다.

“하나.”

세연은 다시 숨을 들이켰다. 멈춰섰던 기가 움직였고, 이어 은결이 “둘” 하고 말했을 때에 맞춰 숨을 내쉬었다. 기가 느려지며 멈춰섰다. 대략 열 번 정도 그렇게 숨을 반복했을 때, 몸 내부를 휘젓듯이 운동하던 에너지의 덩어리는 다시 심장 쪽으로 돌아왔다.

“어때요?”

“에- 잘 모르겠어요. 좀 멍한 기분이랄까... 몸 안에서 빙빙 도는 게 좀 이상했어요.”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는 자신의 힘을 무척 잘 받아들였다. 그러니 그 재수 없는 카미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아무런 반동 없이, 심지어 취해버릴 정도로 자신의 힘과의 그녀의 융화성이 좋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호흡을 통해 기가 전신을 돌았던 거죠. 세연양은 이런 종류의 수행을 한 적이 없으니 원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만, 지금은 제 힘을 집어넣어 움직임으로서 그 힘의 경로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할 테니까 그 움직임을 잘 기억해 두세요. 그리고 제 힘이 스러질 때쯤 되면 세연 양에게도 경로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아마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리고 저희 쪽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호흡이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전호흡이라던가, 그런 것들보다는 훨씬 강력하고, 자동적으로 사용자를 어느 정도 자기최면적인 상태로, 그러니까 몰아상태로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이삼일에 한 번 정도 하면 충분할 겁니다. 물론 화두를 잘 잡아야 하지만요.”

“화두...요?”

“원래는 개인이 취하고 있는 전체 세계관과 연관 속에 선택해야 합니다만, 세연양은 그런 게 없으니 그냥 단순히 호흡법을 하면서 계속 생각하게 될 주제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무슨 말인지 깨닫고자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마련해 온 것도 있고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거라서, 이걸 하시면 아마 꽤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아마 실제로 해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은결이 지적한 것 처럼 그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세연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은결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건 여러 체험을 통해 절실하게 알았고, 그러니 그가 어련히 알아서 해 주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 반해버린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걸 생각하며 세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은결이 갑자기 볼을 붉히는 세연을 보고 무언가 물으려 할 때, 그런 기색을 읽고 세연이 당황하고 있을 때, 방 한 쪽, 세연의 책상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이었다.

“잠시만요.”

세연은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지 확인하고는 패널을 열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반갑게 입을 열었다.

“엄마? 응? 아니요. 괜찮아요.”

‘엄마?’ 은결의 동작이 굳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은결은 순식간에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고, ‘이 빌어먹을 귀신새끼!’ 하고 속으로 외쳤다. 틀림없이 자신의 집안 사정을 읽고 장난친 것이다. 은결은 천정을 바라봤고, 폐부로 깊게 숨을 들이켰고,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서 폐에 담았던 공기를 다시 대기로 되돌렸다. 그 동작 가운데, 은결은 오늘의 계획 가운데 한 가지를 바꾸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세연의 전화가 끝났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다소 쑥스러운 안색으로 은결을 보며 다시 그녀가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네요.”

“사이가 좋으신 것 같아서 보기 좋던걸요.”

은결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에헤헤.”

세연은 쑥스럽게 웃으면서 은결이 내민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다시 은결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고, 그녀의 내부에 있던 은결의 기가 특정한 경로를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로 복잡한 경로가 아니라 어려움 없이 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다 외운 다음에도 세연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긴 시간은 아닐 것이지만 이렇게 있는게 좋았기 때문이다.

“...으흠, 그러니까 옛날에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은결이 말을 시작했다. 저 먼 과거에,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시절에, 모닥불 앞에 모여든 이들을 향해 싸늘한 달과 뜨거운 태양의 유래를, 대지의 딱딱함과 하늘을 창망함을, 봄철 비의 고요함과 폭풍의 사나움을 노래하는, 저 아득한 서사시를 말하는 듯한 어조였다. 그것을 들으며 세연은 어딘지 아름답고, 그래서 잠이 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자거리에서 금강경을 듣고 불법에 뜻을 두어, 당시의 고승이었던 홍인을 찾아갑니다. 그때 홍인은 청년을 대하고 그에게 자질이 있음을 알아보지만 제자들의 눈이 두려워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불목하니로 절에 들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홍인은 의발을 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게송을 지어 자신에게 전하면 그것을 보고 깨달음의 정도를 보고 의발을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500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신수라는 제자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게송을 지어 홍인의 방 문 앞에 놓아두고 떠났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수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대라

時時動拂拭, 때때로 닦고 쓸어

勿使惹塵埃 먼지가 앉지 않도록 하세.

홍인은 이를 보고 신수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신수를 불러 이 게송을 따르면 부처가 되지는 못하겠으나 타락할 위험은 없겠구나, 하고 말합니다.”

거기서 은결은 말을 쉬었다. 원래는 신수의 게송만을 간단히 이야기 할 생각이었다. 그 게송은 공(空)을 깨닫게(悟空) 하는 것은 불가능 하겠으나, 여덟 가지 계율(八戒)을 지키는 것은 가능한 게송이며, 그런 만큼 지금의 세연에게는 적합한 게송이다. 하지만 푸른 이빨의 아름다운 행위가 은결의 마음을 돌렸다. 세연의 눈길은 이미 풀려, 그녀가 이야기에 몰입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음 날 그 게송이 공개되는데, 청년은 절의 동자가 게송을 외우는 것을 듣고 신수가 깨닫지 못했음을 알고 자신이 게송을 지어 동자에게 받아쓰도록 하여 홍인에게 전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고,

明鏡亦非台. 밝은 거울은 또한 틀이 아니다.

本來無一物, 본디 한 물건도 없는 것을,

何處惹塵埃 어디에 먼지가 묻을 것인가.

홍인은 이것을 보고, 청년이 견성(見性)한 자(者)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의발을 전합니다. 그가 육조 혜능이며, 역사가 기록하는 지고(至高)의 자유인 중 한 명입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세연이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멍하니 마음 속 깊은 곳을 향해 침잠해 있었다. 숨결이 안정되며 깊은 들이쉼과 깊은 내쉼을 보였다. 그리고 은결은 그녀의 몸속에 넣어둔 자신의 기가 조종하지 않았음에도 충실하게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세연게서 손을 때고 팔짱을 꼈다. 그의 입가로 어울리지 않은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슬슬 반응이 나올 때가 됐는데...’

은결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기에 맞추기라도 한 듯 완전히 몰입해 있던 세연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곧 그녀는 눈을 떴다. 매우 화난 표정이었다. 이내 세연은 아름다운 얼굴을 어울리지 않게 찡그리며 은결을 향해 발을 날렸다. 유려한 선을 그리는 그녀의 다리가 새하얀 살결을 내보이며 날았고, 스커트가 펄럭이며 그녀의 다리보다 하얀 팬티가 살짝 엿보인다는 묘사에 걸맞지 않게, 실은 매우 살기에 가득찬 공격이었다.

“박은결, 이 씨팍 새끼!”

으르렁 거리는 세연의 욕설이 그를 증명했다.

“후.”

하지만 은결은 가소롭게 웃으며 그녀의 발을 받아넘겼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세연은, 푸른 이빨은 부드럽게 몸을 놀려 자세를 회복하고는 은결을 노려보며 지껄였다.

“너, 이 계집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렇게 편하던 세연의 몸이 갑자기 조금 불편해 졌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 산 컴퓨터로 최근 게임을 돌리며 그래픽의 모든 옵션을 다 켤 수가 없다면 찝찝하듯이, 비싼 돈 주고 산 이어폰에서 사소하나마 튀는 소리가 들리면 불쾌하듯이-- 지금 세연의 몸은 정말 별 것 아니지만 전보다 거주하기가 조금 불편했고, 그것은 틀림없이 이 시건방진 인간새끼에게 관련되어 있을 터였다. 은결은 흥, 하고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별로. 나는 그저 마하반야바라밀다의 정수를 체득한 사람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해 줬던 것뿐이지.”

“이 개새끼가!”

마하반야바라밀다라는 말을 듣고 푸른 이빨은 광분했다. 일본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통해 한때 모든 카미를 부처내지 부처가 되길 기다리는 신의 일종으로 보았던 적이 있다. 그 관념의 영향력은 메이지 유신을 지나며 현저하게 낮아지긴 했지만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그런 관념의 영향력을 받은 카미인 만큼 이런 불교적인 이야기는 다른 종류의 것에 비해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하물며 마하반야바라밀다의 정수라면 ‘공(空)’을 말한다. 관념체인 카미에겐 불편할 정도로는 작동하게 된다. 그렇기에 만개산에서 싸웠을 때도 도원스님의 게송에 큰 손해를 보았던 것이다. 어차피 세연에게 육조 혜능 수준의 깨달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해봐야 카미를 괴롭히는 정도밖에는 못할 테고, 그것도 세연의 몸을 포기하게 될 정도로 강하게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푸른 이빨이 이렇게 발악하는걸 보자니 무척 유쾌했다. 은결은 싱그러운 웃음을 만면에 띄우고 말했다.

“사람 놀린 벌이라 생각하고 한 일주일 조용히 버티라고. 조용히 잘 지낸다면 게송을 바꾸도록 할테니까.”

“이 시덥잖은 새끼가 감히 신을 데리고 놀려고 해?!”

푸른 이빨은 길길이 날뛰며 은결을 욕했다. 그렇지만 푸른 이빨에게는 아무런 카드가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힘은 저 빌어먹을 인간에게 있고, 세연의 몸을 버리면 달리 들어갈 좋은 육체가 없었다. 그리고 불편해졌다고 해봐야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최상급의 무녀라고 해도 이 계집의 몸에 댈게 못되었다. 그러니 군자의 복수는 십년도 짧다는 말을 되새기며 견딜 밖에.

...보복과 치욕의 저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너무 대놓고 이야기 하지 말고 좀 녹여서 말하라, 는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쩝, 사실 딱 잘라 말하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직접적인 언급 없이 어떤 주장이나 사상을 집어넣는 것 말입니다. 분명히 밝히는데,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작의 직접적인 언급은커녕 그 사상과 성격이 비슷한 문장조차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성립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 믿어지실 분도 있겠죠. 그런 분들을 위해 몇 가지 힌트를 드리고자 합니다. 의심 가시는 분들은 대조해 보시는 것도 좋겠죠. 은결의 학적 언급은 흔히 출처를 드러냅니다. 출처를 드러내면서 은결의 평가나 감상도 덧붙여집니다. 이 글은 언어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언어에 대한 언급은 흔히 그것의 중간세계적(바이스게르머) 특성을 중점삼아 무언가 이야기하곤 합니다. 은결은 연금술사입니다. 이 글에서 연금이란 저열한 것을 고귀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 글에서 연금의 방법은 기호의 해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연금체계의 최고 기호는 인간의 손입니다. 이 손이란 기호는 이성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통해 성립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일성을 생각해 보시면 그 그림이 어렴풋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아예 대놓고 해설해 볼까 싶기도 하지만, 꽤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 그건 그만두려 합니다.

그렇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해 플롯을 다중적으로 짜서 작업해도 발견하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한 작업을 안 했다고 비판받곤 하는, 처참한 수준의 고비용 저효율의 방법인데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량이 많아 부담을 느끼는 독자가 많은데, 그런 언급되는 정보들 자체가 메타적으로 들어가면 어떤 의미를 상징해 종합적으로는 또 다른 상징구조를 이룬다는 걸 밝히면 독자분들께 더 부담이 될까봐 별로 밝혀지길 원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연습장에 낙서하다가 예쁘게 그려지면 열중하게 되는, 그런 기분으로 작성하고 있었죠. 완결되고 난 뒤라면 모를까, 독자가 발견하도록 놔두는 게 미덕이다 싶기도 했고.

그래도 계속 그런 이야기 들을거라 생각하면 다소 답답해서 그냥 밝혔습니다. 인내심이 없다 싶지만... 하여간 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그런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네요. 참고로 이 구조는 언급되는 정보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림과 연관도 가지게 될 겁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체크해 보시고, 관심 없는 분들은 평소 그랬듯 그냥 읽어 주세요. 재밌게 글 읽는데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혹시 저 구조를 이미 발견하신 분 있습니까? 있다면 진짜 대단하신 분. 제가 독자였다면 발견 못했을 거 같은데 말이죠.(...)

*오해가 있을까봐 추가합니다. 암흑신마님께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글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마저 오해하고 그런 지적을 하시는 걸 보고 차라리 밝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엑사일런 님도 건필하시길.

*추석 시즌입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기워하며, 수능대비에 바쁜 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후회하지 않기를 응원합니다. 저는 찌질거리며 책이나 보렵니다. 그러니 성원을 합시다! 흑흑.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