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희망을 위한 찬가 - 열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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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주인의 변증법은 아무 것도 아냐. 그건 단지 노예가 주인이 되고 주인이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지. 이런 거야. 두 사람이 있었고, 한 사람이 승리했지. 승리자는 패배자를 노예로 만들어 부리는 거야. 노예는 살기 위해 주인이 시키는 일을 계속해서 하지. 그런데 노예는 주인이 시킨 일을 끊임없이 해 가며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알아가게 되는 거야. 그리고 종래에 주인은 자신의 모든 일을 노예에게 맡긴 때문에 무능력해지고 심지어 자신의 생존 자체를 노예에게 맡기게 되지. 이로서 노예가 주인이 되어버리는 거야. 어때 아무 것도 아니잖아?”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기이한 열의를 띈 은결의 얼굴을 보며 쿠로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철학적 감수성이 없는 탓인지, 전혀 그 이야기는 감동적이지 않군.”
쿠로사카의 냉담한 반응에 은결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 끄덕였다.
“그렇겠지. 거기서 이어지는 응용과 해석이 중요한 거니까.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아버지가 난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내게, 아버지는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곤 미소 지으며 말하셨지. ‘그러니까 새들은 자유롭지 않단다. 그들은 그들의 생존을 날개라는 수단에 온전히 의탁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호랑이의 털가죽은 대단하지 않단다. 그들을 그 털가죽으로 정글의 왕이 되지만 초원으로 나서면 그것으로 인해 생존 자체를 위협 당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치타는 놀랍지 않단다. 그들은 그들이 달릴 수 있는 넓은 대지에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게 되니까. 그들은 그들이 날개로, 이빨로, 다리로, 가죽으로 그들의 생존을 도모하지만, 그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로 인해 그들이 생존 할 수 있는 환경을 제약당하고 있으니까. 그들은 그들이 지닌 날개의, 이빨의, 다리의, 가죽의 주인이지만, 사실은 노예니까.’라고.”
노예가 모든 일을 처리함으로서 무능력해진 주인이 노예에게 자신의 생존조차 맡기게 됨으로서 노예가 주인이 되어버리듯이, 자신들이 가진 특수하고도 뛰어난 능력에 기대 살아온 생물체들은 그 능력으로 인해 다른 세계에는 적응할 수 없고, 그럼으로 자유롭지 못한 노예적 존재이다- 그것이 은결의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쿠로사카는 심장이 아닌 가슴 어딘가가 두근, 하고 뛰어오른 것 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셨지. ‘그러니까 인간만이 자유롭단다. 오로지 인간만이 날개라는, 이빨이라는, 다리라는, 가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가능한 특수한 수단을, 열쇠를 포기하고, 직립하여,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만능의 열쇠인 손을 진화시켰으니까.
하지만 손은 불편하단다. 그것은 만능의 열쇠이지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만 하니까. 거미가 본능만으로 아름다운 거미줄을 짜듯, 우리는 도구를 본능적으로 만들 수가 없단다. 본능에 새겨 넣을 수 있을 만큼 인간이 접하게 된 세상은 단순하지 않았지.
본능은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느린 다리를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고, 약한 팔을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고, 약한 피부를 어떻게든 보호해야 했지. 그래서 그들은 상상해야 했고, 상상을 통해 실재세계와 개념 세계를 분리시켰고, 이념을 마음에 품고, 두 손으로 세계를 객체화해, ‘노동’을 통해 상상을 세상 가운데 실현해 보였지. 그 실현의 많은 양태들을 우리는 ‘도구’라 총칭하지. 그래서 결국 인간은 ‘이성’을 가지게 된 거야.
그로서 인간은 가장 더운 적도에서도, 가장 메마른 사막에서도, 가장 추운 극지에서도, 가장 험한 산지에서도, 자신들의 다리로 대지를 걷고, 자신들의 손으로 집을 지어 생을 유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지. 그들은 만능의 열쇠를 손에 넣은 거야. 그러니까, 인간만이 자유롭단다. 그들은 자신이 쥔 열쇠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유일한 동물이니까.’”
약간쯤은 취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기가스의 내음이 느껴지는 도심지에서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하는 은결의 얼굴로 떠오른 미소는 무척이나 맑아서 도무지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 이야기를 하는 은결은 마치 이 세계 자체와 걸맞지 않는 것처럼 순결해 보였다.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취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잠시간 넋이 나가 있던 쿠로사카는 이내 실태를 깨닫고, 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진정으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인거야?”
그 말을 듣고 은결은 쿡쿡 거리며 웃었다. 쿠로사카는 볼을 붉히며 은결에게 화를 내려 했다. “너-!” 그러나 그녀가 화를 내기보다 한발 앞서, 그가 쿠로사카에게 사과했다.
“미안. 우스워서 웃은게 아냐. 단지 내가 그때 했던 말이 너와 같은 거였거든.”
쿠로사카는 이걸 사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한판 붙자는 소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하다 생각하며 표정을 묘하게 바꿨다. 한참 꼬맹이때 은결이 한 대답이 지금 자신과 같다는데 기뻐할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러는 동안 은결은 이야기를 이었고, 그녀의 판단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래. 나는 너처럼 말했어. ‘그렇군요. 사람은 손을 통해 고정됨 없이 스스로를 결단하는 영원한, 그리고 진정한 주인의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군요.’라고 말야. 그것만 해도 나는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어! 그리고 이렇게 말하셨어. ‘그렇지 않단다. 상상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하는 것이고 노동한다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자신이 하는 거란다. 자신이 상상하지 않을 때, 자신이 노동하지 않을 때 그는 주인이거나 노예일 뿐이지. 주인만이 노동하지 않고, 노예만이 상상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은결은 말을 끊고 길게 숨을 쉬었다. 짧은 숨결의 침묵에서, 쿠로사카는 이어질 말이 무엇보다 은결의 가슴에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은결은 별빛을 담은 것처럼 눈동자를 맑게 빛내며, 가장 순결한 열정을 담은 소녀의 낯빛처럼 상기된 얼굴로, 힘차게, 뒷말을 이었다.
“상상을 품고 두 손으로 세계를 바꾼다는 것은, ‘노동’한다는 것은, 노예라는, 타자라는 것을 넘어서서, 홀로 섬으로서 가능한 것이란다. 그는 주인일 이유가 없어. 그래서 노예도 필요하지 않단다. 그는 그 자신일 뿐이야. 그러므로 인간은 손을 통해, 노예를 넘어, 주인을 넘어, 그 모든 타자를 넘어- 자신의 자유로서 타자의 자유를 확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란다-- 라고.”
짧고 작게 이어지던 쿠로사카의 두근거림이 어떤 전율로 뒤바뀌며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아름답도록 순결하게 웃으며 인간의 손을, 언어를, 이성을, 정신을, 자유를 말하는 은결을 보며, 그녀는 그가 마치 노래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은결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찬가였다.
그녀는 종교를 넘어서, 인간이 품고 있는 인간적인 특성을 여기까지 황홀하게 풀어내어 그것을 긍정하는 찬가- 결국 인간에게 바치는 이토록 순결한 찬가를 아직 접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 뜨거움, 그런 열망, 그런 사랑, 그런 기대를 접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신이 사랑하기에, 신이 잠재했기에, 신의 자식이기에와 같은 이유를 넘어서, 그렇다고 이성을 가졌다는, 그래서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하고 가소로운 우월 의식에 빠진 것도 아닌, 이성을 통해 모든 타자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이러한 찬가를 아직 접한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왜 손이 궁극기호였던지를 깨달을 수 있었어. 왜 칸트가 인간을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고 수단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 손을 통해 얻을 수 있게 된 이 자유의 세계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자유를 진실로 성립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누구도 타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모든 범주화를, 의미부여를, 차별화를, 타자화를 넘어서서, 단지 그를 그로서 설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였지! 그것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놀라운 가능성이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놀랍지 않아?”
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표정으로, 은결은 뜨겁게 말했다. 쿠로사카는 전신으로 잔떨림이 이는 것을 느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작을 크게 하면 무언가 억제할 수 없는 것이 뛰쳐나올 것만 같아서 더 큰 동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로서 왜 은결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인지, 그녀는 그 전율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외로움을, 그 소년이 겪은 따돌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 놀라운, 이야기군.”
“헤헤헤...”
은결은 쑥스럽게 코밑을 훔치며 웃었다. 쿠로사카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잔떨림이 이는 오른속을 마찬가지로 잔떨림이 이는 왼손으로 꽉 억누르면서 말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어. 나는 이만 가보지. 너도 이만 가도록 해.”
“아, 응. 잘가.”
쿠로사카는 은결의 인사를 뒤로하고 발을 박찼다. 그녀의 동체가 멀게 튀어 오르며 그세 보이지 않게 됐다. 도망치듯 빠른 동작이었다. 은결은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쭉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달을 바라봤다. 창백하고, 말없이 푸른 침묵하는 달은 고고하니 오늘도 밤하늘에 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은결의 눈이, 표정이, 점차 순결함과 광휘를 잃어가며 엷고 아득한 슬픔으로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는 다시 손을 뻗어 달 가운데 그것을 담았고, 엷은 슬픔에 그 끝이 꺾여진 입술을 살짝 열며 나약하게 말했다.
“노예를... 넘어, 주인을... 넘어, 모든 타자를... 넘어, 자신의 자유로서... 타자의 자유를 확립시킬 수 있는... 존재...”
은결은 달에 담았던 손을 거두고 천천히 허공을 밟았다. 투명한 역장이 그의 몸을 굳건하게 받쳤고, 은결의 발아래로는 도시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도시의 휘황한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고 은결은 짙은 배기가스의 내음을 맡았다. 그는 밝은 도시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 모든... 범주화를, 의미부여를, 차별화를, 물상화를, 자기소외를, 타자화를 넘어서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
자신이 인간이라는데서 느끼는 자부심. 자신이 인간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자랑스러움. 그 비길데 없는 열망. 희열. 행복... 재생되어 버리고 마는 그 마음들. 왜 그녀에게 이런 것들까지 이야기 한 것일까? 은결은 후회했다. 은결은 도시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렸다. 달빛이 짧은 순간 그의 얼굴을 훔쳤다. 가루같이 잔 빛이 그의 두 눈과 그 눈에서 이어지는 볼과, 그 볼에서 이어지는 턱까지 선처럼 이어지며 잠시간 빛났고, 뚝, 하고 희미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 떨어졌다.
“---나도, 돌아가야지.”
토하듯이, 은결은 말했다. 마음은 하얀 재처럼 차갑게 식었다.
쿠로사카는 높게 뛰었다. 싸늘한 바람이 그녀의 전신을 훑었다. 그러나 그 차가움에도 그녀의 몸을 잠식하는 소름은 잦아들지 않았다. 여전히, 한 동작 한 동작이 못 견디도록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녀도 기호를 공부했다. 기호를 다루는 이세의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 이세에서 공부한 그녀의 실력은 일류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 나이 또래에서는 틀림없이 최고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단지 손이라는 기호 하나에, 그렇게 많은 의미와 그렇게 많은 감정과, 그렇게 많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 이런 하나의 폭풍 같은 전율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기호란 단지 단어일 뿐이었다. 기표와 기의로 나누어져 의미를 담지하는 상징. 그것이 기호였다. 그것은 기계의 부속품과도 같이 죽어있었고, 고정된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은, 그렇게 많은 감정을, 감동을 담은, 살아있는 기호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행 한명에게, 이세 전체가 추월당했다고, 미즈하라 아저씨가 얘기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이세의 성취는 대단한 것이지만, 역사가 쌓아올린 모든 성취는 그 역사로 인해 고정된 규격을 가지기 십상이니까. 그리고- 쿠로사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은결의 얼굴이, 그 맑게 웃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무 맑게 기뻐하고 있어서, 그 기쁨의 미래가 어떤 것일지 뻔히 드러나 보여서 차라리 안타까운, 순결한 웃음.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는 어떻게 그런 미소를 짓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은 그런 미소를 보이지 않는 걸까?
다시, 발 한 쪽이 대지에 닿았다. 그녀는 가볍게 힘을 분산시켜 주변으로 전달했고, 기를 집중해 대지와 그녀의 발끝을 강화하며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힘과 속도로 대지에 닿은 발을 박찼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소리조차 없이 눈앞의 빌딩을 훌쩍 뛰어넘으며, 날카로운 바람을 맞이해 들었고, 달과 산의 모습이 드러나며 그 아래 깔린 도시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섰다. 시야가 넓어지며 먹먹하던 감정이 조금은 풀렸다. 겨우 들어선 여유로 억지로 생각을 밀어 넣으며 지금 그녀의 전신을 지배하는 불쾌하지는 않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감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억지로 밀어넣은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라이칸슬로프가 가지고 있던 패에 새겨진 게 열쇠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았다. 신경써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집에 도착하면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싶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겠지만, 마음을 돌리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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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식하다고 띄워주시면 다소 곤란. 적어도 한 10년쯤 뒤로 미뤄주세요. 제가 무식하단건 제가 제일 뼈저린지라.
*플롯을 정리놓으면 막히는 건 없어서 좋은데 별로 안 막히니 언제 푹 쉬어야 할지 타이밍을 못 잡겠네요. 클라우스 때는 한 화 텀이 길어서 별로 이런 거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건 뭐... 덜덜덜.
*그러니, 성원을 합시다! 독자수를 늘리도록 홍보도 하고!(이게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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