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희망을 위한 찬가 - 파블로프는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가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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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주변에 넘쳐났다. 넘쳐나는 사람의 수만큼, 주변은 소리로 가득했다. 사람이 많고 소리가 잡다하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활기라는 표현으로 지칭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사람이 많고 소리가 충만해 활기차다고 말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태가 경향성을 가질 뿐, 절대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걸 고려하면 활기찬 곳에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활기찬 기분일리는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실례의 한 명이 된 채,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 소녀가 한 명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어도 쉽사리 주변의 주목을 끌만한 아름다움을 소지한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세연이었다.
“얘. 놀러 와서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 뭐 나쁜 일이라도 있었니?”
말은 않고, 표정은 밝지 않아 줄곧 어두운 분위기이던 세연을 보다 못해 그녀의 친구가 재촉하듯 물었다.
“아니, 나쁜 일은 무슨...”
세연은 서둘러 부정했지만 그 부정의 태도 자체가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대답을 대답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연의 왼쪽에 있던 소녀가 갑자기 생각난 듯, “아!”하는 탄성음을 내고는 말했다.
“혹시- 전에 학교까지 찾아왔던 남자애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그녀의 말에 세연이 깜짝 놀라며 어깨를 좁혔다. 그 태도를 보고 ‘그거구나!’ 하고 생각한 그녀의 친구들 중 한명이 기세를 더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세연이 지난 주말 쯤엔가 우리하고 같이 못 갈지도 모른다고 굉장히 밝은 낮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주에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잖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다시 세연의 친구 중 한 명이 손뼉을 치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숨기려 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세연은 친구들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정에서 침묵으로 이어지는 태도의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뻔했다.
“으음...”
“헤에- 대체 어떤 남자애길래 세연이를 다 찼을까? 이렇게 착하고 예쁜데!”
그러면서 소녀는 세연을 꽉 끌어안고는 “흐응-” 하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세연의 주변을 떠도는 가벼운 방향이 기분 좋았다. 반대로 세연은 다소 불편한 안색으로 호소했다.
“얘. 수, 숨막혀.”
“아, 미안.”
그리고 세연을 끌어안았던 소녀는 그녀를 놓았다. 세연이 다소 상기된 안색으로 흐트러진 옷매무세를 정리하는데 맞춰, 그녀의 옆에서 다른 친구가 꽤 진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러게. 나는 얘하고 알게 된 이후로 줄곧 남자애들 차는 것만 봐 왔는데, 차인걸 보기는 또 처음이네. 대체 어떤 간 큰 남자가 감히 세연이를 다 찼을까?”
그녀의 말을 듣고 세연의 상기됐던 안색이 한결 붉어졌다. 줄곧 차는 것만 봐 왔다, 라는 다소 공격적인 표현이 세연의 마음에는 걸렸던 모양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자면 더 찼지만, 그녀는 나름대로 상대를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하곤 했었다. 그게 다 한 방에 ‘찼다’라는 어휘로 통일되니 조금 껄끄러웠다.
“그러게. 세연이가 우리 학교 조컨대.”
조커란, 다른 말로 바꾸면 비장의 무기, 내지는 미끼다. 드물게나마 다른 학교와 미팅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 세연이 참석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상대편 측의 참석자를 간단히 채울 수 있을뿐더러, 유흥비 일체를 자진해서 남자 측에서 내게 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그러게 말야!”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그 말에 동조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맨 왼쪽에 있던 친구가 이제까지의 대화를 정리하듯이 말했다.
“하여간 꿀꿀한 일이 있었으면 같이 놀면서 꿀꿀한 기분 다 떨치자. 여기에 그러려고 온 거 아냐. 그런 기분이 꼬리가 길면 안 좋다구.”
“그래!” “물론이지!”그런 동조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들은 활기차게 걸었다. 그런데 세연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그녀의 시야 저편으로 두 사람이 비췄다.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 두 사람의 모습만은 명료했다. 그 두 사람 가운데서도, 한 사람, 한 소년의 모습은 명료했다. 작고 희미했지만 그녀는 그 소년의 모습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소년은 틀림없이 은결이었다. 세연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소녀들의 시선이 세연에게 모였다.
“얘들아, 잠깐만.”
그 시선을 떨치듯이, 세연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달음박질을 하며 멀어져 갔다. 당혹한 표정으로 세연의 친구들이 그녀를 불렀다.
“얘, 어디 가니?”
“조금 있다 전화할께-!”
세연은 친구들의 부름에 그렇게 답하고 달음박질을 계속했다. 사람의 벽이 그녀의 진행을 막았다. 그녀는 “죄송해요.” “좀 비켜갈께요.”등의 말을 계속하며 그 벽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았던 그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세연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시선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수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어디서도 은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어느 샌가 떨어뜨렸다. 손에는 무미건조한 콘만 쥐여 있었다. 다소 스산한 기분이었다.
‘언론정치학부 교수 정영철... 여기다.’
은결은 속으로 문에 걸린 팻말을 읽고 이 곳이 은사님의 연구실이란 걸 알았다. 그는 문에 노크를 했고, 금세 “들어오세요.”하고 대답이 돌아왔다.
“실례합니다.”
은결이 문을 열고 연구실 안에 다소 조심스런 태도로 들어갔다. 미래는 은결의 허리춤을 잡고, 호기심 반, 긴장 반인 얼굴로 주변을 둘레둘레 살펴보며 들어섰다.
‘아버지 방 같다.’
연구실에 들어선 첫 감상은 그런 것이었다. 주변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산화되어가는 책의 내음이 이 공간의 시간을 다른 곳과는 뚝 떨어뜨린 채, 그만의 고유하고도 적적한 자기만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리고 연구실을 둘러 가르는 장막을 거두고 은결의 할아버지보다는 젊어 보이지만 충분히 늙어 이제는 연륜을 느끼게 하는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아직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무슨 일로 찾아왔지?”
은결과 미래는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아, 아버지 대신 생신축하 선물을 전해 드리려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교수의 얼굴이 놀람과 기쁨에 펴졌다. 이어, 그는 크게 껄껄 웃더니,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수행 그 녀석의 아들, 딸이란 말이지. 연락을 받긴 했지만, 이거 이렇게 직접 보게 되자니 놀랍구나.”
“저, 여기-”
그리고 은결은 들고 온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 내용물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양주 같은 거이리라 싶었다. “아, 근처 아무데나 내려놓으렴.” 교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교수는 반가운 표정으로 뒤로 가며 뭔가 두 사람에게 내줄만한 것을 찾더니, 음료수와 과자를 꺼내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미래가 반가운 표정으로 “잘 먹겠습니다!”하고는 간식을 들기 시작했다. 은결도 다소 조심스런 동작으로 마련된 과자와 음료를 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교수는 다시금 껄껄 웃고는 말했다.
“그 녀석이 혜영이를 데려가더니,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는 게, 이렇게 직접 보니 실감이 드는구나. 사실 그 애가 몸이 약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을 했었는데, 너희들은 모두 건강한 것 같고. 다행이구나.”
두 사람의 동작이 동시에 뚝 멎었다. 혜영은 은결의, 미래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미래도, 은결도 사진으로 밖에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머나먼 사람의 이름이다. 그것은 멀지만, 결국 어머니라는 한 단어 아래서, 가장 가까운 그리움의 무게로 바뀌며 가슴 한 켠을 눌러온다. 교수는 그것을 보고 다소 당황하여 말했다.
“아, 이거 실언을 하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아, 아뇨.”
은결은 두 손을 내저었다. 바로 이어, 미래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냅다 물었다.
“저기, 그런데 아빠는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나올 법한 질문이었다. 은결에게도 꽤 흥미가 있는 질문이었다. 아마 미래가 묻지 않았다면, 은결이 묻지 않았을까 싶은 질문이다.
“네 아빠라면... 글쎄다, 뭐라 해야 할까-”
두 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정영철 교수는 턱을 쓸었다. 말할 거리가 없어 사고의 창고를 뒤진다기 보다, 너무 말할 거리가 넘쳐나서, 뒤적거리고 있는 듯한,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곧 교수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긴 힘들다만, 일단은 천재였지.”
*진행이 느려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다소 마음에 걸려 챕터를 뒤적거려봤는데, 다행히 무의미하게 분량을 늘린다는 기분으로 적혀진 건 없었습니다. 다 적어도 사건을 하나씩을 소화해 내고 있었고,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안심하고 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벤야민의 충고, 쓸데없는 뻘짓 말고 목적을 향해 일관하라는 충고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고, 거기에 따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이 글이 굉장히 저 자신의 취향에 맞춰진 건 사실입니다. 저는 저를 압도할 정도로 많은 정보의 폭포를 토해내면서 그 정보들을 치밀하고 유의미하게 엮어 어떤 결론을 향해 종횡무진 돌진하는 스타일의 글을 뻑 가도록 좋아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글도 매우 얌전하다고 말 못할 것도 없는데 말이죠. 하하하!(...)
*한 번 쯤은 진짜 취향을 배신하는 글을 적어봐야 한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양판소라 지칭되는 스타일이라도 상관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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