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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73화 (73/300)

#   73-희망을 위한 찬가 - 파블로프는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가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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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은결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결을 골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격렬한 대련이었다. 결과는 은결의 패배였다. 최초 공방의 교환은 팽팽하게 이어졌지만 다섯 번째로 공격과 방어가 전환되는 순간 은결이 펼쳤던 다중 역장이 쿠로사카의 검에 베이면서 승부가 갈렸다. 단순히 역장이 베인거라면 역전도 가능했겠지만, 방어가 무너짐과 동시에 쿠로사카가 은결의 공격범위로 파고들면서 검을 들이 내밀었다. 그 공격으로 은결은 운신의 영역을 빼앗겼고, 결국 패배하게 됐다.

“으음, 그게 그렇게 베일 줄이야.”

은결은 허공으로 수인(手印)을 맺은 손을 들어올리곤,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손의 모양새를 살폈다. 옥상 출입문 옆에 등을 기대고 선 쿠로사카가 그것을 듣고 답했다.

“좋은 기술이었지만 그때 사용하기엔 일반 역장보다 오히려 못했지. 내가 간격을 잡고 있는 시점이었으니 좀 더 신속하게 발동할 수 있는 걸로 했었다면 네게도 좀 더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몰라.”

황당한 표정을 하고 은결이 그녀의 대답을 받았다.

“좀 더 신속이라니- 수인이 필요하긴 했어도 일단 역장에 비해 그렇게 시간차는 없었는데. 있어봐야 0.01초 단위일까.”

그 말을 하며 은결은 과거 보았던 쿠로사카의 모습을 뇌리에 떠올렸다. 한 줄기 선처럼 아름다운 검격으로, 그녀는 한 장의 종이를 세 장으로 나누었다. 0.01초 단위의 시간이라면 쿠로사카에게는 충분했다.

“으음, 하기야, 종이 한 장을 열장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틈이었나.”

그리고 쿠로사카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그 기술을 한 번 접했던 적이 있다. 때문에 수월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쿠로사카는 유쾌한 기색이 깃든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잘 아는군. 그것보다, 나는 이 대련이 무척 불쾌했어.”

그런데 은결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듯 유쾌하게 시작됐던 쿠로사카의 말이 뒤로 가며 짙은 불쾌감을 띠었다. 은결은 불안을 느끼고 어깨를 흠칫, 좁혔다.

“자기가 하자 해 놓고 또 뭐가 불만이야?”

“마치 네가 나를 봐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네 공격은 모두 어딘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결락시키고 시전 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

쿠로사카가 잘라 말했다. 냉랭하고 뜨거운 말투였다. 표면은 백색 얼음의 대지지만 그 아래에서는 마그마가 이글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에-”

“나는 네가 지금 네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조금 서툴게 느껴지긴 했어도 익숙한 운용이었어. 그런데 중요한 공수의 고비마다 허전하게 빈 듯한 기술만을 보이니 내가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잖아.”

쿠로사카가 은결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길을 받으며 은결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변명을 하나하나 골랐다. 사실 그녀의 지적은 옳았다. 은결은 자신의 지닌바 힘을 완전히 발휘하지 않았다. 딱히 쿠로사카의 존심을 세워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념체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대련에 불과한데 학교 옥상을 박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게 내가 지금 현재 내 힘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힘의 컨트롤이 어려운 기술은 피하려고 했던 것뿐이야.”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자기 힘이 줄었다가 원래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설명을 하기는 귀찮았다. 잔 설명이 많이 따라붙고, 그 설명 가운데는 그 술식에 관련된 것도 있다. 깐깐한 성격의 쿠로사카가 그걸 듣고 무슨 말을 할지, 굳이 직접 실험하고 싶진 않았다. 쿠로사카는 은결의 대답에 마뜩치 않은 게 끼어있는 것 같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러나 인정한다는 투로 그 말을 받았다.

“흐-응. 그렇다고 쳐 두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끊어졌고, 침묵이 죽어버린 바람과 더불어 찾아왔다. 은결은 눈을 가늘게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양이 밝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는 이것이 꽤 괜찮은 시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저 높은 곳에 올라서서, 희미해진 세상의 모습에서 상상력의 부재를 느끼는 일은 쓰디쓴 일이었다. 거기서 달은 너무 밝았고, 닿을 수 없는 것을, 그러니까 한층 비인간적인 것을, 갈구하게 되고 마니까. 은결은 싱겁게 웃으면서 쿠로사카를 바라보고 말했다.

“쿠로사카.”

“왜?”

“좋지?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

쿠로사카는 은결에 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심은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후훗.”

미래는 자신의 교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녀의 친구들을 다소 두렵게 했는데, 그것은 창밖으로 쳐다보던 미래가 간혹 입술 끝을 들어올리며 ‘후훗’하고 유쾌하게 웃어보이고 있었던 탓이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고, 학교에서 선생들이 자주 학생들에게 써먹는 말이 있는데, 지금의 미래가 딱 그 모습이었다.

“얘.”

미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보다 못해 그녀를 불렀다. 미래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자신을 부른 여학생을 바라봤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니? 하루 종일 창밖만 바라보고 있게.”

“아니, 별거 없어.”

대답은 반사적이었다. 바로 3초 전에 그녀가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대답이다. 여학생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없기는. 이번 주 들어와서 줄곧 들떠 있는 것 같았는데.”

“아 맞다, 이번 주에 오빠랑 대학 축제에 간다더니, 그것 때문에 저러는 거 아냐?”

옆에 있던 여학생이 손바닥을 마주 치며 알았다는 듯이 외치자, 책상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그럴리 없다는 의혹어린 시선으로 그 말을 되받았다.

“에- 겨우 오빠랑 가는게 뭘 저렇게 좋아알까.”

그러나 손뼉을 치며 말했던 소녀가 즐거운 표정으로 반박했다.

“몰랐니? 미래 상당한 브라콘인걸.”

“브라콘이라니! 그냥 사이가 좋은 것 뿐이야.”

“그냥 사이가 좋덴다.”

미래가 버럭 반발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벌써 친구들은 미래를 중심으로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진중한 목소리로 한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저러다 정말로 오빠 애인이라도 생기면 되게 괴롭히는 거 아냐? 왜, 시동생 시집살이가 더 고달프단 말도 있잖아.”

“맞아맞아.”

미래의 친구들이 동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꺄르르- 하는 전염되는 것처럼 활달하고 성급한 웃음이었다.

“하여간 너도 이제 적당히 남자친구라도 찾는 게 어때? 더 끌면 나중에 더 속 쓰릴걸. 더구나 네가 계속 따르다 보면 네 오빠도 눈만 높아져서 곤란하지 않겠어?”

처음 말을 꺼냈던 여자애가 말했다. 나름대로 진지한 의견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미래의 오빠인 은결이 사실 그다지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미래도 그 의견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되돌려진 대답은 그다지 현실을 고려한 것 같지 않았다.

“음, 나는 나보다 더 예쁘고 똑똑한 여자 아니면 오빠 여자친구로 인정 못할 거 같은데.”

순간적으로 세연의 모습이 미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미래로서도 불안한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선언을 듣고, 친구 중 한 명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얘는, 차라리 네 오빠 평생 독신으로 만들겠다고 해라. 그나저나 나도 오빠는 있지만 완전 웬순데, 그에 비하면 너희 남매는 참 사이가 좋단 말야. 비결이 뭐니?”

미래는 한 동안 음- 하고 생각하다가 답했다.

“우리집이 편부모라서 내가 오빠 손에서 크다시피 했거든. 그래서 그런지 오빠라고 해도 딱히 너희들처럼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어. 한 5살 이후로는 오빠하고 많이 지냈거든.”

주변의 분위가 한 순간에 가라앉았다.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아직 죽음에 익숙하지 못한 고등 학생 사이의 화제가 된다면 한결 더할 수밖에 없다. 미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불식시키기 위해 활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어머니 돌아가신거 어릴 때라서 잘 기억도 안 나는걸. 그렇게 심각해 지지 않아도 괜찮아. 괜히 너희가 신경 쓰면 내가 더 어색하잖아.”

그 말을 기점으로, 다시 미래 주변의 분위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소녀다운 활달함으로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그 활달함 가운데서, 미래는 쓸쓸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어머니 제삿날이 머지않았구나.’

이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은 슬프지 않았다. 이미 슬픔을 논하기에 그녀는 너무 먼 기억 속의 사람이 되었다. 다만, 조금 쓸쓸했다.

*블루윈드 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요새 좀 무의미하게 블루한 기분이지만 떨치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육체적으로 피곤해서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음, 잘 모르겠네요. 프로작이라도 먹고 싶은 기분. 하여간 성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노력하겠습니다.

*아웅. 얼른 완결내고 싶네요. 근데 갈 길은 꽤 멉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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