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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66화 (66/300)

#   66-희망을 위한 찬가 - 역사의 끝에 선 영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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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의 이야기가 끝났다. 집에 돌아온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앞에서 라이칸 슬로프와 싸웠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다. 물론 카미에 대한 부분을 들킬 수는 없었기에 라이칸 슬로프의 강함을 많이 낮추고, 쿠로사카의 도움을 과장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점인 라이칸 슬로프의 등장과 그 수인이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듯 하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은결로서는 이후 그 조직에서 다시 공격이 있을 경우 대처하기 버겁다는 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은결은 아버지가 현자의 돌을 발동시키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래도 네가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할아버지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라이칸 슬로프와 싸웠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만월 아래 늑대인간이란 죽을 운명의 인간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불사의 권능을 획득한다.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겁니다. 그만큼 강력하고, 또 용의주도한 상대였지요. 특히 외부로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결계를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펼치는 것은, 기술 수준도 충격적이었고, 특히 치명적이었지요. 그 때문에 할아버지께 연락을 못 드렸으니.”

수행이 할아버지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 점은 치명적이구나. 내가 그런 상황에서도 연락 가능한 기구를 만들어 보도록 하마. 일주일이면 가능하겠지.”

“...예.”

실망스러웠지만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현자의 돌에 대한 수행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모양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세계 전부를 휩쓸고 들어갈 수도 있는 거대한 힘의 폭주. 하물며 수행 역시 현자의 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일 뿐, 완성자이지는 않다.

그가 완성자였다면, 팔년 전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압도적인 힘과 그 힘의 제어능력에 대한 불신. 비록 지금 보유하고 있는 힘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거대한 위험이 있다고 해도, 그 압도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으려 확고하게 마음을 먹은 수행의 결단은 올바르다. 위대함을 꿈꾼, 되돌아봄 없는 고결함과 실천이 무엇을 이루었던지, 역사의 종언과 함께 우리는 안다.

“그런데 조직이라고 하면 무언가 표식같은 것은 없었니?”

수행이 물었다. 은결은 조금 당황하며 답했다.

“어, 그게 역장을 발생시키는 신발을 신고 있었어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것이었는데 쿠로사카와 싸우며 재가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마법적인 패가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미처 회수하지 못했어요.”

“쯧, 아쉽게 됐구나.”

은결의 말을 들은 수행의 표정이 조금 썼다. 은결은 얼른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런 경황 중이었다면 미처 생각이 거기 닿지 못하는 것도 너를 탓할 수는 없겠구나. 너는 다만 무사히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수행의 표정은 단호하다. 은결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자책의 여지를 없애려는 것이다.

“그럼 아범이 그 송신기를 만들기까지, 시의 순찰은 나와 함께 가자꾸나.”

할아버지가 제안했다. 은결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가게는 괜찮을까요?”

“일주일 쉰다고 어떻게 될 만큼 신용 없는 장사를 해 오지는 않았단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니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예.”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은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이 말을 더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이세의 그 소녀에게도 만들어 주고 싶다만, 의향을 물어보겠니?”

“쿠로사카에게요?”

“그래. 그녀의 힘은 확실히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사실 여전히 내게는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다만 네가 그녀와 앙금이 없다면 이쪽에서 고개를 숙여서라도 도움을 얻고 싶구나.”

“예. 그렇게 하지요.”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도리어 그 불편한 표정이 설명하듯, 수행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도 그녀에게는 도움을 받을 일이 적지 않게 있을 성 싶었다. 아무리 힘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해도 키리야미를 해방한 그녀의 전력에 비하자면 많이 부족하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많이’가 아니라 안드로메다 저편이지.’

은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유행하는 말로 그녀의 강함을 표현하자면 ‘님아 매너염’정도가 적당하다. 키리야미를 해방한 쿠로사카는 그만큼 강하다.

“알겠다. 그럼 그렇게 일을 진행시키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말하며 수행이 왼팔을 들어올려 입술 주변을 쓸었다. 부족한 옷 길이에 소매가 약간 걸리다가 수행의 팔목이 드러났다. 팔목에 채워져 있던 나무로 만든 팔찌도 함께 드러나며 짤랑 움직였다. 은결이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저, 그런데 아버지-”

“응? 왜 그러느냐?”

“혹시 팔에 차고 계신 팔찌...”

수행은 팔을 들어 보이며 피식 웃었다.

“아아, 네가 만든 게 맞다. 조사라고 해도 호신부를 해체해야 되는 것은 아니니까. 왜? 내가 하면 안 되니?”

은결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다만 아버지가 차기에는 너무나도 볼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외관은 물론 세부 디자인 등에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장신구로 보일 수 있다고 여겨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물건이었으니까. 지금이라면 좀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녀석으로 만들 수 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말씀하시면 더 나은 걸로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수행은 부드러운 미소로 아들의 성의를 받았다. 그리고 그 미소를 닮은 말로 은결의 자격지심을 따스하게 보듬었다.

“괜찮다. 네가 이렇게 별 사명감 없이 만든 것이 나는 더 마음에 드는구나. 편안한 마음의 흐름이 삶을 대표할 수 있을 뿐이니까. 후후, 괜히 어깨가 으쓱으쓱해지는구나.”

“하핫, 그거 부럽군.”

옆에서 할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은결은 또 한 번 서둘러 말했다.

“아, 할아버지도 하나 만들어 드릴까요?”

“아니 괜찮단다.”

“그럼 피곤 할텐데 이만 들어가 쉬거라.”

할아버지에 이어 수행이 말했다. 따로 두 분만 남아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예.”

은결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옅지만 기쁨에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만든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저 호신부를 착용함으로서 발생하게 될 영적 자장에 대해 푸른 이빨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지는 우려스러웠다. 빠른 시일 내에 세연양을 한 번 만날 필요가 있을 성 싶었다. 푸른 이빨에게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스운 걸 넘어 기막힌 관계다. 은결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문을 닫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니 낮은 목소리가 은결을 현실로 이끌었다. 좀 온도가 낮은 현실이라는 게 약간 유감이지만. 문 앞에서 줄곧 대기하고 있기라도 했던 듯 당당하고 싸늘한 기색으로 은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미래가 은결을 향해 물었다. 물론 대화의 내용은 결계로 차단했다. 그녀가 문에 귀를 대고 있었어도 전혀 엉뚱한 내용이 들렸을 것이다.

“아, 그게- ”

“하기야 학교까지 빼먹으면서 여자하고 같이 있었으니 당연히 기분 좋겠지. 물론 이해해. 음. 이해하고말고.”

냉랭한 어조와 그에 잘 어울리는 말투다. 쿠로사카가 전화를 넣긴 넣었는데, 그때 전화를 받았던 것이 미래였다.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금세 통화 상대가 바뀌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미래는 ‘은교루네 댁 입니카?’ 라는 어설픈 한글을 접했다. 그래서 수행이 전화 받는 걸 옆에서 쭉 기다렸다가 물어서 사정을 다 들었던 모양이다. 은결은 집에 돌아올 때 집 근처에서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 비슷한 환청을 들었는데, 집안에 들어서서 그 환청이 미래가 타오르는 소리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설명했듯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정이 아니라니까.”

“그럼 명확하게 설명을 해줘야지. 뭐야 애매하게.”

“그러니까 설명했잖니. 걔가 다쳐서 간호해 주느라고 그렇게 됐다니까. 외국에 혼자 와서 살고 있는데 아프면 그게 얼마나 비참한지 넌 모르지? 사실 말야, 집에 혼자 있을 때 아프면 그것만 해도 세상이 바뀐 것 같은 비참함을 맛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여긴 외국이라고? 어디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불쌍해?”

은결은 문장에 절절한 감정을 담아 답했다. 쿠로사카가 들었다면 반응이 궁금해지는 설명이다. 미래는 쌍심지를 치켜세웠다.

“오빠의 그 코스모폴리탄적 바짓저고리 정신이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지! 그렇다면 오빠가 전화해야지 왜 그 여자가 전화해? 수상하지 않을 수가 없지.”

전국 0.3%를 물로 보면 곤란하다. 그만한 논리적 허점도 발견하지 못할 만큼 미래가 둔하지 않다. 전국 상위 0.3%가 편견까지 섞어 보내는 의혹의 시선을 무마할만한 설명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당장 급해서 만든 변명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은결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무의미해 보이는 사태들 가운데 의미를 찾아 하나로 연결하듯, 무의미한 사건을 연결해 논리적으로 훌륭한 변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시냅스를 열심히 운동시켜야 했다.

아아, 슬픈(?) 저녁이다.

*버닝 종료! 앞으로는 지금 같은 연재 기대하시면 매우 곤란.

*정면승부하면 안드로메다고, 편법을 쓰면 이기기 별로 안 어렵습니다. 키리야미 해방하면 도망가면 됩니다. 은결은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키리야미 해방해도 쿠로사카는 은결을 쫒지 못합니다. 히트 앤 런이죠. 주인공답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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