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희망을 위한 찬가 - 역사의 끝에 선 영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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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슴아슴한 과거의 이야기다. 여전히 아버지는 지상의 영웅이고, 세계는 밝고 깨끗한, 정의로 충만한 선명한 선의의 공간이었던, 이라 여겨졌던 시절의, 바람은 초록을 쓰다듬고, 물은 말갛게 바닥을 드러내 놓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빠, 도덕경에서 도(道)와 덕(德)은 어떻게 다른 거예요?
-응? 으음, 글쎄다- 어디보자... 도가 규정될 수 없는 거라면, 덕은 딱 한 번은 규정된 것을 지칭 한다- 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구나.
-에이, 엉터리. 도나 덕이나 큰 특성에서 차이를 지니지 않는데 덕이 규정되어지는 것을 지칭한다면 도와 덕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단절이 있는 게 되잖아요. 도와 덕이 존재론적으로 그렇게 현격한 차이를 가질 리가 없어요.
-하하. 우리 은결이가 보통이 아닌걸.
-헤헷.
-은결이의 말이 옳지만, 하지만 한 번만 규정된다는 것은, 실은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거의 차이를 가지지 않는단다. 얼마 전에 공부했던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떠올려보겠니?
-응, 있는 것은 있으니까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상태가 있음으로 해서 있다. 라고 말했던 그 아저씨요?
-그래. 그럼으로 있다는 것, ‘존재’는 최종범주가 되지. 최종 범주라는 것은, 그것이 타자, 즉 비교할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없다’라는 상태는, 그 상태 자체는 있음으로, 결국 있음에 포함됨으로서 존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것은 설사 규정되었다고 해도 결코 그것은 규정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란다. ‘존재’라는 단어에 비교할 대상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지. 내가 보기엔, 덕이란 것이 그러한 것 같구나.
-그렇군요.
-그리고... 곧 배우게 될 것이다만, 그 덕이야 말로, 은유하자면 우리 연금술사가 종국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표란다.
-도가 아니고요?
-도(道)는 인간의 것이 아니란다. 신의 것이지. 사람은 본질적인 해석자니까. 그렇지만, 인간인 한에야 도무지 규정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지만, 타자를 갈구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모든 규정을 하나로 규정함으로서, 다른 모든 규정을, 마침내 그 규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작업은 가능하다고, 나는 믿고 있단다. 존재의 논리를 극한까지 밀고 간 파르메니데스가 일자(一者)로 세상을 통합해 이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 1과, 소수점 이하로 무한히 계속되는 0.9의 행렬이 근사한 비교가 될 것 같구나...
모든 규정을 하나로 통합해 규정함으로서, 다른 모든 규정을, 마침내 규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작업은 가능하다고, 나는 믿고 있단다-
은결은 눈을 떴고, 상체를 일으켰다. 텅 빈 방이었다. 고독이 머물러 조용하게 응고되어 가는, 그런 방. 창가에서 흘러들어오는 햇살이 정오가 머지 않은 시간임을 예감케 했다.
‘쿠로사카군...’
만월이 높은 밤의 마지막 기억은 술식의 완성이다. 푸른 이빨은 그 장면을 눈앞에 두고, ‘제에기이라아아아아아알!’하는 긴 욕설을 내밭으며 떠나갔다. 지난번 체험을 통해 그 폭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결의 속을 휘돌던 막대한 신의 힘이 다시 굳었고, 은결은 술식을 유지할만한 기를 충당치 못한데다 그날 격전을 치르며 몸이 지극히 피로했던 탓에, 만월을 닮은, 허공에 떠오른 아름다운 질서를 바라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 방이었다. 방 전체를 감싸고 있는 쓸쓸한 분위기 하며, 가벼운 방향(芳香)이 쿠로사카 이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흐응...”
은결은 혀 밑에 고인 침을 삼켰다. 입안의 텅빈 감각과 함께 침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사소한 현실이 되살아났다. 은결은 혀끝으로 의치를 해 넣었던 어금니 쪽을 매만졌다. 의치는 하나도 남김이 없이 박살났다. 그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또 한 재산 날아가게 생겼다. 은결의 혀끝은 아쉬움을 담고 계속해서 잇몸을 쓰다듬었다.
“어?”
잔뜩 우울해졌던 은결의 얼굴이 놀라움이 펴졌다. 뿌리부근에서 법랑질의 미끈한 감촉이 사소하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혀끝으로 그 감촉을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어금니가 새로 나고 있었다.
“어금니는 영구친데...”
은결은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카미의 영향일까? 그렇지 않으면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을 끝까지 전개한 영향? 하지만 왜 지난번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혹시 카미를 불러들이기 위해 자해한 상처가 너무 큰 탓에 그것을 회복하며 신체재생능력이 극대화 된 것일까?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오른 손을 붕대로 묶은 쿠로사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은결이 일어나 있는 것을 보고 무미건조한 일어로 말했다.
“아, 일어났군.”
“응.”
“입어.”
그리고 그녀는 문 옆에 놓여져 있던 비닐봉지에서 옷가지를 던졌다. 위아래 양쪽이었다. 그제서야 은결은 자신의 윗도리가 피에 쩔어 검붉은데다 가슴으로 큰 구멍이 나 있는 넝마라는 것을 인식했다.
“고마워.”
“흥.”
그는 서둘러 윗옷을 벗었다. 조금 야위어 보이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상체였다. 엇저녁 전투에서 입었던 그 치명적인 상처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쿠로사카는 무신경하게 그것을 바라봤다. 은결도 무신경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며 옷을 입었다. 쿠로사카가 입을 열었다.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집에 전화는 넣어뒀어.”
은결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쿠로사카가 뒷말을 이었다.
“걱정 마. 카미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뺐어.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너와 내가 힘을 합쳐 처리했다고 이야기 했지. 그 과정에서 너는 상처와 피로가 심해 이곳에 머무르게 됐다고 이야기 했고.”
“고, 고마워.”
“...그 여자를 포기해.”
갑자기 쿠로사카가 말했다. 그러나 은결도 그녀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
“다 지켜봤어. 어처구니없는 모험을 하더군. 자기 몸을 걸고 도박이라니. 너 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위험해 질 수 있어. 언제까지 그런 줄타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해? 한 사람의 피해자도 생기게 하고 싶지 않다는 네 마음은 인정해. 그러나 이제는 아냐.”
“승산이 있으니까 한 거야.”
은결이 침착하게 답했다. 쿠로사카가 분기(憤氣)를 품은 조소를 보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 카미의 정신을 상대로? 감각차단결계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네 정신력이 대단한 것임은 인정해. 그만큼 확고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그러나 상대는 신이야. 너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 따위는 대양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 따위에 지나지 않아.”
“대양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가 제 색을 잃기 전까지의 시간만 내게 주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해. 아무리 카미라도 그 술식의 폭주라면 틀림없이 소멸할테니까.”
“너!”
계속되는 은결의 대답에 쿠로사카의 눈썹이 급격한 경사를 그렸다. 은결은 그녀의 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도리어 카미를 소멸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었던 거잖아? 우리가 살아난 것은 오롯하게 카미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인거야. 그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어?”
“그런 도박으로 연장된 목숨 따위, 나는 바라지 않아! 너도 알지! 라이칸 슬로프를 맨손으로 해체했어! 그 강대한, 임모탈리티를 획득한 마물을! 그런 순수한 파괴와 지배욕의 현신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할 수는 없어! 늑대인간 따위는 이세에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열 사람 이상 있어! 키리야미에 좀 더 능숙해지면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나, 네 육신을 입은 카미는 아냐! 이것은 봉인수호자로서의 절대적인 사명이야!”
물론 기억한다. 그 장대한 힘의 축제. 그 파괴의 축제. 순결한 잔인함이 유쾌한 웃음의 선율을 따라 이르는 핏빛 해체. 그 광경에서 생명은 무기물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단순한 물질의 조합이었고, 흐르는 피는 물과 차이가 없는 단순한 액체였다. 짙은 알콜의 내음을 넘어서는 피비린내의 굴곡. 은결의 몸을 차지한 카미가 이룰 세계는 그런 것이다.
은결은 입을 열었다.
"...나는 원해."
"이익-!"
거기에는 쿠로사카도 더 이상 더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다고 타인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은결은 그녀를 달래듯이 말했다.
“...내게 시간을 줘. 6개월을 약속했잖아?”
쿠로사카의 눈썹이 파르르 떨었다.
“멋대로 해!”
그녀는 결국 분을 참을 수 없었던 듯이 새되게 한 마디를 던지고 방을 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혔고, 으적, 두 조각으로 부서지며 흉하게 문틀에 걸렸다. 그녀의 분노를 깨끗하게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후...”
은결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냉정한 이성은, 그녀를 구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이 저열한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간단히 포기되고 버려지는 이 세상에, 자신만은 할 수 있는 한,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쓰렸다.
어두운 마음을 달래듯 은결은 반사적으로 전신으로 운행하고 있던 기의 흐름을 강화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커졌다.
“힘이-- 돌아, 왔다?”
*클라우스를 장씨님이 추천해 주셨군요. 감사~
*이 박살난 거 하나 가지고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챕터는 명백히 지난 챕터 첫 화에서 은결이 말하던 것의 연정선상에 있는 거죠! 어떻습니까? 이 치밀한 구성(?)!
*은결이 매우 정신력이 강하긴 한데, 신보다야 강하겠습니까. 그냥 필요하면 주저 없이 자폭할 수 있는 깡을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술식 완성하면 다음 줄은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가 되겠죠. 뭐, 그 정도는 아니라도 수도권은 싹 쓸릴 지도 모르겠군요. 술식에 집어넣은 물질의 질량만큼 반물질 폭탄이 되니. 그러니 지금 술식 가지곤 먼치킨 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자폭용.
*외국어 공부는 최소 10년 생각하고 하고 있는 겁니다. 유학갈 것도 아니고 급할 거 없죠. 제가 평생을 통해 맑스와 니체는 원서로 읽는 게 꿈이라서. 찌질한 범재라 죄송합니다만, 성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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