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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61화 (61/300)

#   61-희망을 위한 찬가 - 방법은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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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마.”

(돌아왔습니다.)

쿠로사카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며 집안에 들어섰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끝마친 그녀는 막 집으로 돌아온 길이었다. 쓸쓸했다. 홀로라는 것을 쓸쓸하다고 생각한 것은, 키리야미를 해방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약함에 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지만, 그래도 한 줄기 외로움은 미세한 마음의 틈새를 타고 고요하게 그녀를 흔들곤 했다.

쿠로사카는 베란다로 나갔다. 밤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도심의 불빛은 화려했다. 후쿠오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야경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도시는 이질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질적이었다. 버스를 타는 방식도, 지하철의 요금 방식도, 식당의 잔 반찬을 요청하는 방식도, 음식의 간도, 사람들의 표정도, 건물의 구조도, 대기의 습도도, 마침내 그녀의 이 방도---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곳은 한국이고, 그녀는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논증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한국에 옴으로서 진정으로 일본인이 되었다. 무엇이 그녀를 구성하고 있는지, 명료한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는 외국에 나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던데... 나도 그런 걸까? 별로 애국자가 된 것 같지는 않지만.’

가벼운 웃음을 머금으며 쿠로사카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모든 종류의 사고가 완벽하게 정지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거기 놓아둔 키리야미를 쥐었다. 벽에 걸린 쓸쓸한 거울에 비친 그녀의 단정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방금, 엄청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약한 한 가지 힘, 그러나 신을 느끼게 하는 그 힘도.

쿠로사카는 신발을 신고 베란다에서 몸을 날렸다. 그녀의 가냘픈 동체가 날며 발바닥을 지지하던 스테인리스 골조가 종잇조각처럼 우그러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지금 은결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키리야미를 해방해야 싸울 수 있는 상대였다. 은결에게 승산은 없었다. 문득, 지난번에 은결이 만들어 줬던 닭죽이 생각났다. 쓸쓸하지 않은 맛이었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 가운데 그것이 가장 맛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 쓸데없는 생각이다.

...의식을 온존시키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은결은 희미한 눈길로 눈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탈출도, 싸움도 양방 어느 쪽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 청제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마하를 넘기는 속도로 달리던 은결은 역장의 벽을 만났다. 강력한 역장이었다. 은결의 힘으로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사내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내는 은결의 등 뒤에서 핏빛을 머금은 목소리를 울렸다. 은결은 마음을 다잡고 아무런 희망 없이 사내와 싸웠다.

허망한 싸움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강함은 압도적이었다. 자신이 펼친 그 모든 역장은 상대의 공격 앞에 거품처럼 허망하게 흩어졌다. 역장을 비롯한 여러 술법으로 육체능력을 강화, 보조해 근접전을 펼치는 것을 전투의 기본으로 하는 은결로서는 역장이 그토록 간단히 파괴당하는 시점에 이미 승산이 없는 것과 같았다. 그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허공의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은결을 걷어찼다.

“욱!”

은결은 피를 토하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견고한 역장이 은결의 등을 받치며 그를 육체를 계속 허공에 머물게 했다. 갈비뼈는 몇 개나 부러져 있을까? 고통이 차지한 의식은 논리를 허망하게 무너뜨렸고, 은결은 부러진 갈비뼈의 개수 따위와 같은, 무의미한 의문을 순간순간 떠올렸다. 그토록 멀던 하늘이 오늘은 아주 가까웠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이.

“퍽(fuck)! ‘전설’을 넘기는 에너지를 구사했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결국 이게 끝이라니.”

그는 한참을 투덜대며 은결 앞에 서 있다가 가끔 그를 걷어찼다. 일격 일격이 품고 있는 힘의 크기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모습이었다. 한동안 은결을 바라보며 불만스레 투덜거리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펴졌다.

“이쪽은, 기대해도 좋겠지.”

그는 주머니에서 패 같은 것을 꺼내 역장위에 놓아두고는 은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역장의 모서리가 빛나며 점차 축소됐다. 처음에 은결은 사내가 자신도 같이 이 공간에 갇힐 생각이기라도 한 것인가, 하고 의문스레 여겼지만 그 의문은 곧 해소 됐다. 역장의 벽은 사내를 아무 저항 없이 관통시켰다.

그리고 역장이 사방 2m정도의 크기로 축소되었을 때, 사내는 땅 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은결을 가둔 역장도 그를 따라 땅으로 내려섰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만개산 기슭의 넓은 공터였다. 그는 그곳에 서서 다시 패를 땅위에 대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패가 빛나며 공간이 비현실적인 감각을 띄어갔다. 흔히 술자들이 싸움 전에 기본적으로 펼쳐두는 최면 결계와 운동억제 필드다.

사내의 성격을 생각할 때 정체를 숨기고 주변을 배려하려는 것에서 그가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작업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필요한 범위까지 결계를 모두 넓히고 그는 자신의 패에 입을 맞추며 사라졌다. 무협 소설에 나오곤 하는 이형환위 같았다. 현실적으로 대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운동이 억제된 이 안에서는 가능하다.

은결은 파도처럼 몰아치는 고통을 억제하고, 자신을 역장에 가둔 채 사라진 사내를 생각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했던 걸까? 그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걸까? 어느 것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전법은 은결이 처음 접하는 것이었고, 전법을 알아봤다고 해도 현재의 대한협회와 같이 여러 파벌이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면 전법의 특이성에서 조직의 정체를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은결은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얼마 있지 않아, 은결은 사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이쪽을 향해 작은 점 같은 것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소녀의 모습이고, 그 소녀의 이름이 쿠로사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점을 발견한 뒤로 일초도 되지 않았다. 곧 그녀는 은결 근처에 착지했다. 주변의 흙과 풀이 높이 날았다. 그러나 그녀가 떨어져내린 높이를 생각하면 기이하도록 조용했다.

“어떻게 된 거지?”

쿠로사카가 기이함을 느끼며 은결에게 물었다. 은결은 거두절미하고 외쳤다.

“피해!”

동시에 섬연한 그림자 하나가 그녀를 덥쳤다. 쿠로사카는 이미 키리야미를 들고 그림자가 덥쳐온 방향으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카앙! 쇳소리와 불꽃이 교환되고 두 인영의 그림자는 서로에게 멀찍이 떨어졌다.

쿠로사카는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을 공격한 자를 바라봤다.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오른손 중지와 약지 사이를 혀로 핥으며 쿠로사카를 즐거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의 혓 놀림 사이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방금 공격의 교환으로 키리야미의 날에 베인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쿠로사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방금 교환된 일격의 기세라면 키리야미의 날로 철괴도 베어낼 수 있다. 사내의 주먹은 철괴보다 튼튼하다는 말이다.

“저 꼬맹이 보다 훨씬 낫군. 날것의 반응이 느껴져. 역시 네게만은 나와 저 꼬맹이의 기에 대한 흔적을 내보낸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군. 사냥은 이래야 재미가 있지.”

사내가 중얼거렸다. 쿠로사카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카이(解)!”

외침과 동시에 키리야미가 반응했다. 날 전체가 웅웅거리며 빛났다. 막대한 힘이 그녀의 전신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상대를 향해 날았다. 검이 움직였다. 긴 빛의 궤적을 남기며 그녀의 공격은 사내를 압박했다.

그 공격을 접한 사내의 얼굴이 불쾌함에 이그러졌다. 그에게 방금 전 까지의 여유는 없었다. 그는 얼굴을 굳히고 그녀의 검을 상대했다. 신격을 해방한 키리야미의 힘 앞에서는 그도 감히 여유부릴 수 없었다.

아니, 그가 밀리고 있었다. 곧 싸움은 지친 은결의 눈으로는 동작을 판별하기도 어려운 초고속의 세계로 돌입했다. 운동을 억제한 가운데서도 폭풍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크악!”

비명이 퍼졌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몇 시간에 상당할 일분의 시간이 지났다. 폭풍이 멎으며 두 사람이 떨어졌다. 사내는 오른쪽 상완부를 왼손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 사내의 옷이 시뻘겋게 젖어갔다. 팔뚝을 타고 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상황을 볼 때 쿠로사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 같았다. 사내는 은결이 이제까진 만난 가운데 가장 강한 사람의 한 명이지만 역시 신의 힘을 완전히 빌린 공격 앞에서는 대항할 수 없었다.

“퍽! 퍽!! 이런 건 계산에 없었는데! 저 암캐가 지닌 검이 레릭(relique)급의 아티팩트라고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상처 입은 맹수처럼 사내는 그르렁거렸다. 쿠로사카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는 시간에 맞춰 다시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에게도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막대한 신격의 힘에 육체의 곳곳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사내는 인간인가 의심스러울 만큼 강력했다. 이런 긴 시간, 키리야미의 힘을 해방시키고도 전투불능 상태에 상대를 몰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상대의 안위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싸웠다.

“이 씨발년! 잘근잘근 씹어 먹어 주지! 피부도 씹고, 근육도 씹고, 살코기도 씹고, 내장도 씹고, 뼈도 씹어주지! 세상 어디서도 네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도록 소화시켜 주지! 언더스탠? 씨발년아!”

증오에 물든 저열한 말을 끊임없이 내뱉으며 사내는 으르렁 거렸다. 그의 눈빛이 점차 붉어졌고, 유들유들하던 얼굴의 형상도 점차 무너져 지금은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전신으로 기이한 기색이 느껴졌다. 강력하지만, 전혀 낮선 이상한 힘이었다.

쿠로사카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다시 사내를 향해 날았다. 검격이 연속해서 이어지며 사내의 목숨을 노렸다. 사내는 계속해서 저열한 욕설을 지껄이며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키리야미의 날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예리하다. 사내의 막대한 힘이 장벽을 형성하며 그녀의 검을 막았지만 번번히 무산되며 그의 양 팔로 깊은 상처가 계속해서 새겨졌다.

허공으로 핏방울이 무수히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사내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여전히 욕설은 끊어지지 않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은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쿠로사카는 어서 싸움을 끝내고자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결정적인 찬스를 발견했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의 유도에 따라 목을 방어하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틈을 타고 왼쪽 가슴으로 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 공격과 더불어 쿠로사카는 승리를 자신했다.

키리야미의 검 끝이 푸욱- 하고 살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쿠로사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키리야미의 검 끝이 파고들어간 것이 사내의 가슴이 아니라 손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손등에 부스스하게 무수한 털이 난, 손의 손바닥을.

“씨발- 년아!”

웃는 것처럼 사내는 욕설을 지껄였다. 입이 쭉 찢어지며 이가, 아니 이빨이 드러났다. 날카로운,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날카로운 이빨이었다. 아랫 이빨과 윗 이빨 사이를 끈적끈적한 점성의 침이 연결하고 있었다.

‘라이칸 슬로프!’

은결과 쿠로사카는 동시에 속으로 외쳤다. 사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괴물이었다. 적어도 이백년 동안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던 괴물이었다. 그의 상체를 적시던 상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만월이 높다.

*이 글은 장면 전환과 사건 전개가 빠른 편이라 수행의 사설 같은 부분을 제외하곤 별로 지루할만한 부분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연재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는 모양이군요.

*무더위에 몸조심 하시고 저는 이만. 아, 댓글을 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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