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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57화 (57/300)

#   57-희망을 위한 찬가 - 방법은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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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시를 순찰하기에 앞서 은결은 팔찌를 들고 아버지의 방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소리가 난 다음 “들어와라.”하는 수행의 말이 이어졌다. 은결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책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수행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은결의 모습을 보자 책을 덮었다. 책 표지가 드러났다.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일전 말씀하셨던 호신부를 오늘 완성했습니다.”

은결은 무신경하게 책에서 시선을 떼며 호신부를 수행에게 건냈다. 수행이 주문한 대로, 투입된 기의 총량은 지난번에 비해 훨씬 작았지만, 구조 자체는 완전히 같은 물건이었다.

“아아, 수고했구나.”

수행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 팔찌를 받아들고, 책상 서랍에서 작은 함을 꺼내 담았다. 그런 다음 그는 손을 모아 깍지를 끼며 은결에게 말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번에 네게 한 가지 더 부탁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니?”

“물론이죠.”

은결은 흔쾌히 수락했다. 수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다음 달에, 그러니까 6월 17일에, 나 대신 은사님께 인사드리러 가주지 않겠니?”

“은사님요?”

은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수행은 쓰게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대학 때 은사시란다. 그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 짓 한다고 바빴는데... 그런데도 응원해주신 선생님이란다. 그날이 선생님 생신이신데, 이제까지는 택배로 선물을 드렸다만, 진경 녀석과 만나 다시 글이랍시고 끄적거리게 되기도 했으니... 그래서 택배로 보내자니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구나. 원래라면 내가 직접 다시 찾아뵈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주말엔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곤란해 하고 있던 참이란다. 그러니 내 대신 네가 찾아 뵙고 직접 전해다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 수행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경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움직이는 일도 많았고, 신문에 글을 연재하며 그에 관련된 참고자료를 읽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은결이 호신부를 넘겼으니, 카미가 어떻게 이중자장을 파훼했는가에 대한 분석을 위해 한층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기를 운행시킬 수 없는 그의 입장상 옆에서 보조할 사람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사람과 수행의 시간이 잘 맞아야 하니 주말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은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그 날은 대학 축제기간 중이기도 하니, 미래랑 같이 가서 좀 놀다 오거라. 용돈이라면 넉넉히 주마. 위장에 구멍 뚫는 게 전통인 학교다보니, 술 외에 별 대단한 건 없겠지만, 하루 정도는 즐겁게 지낼 수 있을게다.”

“예.”

대학 축제라, 같이 간다면 미래가 꽤 좋아하겠구나. 은결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모교가 어떤 곳인지도 조금은 흥미가 있었다. 그때 수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 미래 말고 세연양도 괜찮겠구나.”

아버지의 장난기 어린 말을, 은결은 눈썹을 아래로 깔며 받아넘겼다.

“...으음, 말씀만 새겨듣죠.”

은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수행은 드물게 크게 웃어보였다.

“껄껄, 녀석도.”

한동안 즐겁게 웃으며 은결을 놀리던 수행은 곧 웃음을 그치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들을 보니, 주로 기호학에 관련된 것들로 보인다만, 뭔가 달리 하고 있는 일이라고 있니?”

“아, 그게-”

생각지 못했던 물음이다. 두근, 하고 은결의 가슴이 뛰었다. 그는 서둘러 변명을 조립해 수행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의 힘으로는 소멸시킬 수 없었던 사념체의 등장, 그리고 쿠로사카의 도움. 그녀의 도움으로 일전과 달리 간단히 소멸시킬 수 있었던 사념체.

그런 다음 은결은 그 체험을 반성해, 자신이 지금 힘이 많이 부족하지만 현재 어찌하기 힘든 기의 총량에 대해 신경 쓰는 대신, 그와는 별개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섬세함을 키우는데 주력하고자 하고 있으며, 기호에 대한 공부에 다시 치중하는 것은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수행의 표정은 침중했다. 은결이 사정을 설명하며 드러내 보인 감정의 단편 단편이 깊은 어둠은 품고 있었던 탓이다. 그는 달래는 어조로 은결에게 말했다.

“으음, 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네게 그렇게 초조해 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네가 말하는 그 쿠로사카라는 아가씨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다만, 그녀가 푸른 이빨의 봉인수호자였다면 그 지위는 이세 내에서도 특별한 것일 게다. 그 성취 역시 그녀의 나이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고절함을 이루었겠지. 그러니 그녀에 비해 못하다고 해서 결코 창피해하거나 초조해할 이유는 없다.”

원래 은결은 쿠로사카에 대한 이야기를 숨겼지만, 푸른 이빨의 봉인수호자라는 단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비밀은 얼마 유지되지 못했다. 이세에서 온 암살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쿠로사카의 정체가 드러났고, 은결은 수행에게 진경편으로 전달된 정보라고 그녀에 대해 주의하란 말을 들었다.

“예.”

수행은 말을 이었다.

“도리어, 나는 네게 너 자신에 대해 좀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구나. 창피해하거나 초조해하기에, 너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란다. 카미의 힘에 의해 본래 능력의 태반이 운용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너는 대게의 사념체를 무리 없이 처리했고, 그 쿠로사카라는 아가씨의 공격과 푸른 이빨의 공격을 물리쳤지. 카미에 의한 제약이 아니라면, 너는 아마 그 아가씨의 성취를 훨씬 능가하고 있을 거란다.”

“그렇겠지요.”

은결은 수행의 말을 긍정했다. 하지만 텅빈 대답이었다. 수행은 잠깐 미간을 좁혔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그녀와 네가 연합하다니, 꽤 놀랍구나. 네 목숨을 노렸던 소녀인데.”

수행의 말투가 불편했다. 임무로 인한 것이었고, 오해가 끼어든 것이라곤 해도, 그로인해 은결의 목숨이 위험할 뻔 했다. 그가 쿠로사카라는 소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은결은 그 감정을 읽고 메마른 어조로 말했다.

“그쪽도 임무에 충실했을 뿐,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도 세상의 마를 물리침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삐뚤어진 심성의 소유자일리야 없겠지요. 더구나, 그런 빚이 있던 때문인지 이곳에 있는 동안은 그녀의 도움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제 능력이 부족함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고마운 일입니다.”

은결은 쿠로사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백하게 잘라 말했다. 수행은 은결이 쿠로사카라는 소녀에 대해 드러내 보이는 감정의 담백함에서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은 은결의 성격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비롯된 귀결이기 보다, 자신을, 어쩌면 세상을 메마르게 보는데서 비롯된 결론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일상과 자신 사이를 엄격하게 분리해 바라보는, 그 태도. 그러나 수행은 약한 슬픔을 느끼면서도 결국 은결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됐다. 이제 그만 나가 보거라.”

은결은 수행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는 작게 방문을 닫고, 방문에 자신의 등을 기대고 방금 아버지와 했던 대화의 구절구절을 되새겼다. ‘도리어, 나는 네게 너 자신에 대해 좀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구나.’ 라는 말이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입맛이 썼다.

‘그러나 아버지, 저의 목표와 기준은 아버지입니다...’

대답이 되돌아올 리 없는 중얼거림이다. 그것은 차라리 맹세에 가까운 말이다. 은결은 주저 없는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갔고, 역장을 펼쳤고, 그것을 밟고 도천시의 하늘로 올라갔다. 만월이 머지않은 밤이 그를 맞이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은결은 환하고 완전한 달밤에는 조용히 앉아, 닿을 수 없는 달(luna)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다움이 비록 루나틱(lunatic)한 것이라도, 루나틱은 루나틱이란 범주로서, 세상을 나눌 뿐, 틀린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것이 국가도, 민족도, 계급도, 성별도, 지역도 벗어나지 못하는 저열한 인식으로 충만한 세상임에도, 종국적으로 타자(他者)를 벗어나지 못한 세상임에도, 진보를 말할 수 없는 세상의 기쁨, 혹은 ‘슬픔’이다.

*써야 될 건 많고, 내용도 대충 정리가 되었지만, 키보드 앞에만 가면 축 늘어지네요~ 뭐, 그래도 오늘도 한 화 올렸습니다. 스스로가 무척 대견하네요.

*중복입니다. 다들 삼계탕이라도 드셨길 기원합니다. 보신탕은 제가 개를 키우는지라 차마 권하기 어렵네요. 이는 전혀 문화적 상대주의에 입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만.(...)

*키리야미의 해방에 특별한 페널티는 없습니다. 일전 약간 다뤘는데, 그냥 오래쓰면 강대한 힘을 사용자의 몸이 감당하기 버거울 뿐입니다. 110v 기기에 220v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과 같달까. 기본적으로 미토콘드리아에 반응해서 혈족 전승되는 검이라, 사용자 자체의 절대수가 지극히 적습니다. 때문에 페널티는 별로 없죠. 쿠로사카네가 데릴사위를 들이는 이유도 미토콘드리아 전승 문제 때문이죠. 남자는 자식을 낳더라도 미토콘드리아는 어머니쪽만 전승되니 남자 쪽의 자식은 키리야미를 전승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전승자였을 경우, 아들은 물론 키리야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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