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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55화 (55/300)

#   55-희망을 위한 찬가 - 암영(暗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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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여느 때와 같이 형체는 무너졌고, 빛만이 명멸했다. 그 희미한 빛이 드물게 콘크리트의 실루엣을 드러냈다. 은결은, 그것이 누구나 은밀하게 감추려 들지만, 결국 드러나는, 사람의 욕망이 가지는 끈질긴 견고함과도 닮아 있는 듯,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결국 사념은 충만하고, 자신은 그 충만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는 역장을 해제하고 발 아래 건물의 옥상으로 내려섰다. 도천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은결은 시선을 돌렸다. 시선의 끝에 쿠로사카가 있었다. 그녀는 도시의 불빛 너머, 먼 어둠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은결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뭐지?”

“푸른 이빨의 봉인이 왜 풀렸지? 봉신의 관리는 매우 엄중한 것으로 아는데.”

은결은 별로 기대를 품지 않고 물었다. 카미에 관련한 이세측의 고압적인 태도를 볼 때, 최소한 외부로 세어 좋을 것은 없는 종류의 정보라는 점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니 쿠로사카에게 쉽사리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

“...카미의 껍데기를 몸속에 품고 있는 네게 사실을 숨긴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지. 누군가가 이와사카를 깨뜨렸어.”

그러나 잠시간 침묵한 다음 쿠로사카는 선선히 답했다. 은결은 기대와 달리 그녀가 쉽사리 대답을 내어주는데 적이 놀라며, 쿠로사카가 말한 문장 가운데 한 부분을 발췌했다.

“누군가가?”

“그래. 현장에 술식이 남아있었지만 어느 곳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었어.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독립 조적이거나 그런 전통에 속한 이들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어.”

“그런...”

은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국이야 조직이 제대로 성립이 되지 않아 그렇다고 치지만, 일본은 이세를 중심으로 술자들이 모인지 백년이 넘어간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술식 관련 연구의 양과 깊이는 현재 동북아시아 제일이다. 중국도 앞으로 반세기 내에는 일본을 추월하기 힘들다. 그런데 술식이 뻔히 남아 있는데 ‘알 수 없다’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그들은 초일류야. 술식 기호를 모두 암호로 처리했어. 해독이 안 돼.”

은결의 표정을 읽고 쿠로사카가 잘라 말했다.

“미즈하라(水原)상도?”

은결이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쿠로사카가 그 이름을 듣고 이채를 띄었다.

“네가 그 이름을 알다니 의외군.”

“전에 아버지에게 이름을 들은 적이 있어. 기호해독에 관련해서는 세계제일을 자부해도 좋은 사람이라던데.”

쿠로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뒷말을 이었다.

“대신 사람이 괴팍하지. 산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 아무리 뛰어나봐야 소용이 없어.”

“그런가...”

“그리고 그 이상은 나도 몰라. 그리고 이 이야기는 외부로 발설하지 마. 푸른 이빨에 관련해 장래 네게 도움을 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자 이야기 한 거야, 기본적으로는 밖으로 떠돌만한 이야기가 아냐.”

“응.”

은결은 담백하게 답했다. 그리고 한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단절됐다. 그들은 바람을 전신으로 맞이하며, 도천시의 곳곳을 검색했다. 만월에 가까운 달이 멀리까지 움직였고,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떴다. 강렬한 살의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쿠로사카가 얼른 몸을 날리려 했다.

“잠깐.”

은결이 발돋움 하려는 그녀를 제지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신이 더 빠르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의 이동속도가 다를 경우, 가능한 빠른 쪽이 맞추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의 손을 한동안 기이하게 바라보다가 쿠로사카는 은결의 손을 잡았다. 은결은 쿠로사카의 허리를 잡고 발을 박찼다. 두 사람은 바람을 가르며 도시의 희미한 어둠을 향해 날았다.

‘역시, 알 수 없어.’

허리의 손길을 느끼며, 쿠로사카는 은결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하늘을 나는 기분은 유쾌했다. 그녀의 체공시간으로서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었다.

두 사람이 대지로 내려선 것은 음습한 주거지의 뒷골목이었다. 좁은 길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고, 듬성듬성 이어지는 가로등은 어딘가 외롭고 슬펐다. 그 곳에서 검은 구름 같은 것이 꿈틀대고 있었고, 그 아래 쓰러진 사람이 보였다. 은결은 그 사념체가 어제 상대하다 놓친 그 녀석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념체 아래에 쓰러진 것은 젊은 여자였다.

먼저 은결이 사념체를 향해 돌격해 여자와 사념체를 떨어뜨렸다. 그 직후, 쿠로사카가 서둘러 그 여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체크했다. 기와 사고를 빼앗겨 기절해 있긴 해도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그녀는 쓰러진 여자의 기억을 간단히 조작하고는 은결 옆에 섰다. 은결은 사념체와의 대치상태를 풀지 않고 쿠로사카에게 말했다.

“우선 가능한 넓은 공간으로 유도하자. 여기서 한 2km정도 가면 산이 있으니, 그곳에서 싸우는 게 좋겠어.”

일반적인 사념체라면 이 자리에서 상대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이 사념체는 매우 강력했기 때문에 주변을 좀 더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쿠로사카는 고개를 끄덕여 은결의 말에 동의했고, 동시에 발을 박차며 발검했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몸 주변에 간단하게 결계를 쳐 넣은 모양이지만, 풍압만으로 사물을 베어내기 부족함이 없는 검격이었다. 사념체는 몸을 떨어 꾸엉- 하고 길게 울며 뒤로 움직여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은결이 그녀의 뒤를 따르며 사념체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는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의 협력에 사념체를 사람이 없는 넓은 공간으로 몰아넣는 것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어두운 숲 가운데 스멀스멀 거리며 유영하는 사념체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은결이 약식의 마법진으로 이곳 일대에 결계를 펼쳤다.

“내가 상대하지. 너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보조해.”

쿠로사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은결은 별 불만 없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지금 은결의 전투력으로는 저 사념체를 소멸시키기 어려운 이상 그녀의 보조에 전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았다. 쿠로사카가 대지를 박찼다. 그녀가 발을 박찬 대지는 폭탄이라도 맞은 듯이 거세게 흙을 주변으로 뿌렸다. 이어, 아니 동시에- 달빛을 받은 쿠로사카의 검이 순간적으로 번쩍였다. 아름드리나무 여러 그루가 동시에 쓰러졌고, 사념체의 동체가 둘로 쪼개졌다.

-꾸르릉!

사념체가 몸을 떨며 이해하기 힘든 감정을 드러냈다. 그것은 서둘러 몸을 하나로 붙이며 몸을 말아 쿠로사카를 향해 돌격했다. 그녀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사념체의 공격을 피하며 그 옆을 키리야미로 베었다.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사념체의 몸이 깊게 움푹 패였다. 은결은 그 때를 맞춰 역장의 발판을 강하게 내딛으며 사념체의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사념체의 몸이 돌에 맞은 수면처럼 출렁였다. 정명한 기가 사념체의 중심을 파고들며 육체 구성을 분쇄했다.

위험을 느낀 사념체가 경질화를 풀며 안개처럼 변해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쿠로사카가 사념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은결은 옆으로 빠지며 사념체의 뒤로 향해 퇴로를 재빨리 막았다. 퇴로가 막힌 것을 알고 우왕좌왕하던 사념체는 허공으로 떴다. 그때 은결이 사념체와 같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양손을 모아 사념체를 아래로 내려쳤다. 강맹한 기의 역장이 펼쳐지며 사념체 전체를 감싸며 공격했다.

“섬(閃)!”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쿠로사카가 위를 향해 발검해 사념체를 베었다. 예리한 기의 검격이다. 그것은 쩍, 소리가 날 것처럼 선명하게 두 조각이 났다. 이어 은결이 역장을 치고 그 반발력을 타고 사념체 위로 내려섰다. 꾸앙! 중저음의 충격음이 터지며 사념체의 육체를 압박했다. 그린 듯한 연계였다. 하지만 사념체는 후들거리면서 두 사람이 방금 공격하며 생긴 짧은 틈을 타고 그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끈질기군.”

쿠로사카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념체는 그녀의 검에 두 번이나 완벽하게 베였다. 검이 품고 있는 기는 물론, 해방하지는 않았지만 가볍게 머금고 있는 키리야미 그 자체의 신격까지, 이쯤되면 존재본질에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저 사념체는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지루했다.

“네가 고전할만하군. 쓸데없이 맷집만 좋아.”

“그렇진 않아. 꽤 공격력도 있어.”

쿠로사카가 차갑게 웃었다.

“그건 네 기준에서 그럴 뿐이야.”

그리고 그녀는 다시 발을 박찼다. 은결의 시야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느새 그녀는 사념체의 정면에 도달해 발검하고 있었다. 사념체가 서둘러 몸의 경질화 하며 그녀를 공격했다. 무의미했다. 이미 초신속의 검격이 다시 한 번 사념체의 존재본질을 노리고 날았다. 은결도 퇴로를 막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빛이 일었고, 스러졌다.

사념체의 동체가 다시 한 번 두 조각이 났다. 비명, 혹은 그에 준하는 것도 없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념체의 동체가 허망한 연기처럼 스러졌다. 사념체를 처리한 쿠로사카는 천천히 검을 검집에 수납했다. 뒤따라 대지로 내려온 은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제 자신이 그토록 고생해서 소멸시키지 못한 사념체를, 쿠로사카가 사실상 혼자서 이토록 간단히 처리하는 것을 본 이상 유쾌할리는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무력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한다. 하지만 은결은 애써 밝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그에 가볍게 냉소하며 답하려던 쿠로사카는 은결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웃고 있었지만 은결은 어딘가 쓰려 보였다. 그녀는 그 표정 앞에서 기쁘게 냉소할 수 있을 만큼 냉랭한 사람이 못 되었다. 그녀는 머쓱하게 그 말을 받았다.

“흥, 새삼스럽긴.”

“그래도 고마워.”

“나는 이만 돌아가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또 말해.”

“응.”

은결의 대답을 듣고 쿠로사카는 발을 박찼다. 그녀의 유려한 동체가 하늘 높이 놀라갔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은결은 조용하지 않은 상념을 품고, 전투의 흔적을 조용히 정리하시 시작했다.

“응?”

한창 쓰러진 나무를 태워 없애던 은결이 도심지 가운데로 시선을 돌렸다. 명멸하는 무수한 불빛이 욕망과 존재를 증거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은결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마법의검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노력해서 기대에 부족함이 없도록 열심히 적겠습니다.

*죽기 전에 해 봤으면 하는 게임 중에 폴아웃3가 있습니다. 베데스다에서 판권을 산 걸로 아는데, 이 사람들이 만드는지 안 만드는지... 그리고 베데스다가 명가이긴 한데, 블랙아일과는 개성이 달라서 폴아웃의 재미를 잘 살릴지도 의문입니다. 시스템만 제대로 계승해도 걸작이니 괜히 뜯어고치는 만행은 없었으면 합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히어로즈5와 하프 라이프2, 오블리비언 정도를 아주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뭐 기대하고 있는 거야 이 외에도 무진장 있습니다만. 콘솔이라도 사서 발키리 프로파일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시간과 돈이 없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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