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희망을 위한 찬가 - 암영(暗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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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팔에 난 상처는 뭐야?”
은결의 팔에 길게 나 있는 상처자국을 보고, 자전거 뒤에서 미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제 사념체와 싸우다 입은 부상의 흔적이었다. 근육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피부가 넓게 째졌던 상처였다. 기를 운용함으로서 육체적인 회복능력이 극적으로 상승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하루 만에 완치되기에는 무리였다. 은결은 뻘쭘하게 답했다.
“아, 자전거 타다가 좀 긁혔어.”
“조심해야지. 상처 크기 보니까 큰 부상이 될 뻔 한 것 같은데. 소독은 확실히 했어? 잘못하면 파상풍으로 번지잖아.”
“응. 소독 했어. 걱정 마.”
사실은 그런 거 안 한다. 이가 재생 안 되는 거 보니 아닌 것 같지만, 예전에는 사지의 일부를 잃어도 재생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만큼 수행이 개량한 기의 운용법은 강력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은결은 소독 같은 시시한 건 신경 안 쓰고 살아 온지 오래였다.
“다행이다.”
미래는 안도한 듯 가벼운 숨결을 섞으며 말했다. 그녀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은결은 누구에게 사념체에 관해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 고민했다. 할아버지? 진경? 할아버지는 가게가 있었고 진경은 사람에 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은 도원 선사에게 연락을 해 볼까, 마음의 가닥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예.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미안하구나. 이쪽 일이 다 정리되면 도와주러 가마.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수고하세요.”
은결은 “후우-”하는 한숨소리를 내며 휴대폰을 끊었다. 도원 스님에게 연락을 했지만 근시일내에는 무리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역시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수밖에 없는 듯 했다. 가게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경은 진짜 마음에 안 들었다.
“한심하군.”
은결은 방금 먹은 점심이 잘 소화되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기분을 안고, 끌끌 혀를 차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고리를 잡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이상하게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결계였다.
‘쿠로사칸가... 그런데 이건 왠?’
은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감지하기로 이 결계는 운동의 충격파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동네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음속을 넘기는 동작을 대게 어렵지 않게 하기 때문에 최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충격파는 실제적인 물리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니, 물리력은 제치고, 소음만으로도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사념체와 싸우다 보면 충격파를 자연히 발생시키게 되는데, 일반적인 환경에서라면 150 데시벨은 우습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대기 운동을 조정해 소음이나 충격파, 파편의 물리력을 죽인다. 은결처럼 운동량이 많은 전법을 사용하는 사람에겐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은결의 경우는 주로 최면 결계와 섞어서 사용하곤 했다. 때문에 낮선 결계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진하게 펼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안에서라면 로켓을 발사해도 큰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뭘 하길래...’
은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텅빈 공간에서, 쿠로사카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왼손에 연습장을 찢은 듯한 종이를 여러 장 쥐고 있었다. 은결이 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쿠로사카는 동작에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은결은 조용히 문 옆에 서서 그녀의 하는 모양새를 지켜봤다. 곧, 그녀는 쥐고 있던 종이를 허공에 흩뿌렸다. 종이는 대기를 타고 느릿하게 대지로 내려왔다. 그녀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섬연한 빛이, 한 순간 환상처럼 일었고, 스러졌다.
“후-”
쿠로사카는 긴 한숨을 토하며 검을 수납했다. 은결은 감탄에 입을 살짝 벌렸다. 일부러 기를 끌어올려 그녀의 동작을 살폈기 때문에, 지금 그녀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종이는 아무런 변화 없이, 느릿하게 대지로 내려서고 있었다. 낮은 바람이 불었다. 허공을 내려오던 종이 뒤로, 또 종이가 한 장 드러났다. 그 뒤로, 다시 종이가 드러났다. 그녀의 주변에서 바람을 타던 종이는 모두 그렇게 겹쳐있던 것이 분리되는 것 처럼 얇은 종이가 갈라져 나왔다. 거의 투명하게 느껴질 만큼 얇은 종이였다.
쿠로사카는 처음의 그 얇은 종이를 또 3등분 한 것이다. 한 동작으로 그걸 다 처리했으니, 결계를 이렇게 진하게 칠만 했다.
‘으음... 저 애한테 내가 무슨 수로 이겼을까?’
은결은 스스로의 전적에 감탄했다. 단순히 검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저런 것을 사용할 수는 없다. 마찰로 인해 종이가 타지 않도록, 관성으로 인해 종이가 베이지 않도록, 칼로 종이를 베는 동시에 극히 미묘한 기의 배분으로 종이의 보호도 이루어야 한다. 초고도의 기술이다.
은결도 초음속의 세계에 산다면 사는 사람이고, 기술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가지곤 있지만 저런 무식한 기술은 사용할 자신이 없다. 쿠로사카의 기술적 섬세함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혼또, 스고이야.”
(정말, 굉장한걸)
은결은 경의의 뜻을 담아 일어로 감상을 전했다. 쿠로사카는 그제서야 은결을 알아채고 잠시 그를 바라보다 냉랭하게 말했다.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냐. 한 장을 열장으로 만들 수 있을 수준이 아니라면 키리야미의 전승자로서 충분치 못해.”
“한 장을 열장으로... 그럼 가히 검신이군.”
은결의 말은 계속 일어였다.
“그보다, 어제 사념체와 싸워 놓쳤지?”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은결을 직시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는 질책 받는듯한 기분에 휘감기는 것을 느끼며 머쓱하게 웅얼거렸다.
“에, 에에...”
쿠로사카는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훌륭한 조소였다. 민성이 비웃으면 고릴라가 날뛰는 이유를, 이제는 은결도 조금 이해할 수 잇을 것 같았다. 그녀는 간략하게 말을 이었다.
“도와주지.”
“엣?!”
은결이 얼빠진 표정으로 말을 흘렸다.
“왜? 내 도움은 필요 없어?”
필요 없기는. 그녀 조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만큼’ 간절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워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쿠로사카를 조력인의 범주에 집어넣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녀가 자신을 도와주리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사적인 싸움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목숨이 간당간당하던 싸움이었다. 그것이 앙금 없이 정리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네 한심한 실력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게, 지금 지내고 있는 집에까지 전해져 오더군. 이 세계 사람으로서 나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네 무능으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달갑지 않아.”
쿠로사카가 냉랭하게 말했다.
“고, 고마워.”
하지만 은결은 순수하게 기뻐하며 사의의 뜻을 전했다. 쿠로사카는 일부러 잔뜩 비꼬아서 말했는데, 은결이 그저 기뻐하며 자신의 도움을 받아들이니 도리어 대처가 곤란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뒤로 조금 물러서며 애써 냉랭한 어투를 유지한 채 말했다.
“그, 그렇게 생각한다면 푸른 이빨 건을 어서 처리하도록 해.”
“물론이지!”
그리고 은결은 봉인 진을 펼쳐 평소 그러했던 것처럼 역산작업에 열중했다. 반년 안에 해결하겠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그 광대한 진의 상당 부분에 대한 역산이 종료된 상태였다. 그런 은결의 모습을 바라보며, 쿠로사카는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탐화랑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저는 소설 외적으로는 독자를 좀 많이 확보하는 게 꿈이라, 이렇게 추천을 받으면 많이 기쁘죠. 사실 현재 장르소설의 트렌드에 맞출 자신이 좀 없어서, 출판은 큰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이 글 끝나고 도전해 볼까... 그런 의미에서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는 넷 상에 완전 공개 하고 있지만 그리 많이 읽히지 않아 유감이 좀 큽니다. 시간 나면 그쪽도 읽어 보세요~
*오블리비언과 하프 라이프2가 하고 싶네요. 하지만 며칠 안 남았습니다.(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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