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49화 (49/300)

#   49-희망을 위한 찬가 - 현자의 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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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힘을 담은 수행의 손가락이 은결의 피부 위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짚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힘을 빌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수행의 손가락이 지나간 은결의 피부 위로는 푸른빛의 응어리가 청명한 물방울처럼 머물러 있었다. 고요한 눈동자로 천정을 몰려다보며 수행의 손길을 느끼던 은결이 그에게 물었다.

“...아버지, 정말로 현자의 돌은 쓰지 않을 생각이세요?”

문득, 수행의 손길이 멈췄다. 짤막한 정지 다음, 그는 다시 손을 움직이며 느릿하게 답했다.

“지난번 진경이 있는 앞에서 얘기했듯, 나는 현자의 돌을 만든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쓰니 마니 말할 수 있겠니.”

“물론 아버지는 완전한 현자의 돌을 만든 적은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완전한 보편성을 지닌 현자의 돌일 뿐, 현자의 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식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특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잖아요.”

수행에야 미칠 수 없지만 은결 역시 상징기호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이해 수준은 매우 높다. 그러나 수행은 은결의 의견을 단박에 끊었다.

“현자의 돌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구나.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만, 네가 소유한 현자의 돌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만으로도 푸른 이빨은 서울 전체를 날리고도 충분할만한 힘을 폭주시켰다.”

아니다. 은결은 기억하고 있다. 그 완전한 원리 앞에서의 희열. 그 원리가 일구어내는, 모든 사태를 일원으로 돌림으로서 발생하는, 인식을 넘어서는 거대한 힘. 하나의 범주로서 세상을 파악함으로서, 결국 범주를, 인식을 부정하고 초월하게 되는 그 아득한 힘- 힘, 힘. 다시 힘. 그 힘.

수행의 말이 이어졌다.

“그것이 안전을 위한 마력 식을 함께 조합해 구성된 술식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겠지. 하지만 그 식 역시 힘의 폭주가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것일 뿐, 술자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네가 살아난 것은 푸른 이빨이 위협을 느끼고 재빨리 네게서 떠나간 덕분에 극소량의 물질 만이 해체에 성공했기 때문일 뿐이지. 가능성에 기대 시도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아버지의 말이 옳다- 고 은결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도를 아버지가 한다면 그 말은 옳지 않다- 고 생각했다.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다. 이미 그는 그 위험의 가능성에 대비해 기본 술식에 안전을 위한 술식을 같이 짜 넣었을 만큼의 응용력을 보여줬다. 그것이 20년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어떠할까?

“그래도 모든 물질과 에너지를 일원적인 것으로 해체할 수 있는 현자의 돌이라면 제 몸에 머물러 있는 카미의 힘 따위는 염천(炎天) 아래의 얼음조각에 불과합니다. 이 힘이 단순히 저를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카미의 함정임이 밝혀진 이상-”

“-사람이 손에 쥐기에는 넘치는 힘이다. 더 말하지 말거라.”

“......”

수행의 말은 단호했다. 은결은 더 이상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다. 수행은 현자의 돌에 대한 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 굉장한 거부감을 보인다. 은결은 수행이 왜 그러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곧 수행의 손길이 멈췄다. 은결의 벌거벗은 상체 위로는 응어리진 빛방울이 곳곳에 모여 있다가 서서히 스러져 갔다. 그 모습을 끝까지 살펴본 다음 수행은 은결에게 말했다.

“됐다. 옷을 입거라.”

“어떻습니까?”

윗도리를 입으며 은결이 물었다.

“카미의 힘이 기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을 제하면 걱정할 점은 없구나. 혹여 현자의 돌의 술식을 전개한 덕분에 네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나 보다. 다행이구나. 그리고, 카미의 힘 말인데, 조급해 하지 말거라. 늦어도 20년이면 모두 융화시킬 수 있을거다. 그것을 이루어내고 나면 전 세계를 통틀어도 아마 너를 상대할만한 술사는 얼마 찾을 수 없겠지.”

“예.”

은결은 수행의 말을 씁쓸하게 받아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심, 은결은 도무지 수행이 가볍게 말하는 20년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세연에 대한 일을 수행에게 의논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현자의 돌이 꼭 필요했다.

은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수행이 현자의 돌에 대한 기본적인 술식을 완성한 것은 20년 전이다. 수행의 나이가 서른이 되기 전의 일이다. 그 젊은 나이에, 수행은 그런 업적을 이루어냈다. 상징기호에 기반한 마학의 역사를 통틀어 그런 성취를 이룩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그는 칼리드, 제베르, 보나벤투라와 같은 연금술의 거인들과 어깨를 마주할만 하다.

그런 수행이, 은결의 아버지가, 거인이, 결국 세상의 악의에 패배했다. 은결의 지금 나이는 18세다.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을 이루어낸 ‘천재’ 수행의 나이가 되기까지 10년 정도가 남아있다. 은결은 패배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젊다는 것은, 미숙에 대한 아무런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은결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젊음에, 수행이 이루어 낸 것을 은결은 알고 있었다.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패배를 말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벽은 너무나 높았고, 가소로운 자신은 세상의 악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너무나, 시간이 없었다. 그때 은결의 상념을 끊고 수행이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 주말에 세연양에게 만들어주었던 것과 완전히 같은 호신부를 만들어 내게 좀 전해주렴.”

“완전히 같이... 는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데요. 당시에 비해 현재 제가 운용할 수 있는 기의 양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보니.”

“으음, 그렇구나. 그럼 기본구조를 되도록 완전히 같도록 해서 다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카미가 어떻게 이중자장을 돌파하고 세연양의 체질을 간파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해보려고 그런단다. 그래서 진경에게서도 이전부터 세연양이 차고 있던 것과 완전히 같은 호신부의 샘플을 하나 받기로 했지.”

“그렇군요.”

그 점 역시 줄곧 의문스럽게 생각하던 점이다. 하지만 한동안은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카미가 다시 움직인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방비를 되도록 철저히 해둘 겸 다시 조사에 나서게 된 모양이다. 하기야, 이는 카미의 일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요즘 미래가 기분이 안 좋던데. 싸우기라도 했니?”

이런저런 대소사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이 지어지고 나니 화제는 자연스럽게 집안일로 넘어갔다. 수행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요새 안 놀아줬다고 삐졌어요.”

은결은 머쓱하니 답했다. 미래가 들었으면 펄쩍 뛰었을 표현이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매우 정당하고 복잡한 것이라 심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으음-”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이번 주말에 영화 보여주기로 했어요. 영화표만 덜렁 사주는 건 성의가 없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취향한번 특이하죠.”

“껄껄. 미래답구나.”

“미래답달까... 덕분에 저는 그 녀석 비위 맞춘다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걸요. 그냥 친구들하고 보러가면 좋을 것을.”

은결이 작게 한숨을 폭- 내쉬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은결의 그 하소연은 수행에겐 되려 꽤 즐겁게 들린 모양이다. 그는 드물게 소리내어 웃으며 농담조의 말을 했다.

“하하. 그 녀석 남자친구라도 하나 생기기 전에는 네가 꽤 시달려야 하겠지. 그나저나 너랑 붙어다니다 괜히 눈만 높아지면 어쩌지? 노처녀로 살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구나.”

‘천재’ 수행도 역시 부모였다. 자식에 대한 전형적인 푼수발언이다. 은결은 몸서리를 치며 그 말을 부정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세요. 대체 몇 년을 더 그 녀석 하인 노릇을 하라고...!”

“우리집안의 평화가 네 양어깨에 달려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수고하거라. 아, 그리고 주말에는 나도 집을 비우게 되니, 느긋하게 지내다 오렴. 호신부는 조금 늦어도 상관없단다. 용돈도 얼마쯤 주마.”

“주신다면야 기꺼이... 그런데 아버지가 외출이라니 드문 일이네요.”

은결의 눈이 순간적으로 예리해졌다. 부드러운 집안 분위기 가운데, 수행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다소 귀찮음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아, 진경의 초대로 잠깐. 할아버지도 함께 가신다. 하루면 올게다. 하기야 내가 있든 없든 집안의 대소사는 주로 네가 처리하는데 무슨 상관일까마는.”

은결은 푸근하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설마요. 저야 아버지가 있어주시는 쪽이 훨씬 든든하죠.”

“말이라도 고맙구나. 하지만 그런다고 내 주머니에서 나올 돈이 늘어나진 않는단다.”

“에- 그거 유감인걸요.”

“녀석도.”

수행은 은결의 어깨를 툭- 쳤다. 가정적인 분위기 가운데 웃음이 흘렀다. 은결은 이것이 꽤 오랜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 분위기의 포근함에 감싸이지 않았다.

대신에, 은결의 내심은 강철처럼 차갑게 굳은 채 한 가지 결의를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이번 주 주말이 적기였다. 은결은, 그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시간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초조해 하지 마세요.’

그때였다. 병원에서 들었던, 세연의 말이 그때 자연히 은결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초조해 하지 말라고? 꽤 쓸만한 농담의 소재였다. 연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갈수록 아버지의 벽은 견고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자신은 왜소했다.

-현자의 돌이, 그 기술이 필요했다.

*지현님이 추천해 주셨습니다. 요즘 많이 꿀적 했는데, 덕분에 상당히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요즘 비 그치고 날도 많이 더워지기 시작했고... 내외적으로 글을 쓰기 아무래도 힘든 시기가 됐습니다. 쩝.

*이번 글에도 텍스트를 가지고 몇 가지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꽤 장기적인 시각으로 설치해둔 것들이라 드러나기까진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러분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네요. 신경쓰는 분이 없으면 그저 OTL할 뿐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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