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희망을 위한 찬가 - 현자의 돌(2)
#
그날 마지막 교시를 끝마친 은결은 교무실을 찾아가 쿠로사카의 주소를 알아냈다. 담임선생님이 용건을 묻지 않고 선선히 은결에게 그녀의 주소지를 알려줬다. 가벼운 최면을 전개한 덕분이다. 조금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은결은 비상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리고 은결은 미래를 찾아갔다. 미래는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은결이 도착한 것을 보고 팔짝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왔다.
“오빠!”
밝은 얼굴이었다. 저 얼굴을 내쳐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은결은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죄책감도 죄책감이지만 틀림없이 또 히스테리를 부릴 게다. 그런 은결의 마음도 모르고 그녀는 얼른 은결 옆에 서며 방금 전까지 함께 수다를 떨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려 했다. 은결이 얼른 그녀의 손목을 잡아 그것을 막았다. 미래가 아리송한 얼굴로 은결을 바라봤다.
“아, 그게 오늘 오빠는 따로 찾아가봐야 하는 곳이 있거든. 그러니 미안하지만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집에 가도록 해.”
“또야!”
미래는 버럭 화를 냈다. 요 며칠간 무슨 용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결은 항상 자신을 떼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도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저녁은 꼬박꼬박 차려준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미안. 하지만 이 오빠에게도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으니 ”
“흥! 여자 친구 있는 것도 아니면서 사생활은 무슨!”
은결은 침몰했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쪽으로 공격당하면 맨날 좌초당한다. 그는 겨우 좌초상태에서 일어서며 삐꺾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여간 오늘은 무리야. 그러니 집에서 보자.”
미래는 되게 화난 표정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은결의 발목을 한번 걷어차고 친구들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가 은결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은결은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곤 피식 웃어보이곤 발걸음을 서둘러 학교를 빠져 나갔다. 남매의 모습을 지켜보던 미래의 친구가 그녀에게 물었다.
“얘, 그 사람이 네 오빠?”
“응. 우리 오빠.”
“헤에- 샌님이라더니, 그렇게 안 보이는데?”
미래의 친구는감탄한 목소리를 내며 은결에 대한 감상을 토로했다. 미래는 화가 덜 풀린 듯 ‘흥’하고 콧소리를 내며 은결의 험담을 했다.
“샌님 맞아. 맨날 책만 디립다 파는걸.”
“그런 것 치곤 꽤 괜찮아 보인다. 조금 꾸미면 굉장히 멋있을거 같은데.”
“그, 그렇게 생각해? 하긴 누구 오빤데.”
미래가 조금 얼굴을 붉히며 말을 받았다. 표정이 풀어진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방금 전과는 태도가 완전히 딴판이다. 미래 왼쪽에 있던 여학생이 은결이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주며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미래 놔두고 가봐야 하는 봉일이 있다는 것도, 혹시 그거 아냐? 그 교환 학생이라던 일본 여학생하고 사귀고 있다던가-”
“얘는 무슨 농담도.”
미래가 정색을 하고 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미래의 친구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두 사람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는걸. 우리 학교에 일본어 잘 아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한국에 와서 나눈 대화시간의 거의 대부분이 너희 오빠하고 일건데, 사귄다 해도 별로 이상하진 않을거야.”
“그건-”
그럴 수도 있다- 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요 근래 자신과 집에 잘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 그 후쿠오카에서 교환학생이 오고 난 뒤와 시기적으로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는 자신의 예감을 단절시키듯 단정적인 어조로 그 의견을 부정했다.
“-그렇지만 나도 그 사람 봤는데, 굉장히 미인이었는걸. 우리 오빠랑은 안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그냥 사람이 착해서 그런걸꺼야. 우리 오빠도 성격은 좋은 편이니까 서로 죽이 잘 맞는 정도겠지.”
“응- 그런걸까? 하긴 나도 그 일본에서 온 학생이 굉장히 미인이란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네 오빠하곤 좀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미래가 욱하는 표정을 했다.
“...그렇지만 우리 오빠가 그 여학생에 비해 부족하단 말은 아냐. 착하지, 요리도 잘 하지, 그리고 또- 또-”
그리고 미래는 계속해서 은결의 장점을 열거하며 그의 뛰어남을 친구들에게 설파했다. 미래의 말을 들으며 그녀들은 ‘어쩌라고?’ 라는 감상을 내도록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을 화제로 여학생들이 담소의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은결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은결은 차에 올랐다. 하교시간 답지 않게 버스 안은 여유로웠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하나 잡아 앉은 은결은 가방을 뒤져 안에서 A4용지를 몇 장 꺼냈다. 이번에 한길의 사보에 실린 수행의 사설이다. 점심시간에 컴퓨터실에서 프린터 해 뒀다. 사실 은결은 수행의 가장 열렬한 독자이기도 했다. 그는 버스의 진동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용지의 글을 눈에 담았다.
-나는 1987년의 6.29 선언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립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민주사회의 질적 건강함은 그 구성원들의 원망이 얼마나 건강하고 다양하게 충족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판단될 수 있을 것이나, 이 점에서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계급적 양극화 현상이다. 98년 당시 한국의 지니계수는 0.281이었으나, 2000년에 0.317로, 2005년에는 0.326을 넘어서며 부의 분배가 갈수록 불균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도 갈수록 심화되어, 96년 기준으로 4.74배이던 것이 2000년에 6.75배가 된다. 재분배의 실패와 함께 93년 자신을 하층이라 판단하던 사람의 숫자가 전체의 37.1%에 불과했던 데 반해, 2000년에 들어 44%가 자신을 경제적으로 하층이라 여기게 된다.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동시에 계급고착화를 불러왔다. 과거 한국에서 일류대는 매우 유효한 계급상승의 수단이었으나 대학의 덩치가 커지고, 대학인구가 과잉됨으로서 일류대는 더 이상 계급상승을 보장하지 못한다. 때문에 일류대를 대신해 고시라는 수단이 계급상승을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얼마가지 못하고, 현재는 유학을 통한 학위 취득이 교육을 통한 가장 유효한 계급 상승, 유지의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유학을 위해 필요한 교육비를 댈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음으로 과거와 같은 교육을 통한 계급 상승은 힘들어졌고, 결과적으로 계급은 고착되게 된다.
이러한 총체적인 경제적 좌절과 함께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원망을 이루어주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상태에 들어갔다.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것은 그 불신의 반영이다. 탄핵정국에서 당시 일시적인 반등이 있었지만, 일회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의 광범위한 확산은 민주사회의 건강함을 생각할 때 극히 위험한 현상이다.
허쉬만이 지적한 대로 소비거부는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기업을 강력하게 자극할 수 있지만 투표거부는 정치에 대해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투표자 등록제도에 대한 간단한 제도적 개선만으로도 투표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에도, 양 정당 모두 그에 무관심한 현실이 그를 증명한다.
그럼으로,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좌절과 그에 이어진 정치적 무관심의 광범위한 확산은 정말로 사회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이들을 정치에 소원하게 만듦으로서 그들의 소외상태를 한결 가속화하고,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2001년 고려대의 아세안문제연구소의 조사는 이에 대한 유의미한 증명자료다. 이 조사는 주관적 계급분류와 투표참여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당시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라 생각하던 이들의 투표율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8%이상 높았다. 이 주관성을 객관성으로 바꾸어도 결과는 같았다. 월소득을 기준으로 250만원 이상인 투표자가 200만원 이하의 투표자 보다 10% 이상 많았다. 조사결과를 볼 때 이미 투표 참여자체가 하나의 계급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6.29 선언 당시 우리는 기뻐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을 기대하기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던 영국 언론의 폭언을 보란 듯이 물리치고, 우리는 대한민국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나는 이 문제를 세계 경제 전체의 흐름 가운데서 파악해 보고자 한다.
“......”
사설이라기보다는 책의 서문 같은 글이었다. 꽤 장기간 연재될 글인 모양이다. 수행이 지금까지 따로 어디 일간지에서 사설을 적어왔다거나 연재코너를 맡고 있던 것도 아니고, 어느 대학의 교수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다. 더구나 내용이 친자본적이 되기 힘들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단순히 진성이 수행을 존경한다는 문제로는 이 대우를 설명하기 힘들었다. 정말로 한길 제약의 오너와 은결네 집안 사이에 과거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흐음-”
하지만 그 글에서 은결의 시선을 끈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용지의 맨 위로 옮겼다. 첫 문장이 시야로 들어왔다. ‘나는 1987년의 6.29 선언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립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은결은 그 문장을 재삼 읽었고, 그 묵묵한 문자에서 깊은 비감을 느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은결은 그 문장의 뒷부분을 조용하게 읊조려 봤다. 별반 수사가 붙어있지 않은 건조한 그 한마디 문장이 가슴에 스며들 것 같이 무거웠다. 그것은 가장 쓴 패배의 선언과도 닮아 있는 문장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수행이야말로 6.29 선언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노력했던 사람의 한 명이었음을 은결은 알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결과를 담담한 한 문장으로 ‘실패했다’고 평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특히 민주사회의 물적 토대는 심한 후퇴를 보였다고 해도, 더 이상 자본론을, 공산당선언을 숨어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물적 토대에 눈을 주며 절차적 민주주의의 총체적인 실패를 선언하는 것은 어려운 결단과 냉정한 정신 아래서만 가능하다.
-지금 내리실 정거장은...
곧 음악소리와 더불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다음 정거장이 은결이 내려야 할 곳이었다. 버스 창문 너머로 길게 늘어선 여러 종류의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아마 저 아파트의 어느 한 곳인가가 쿠로사카가 살고 있는 곳일 것이다. 은결은 길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이 글이 현실을 무대로 삼은 것은 현실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 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현대를 배경으로 할 이유가 없겠지요. 이런 이야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글 전체에 통합되어 나갈 것인가 살피는 것도 이 글을 읽는 한 가지 여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만, 스스로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만큼 그 통합되어야할 이야기들 사이의 거리가 넓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요소들은 글 전체 내용에 봉사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짜로!)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에만 도전해선 발전 할 수 없겠죠. 좀 박살나면서 전진해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일테고. 그러면서 가능 한 한 많은 독자 분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글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굳이 무게를 둔다면 후자가 더 중요합니다. 음, 그런 의미에서 독자수가 좀 더 늘어줬으면 하는군요.
*사실 기술에 대한 체크는 언제나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다만, 그에 대한 체크를 해 주실 분은 제가 확인할 수 있도록 출처를 함께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은결을 이계로 보내도 크로스 월드는 하지 않을 겁니다. 4세대 전차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놈을 다른 애들과 붙여놓으면 반칙 아닙니까. 전투력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크로스도 가능하겠죠. 그리고 아르X의 노래는 제가 월야환담을 읽어본 적이 없어 뭐라 답을 못하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