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44화 (44/300)

#   44-희망을 위한 찬가 - 현자의 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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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이빨이 도망가자 몸 전체를 휘돌던 그의 힘이 순간적으로 고체화 되어 기맥을 막았다. 은결의 기맥이 비명을 질렀고, 기의 태반이 운행을 중단했다. 진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했지만 도무지 그 필요량을 충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은결은 완전한 진의 실행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는 있는 힘껏 에너지를 전달하며, 술식을 전개했다.

빛이 번쩍였다.

...은결이 실행한 마법진은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이다. 그것은 모든 물질을 가장 기초적인 단위로 해체하고, 그 해체를 통해 에너지를 다시 물질로 조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의 나노 테크놀로지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과도 같다.

다만 이상적인 상태에서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은결에게 그만한 기술과 에너지는 없었다. 단지, 카미의 힘을 빌어 물질을 기초단위로 해체하는 과정까지 실행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는 물질의 질량을 거의 완전한 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은결이 물질을 해체해 발생한 에너지를 다룰 기술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한, 이는 진을 폭주시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그 질량의 정도만큼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의 공식 E=mc2은 물질의 에너지는 그 질량의 크기에 진공상태에서의 빛의 속도를 제곱한 것과 같음을 설명한다. 가공할 수준이다. 은결이 진을 폭주시켰고, 은결의 피는 그 진 가운데서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밝힌 바를 따라 완전한 에너지로 전환됐다.

폭발은, 필연적으로 무시무시했다.

아득한 빛과 열과 소리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갈 듯한 힘의 총체가, 대지를 부수고, 대기를 찢으며, 압도적인 에너지의 향연을 펼쳤다. 이글거리고, 가르릉거리고, 팔짝 뛰며, 움푹 꺼지고, 빙빙돌리고, 녹이고, 굳히고, 부수고, 붙혔다. 모든 범주가 무의미하게 소멸되는 일원적인 힘이었다. 인식은 그 힘을 포용해 재단할 수 없었고, 그 힘을 품으려던 결계의 아공간이 한 순간에 박살났다. 은결은 그 힘의 소용돌이 가운데 자신이 휩쓸리는 것을 조용히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안전장치가 발동했다. 구형의 마법진이 실처럼 풀리며 그 폭발을 나선형으로 감싸 에너지의 분출을 외부로 돌렸다. 어딘가의 머나먼 별까지 연결될 것처럼 긴 빛의 기둥이 휘황한 나선형의 마법진에 감기며 높게 치솟았다.

신을 향해 기원하는 인간의 염원같은 빛이다.

고요 가운데 은결은 눈을 떴다. 먼 곳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고, 파도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온몸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죽었다면 이런 고통을 느꼈을 리 없다. 얄궂은 일이지만 고통은 오직 삶에만 봉사한다.

‘죽지... 않았나...’

허망함이 가슴을 쓸었다. 푸른 이빨이 중간에 도망간 탓에 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거의 전하지 못해 혈액의 극소량만이 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성공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안전장치가 발동했다고 해도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도 정말... 명줄 하나는 더럽게 긴 모양이군...’

은결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상세를 체크했다. 치명적인 외상은 없었지만 전신을 휘돌고 있는 기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1/3수준에 불과했다. 카미의 힘은 암석처럼 굳어 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푸른 이빨 역시 건재한 모양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몸을 차지하는 것도, 원래 힘을 빼내어 가는 것도 실패했다. 속셈을 알았으니. 이제 승기는 은결에게 있었다. 그나마의 위안거리였다.

“크으윽-”

은결은 전신을 치달리는 격통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전의 폭발로 그렇지 않아도 위태롭던 감각차단 결계의 아공간은 완전히 박살났다. 이미 장소는 은결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세상은 어둡고, 가로등의 불빛이 쓸쓸하게 거리를 비췄다. 오랫동안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쿠로사카의 쓰러져 있는 모습을 봤다. 은결은 발바닥을 쓸듯이 움직이며 그녀에게로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살아있었다.

‘이쪽도 질긴 목숨이군.’

은결은 감탄했다. 자신의 몸에야 안전장치가 발동했지만, 쿠로사카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아마도 키리야미라는 검의 힘 덕분일 것이다. 실제로 힘을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범접하기 힘든 위엄으로 가득 찬 채 웅웅거리던 검이 지금은 서광을 발할 뿐, 그 이상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를 복잡한 시선으로 한동안 바라보던 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체력을 회복해 일어날 것이다.

밤의 고요는 한 줄기 환상 같았다.

...어금니가 모두 박살난 탓에 밥을 먹기 힘들었던 은결은 그날 점심을 우유로 해결하고 있었다. 의치를 해 넣는데 들 비용을 생각하면 우울했다. 전신이 아픈거야 참기만 하면 알아서 낫지만 이빨 부서진 것 까진 기대하기 힘들다. 그는 친구들이 점심 식사하는 소리를 귀에 담으며 창가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낮게 깔린 건물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위로 흘러가는 흰 구름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유요했다. 어제 있었던 처참한 싸움이 거짓 같았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어제 밤의 일이 떠올랐다.

어제 집에 돌아갔을 때, 자기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미래를 제외하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수행과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감각차단 결계를 해제하기 위한 역진을 설치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결계가 파괴되며 나타난 거대한 빛의 기둥을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정작 은결의 모습을 보고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은결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도 감정의 동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단지 은결의 말이 있기를 내부의 동요와 더불어 감내했을 뿐이다. 얼마 있지 않아 화급한 안색의 진경이 찾아와 사정을 물었다.

그리고 은결은 할아버지에게 상처를 맡기며 오늘 겪었던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만 쿠로사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회피했다. 단순히 이세에서 암살자가 왔었다고 말했다. 서로 목숨을 노렸던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그녀도 은결을 노리지 않을 것이다. 카미의 본체가 그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안 이상 그녀가 은결을 적대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세에는 진성 편을 통해 정식으로 항의하기로 했다. 그녀의 입장이 나빠지겠지만 은결에게 거기까지 양보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더 자세한 정보는 어차피 필요하지 않았던 듯, 진성은 길길이 화를 내며 이세에 엄중하게 항의할 거라고 선언했다. 은결이 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건 아니고, 평소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었다.

진성이 화를 진정시키고 난 뒤, 은결은 이야기를 이어 카미에 대해 말했다. 은결의 몸을 빼앗기 위한 그의 치밀한 모략과 내부에 잠든 힘이 실제로 목표로 하던 것. 광포한 성격과 가공할 파괴력등.

그 이야기를 듣고 모든 이들의 표정으로 깊은 반성과 우려가 떠올랐다. 모두들 '카미'라는 존재를 너무 만만히 보다 이런 일격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은결이 지나치게 무사했던 시점에서 주의했어야 한다. 그 이야기를 넘어서는, 겨우 몸을 되찾을 수 있었던 간략한 사정을 말하는 것 외에 은결에게 별반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수행은 한동안 무언가 생각하더니 은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보였던 빛의 기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는 아직 이야기 하지 않은 것 같구나.”

은결은 침을 삼켰다. 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은결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지만, 수행은, 할아버지는, 미래는 은결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긴다. 은결이 진실을 말하면 모두들 화낼 것이다. 꾸지람은 두렵지 않지만,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은 괴로웠다.

“그건 카미의 짓이었습니다. 제 몸을 차지할 뻔 했던 그는 제 지식을 이용해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을 전개했고, 그 탓에 그 빛의 기둥이 이루어졌습니다. 다행히 자신의 힘과 기술에 걸맞지 않은 진을 실행하느라 그 반동이 작지 않아, 푸른 이빨은 굉장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제가 무사히 몸을 되찾은 것은 그 실수 역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은결은 이미 준비한 변명을 말했다.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이 폭주하지 않았다는 종류의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 진을 구성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수행이니까. 은결은 그 위험한 진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며 정보를 조작했다.

그 말을 듣고 모두 걱정스런 표정을 했다. 그것은 복합적인 걱정이었다. 특히 진경이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은결의 상징기호를 다루는 수준이 설마 현자의 돌에 관련된 영역에 까지 닿았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렇다면 은결의 현재 상태는 한결 위험한하다. 그의 지식이 악용될 우려가 있었다.

“그랬구나.”

수행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려 섞인 표정으로 은결의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은결은 아버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의 깊이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 우려인걸까? 초조함 가운데서, 은결은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은결의 내부에 여전히 카미의 힘이 잠재해 있다 하면 이번 일과 같은 위험 역시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을까요? 은결이 현자의 돌의 기본술식을 다루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이상, 만에 하나라도 카미에게 몸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데, 이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꺼냈다. 당사자인 은결도 무심할 수 없는 말이었다. 수행은 진경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원론적으로는 은결이가 내부에 잠재한 카미의 힘을 모두 소화해내는 것과 카미의 영체를 죽이는 것의 두 가지가 있겠지. 가장 깔끔한 방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양자 모두 현실적으로 어렵겠지. 전자는 은결이의 힘에 부치는 일이고, 후자는 일단 카미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 일리는 없으니.”

수행의 대답은 비관적이었다. 진경이 어두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아무 방법도 없는 것입니까?”

“현재로서는, 지켜보는 이외에 방법이 없네.”

수행은 답답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진경은 그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게 되물었다.

"-현자의 돌이라면 어떻습니까?"

“야!”

갑작스런 목소리가 은결의 정신을 교실로 끌어당겼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봤다. 민성이다. 그는 기세 좋게 식사를 하다가 퉁명스런 눈길로 은결을 째려보고 있었다.

“눈뜨고 자지 말고,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 미안. 좀 생각할 게 있어서. 뭘 물었는데?”

“오늘 쿠로사카가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혹시 모르나 싶어서.”

“옆 자리에 앉기는 해도, 그런 거 알 정도로 잘 아는 사이 아냐.”

은결은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그는 오늘 쿠로사카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다.

“쩝. 역시 그런가.”

“걱정되면 한번 집에라도 찾아가보지? 정말 아프다면 점수 딸 좋은 기회 아냐. 원래 사람을 아플 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법이란 말야.”

은결은 연애 한번 안 해본 주제에 아는 척 하며 민성에게 충고했다.

“으음. 그래볼까.”

민성은 아랫입술을 앞쪽으로 쭉 빼며 근엄한 표정을 했다. 그 표정을 보고 은결은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데, 괜히 바람을 넣었나, 하고 조금 후회했다. 그녀의 정체를 생각할 때, 그녀가 민성과 사귀게 될 가능성은 만의 하나도 없다.

키리야미의 신격을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그녀가 처녀이자 무녀라는 것은 명백하다. 무녀라고 연애를 못 할리야 없겠지만 키리야미 수준의 검을 다루는 무녀라면 그만한 책임이 있기 마련이다. 은결이 아는 한의 지식에 따르자면 장래 그녀의 남편은 그 신격의 전승이란 문제로 선정될 데릴사위일 가능성이 높고, 그때까지 쿠로사카는 처녀를 온전히 보전해야 한다. 연애결혼은 생각하기는 힘들다.

‘쓸데없는 생각을...’

은결은 혀를 차며 자신의 생각을 떨쳤다. 지금 중요한 것은 민성의 연애사업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속에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카미의 힘에 대한 대처가 중요했다. 이 힘이 지금처럼 자신의 몸속에 있는 한, 은결의 육체적 능력이 저하되면 카미는 언제라도 그의 몸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함에 위험이 펼연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은결은 차라리 자신이 죽는 쪽이 정말 더 나은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에 이르면 은결의 생각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수행이 말한 것 처럼 원론적으로 카미를 없애든가, 자기 몸속의 모든 힘을 녹여 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양자 모두 극히 힘든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그나마 전자가 가능성이 높겠지.’

영체 상태의 카미는 매우 약하다. 현재의 은결이라도 어려움 없이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카미라면 최소한 인간이상의 지능을 갖춘 존재인데, 그리 녹록한 곳에 숨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은결에게는 밤에 있었던 대화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짚이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다만 그 예측이 옳다면 상황은 한층 골치 아파진다. 때문에 이야기 하지 않았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이지만, 쉬운 게 없었다.

은결은 우울한 마음을 삼키듯 남은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텅빈 양쪽 어금니의 허전함이 익숙해질 수 없는 이질감처럼 길게 따라붙었다. 민성을 어떨지 몰라도, 은결 자신은 쿠로사카를 찾아가 봐야 했다.

*왠지 쓸쓸하네요. 후우-

*저는 세상을 날로 먹는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_-) 지금도 먼치킨인데.

*이번 글을 쓰면서 문장도 짧게 다듬었고, 전문술어도 거의 안 써서 읽기 쉬워졌을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 글의 어려움은 단순한 단어선택이 아니라 문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특성이라는 말이 되겠죠. 이걸 어쩌면 좋을지. 문장 단락을 더 짧게 나눠볼까요.

*은결을 이계로 보낸다면 꽤 재밌겠죠. 이글 끝나면 한번 적어 볼까요? 볼셰비즘은 전체주의로 타락하고, 멘셰비즘은 너무 늦다. 그래서 이계로 건너간 은결은 진지전(그람시)를 통해 영구혁명을 추구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는 컨셉으로?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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