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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39화 (39/300)

#   39-희망을 위한 찬가 - 두려운 것은 무의미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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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선언 같은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쿠로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은결을 공격했다. 소리도 바람도 없이 날다가, 어느 순간에야 시야에 들어와 그 화려함으로 시선을 이끄는- 마치, 나비의 날개 짓 같은 공격이었다.

공간을 가르는 빛의 여운이 어둠 가운데 길게 남았다. 그 여운이 사라지기 전, 굳은 눈길을 한 은결의 그림자가 빛을 흩뜨리며 돌진했다. 빛이 흩어졌고, 은결의 주먹이 쿠로사카의 옆구리로 날았다. 쿠로사카는 흐르는 듯한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쥐고 있던 검을 역으로 쥐고 쳐올렸다. 은결의 공격이 허사로 돌아갔다. 그의 팔목이 검의 궤도에 잡혔다. 달빛을 부수는 냉정한 철의 흐름이 은결의 팔목을 베었고- 마법진이 발생하며 그의 팔목을 보호했다. 팡! 가벼운 타격음이 났다. 은결의 팔이 뒤로 튕겼다.

“크윽-!”

은결은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섰다. 팔목이 얼얼했다. 그의 마법진은 방금 쿠로사카의 공격이 담고 있던 힘을 충분히 분산하지도 못했고, 방어하지도 못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1/3이라는 힘의 제한이 뼈저렸다. 쿠로사카는 어느 새 어둠 속에 스며든 채 보이지 않았다. 다음 공격이 언제 어느 새 다가올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은결은 이기기 어려운 상대와 싸우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엄격하게 교육받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위험시 도망치는 게 본능의 일부가 되도록 유도됐다. 그 교육은 성공적이라 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은결은 도망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도망치려고 해 봤다. 자신의 몸도 멀쩡하지 않고, 싸워 반드시 이겨야할 상황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자신을, 자신의 주변 모든 세계를 잡아먹은 이 기묘한 어둠에서, 은결은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사방은 어둠에 뒤덮힌 허공일 뿐이었다. 음속의 벽을 넘어 몸을 날렸다.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라면 도천시의 경계를 빠져나가는데 2분도 필요하지 않은 속도였다. 그러나 은결은 그 어둠을 맴돌 뿐이었다. 처음 예감한 대로 이미 이곳은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결계인가...’

이세가 풍수나 진법에 강하다고는 들어봤지만, 직접 상대하게 되니 그 수준은 과연 대단했다. 공간 자체를 뒤튼 건지, 감각을 속이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원리는 은결로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자신을 속인다는 것만 해도 인정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순수하게 감탄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경탄스런 기술이 적으로 돌아서 있자니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의외로, 정말로 의외로, 긴장은 되지 않았다. 억지로 처음의 긴장을 되새기며 전신의 감각을 일으키고 있을 정도다. 자신의 방에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어느새 공격이 은결을 파고들었다.

결계가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그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번 공격은 날이 아니고 검 끝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은결의 마법진은 허무하게 찢겼다. 진을 찢은 예리한 검 끝은 침처럼 부서지는 푸른 달빛을 흘리며 흉폭한 맹수 이빨이 되어 은결의 살을 노렸다. 그 뒤에서, 쿠로사카는 맑은 두 눈이 비치고 있었다. 워낙 급박한 일격이라 은결은 피하는데 정확한 여유를 두지 못했다. 검이 은결의 옷을 베었다. 살을 베었다. 왼쪽 옆구리 부터 배꼽 부근의 복부에 이르는 곳 까지,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은 나태한 핏줄기가 길게 흐르기 시작했다. 은결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어둠 가운데, 쿠로사카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은결은 낮게 읊조리며 발을 박찼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높게 올랐다. 다시, 은결은 발을 찼다. 은결의 몸이 아득한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도시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웠다. 그곳에는 대지가 없었다.

공포와 그리움이 동시에 은결을 급습했다. 출산의 빛을 느끼는 자궁 속 태아 같은 느낌. 무언가 아득했다. 정신의 끈이 놓아지는 기분이었다. ‘위험-’ 동시에, 등 뒤로부터 어떤 기색이 느껴졌다. ‘-하다!’ 은결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뒤틀었다. 전신에 기를 운행하고 있을 때, 은결의 모든 이성적 판단이 육체의 각부로 전달되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에 준한다. 판단과 몸의 속도가 동시적이란 말이다. 하지만 뇌가 감각하고, 감각이 행동이 된 그 순간에, 이미 쿠로사카의 공격은 은결의 등을 헤집었다. 화끈했고, 그 화끈함은 이내 끈적하고 따스한 축축함으로 이어졌다.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결은 순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까지는 어쩐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회피하고 있던 사실이다. 하나 여기까지 온 이상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다 해서 행동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은결은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쪽 일에 관련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을 각오한다고 해서 별반 달라지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쿠로사카를 설득하는 것은 포기하자.’

배와 등의 상처와 더불어, 은결은 단호하게 결심했다. 그의 눈이 매섭게 갈리며 달빛을 차갑게 들이켰다. 설혹 쿠로사카를 죽이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굳혔다. 자신을 외부로 밀어 넣고, 그것을 죄와 악으로 변환시켜 자기네들의 통합을 이루던 초등학생 때의 그들을 막은 것은, 중학교 때의, 고등학교 때의 그들을 막은 것은, 그 이후에 자신을 향한 모든 종류의 외부화를 막은 것은, 결국은 자신의 힘일 뿐이었다. 모든 종류의 통합된 저항을 무시하는 압도적인 무력. 은결의 경험 속에서, 선의는 성공적으로 소통된 적이 없었다. 그로인해 결국 패배할리 없던 거인조차 패배했다. 그러니까-

그때, 어디선가 검이 뻗어왔다. 유려한 선의 궤적을 남기며, 그녀의 공격은 매섭게 은결에게 쇄도했다. 은결의 마법진이 선명하게 펼쳐지며 공격을 방어했고, 꿰뚫렸다. 그 순간 은결의 몸은 비인간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그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동작은 공격보다 한 박자 느렸다. 그의 왼쪽 대퇴부가 베였다. 아슬아슬하게 근육의 위를 비켜나간 공격이었다. 피가 주룩 뿜어져 나갔다.

“크읏...”

은결의 닫혀진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렀다. 이번 공격은 타격이 컸다. 설득을 포기했더라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무력이 딸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적어도 그녀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설득을 무시한 일격을 노릴 수 있다. 쿠로사카는 정상일 때의 자신이라도 대처가 쉽다고 말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공간 자체가 문제였다. 쿠로사카를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어 놓는 이 공간. 은결은 몇 번의 위기와 이상스런 친근감과 안정감을 겪으며, 겨우 이 어두운 공간을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독하게 친근하고, 그 친근함으로 인해 무엇보다 무서운 자신의 적으로 돌아선 이 공간. 자기 자신의 연장 같은 공간.

‘감각차단결계다...’

이세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무서운 힘을 지닌 집단이다. 은결의 얼굴이 어둡다. 그는 심호흡을 했다. 그때, 은결의 등 뒤로 검이 날아들고 있었다.

“당했구나. 진경에게 전화를 넣었다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결계 내부에 간섭할 방법조차 애매하니.”

은결의 할아버지가 엄숙한 얼굴로 수행의 방에 들어왔다. 엄숙한 표정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수행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도 편안치 않았다.

“예. 당했습니다. 은결이 싸우면서 자신의 기를 앗기는 것 같다고 말했던 순간에 의심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감각차단 결계를 위한 함정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은결이 싸운 장소를 연결하면 오망성이 되더군요. 한심합니다.”

그리고 수행은 고개룰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자책과 걱정이 뒤섞여진 길고 아련한 한숨이었다. 그것을 슬프게 두 눈에 담으며 할아버지는 말했다.

“자책할 것 없다. 어차피 나와 은결이도 그간 뛰어다니면서 이런 결계의 사전준비에 대한 기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니. 그리고 감각차단 결계는 대상의 기를 분석하고, 결계 전체를 그의 기와 극히 유사한 종류의 에너지로 구성하는 결계. 이는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을만한 최고급의 대인 결계의 하나다. 물론 기술적으로도 극히 고급이지.”

감각차단 결계는 대상자의 기와 거의 흡사한 에너지 구조로 결계를 작성해 특별한 이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계 내부의 모든 사물과 대기는 유사적으로 대상자의 존재본질과 극히 흡사한 분위기니 내지는 힘을 띄게 된다. 이는 그 공간 내부에 그 대상자가 자기 이외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다. 거기서 모든 것이 자기의 연장이 된다. 인식이 차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상, 이 결계는 극단적으로 인식을 위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대상자의 감각을 차단한다.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은 세계를 통틀어도 얼마 없지. 그리고, 그런 집단 중 하나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은결이를 노릴 거라고 상상하기는 더욱 힘들고.”

“하여간, 이로서 이세가 이 일에 관여했다는 것은 명백해 졌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한탄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거대한 진을 펼쳐 일을 벌인다면 어떤 능변으로도 그들은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텐데. 그 정도의 분별도 없는 집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거늘...”

“말씀하신대로입니다. 그러니, 그런 책임문제를 각오하고서라도 이런 일을 벌여야 했을 만큼 그들은 급했고, 동시에 확실한 확증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수행의 분석에 할아버지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미...말이냐?”

“예.”

“그럴리가! 확실히 카미가 죽을 리 없고, 은결의 몸에는 카미의 힘이 있다. 연관관계를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미의 껍데기 같은 것에 불과해. 그들이 그 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수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 없을 겁니다. 검토해 봤겠지요.”

“그렇다면 이 일은 설명이 안 돼지. 너 역시 은결의 내부를 조사했고, 그 결과 깨끗하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세에 너 이상의 실력을 가진 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구나.”

할아버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수행은 씁쓸하게 그 단호함에 대해 응답했다.

“불초한 아들을 높게 사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람은 많고, 저를 능가하는 기술을 지닌 이는 얼마든지 있겠지요. 그들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적 전통을 지닌 집단입니다. 그리고, 설사 그런 기술을 가진 이가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니?”

수행은 확고하게 입을 열었다.

“만일, 푸른 이빨과 영적으로 연결된 봉인자의 후예라면, 저희가 찾아내지 못한 극히 은밀한 은신이라도 단숨에 간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봉인 수호자와 제사장은 그렇게 떨어진 존재가 아니니까요. 카미에 대한 특별한 종류의 영적 특권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행동이 설명 가능합니다.”

“으음...”

“하여간 우리에게는 아무런 손쓸 방도가 없습니다. 저 진은 먹지에 대고 베껴 그린 명화처럼 투박하지만, 식신과 은결의 기를 제물로 바쳐 이루어진 분명한 명화의 모조입니다. 저도 저 진을 역산해 보고는 있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작업을 한다 해도, 그대로 놔둘 때 보다 얼마 빠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수행의 암울한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거멓게 죽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저 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감각 차단에 대해서는 은결이 과거 극복했었다는 정도겠지요. 녀석은 그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만.”

거기서 수행은 쓰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이었다.

"결계 내부에서, 상대는 진의 힘을 믿고 상당히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 현재의 은결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 부분일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약간 화난 기색이 되어 수행을 질책하듯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네 말에는 여유가 있구나.”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끝에 수행은 말했다.

“...은결이를 믿습니다. 그 아이는,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그 확신 위에서, 저도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그저, 투닥투닥 자판이나 두들길 뿐입니다. 지쳐서 잡담 할 힘 따위 없군요. 여러분 모두 이 글을 즐겁게 읽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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