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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32화 (32/300)

#   32-희망을 위한 찬가 - 두려운 것은 무의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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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늘은 왠지 얼굴이 안 좋네?”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자전거를 주차시키고 돌아온 은결은 미래의 질문에 간단하게 “아아, 바로 지난 주 까진 환자였잖아.”하고 답했다.

“흐응. 그것도 그런가.”

그럴듯한 대답이라, 미래는 순순히 납득했다. 하지만 사실 은결은 몸은 이제 완전했다. 후유증은 일체 남아 있지 않았다. 2주라는 입원기간이 도리어 길었을 만큼 은결의 회복력은 대단했다.

그러므로 은결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일어난 이후로 그는 줄곧 기를 전력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물론 은결과 비슷한 수준에 이른 사람은 기를 전력으로 운용한다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극도로 훈련된 병사가 걸어가면서도 잠을 잘 수 있듯, 그들은 어떤 상황과 자세에서도 전력으로 기를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은결에게는 그렇게 기를 운용하는데 있어 심각한 장애가 몸속에 내재해 있었고, 그로인해 은결이 고통을 느꼈을 따름이다. 그 장애란 카미의 힘이다. 하지만 고통스럽다고 기의 운행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고 카미의 힘과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서는 융화든 방출이든 그 힘을 처리할 방도가 없다.

“그러는 너는 오늘 표정이 밝은데,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씁쓸함을 감추고 은결이 물었다.

“글쎄, 꿈이야 별 거 없었지만, 어제 체크해 보니까 시험 성적이 괜찮았거든- 헤헤.”

바로 지난주까지 성천 고등학교는 시험기간이었다. 은결은 반색하며 되물었다.

“그래? 전교 일등 할 수 있겠어?”

“음- 어쩌면. 아, 만일, 이번에 전교에서 일등 하면 미래가 원하는 선물 사주기 어때?”

“그건 좀...”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닌지라, 은결의 주머니는 늘상 위태롭다.

“에에~ 사랑스런 여동생의 모티베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지출하는 건데 그 정도도 못 하겠다는 거야? 오빠라면 당연한 거잖아.”

“아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그리고, 어느 문화권의 오빠에게 그런 게 ‘당연’이냐?”

“물론 박수행 일가의 문화권이지!”

미래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당당하게 답했다. 이쯤 되면 반론을 제기하는 게 바보스럽게 느껴질 지경이다. 어차피 논리 따윈 엿 바꿔 먹은 주장이란 게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결은 “말을 말아야지” 하는 간소한 대답과 함께 동생의 치기어린 주장에 헛웃음을 보였다. 그 미소는 일순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이내 표정의 평정을 되찾은 은결은 손바닥을 쥐락펴락했다.

‘삼분의 일이란 말이지...’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통은 여전히 전신을 흐르고 있다. 은결은 자신의 힘을 재어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이 작업을 쉬었던 적이 거의 없는데,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와서도 진전이라 할 것이 없었다. 정말로 십년도 넘게 걸릴 것 같았다. 그것은 적어도 십년 이상 은결은 본래 힘의 1/3에 불과한 전력으로 불상사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래야.”

“응?”

“목걸이... 하고 있지?”

“당연하지.”

그러면서 미래는 목덜미 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빼냈다. 그녀의 고운 손바닥 위로는 햇살을 금빛으로 잘게 부수는 펜던트가 올려져있었다. 넓게 펼친 새의 양쪽 날개를 하나로 이어 붙인 듯한 모양이었다. 깃털의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형상화된 펜던트의 위에서 빛은 흐르고 쪼개져, 다이아몬드 가운데서 난반사되는 것 같은 현란함을 이루고 있었다. 미래는 그 펜던트를 꼭 쥐어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곤 곱게 눈을 감았다.

“엄마 유품인걸. 빼 놓을 리가 없잖아.”

먼 시간의 손을 끌어, 현실의 순간과 손잡게 하는 듯한 말이었다. 은결은 그녀의 행동에 깊은 정겨움과 가벼운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작고 슬프지만, 정겨운 웃음이 은결의 얼굴에 자리했다.

“그래. 그걸 하고 있으면 하늘에서 엄마가 우리 미래를 지켜주실 거야.”

“피- 80년대 영화도 아니고, 그런 건 안 믿어.”

“어허, 진짜라니까. 오빠 말 못 믿어?”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믿지.”

그리고 미래는 흥, 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은결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미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은결의 미소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말은 반쯤은 거짓이었지만, 반은 사실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래를 지켜주는지는 은결도 알지 못하지만, 저 목걸이가 미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성기의 수행이 아내의 유품을 가지고 만든 저 호신부는 준 아티팩트에 해당하는 힘을 품고 있다.

‘저거라면, 내가 나설 일은 적어도 앞으로 십년 동안 있을 리가 없겠지.’

은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중의 영적 자장이 돌파 당했다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얼마 전에 접했다. 그러나 설사 같은 정도의 힘이 미래에게 작용한다고 해도, 이중의 자장은 격파 당했을지언정 수행의 호신부가 뚫릴 리는 없다. 전성기의 수행은 그만큼 대단했다. 은결이 알기로, 어쩌면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되던 사람이었으니까.

‘어머니... 인가.’

안도는 곧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졌다. 짙은 그리움을 품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다. 그가 네 살 무렵이고 미래가 세 살이었을 때, 두 사람의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한다.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사진은 얼마 없었다. 생전에 그녀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얼마 남지 않은 정지된 시간의 장면 가운데서, 어머니의 모습은 그윽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분이었다. 그것을 보면 은결은 미래의 미모는 틀림없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은결에게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품은 사진은 낮선 세계의 풍경처럼 멀기만 했다.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야기 책을 읽고 그 주인공에게 품게되는 동경과도 같이 친밀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역사가 아닌 환상의 한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감각. 이유는 그 자신도 헤아리기 어려웠다. 다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런 일반적인 세계의 감각들에 대해 자신이 소원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은결의 마음은 어머니를 향한 자신의 그리움 보다는, 어머니를 일찍 잃어버린 탓으로 얻어야할 애정을 충분히 얻지 못한 미래를 향한 안쓰러움이 되곤 했다.

‘으음, 그 탓에 너무 어리광을 많이 받아준 게 아닌가, 요즘은 반성하게 되긴 하지만. 이제와서 프로이트 심리학을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 아닌가 싶지만,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전이현상을 보는 것 같단 말야.’

최근에 미래가 보여준 일련의 반응들을 생각하며 은결 입술 양 끝을 밑으로 근엄하게 끌어내렸다.

“오빠- 뭐해!”

그때 총총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던 미래가 뒤떨어진 은결을 보고 큰 목소리로 불렀다. 상념에 잠겨 있던 은결은 그녀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발걸음을 빨리해 미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가온 은결의 모습을 보며 미래가 물었다.

“그런데, 오빠, 오늘 오빠 반에 외국인이 온다지?”

“아아, 그렇다고 들었어. 후쿠오카에 있는 아오조라 고등학교의 학생이라던가-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은결이 민성에게 들었던 정보를 어렵사리 떠올리며 답했다.

“흠, 일본이란건 나도 들었는데, 후쿠오카라. 어떤 곳인지 알아?”

“전혀. 사실 나도 오늘 전학생이 온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선 아무 것도 몰라. 심지어 그 전학생이 남잔지 여잔지도. 오빠 반에는 그걸로 내기 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판도 상당한 크기고.”

민성이 주최한 도박판이다. 동물원 삼총사도 물론 참여하고 있다.

“응~ 어떤 사람일까?”

“글쎄다... 어쨌건 좋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나도 그래. 그렇잖아도 일본사람이라면 한국 사람한테는 일단 좀 점수 까먹고 들어가게 되잖아. 성격까지 나쁘면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봐. 이런 것도 다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행사잖아.”

미래가 조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겠지.”

은결은 담담하게 긍정하고는 5월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건, 같이 있는 동안은 잘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좋을텐데~”

미래가 은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하늘에서는 팔자 좋은 오월의 태양이 여름을 향하는 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입술의 황제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독자를 낚기 위해 일부 만화적 문법을 채용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작품을 지배하지 않는 한,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법도 작품의 방향성에 따라서는 유효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얼마나 잘 사용되느냐 관건이지 그것을 사용한다 자체가 문제시 된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무협을 판타지보다, 판타지를 무협보다 좋아하는 것 처럼 취향의 문제로 호불호가 갈릴 수야 있겠지만 취향의 문제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리고 이 글에는 장기적인 시선으로 설정해둔 장치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미래라는 캐릭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쩝, 이런 거 밝히면 재미없는데... 이왕 밝힌 거 그냥 아주 밝히면 미래는 은결이 그 내부의 족쇄를 풀기위한 제물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죽음으로서 은결은 호신부를 차고 있다고 안심해버린 자신의 무능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절감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족쇄를 끊어내게 됩니다...

...예. 물론 뻥입니다. 하지만 정말 저렇게 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분들은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 여깁니다.(솔직하게 손!) 저런 종류의 비극은 미래와 같은 캐릭터를 활극물에서 처리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인지라. 큼. 하지만 글을 얼른 끝낼 필요가 있거나 하게 된다면 정말 저렇게 나갈지도 모르죠. 하여간 미래라는 캐릭터는 독자를 낚으려는 설정이긴 한데, 그것만을 위한 캐릭터인 것은 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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