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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5화 (25/300)

#   25-희망을 위한 찬가 - 아오이키바(い牙)(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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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이불 위에 무표정하게 누워있었다. 할아버지의 방이다. 그의 드러난 피부 곳곳은 물집과 화상으로 얼룩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대지에 뿌리박은 고목 같은 차분함으로 은결의 팔목을 잡고 그의 내부를 휘도는 기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수행, 진경, 도원 선사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의 진맥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부로 스며드는 듯, 시간의 흐름은 느렸다. 마침내 은결의 할아버지는 눈을 떴다. 아비다운 걱정을 품고, 수행이 얼른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의 묻는 목소리로는 지울 수 없는 긴장이 느껴졌다. 만에 하나 기가 헝클어져 폭주라도 했다면 은결은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은 수행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기쁘게 답했다.

"속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한 며칠 쉬면 괜찮아 질 것 같구나. 쯧쯧. 무모한 녀석 같으니."

"...다행이군요."

수행은 크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들의 긴장했던 표정도 그제서야 풀렸다. 아무리 기로 전신을 보호했을 거라곤 해도 벼락의 특성을 띈 신의 본질을 그토록 오랫동안 맨손으로 잡았다. 그 정도에 끝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문득 진경이 제안했다.

"내상뿐만 아니라 외상이 심한 듯 하니, 저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주겠나."

수행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은결의 육체적 회복력은 범인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체계적인 치료와 함께 할 경우 더 빠른 쾌유를 바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은결과 같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그 육체의 특이성으로 인해 병원에 가는 일이 금기시 되어 있지만 진경이 그 부분에 대한 대처를 빼먹었을리는 없다.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할아버님의 병실도 준비할 수 있습니다만...?"

진경이 다시 제안했다. 세연을 비롯해, 이번에 싸우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모두 진경이 준비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은결의 할아버지도 은결을 구하기 위해 카미와 싸우다 적잖은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어 그 제안을 거절했다.

"어디 부러진 것도, 못 움직일 정도인 것도 아니니 괜찮네."

"알겠습니다."

진경은 단촐하게 답했다. 다시 고요한 긴장이 좌중을 뒤덮었다. 다른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쪽이 더 중요한 핵심이다. 은결의 할아버지는 한숨으로 뜸을 들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은결의 내부에 융화되지 않은 거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카미의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구나. 어떻게 된 것이라고 보느냐?"

할아버지가 수행을 향해 물었다.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지난밤 전투의 마지막 순간, 은결이 신을 붙잡음으로서 보였던 그 기이한 현상은, 역시 환상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을 보였던 수행은 올 것이 왔다는 태도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저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런 일은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은결이 신의 본질을 역산해 해체하는 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진으로 인해 신의 자성(自性)이 해체 당하고, 그 힘이 은결에게로 흡수되었다고 판단한다는 말인가?"

도원 선사가 물었다. 수행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았을 듯 합니다. 신성이 그토록 간단히 해체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카미가 그와 같이 무서운 힘을 지닐 수 있을리도, 봉신이 가장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서 취급될 이유도 없겠지요."

좌중의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카미의 힘과 존재감을 직접 대면해봤다. 카미의 무서움은 절실하게 알고 있다. 수행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꽤 심한 타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탈출을 위해 은결의 내부로 숨어들었던 것일 수도 있을테고, 자신의 영적 본질을 본체에서 분리해 그 부분만 탈출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상 은결의 육체 역시 현재의 세연 양에 뒤지지 않는 정순한 것이니, 당시와 같이 본질이 은결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던 때라면 카미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그렇게 기이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카미는 죽지 않았고, 그 힘은 은결이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경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언제든지 은결을 중심으로 카미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수행은 침중하게 답했다.

"허허."

도원은 수염을 쓸었다. 그의 모습에서는 당혹과 우려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읽어졌다. 진경이 다시 초조하게 물었다.

"은결이 신의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한다면 어떻습니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수행은 씁쓰름하게 웃으며 단지 그렇게 답했다. 진경은 얼굴을 붉히며 물러섰다.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는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설사 카미의 거대한 힘이 온전히 은결에게 넘어갔다고 해도 그것이 꼭 축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던 두 힘이 한 곳에 모여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은결과 같이 정순한 수련을 쌓아오던 이에게 카미의 것과 같은 이질적이고 거대한 기는 도리어 이후의 성장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 힘을 융합시킨다는 것은 한결 지난한 일이다.

"지금은 두고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군."

도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겠지요."

수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경이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신의 힘을 내포하게 된 은결도 그렇고, 갑자기 체질이 변해버린 세연도 그렇고, 이번 일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습니다."

수행은 쓴 미소와 더불어 답했다.

"영지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

"그렇긴 합니다만."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사람들은 한동안 침묵 가운데 방안에 앉아 있다가 결국 일어섰다. 수행과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비는 그쳤지만, 회색 습기에 매워진 골목의 모습은 어딘가 우울했다.

"병실이 준비되면 곧 차를 보내겠습니다."

"부탁하네."

"끌끌. 아무 도움도 못돼 미안하네."

"아닐세. 자네가 어제 도와주었기에 피해가 이나마에서 끝난 게지."

단조롭지만 진심어린 감상이 교환되고, 두 사람은 진경의 차에 올랐다. 엔진 시동 소리가 울렸다. 곧 진경의 차는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수행이 시선을 할아버지에게로 돌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집안일은 누가 합니까?"

"......"

답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침묵과 곤혹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 몇 년간 집안일은커녕 식사도 두 사람이 직접 해결했던 일이 드물었던 탓이다. 사정은 미래에 이르면 한결 처참하다. 미래는 라면도 끓이기 어려워한다. 은결이 가사(家事)마스터였던 덕분이다.

*챕터 끝났습니다.

*착하지, 힘 좋지, 집안일 잘 하지, 미남이지, 능력 있지. 은결은 백점짜리 신랑감이군요.

*엔소프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꾸벅.) 꿀꿀함을 떨치고, 열심히 적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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