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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2화 (22/300)

#   22-희망을 위한 찬가 - 아오이키바(い牙)(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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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아득한 높이의 산에 올라가 드넓게 펼쳐진 세계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경이의 느낌과 닮은 벅참과 굴종감이, 만개산 정상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을 채웠다. 그 감각 속에서 세상은 아름다웠고, 열정적이었고, 숭고했고, 위대하여, 개인은 하찮고 나약했고, 누구나가 그 하찮음을 인정하여 기꺼이 위대한 세계에 자신을 내던져도 좋을 것 같다고 여기게 되었다.

진은 완벽했다. 충분한 수행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면 믿을 수 없는 만큼 커다란 감정의 폭발에 휩쓸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낮은 수준이지만 누미노제의 인공적인 구현이다. 그래서 정상의 누군가는 감탄했고, 누군가는 불쾌해 했고, 누군가는 슬퍼했고, 누군가는 씁쓸해 했다.

“다른 신성의 개입으로 그녀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던 푸른 이빨의 작업 일체가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트랜스 상태를 해제하는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카미는 그 그릇과 연결되어 있으니,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을 거다. 곧 이쪽으로 달려들 겠지.”

수행이 말했다. 은결의 전신으로 긴장이 달렸다. 강신을 방해하는 것이 ‘카미코로시’와 동등한 일이라는 것은 별 다른 의미를 가진 게 아니다. 다만 그 작업은 필연적으로 분노한 신과의 전투를 동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강신을 막는 것은 ‘카미코로시’ 내지는 봉신에 준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성역이 완성된 덕분에 다른 종류의 신성을 지닌 푸른 이빨의 행동이 어느 정도 억제될 것이다. 다행히 이곳은 푸른 이빨의 대지가 아니라 그 힘도 약할 것이고, 무엇보다 소비된 힘의 회복이 근거지에 비해 비할 데 없이 낮겠지. 승부는 그런데 걸 수밖에 없다고 보여지는구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릇으로서의 그녀를 해체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가장 단순한 방법은 카미를 죽이는 것이지만, 기대하기 힘든 방법인데다, 굳이 내키진 않는구나. 그러니 그녀의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기의 흐름을 읽어 역으로 파괴할 수 있는 구성을 해야겠지. 신의 코드를 해석하는 것이니, 꽤 복잡한 작업이 되겠구나. 내가 할테니, 너는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벌어다오.”

은결은 아버지에게 어서 물러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위험한 곳에서 어서 몸을 피하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과거 도와주지 않았던 이들은 여전히 마땅치 않은 표정을 이곳에 보내고 있을 뿐이고, 아버지는 할 수 있는 한의 일은 모두 다 했다고, 그러니 이제 도와주지 않았던 이들을 돕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설득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은결은 간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의 외곽을 향했을 뿐이다. 은결은 아버지의 완고함을 알고, 아버지의 완고함을 존경하기에, 그의 완고함을 꺾을 수 없었다.

“조심하거라.”

멀어지는 은결을 향해 수행이 말했다. 은결의 몸이 움찔 떨렸다. 이것은 자신이 들을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은결을 맞았다. 그는 은결의 마음을 아는 듯 안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 수행은 이미 몸에 부적을 하나 붙여두고 있다. 그리고 이 진은 자체로서 강력한 보호진이기도 하니, 우리 모두가 쓰러지지 않는 한에는 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게다.”

“...예.”

노소의 단촐한 대화가 끝나자, 맞이하듯 ‘꽈르릉-!’하고 하늘이 울었다. 새하얀 빛의 기둥이 구름과 대지를 이었다. 그리고 그 벼락이 스러진 자리에서 어떤 빛이 번쩍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반짝임, 번뜩임, 일렁이는 빛덩이- 그것은 빠르게 커졌다. 아니다. 그 빛의 덩어리는 커진 적이 없다. 단지 만개산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옵니다!”

한 사내가 목소리를 올렸다. 동시에, 흰 빛의 덩어리가 숭고에 충만한 만개산의 정상으로 들이닥쳤다. 크꽈지지직! 허공을 태우는 소리가 나며 주변이 백열했다. 사람들은 주술이든 마법이든 저마다 눈을 보호했다. 꽈지지지직! 여전히 대기는 아우성쳤다. 빛은 줄어들지 않았다. 일행 앞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전하의 덩어리였다. 번개가 허공에 뭉쳐 모인 것 같은 모양새. 은결은 피부와 옷의 가벼운 스침마다 찌르는 것 같은 정전기를 느꼈다. 둥글던 그것의 모양새가 별사탕처럼 변했다. 동시에, 강렬한 감정의 덩어리가 느껴졌다. 숭고에 가슴을 채웠던 일행의 마음이 한 순간, 거대한 분노에 압도되었다.

-꽈르릉!

한 사람을 향해 벼락이 내려쳤다. 이런 존재와의 싸움을 상정해야 하는 이들에게 보고 피한다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동시에 부적을 내던지고 있었다. 벼락이 그 대신 부적을 향해 내리쳤고, 부적은 한 순간에 재가 되어 스러졌다.

“크아아!”

하지만 그 부적으로 다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여분의 에너지가 습한 대지를 타고 그를 강타했다. 다행히 이 역시도 직격은 아니었다. 그는 역장을 펼쳐 전기를 대지로 흘려보냈다. 역장 안에서 그의 머리칼은 쭈뼛하게 섰고, 피부와 옷 사이마다 전하가 머물러 충돌했다. 은결은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가 훨씬 깨끗하게 이 공격을 받아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리한 것은 본거지를 떠난 ‘카미’만이 아니었다. 날씨가 아군이 아니었다.

-꽈릉!

대기를 태우며 수많은 전하가 백열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역장과 진, 부적 등을 꺼내 몸을 보호했다. 은결도 지금 막 자신을 향해 떨어진 번개 하나를 역장으로 막아냈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역장의 발판을 만들어 뛰어올랐고, 백열하는 전하의 덩어리를 향해 마법진에 둘러싸인 주먹을 내뻗었다.

“무모한!”

누군가 외쳤다. 은결은 그 외침을 무시했다. 그의 주먹과 백열하는 플라즈마의 덩어리가 마주쳤다. 그리고, 꽈앙!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육중한 충격음이 일어났다. 은결의 주먹을 둘러싸던 마법진이 순간적으로 카미의 영적 본질을 물체화해 물리 에너지를 직접적인 영적 데미지로 치환한 것이다. 기는 그 자체로도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한 공격력을 지니지만 물질화를 하게 되면 그 효율은 극대화된다.

-꽈지지지직!

전하의 덩어리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것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몸을 기괴한 형상으로 뒤틀었다. 엄청난 양의 전하가 은결을 급습했다. 그러나 동시에 은결의 전신으로 마법진이 떠오르며 그 공격을 막았다.

“저 녀석이 진짜 바닥이나 부수고 다니는 쪼다란 말입니까?”

그 광경을 보고 진경이 놀란 표정을 하고 도원 선사에게 물었다. 물론 진경은 답을 안다. 그저 감탄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분이다. 도원 선사는 짐짓 모르는 척 하며 맞장구를 쳤다.

“껄껄, 쪼다인지는 모르겠네만, 부수고 다닌건 사실이네. 은결 자신이 만들어내는 마법진으로는 일정수준 이상의 물질적 에너지를 구현하는 기술을 사용할 때, 그것을 중화할만한 역장을 형성할 수 없지. 자네도 긴장하지 않으면 금방 따라잡힐걸세.”

진경은 차갑게 웃었다.

“흥. 그래도 아직은 저런 녀석에게 뒤를 잡힐 정도이진 않습니다.”

그리고 진경도 대지에 발을 박찼다. 그의 몸이 높게 떠올랐다. 그는 품에서 부적을 수십 장 꺼내더니 그것을 날렸다. 부적은 모두 생명을 가진 것처럼 날아 카미의 주변을 감쌌고, 빛을 내며 이어지더니 두 개의 원을 이뤄 카미를 가뒀다. 플라즈마의 카미는 몸부림 쳤지만 쉽사리 그 구속을 끊지 못했다. 은결이 진경 쪽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가 전개한 부적술이 어느 수준의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도원은 그것을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수행 이래’라는 말은 거짓이 없다는 거군. 그렇다면 이 늙은이도 나서볼까. ‘카미’라면 더욱 나서지 않을 수가 없기도 하고.”

그리고 도원은 염주를 꺼내 손에 쥐고는 눈을 감았다. 그의 전신으로 녹색 아우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원은 입을 열었다. 주문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한 독특한 리듬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동-”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의 게송이다. 위대한 공(空)의 논리가 기를 타고 웅장하게 대기를 장악했다. 일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의 논리는 기세 좋게 카미의 영적 본질을 침투했다. 부적에 묶여 꿈틀대던 카미가 그 노래에 더욱 힘을 잃은 듯 희미한 몸짓을 했다. 과거 일본 신도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 팔백만의 모든 신은 보살이라는 논리를 채택한 적이 있다. 지금은 카미를 그렇게 해석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때문에 도원의 게송은 일본발인 카미에 대해 상당히 강력했다.

“주는 나의 권세이니!”

“하앗!”

이어, 목사 몇 명이 성경과 십자가를 들고 아우라를 내뿜었고, 무당 내지는 도사로 보이는 사람은 들고 있던 검을 허공으로 날렸다. 번쩍이는 빛과 칼날이 카미를 공격했다. 카미가 크게 요동쳤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한편, 은결은 다음 공격을 준비하며 온몸의 기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는 도중에 흘깃 뒤를 돌아봤다. 수행은 세연의 몸에 손을 대고 수도자와 같은 진중한 표정으로 세연의 내부에 정지한 카미의 코드를 읽고 있었다. 아버지가 뒤에 있기 때문에 괜스레 더 걱정이 되는 탓인지, 유리해 보이는 이 상황에서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결코 이렇게 끝날 리 없다는, 아찔한 속삭임이 은결의 가슴 저변을 지배하고 있었다.

‘없애버리면, 그런 걱정도 필요 없겠지!’

지금이라면, 그것도 가능해 보였다. 은결은 이를 악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발을 박차, 허공을 난 다음, 술식을 이뤄 기를 집중시키고, 그 기를 다시 마법진을 통해 효율적으로 정제하고 배분해, 카미의 몸통을 거대한 에너지의 폭탄으로 내리 찍었다. 꾸앙-!! 은결은 허공을 날아 대지에 착지했다. 카미가 꿈틀거리며 고통스런 움직임을 보였다. 은결은 희열을 느꼈다. 그는 당장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것, 들이!

명확한 한국어의 관념이 좌중의 모든 이들에게 전달됐다. 카미, 푸른 이빨이 처음으로 말을 한 것이다. 선연한 분노의 감정에, 모든 이들의 동작이 일순 얼어붙었다. 이것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한결 강렬했다. 성역에서 전개되는 숭고의 감각이 한순간 완전히 압도당할 정도였다. 그제까지 카미를 구속하고 있던 진경의 부적이 한 순간에 불이 붙었다.

“피해!”

진경이 거세게 외치며 몸을 뒤로 날렸다. 동시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몸을 날렸다. 그들은 이미 할 수 있는 한 모든 수단을 통해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전개되며 주변 공간 전부가 전하에 휩싸였다. 수백발의 번개가 만개산 정상으로 내리 쏟아졌다. 꽈꽈꽈꽈꽝!!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또 어렵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난감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내용을 적으려면 그래도 한국철학사를 좀 공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다루면 지난 화보다 확실히 어려워질 테니,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꽤 오랜만에 추천을 받았습니다. 역시 효과가 좋군요.(...) niney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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