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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1화 (21/300)

#   21-희망을 위한 찬가 - 아오이키바(い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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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진경이 초조하게 물었다.

“일단 성지를 전개할 생각이네. 신에 대항하려면 그만한 신성을 확보해 둬야겠지. 그리고 거기에서 강신에 개입할 생각이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에 유효한 방법이지.”

“무립니다! 8년 전의 선배라면 모르지만, 지금의 선배에게 그런 여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가능하다 해도, 지금 선배가 그런 엄청난 기를 견뎌낼 수 있는 몸이 아닌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죽습니다!”

“그래. 8년 전과 지금은 틀리지. 나는 그때와 같지 않아.”

수행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경은 괴로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진경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에 앞서 다시 수행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8년 전에는 은결도 없었지.”

진경의 놀란 시선이 은결을 향했다. 은결은 갑작스럽게 지목되었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 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다. 수행이 은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은결아, 할 수 있겠지?”

“예.”

은결은 담담하게 답했다.

“자네는 모을 수 있는 사람을 다 모으고, 도원 스님께 연락을 해 주게.”

“...알겠습니다.”

진경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일행은 만개산으로 향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만일 전투가 일어난다면 주변에 민가가 없는 그곳이 피해가 적어 좋았고, 강신을 중단시키기 위한 작업에 필요한 기와 공간의 조달에도 그곳이 좋았다. 일행은 곧 만개산 정상에 도착했다. 은결에게 안겨 만개산에 도착한 수행은 아들 품에서 내리자마자 세연을 안고 온 진경에게 지시했다.

“세연 양을 중앙에 누이게.”

진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진흙탕 위에 덮었다. 그리고 세연을 위에 누였다. 수행이 주변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그는 은결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기를 빌리자꾸나.”

은결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는 기를 운용해 아버지의 손으로 넘겼다. 죽어버린 기맥의 공허함이 느껴졌다. 지나치게 많은 기를 주입시키다간 은결의 아버지는 극히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은결은 울음이 나올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감상에 잠길 시간 따위는 없다. 그는 세심하게 기를 전달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각오하고 있던 수행은 편안하게 흘러들어오는 기의 흐름에 대견스러움을 느꼈다. 은결은 자신이 놀랄만큼 많이 성장했다.

“오랜만이구나.”

수행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오랜만’은 중의적이었다. 은결은 그 중의성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수행은 나뭇가지를 대지에 대고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흙 위든, 바위 위든, 물웅덩이 위든 상관없었다. 나뭇가지가 긋고 지나간 선으로는 빛이 올라왔다. 선이 연결되며 기호를 이루었고, 의미를 담지했다.

“읽을 수 있겠니?”

갑자기 수행이 물었다. 은결은 아버지가 그리는 진을 두 눈에 담으며 답했다.

“예.”

자신의 손바닥으로 흘러들어오는 기의 흐름을 보건데, 은결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수행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곧 그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을 멈췄다. 어느덧 복잡하게 이어지던 선은 시작했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수행은 나뭇가지를 대지에서 떼어냈다. 이어진 빛이 그 순간 한결 휘황하게 빛났다. 하나의 진이 완성됐다. 그는 은결의 손을 잡고 몇 발자국 이동한 다음 다시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춤추는 빛은 춤추는 기호가 되어 나갔다.

시간이 흘렀다. 수행이 그리는 진은 복잡하고 거대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하늘의 지루한 하품처럼 번개는 쳤다. 만개산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만개산 정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진경의 연락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진경은 고개를 돌렸다. 도원 선사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도원은 그 인사를 받고 물었다.

“무얼 그리 넋을 잃고 보고 있었나?”

“선배님이 진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호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런 일 앞에서도 마음을 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큼, 선배의 진은 아름답습니다. 개인으로서 겨우 이런 시간 내에 저런 진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세계를 통틀어도 몇 사람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더욱 분합니다. 팔년 전에 편협한 입장차만 해결했더라면 지금도 선배는 현역으로 활동했을 텐데.”

진경은 주변을 살피며 이를 갈았다. 모여든 이들 중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은결 부자의 작업에 불편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도원은 먼눈으로 회색 구름에 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지만은 않네.”

“알고는 있습니다만-”

진경의 대답에 도원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자네는 아직 수행의 진을 완전하게 본 적이 없군.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네. 그것은 좀 더 깊은 곳에 닿아 있지.”

“무슨 말씀이신지?”

진경이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원의 시선이 은결 부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안스러운 눈길로 은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결이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칸트 인식론이었네.”

그렇다면, 은결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칸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진경은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칸트입니까. 굉장하군요. 그런데 그것이 왜?”

“칸트 인식론은 자네도 알다시피, 인식론의 역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고 하지. ...수행이 진법을 마무리 짓는 장면을 잘 살펴보게. 자네라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있겠지.”

진경은 묵묵히 도원의 말에 따랐다. 수행은 은결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진을 계속 그려나갔다. 진을 구성하는 기호를 읽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황홀함을 느낄 만큼 완벽한 구성의 마법진이 빠르게 완성되어 나갔다. 벌써 몇 가지 소형 진이 완성되어 홀황한 빛을 뿌렸고, 그 작은 진들은 다시 수행이 그린 선을 따라 거대한 진에 통합되어 나갔다. 그리고, 수행이 그러던 선이 시작한 지점에 가 닿았다. 그는 나뭇가지를 떼고, 은결의 손을 놓은 다음 아들의 눈을 바라봤다. 은결은 아버지의 눈길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천천히 진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지켜보던 진경이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진의 마무리를 대신하다니...”

진경의 말에는 조금 질투가 섞여들어 있었다. 은결이 진의 마무리를 맡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결이 저 복잡하고 아름다운 마법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수행이 그려낸 진은 그것을 그릴 수 없다 해도, 읽어낼 수 있다는 하나 만으로도 자신의 능력을 자부해도 좋을만한 기호의 총화다.

은결은 자신을 향한 그런 눈길을 모른 채 차분한 걸음으로 진법의 중앙으로 들어가 기를 운행시켰다. 그의 오른손이 파랗게 빛을 머금었다. 두 사람의 작업을 바라보며 표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성호를 긋거나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나왔다. 은결은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 빛을 머금고 있는 오른 손을 내려쳤다. 세연의 복부가 있는 자리다.

-후아앙-!

바람과 빛이 동시에 퍼졌다. 이윽고 세연의 배 바로 위로 기가 선명한 손바닥 모습을 하고 덩어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진 전체가 번쩍이는 빛을 내뿜었다. 완성된 진이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개산 정상으로 누구나가 눈물을 흘리고 말 것 같은 압도적인 숭고함이 퍼져나갔다.

그 신성한 숭고의 느낌에 진경은 등골이 오싹오싹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도원이 왜 칸트를 이야기 했던 것인지, 수행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던 것인지 깨달았다.

칸트 인식론이 이룬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란, 인간은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선험적 범주를 통해 세상을 구성하고 해석한다는 점을 드러낸데 있다. 그리고, 수행이 그린 진의 마지막 구성 요소는 사람의 손바닥이었다. 마지막 기호는 대게 핵심적인 기호다. 그런데 손바닥은 흔히 겉으로 드러난 정신이라 불리며, 언어와 정신, 혹은 이성의 다른 표현으로 쓰인다. 그럼으로 손바닥은 인간의 유니크함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표상이다.

이것들이 연결해보면 나오게 되는 결론은 명백했다. 수행의 방법론은 인간을 신이나 자연에 귀속시키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야 말로 신성의 발현이라는 세계관 위에서 가능한 방법이다. 지독할 만큼의 인간중심주의.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게 신을 섬겨, 그 힘을 빌어 자신의 능력을 발현시킨다. 제마를 업으로 하는 다른 사람들이 수행의 방법론에 심하게 반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근본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도원 선사의 말 대로였다. 쉽지 않다. 진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

-꽈르릉-!

번개가 한층 거세게 몰아쳤다.

*저는 한 번도 매니악한 글을 적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이제와서 대중화 선언-! 이라 선언할만한 건덕지도 없습니다. 클라우스 때도 대중적인 글을 적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클라우스를 적으며 먼치킨에 하렘을 전면에 내세울 이유가 없었습니다.

*역시, 이 글의 호응이 낮다면 그것은 제목 때문이라기보다 독자의 자발적인 도움을 얻어낼 만한 글이 아닌 탓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독자의 자발적인 도움을 얻어낼 만한 글이 되도록 하던가, 접던가의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겠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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