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희망을 위한 찬가 - 읽지 않을 수 없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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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지만 평소처럼 5시 경에 집을 나서 산으로 향한 은결은 마찬가지로 평소처럼 7시 경이 되어 귀로에 올랐다. 약수도 충분히 받았고 8시 정도에는 아침밥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데 돌아오는 도중 집 근처에 차가 한 대 주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
새끈하게 잘 빠진 차라서 차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은결도 속으로 멋지다고 감탄했다. 차 앞 엔진부 근처로는 차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기대서 있었다. 정장으로 몸을 감싼, 날렵한 인상의 사내였다. 나이는 20대 중반? 대한민국 남성의 숙명인 군대를 고려하면 아직 대학생으로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은결은 별 관심 없이 그를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어이.”
그런데 그 남자가 지나가는 은결을 불렀다. 겉만 봐도 나이차는 확연했지만, 그래도 초면인데 네가지가 없는 말투다. 하지만 은결은 착해서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쓴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신지?”
“네가 은결이라는 놈팽이냐?”
은결은 착하지만 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면에 말씀이 과하시군요.”
“미안한데, 나도 사실은 좋은 사람이거든. 너 같은 놈이 내 동생에게 접근한다는 게 불쾌해서 이러는 거니 이해해라.”
그는 세연의 오빠인 모양이었다. 한데 세련된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칠고 경멸적인 어조였다. 은결은 입술을 물었다. 눈앞의 사내에 대한 불쾌감도 있었지만 그 보다 세연에 대한 불쾌감이 더 컸다. 신뢰할만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이름이 드러난 것을 보자면 전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어차피 한두 번 이상 지속될 만남은 아니었다. 그런 스치는 듯한 만남에서 믿을 수 있니 없니를 말하는 것 자체가 가소로운 일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금세 정리됐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은 상처받지 않는다. 은결의 표정이 풀렸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그러나 조롱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동생분과 만날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편견과 의심에 물든 마음에는 배려와 양보와 진실이 무의미한 모양이다. 사내는 이번에도 외양과 어울리지 않는 험한 말투로 맞받았다.
“흥. 반병신의 자식이 하는 말 따위 누가 믿을 수 있을까봐.”
은결의 분위기가 변했다.
“당신, 무례함이 지나치군요.”
“당신? 나이도 어린 자식이 못하는 소리가 없군. 하기야, 아비가 병신이니 못 배워 처먹은 티를 내는 것도 당연한가.”
사내의 조롱은 그치지 않았다. 은결은 성큼 그에게로 다가섰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 몸을 뒤로 물리려다 차에 막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은결보다 키가 컸지만 차가운 표정으로 육박하는 은결의 분위기는 그런 키 차이를 간단히 상쇄하고 무시하기 힘든 위압감을 형성했다. 눈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취소해.”
은결의 눈동자는 차갑고 맹렬했다. 사내의 입 꼬리가 약하게 올라갔다.
“너, 잘하면 치겠다?”
“취소하라고 했다.”
“웃기는 놈이군. 병신의 자식을 병신의 자식이라 말하는 것도 문젠가?”
사내의 시선도, 불쾌하게 올라간 입 꼬리도, 내뱉는 말투도, 여전히 물러섬 없이 모멸적이었다. 은결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혹은, 참을 수 없었다. 은결의 주먹이 허공을 날았다. 목표는 사내의 얼굴이다.
-탁!
한데, 은결의 주먹이 사내의 손바닥에 가볍게 잡혔다. 은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일체의 기를 운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육체능력 만으로도 은결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 실전 경험은 물론 담력까지 생각하면 은결은 이런 종류의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이리도 간단히 막혔다.
“사람 여럿 패본 주먹인데? 아비라는 작자가 어떻게 병신이 됐는지 보이는군. 깡패새끼.”
으득. 은결은 이를 갈았다. 속에서 견디기 힘든 뭔가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은결은 약하게, 아주 약하게 기를 운용했다. 사람을 상대로 기를 운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나, 이 무례한 자에게 한 방 먹여주지 않고서는 마음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주먹으로 기가 모여들어 춤추는 힘을 구성했다. 은결은 그 주먹을 날렸다.
그는 이번에도 은결의 주먹을 막았다. 은결의 눈이 커졌다. 어이가 없었다. 약하다고는 하지만 기를 운용했다. 인간으로서,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다. 인간이 육체로 이룰 수 있는 성취의 극점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이 애송이가!”
사내가 버럭 외치며 은결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은결에 지지 않는 육중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은결의 몸이 움찔, 떨렸다. 사내의 태도가 방금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조롱과 경멸은 없었다. 대신 분노만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그가 주먹을 날렸다. 은결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손이 상대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며 공격 경로를 막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은결의 아랫배로 격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읏...!”
은결은 허리를 꺾었다. 하지만 시선은 상대에게서 거두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은결은 다리를 바닥에 묵직하게 대고 한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거대한 힘이 움직이며 은결이 발 디딘 아스팔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공격은 진짜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거대한 맹수도 이 일격이면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를 읽자마자 몸이 그리 움직였다.
“흥!”
하지만 이 공격도 세연의 오빠라는 남자는 손바닥으로 막아 넘겼다. 아무리 육체를 단련한다 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뼈나 근육, 살점이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명백하다. 그것은 단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은결은 얼른 손을 빼고 그와 거리를 뒀다. 그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당신-”
“도천시도 큰일이군. 자기 제어는커녕 언제 힘을 사용해야 할지도 올바로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천둥벌거숭이가 담당하고 있으니.”
그리고 사내는 경멸적으로 혀를 찼다. 은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도 자신과 ‘같은’ 인종이다. 은결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당신, 정말로 세연양의, 오빠?”
“그래.”
“오빠라면 그녀의 체질을 알 텐데 어째서-”
여러 가지로 물을 게 많지만 은결은 우선 그 점을 물었다. 사내는 잠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은결에게서 호신부를 받았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가볍게 혀를 차고 말했다.
“그 아이가 그날 우연히 호신부를 놓아두고 갔을 뿐이야. 정말 로또적인 확률이지.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너를 찾아온 것은 도무지 용납 못할 네 미숙함 때문이니까.”
“미...숙?”
은결이 중얼거렸다. 세연 오빠의 표정이 좋지 않다.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약하게 중얼거리는 은결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버럭 외쳤다.
“한심한 놈! 이 일을 하다보면 우연히 최면이 통하지 않는 특이 체질의 소유자를 만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인 관계는 되도록 피해야해! 한데 그 상대에게 이리도 간단히 자신의 신분과 거처를 노출시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 그건-”
사내는 흐트러진 정장 윗도리를 어깨를 털어 정리했다.
“자질이 의심스러워 시험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런 말 몇 마디에 넘어가 상대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힘을 쓰질 않나, 대체 무슨 생각이지! 만일 내가 정말로 보통 사람이었다면 어쩔려고? 꼬마야, 너는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올바른 자각을 가지고 있긴 한 거야?”
“나는...”
은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옳았다.
“칫, 이래선 수행 선배도 다 됐단 소릴 들어도-”
하지만 붉게 무너지던 은결의 표정이 거기서 강하게 굳었다. ‘수행’은 은결 아버지의 이름이다. 그의 눈길에 다시금 맹렬한 감정이 깃들어 타올랐다. 은결은 포효했다.
“아버진 상관없어!”
사내는 샐쭉하니 웃었다.
“큭,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는-”
“그쯤 해 두게.”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은결의 집 대문으로부터 노인이 걸어 나왔다, 은결의 할아버지다. 두 사람 모두 그의 등장에 타오르던 감정을 죽이고 시선을 모았다. 은결의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비축분을 만들어 느긋하게 지내자! 가 당연 목표입니다만(게으르다보니) 쉽지 않습니다. 얼른 한 10화정도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요.
*여러분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기를.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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