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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13화 (13/300)

#   13-희망을 위한 찬가 - 읽지 않을 수 없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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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의고사가 끝났다. 잘 친 학생들의 얼굴로는 늘 그러하듯 희색이 만면했다. 못 친 학생들은 어차피 모의고사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대게 엘리어트의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를 곱씹어 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미래는 삐진 게 아직 덜 풀린 데다 시험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오늘 은결과 따로 귀가하기로 했다. 연필 굴리기의 성과가 안 좋았던지 민성은 풀 죽은 얼굴이었다. 그는 우울함을 털 겸 은결에게 오늘 같이 놀러가자고 권했지만, 은결은 중요한 용무가 있다는 말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민성의 입에서 "에라이 왕따야!"라는 정당한 평가가 되돌아왔다. 한두 해 왕따 노릇을 한 게 아닌지라 은결은 "훗." 하고 가볍게 씹었다.

집으로 돌아온 은결은 어른들께 인사하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로 목재 하나와 목공예 도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마련한 물건이었다. 은결은 확인차 목재를 손에 쥐고 기를 운용했다. 나뭇결 하나하나에 스며들어가는 힘의 흐름이 상쾌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런 품질이었다. 모두 세연이란 아가씨에게 건네주기로 한 호신부를 만들기 위한 준비였다.

은결은 세연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요 며칠간은 자기도 준비가 덜 됐고, 시험이니 뭐니 해서 전화를 삼갔지만, 호신부를 만들기 전에 물어볼 것도 있고, 전화할 필요가 있었다. 발랄한 고등학생다운 유쾌한 음악소리가 수화기로 들려왔다. 곧 "여보세요."하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저, 세연 양입니까?"

"아-"

조금은 놀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다. 조금 기뻤다.

"은결입니다."

"그, 그때는 미처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죄송했어요. 원래 직접 만난 자리에서 말씀드려야 하는 건데, 전화로도 전하지 못했고."

감정이 가득 깃든 당황한 목소리로 세연은 서둘러 말했다. 은결은 작게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해온 일이니 만큼, 이렇게 작게 되돌아오는 호의와 감사가 한결 각별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건 괜찮습니다."

"휴, 다행이다. 실은 지난번 전화했을 때 통화한 여동생 분의 목소리가 어딘가 좀 화난 것 같아서 조금 걱정하고 있었어요."

은결의 표정이 굳었다.

"그,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연 양에게 화난건 아니예요. 그리고, 아마 다시 전화하실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연락하실 일이 있으면 저희 집은 피해주세요. 그때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제 동생에게도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비밀이거든요. 그러니 메일이나 휴대폰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는 휴대폰을 성실히 켜 놓을 생각이니까요."

"헤에, 그러신가요."

놀란 목소리가 돌아왔다. 친지에게도 비밀이라는 것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그보다, 오늘부터 호신부를 만들려고 하는데, 특별히 종교 같은 거 가지고 계세요?"

은결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니요."

"그럼 염주 형태로 호신부를 만들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은결이 만들 수 있는 형태 가운데 그게 가장 간편했다. 어차피 호신부의 효력 자체는 그 내부에 깃들게 하는 에너지의 크기와 내적 구조의 엄밀성에 달려 있기에 외적 형상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물론 외적 형상과 내적 에너지를 소통시켜 복합적인 효과와 힘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은결이 어쩔 수 있는 영역도 아니었고 필요도 없었다.

"그건- 좀... 가능하면 십자가라던가, 기독교 관련 상징을 가진 걸로 해 주셨으면 해요."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독교 관련 상징 조형은 은결의 손재주로는 좀 버거운 면이 있었기에 은결로서는 피하고 싶은 게 진심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세연에게 물었다.

"에? 무교가 아닙니까?"

"아, 종교인은 아니예요.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다른 장신구가 주로 기독교와 관련을 가진 상징을 취하는 것들이라서 염주는 좀..."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기독교적인 상징을 가진 장신구를 주로 한다? 조금 이상하다 싶었다. 하지만 은결은 개인의 취향에까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좀 피곤하겠구나 싶었지만 가능하면 원하는 대로 따라줄 뿐이었다. 정 못하겠다면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면 될 일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완성되고 나면 우편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은결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멀어진 수화기로 세연의 당황한 목소리가 흔들리며 들려왔다.

"아, 저기-"

"예?"

은결은 의아함을 담고 다시 수화기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 세연은 쑥스러운 듯 흐트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가, 가능하면 그때 직접 뵐 수 없을까요? 제대로 사례도 못 했고 꼭 제가 대접하고 싶은데."

호의는 고마웠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관계를 길게 지속하는 것은 여러모로 피해야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연은 최면이 안 통하는 희귀한 체질의 소유자인데, 이런 식으로 관계의 꼬리가 길게 늘어져선 앞으로가 곤란했다. 은결은 담백하게 거절했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세연은 의외로 다시 밀어붙였다.

"저, 제가 미안해서 그래요.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했고, 뭐 하나 해 드린 것도 없이 염치없게 받기만 받아서."

"아니, 정말로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부, 부탁드려요."

쑥스러워 하고 있고,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읽어지는 목소리였다. 그 가운데 결심 또한 굳건하게 읽어지는 목소리였다. 은결은 수화기 너머로 세연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 보일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양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젖은 눈망울로, 호소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조마조마하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상상하고 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이번 주말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고 있을께요."

세연의 목소리가 일시에 밝아졌다. 은결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조금 더 모질었어야 했다. 하지만 악의를 잘라내는 것과 달리 호의는 그렇게 냉담하게 잘라낼 수 없었다. 이럴 때는 고려할 것이 없는 악의에 직면하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며칠 전 민성과의 대화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꺼낸 것도 그렇고, 자신은 이런 종류의 호의에 아무래도 약한 모양이다.

"그냥 점심 값 벌었다고 가볍게 생각하자."

은결은 스스로를 설득하듯 중얼거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토요일까지면 그다지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손재주가 그다지 좋지 못한 은결로서는 쓸 만한 호신부를 하나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화의 흐름을 약간 조정했습니다. 쩝, 빨리 올린다고 그런 부분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변화가 없으나 디테일한 흐름을 자연스럽게 바꿨습니다. 조회수 200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 가운데 신경 쓰이는 분들은 체크해 보시길.

*양은 좀 적지만, 자르기에 흐름도 적당하고 카닉 님께 추천 받은(감사) 기념으로 올립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양도 적지 않습니다. 에헴.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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