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4화 (4/300)

#   4-희망을 위한 찬가 - 소년, 은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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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은결은 옷을 갈아입고 곧장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의 바쁜 발걸음이 멈춘 것은 집에서 자전거로 30분 정도 떨어진 도천시 시내의 한 술집의 뒷문 앞에서였다. 자전거를 문 옆에 세워두고 자물쇠를 채운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자갈을 깔아놓은 가게 뒤의 공터에는 여러 탁자가 놓여 있었고,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열 오른 대화를 나누며 차가운 술을 들이 키고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 화덕에 놓인 불판 위에서는 고기 굽히는 소리가 지글지글 시끄러웠다. 무심한 눈길로 그 광경을 스치고 은결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바깥보다 조금 더웠고, 대기는 연기로 희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 시끄럽고, 사람들의 열 오른 대화는 한결 소란스러웠다. 말 사이에 담긴 세상에 대한 그네들의 불만은 화덕의 타오르는 숯처럼 뜨거운 것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은결의 눈길은 여전히 무심했고, 그의 시선은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바 너머로 노인 한 명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결의 할아버지였다.

“다녀왔습니다.”

“왔구나. 미래는?”

“집에 있어요. 아마 지금쯤 책이라도 보고 있겠죠. 아니면 놀고 있던가. 식사라도 만들어 주고 나올까 싶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나왔어요. 오늘 바람결에 느꼈거든요.”

‘시간이 없다.’라는 말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반대로 은결은 웃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하루 이틀 하는 일도 아니고, 되려 아직 미숙한 탓에 걱정을 끼쳐드려 제가 죄송한걸요. 더구나 좀더 능숙했더라면 쓸데없는 피해도 줄일 수 있을을테고...”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은결은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지만 조금 슬퍼보였다.

“조심해라.”

“예. 얼른 갔다 와서 도와드릴께요.”

“기다리마.”

“예.”

그리고 은결은 가게를 뒤로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은결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골목을 헤메고 있었다.

-후, 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끊임없는 욕망과 흐트러짐, 말할 수 없는 혼돈 가운데 이지러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그것은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통합된 상이거나 이미지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 한올한올이 이야기하는 답답함이 스스로 고해오는 과거의 흔적. 자기보다 먼저 존재하던 자기의 시원이다. 그것은 싱그러운 초록빛 삶의 순간들이 무너지고, 뼈저린 뜨거움과 메마름이 끔찍한 빛살 아래 익어가던 아득함-에 더해진 몇 가지 생각의 파편.

공포도 아니었고 욕망도 아니었다. 분명히 공포와 욕망에 닮아 있었지만, 먹이를 쫒는 맹수의 욕망도, 맹수에게 쫒기는 먹이감의 공포도,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무언가 와는 거리가 있었다. 자신은 자신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한 순간 생겨나, 삶이란 것을 던져 넣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전에, 자신은 공포가 무엇인지 욕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게 되었던 것일까?

-아, 으-

터무니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배고프다는 것 뿐. 무정형의 검은색 욕망이었다. 그 검은 구멍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먹는다, 라는 관념은 알고 있었지만 ‘먹는다’라는 관념을 자신이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먹는다-라는 관념에서 자동적으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길쭉한 고기 덩어리와 불쾌한 붉은색 살덩어리의 사이로 벌어진 구멍, 혹은 구멍과 함께 비치는 하얗고 딱딱한 이상한 덩어리들. 길쭉한 살덩어리. 붉은색 살 사이로 벌어지는 구멍. 그것이 먹는다, 라는 관념의 이미지. 그러나 어떻게? 자신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자신의 관념은 자신에게 불가능한 방법으로 자신의 검은색 굶주림을 채우라고 속삭였다. 불가능한 방법. 해결할 길 없는 욕망. 분노만이 커졌고, 그는 고함을 질렀다. 그때마다 주변은 소란스럽게 들떴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고, 돌덩이가 날았고, 잔모래가 날며 주변이 황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크, 하-

최초로 인간을 만난 것은 그런 반복되는 분노와 좌절 가운데서였다. 한눈에 인간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무섭고 기쁜 ‘무언가’였다. 먹이를 쫒는 맹수의 욕망. 맹수에게 쫒기는 먹이 감의 공포. 그것들과는 다른 욕망과 공포가 무엇인지, 그 인간을 보며 분명하게 알았다. 질적으로 다른 욕망과 공포의 교차였다.

이유 없이 쓰러뜨리고 싶었고, 이유 없이 무서웠다. 인간이기에. 쓰러뜨리면 얼마나 기쁠까. 짓밟고 올라서면, 그것은 얼마나 커다란 쾌락일까. 인간은 ‘붉은 살덩이 사이의 구멍과 길쭉한 살덩어리-’ 라는 관념 그 자체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공격했고, 죽였다. 단지 그것만으로 배고픔이 해결됐다. 검은 색 구멍이 메워졌다. 전신으로 빨아들인 인간의 공포는 못 믿을 만큼 달고 맛있었다.

-끅끅 끄륵끄륵-

아아, 인간이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달고, 그것만이 맛있었다. 그것을 짓밟아 공포 가운데 죽이는 것만이 굶주림을 채우는 방법이었다. 알 수 있었다. 인간은 무섭지만, 인간은 증오스러웠고, 인간은 달콤했다. 오늘도 한 인간을, 그 전율스런 공포를 뛰어넘어 인간을 짓밟고, 그 승리를 통해 세상 모든 것 같은 감로를 맛 볼 것이다-

-끄륵끄륵 큭, 그, 끅-

‘그것’은 목소리가 되는 못하는 소리로 짜내듯이 웃었다.

“다행이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높아지면 피곤할뻔 했는데.”

뭐지? 뭘까? 갑자기 ‘그것’의 앞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무 것도 이런 인간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인간이다. 무섭지만, 약하고, 너무나 맛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덤벼들었다. 주변의 대기가 날카롭게 춤췄다. 돌을 날리고, 나무를 쓰러뜨리고, 오늘 낮에는 인간을 쓰러뜨리고 비명 지르게 한, 자신의 수족. 자신의 바람이다. 그때도 이 바람으로 인간을 쓰러뜨렸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가능할 것이다. 대기가 샤악! 소리를 내며 예리하게 인간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인간은 맞지 않았다. 펑! 소리가 난다 싶더니 그것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은 당황했고, 다음 순간 끔찍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끔찍한 것이 그의 전신을 급습했다.

-우, 우, 우아-!

‘그것’은 벼락처럼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이 끔찍한 것은 ‘고통’이라는 것이었다. ‘고통’은 싫었다. 고통은 무서웠다. 고통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하늘로 올려가려 했다. 인간은 날지 못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순간 인간이 서 있었다. 인간은 대지와 닿아 있는 긴 살덩어리를 들어 올리더니 빠르게 아래로 내던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의 몸 위쪽으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 소멸되지 않다니... 역시 주변의 파괴를 감수하고 공격하는 수밖에 없나. 후, 아직 잘 못하는데.”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것은 그 인간이 무서웠다. 왜 이런 무섭고 아픈 꼴을 당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선과 악이라는 관념이 떠올랐다. 정의, 징벌, 훈육, 예방- 등의 관념이 쏟아지듯 떠올랐다. 필요 없었다. 욕망은 선악에 우선한다. ‘그것’이 분명하게 아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좋은 것은 해야만 했다. 내게 싫은 것은 없어져야만 했다. ‘그것’에게는 그것 만이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자세를 잡은 인간의 손이 빛났다. 달과 닮은 빛이었다. 그 빛은 감싸듯이 주변을 밝혔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인간의 손이 움직였다. 인간의 발이 대지를 찍어 쾅! 소리가 남과 동시에 퍼엉! 대기의 벽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것’의 솜사탕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던 전신이 인간의 손에 관통 당했고, 존재의 올올이 인간이 담던 빛에 녹아들었다. 그 고통과 소멸 가운데서 ‘그것’은 계속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선을 이룬다지 않던가-

그리고 ‘그것’은 완전히 흩어졌다.

“후우...”

그는 한숨을 쉬고 복도 한쪽 벽으로 등을 기댔다. 가로등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은결이었다. 그는 쩍쩍 금이 간 길바닥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제대로 된 지능조차 구비하지 못한 초기단계의 ‘존재’에게도 이런 흔적을 남기다니, 이래선 곤란했다. 외국에서는 식신이니 고렘이니 하는 존재를 만들어 부림으로서 이런 파괴현장을 깨끗하게 처리한다던데, 미숙한 자신으로서는 그런 존재를 부려 뒤처리를 하기는커녕 제대로 싸우기만도 버거웠다. 이런 이질적인 존재들과 맞설만한 전투력을 구비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최면 결계 정도가 최선이었다.

‘뉴스에 날만한 장면은 아니라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지...’

은결을 고개를 저으며 바닥을 박찼다. 그는 허공을 날듯이 떠올라 담장위에 몸을 세웠다. 3미터는 가뿐했다. 그리고 은결은 다시 담장을 박찼다. 은결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발밑으로 빛의 원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자와 한글의 복합적인 문장과 함께 3차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은결의 몸이 막 발사한 미사일처럼 허공으로 올라갔다. 기세를 봐선 주변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지고 근처에 사람들이 있었다면 고막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광경이다. 하지만 주변의 대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정적은 지켜졌다. 기(氣)로서 대기를 고착시켰기 때문이다.

은결의 몸이 상승을 멈춘 것은 도천시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상공에서였다. 멀게 서울의 모습도 보였다. 발아래의, 휘황한 빛에 휘감긴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은결에게 아련한 영광과 깊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사람은 밤을 몰아냈고, 그로서 남은 시간을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은결은 눈을 감았다. 생각을 끊었다. 고민해도 무의미한 문제였다. 그는 달빛을 바라보며 발을 박찼다. 허공을 밟은 은결의 몸이 멀게 날았다. 그는 어서 할아버지에게 가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몰아낸 밤 자리를 아침의 태양이 대신하기까지 남겨진 시간은 아직 길었다. 그러니 어서 돌아가 할아버지를 도와야 했다.

*챕터 끝났습니다. 이로서 본 글의 정체성이 드러났습니다.(...)

*본 글의 무대인 도천시는 서울 근교 어딘가로 설정한 가공의 공간입니다.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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