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죄의 값(2)
재준은 준수가 당황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준수는 이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뭔가 알고 있구나? 이 남자가 누구인지?”
준수는 지금 이 차장이 순하게 살고 있는 마당에 재준을 알게 하는 것이 맞는 건가? 싶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거기다 재준은 지금 이 차장을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괜히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일이었다.
“누구? 이 남자? 이 남자는 나도 모르지. 다만 해리 씨가 이렇게 남과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 놀란 거지 뭐.”
재준은 그제야 수치심을 느끼고 사진을 회수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 이게 왜 찍혔는지는 모르지만 해리는 그 시각 그 단란주점에 간 적이 없어. 이건 조작이야.”
“이게 조작인데 이 남자는 대체 왜 찾으려는 거지? 그 사람도 이걸 모를 수 있잖아?”
준수는 어떻게든 재준이 이 차장을 찾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준수 차원에서 막아야 크게 번지지 않을 테니까.
“그럼 누가 이 사진을 조작한건데? 이 사진이 나오면 이득을 볼 사람이 조작한 거 아니냐고?” “그니까 이 남자가 이 사진으로 이득을 볼까? 이 남자도 가정이 있을 텐데 굳이 이런 사진을 조작해서 뭔 이득을 보겠어?”
이 차장은 조금 늦게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다. 이런 사진은 그의 가정에도 좋지 않을게 뻔하다.
“아, 그렇겠네.”
“그니까 굳이 이 남자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냥 사진을 태우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준수는 재준의 사진을 태우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준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난 이 사진이 괘씸해서 그러지. 이 남자가 해리의 스토커인가? 해서 말이지.”
“이 사진을 찍은 게 누구인데?”
“마담이 찍었다는데?”
“근데 이 남자가 무슨 스토커야. 스토커가 직접 사진을 찍었어야지.”
스토커는 사진을 찍어서 모으는 사람이니,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스토커지 이 차장이 스토커가 될 수는 없다. 그걸 제대로 설명하면 사진도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아, 그렇겠네.”
“그니까 굳이 망자가 된 해리 씨에게 분노하지 말고, 망자를 모욕하지 말고 그만 둬.”
준수는 재준이 해리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걸 조금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리를 모욕하겠어? 난 해리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래, 그니까 해리 씨를 추모하라고, 추궁하지 말고 말이야.”
“알았어. 일단 그렇게 할게.”
“일단이 아니고 그냥 태워버려. 난 이런 사진을 보는 것 자체가 좀 그렇다.”
“알았어.”
재준은 준수의 조언대로 사진을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뭔가 찜찜한 것이 남아서 사진을 태우지 않고 보관하였다. 그게 또 화근이 된다. 어쨌든 이 차장과 재준은 만나는 것이 수순이었다.
얼마 뒤, 마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사진 속 남자를 찾았습니다.”
“어? 정말입니까?”
마담은 이 모든 것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자기가 사진을 조작했다는 누명만큼은 벗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이 차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는 단란주점의 사장에게서 이 차장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 차장이 검사라서 과거에 접대를 한 번쯤 받았던 것이다.
“이창민 검사? 정말 확실한거죠?”
“네, 알아보시면 맞을 겁니다. 그럼 저는 해리 사진을 조작하지 않은 사람이란 건 믿으시는 거죠?”
“네, 그걸로 마담이 뭔가를 얻을게 없으니까 당연한거죠.”
“그니까요. 부디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해리에게 빚을 갚고 싶어서 찾아간 거라고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재준은 바로 이 차장의 정체를 알아내었고, 그가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 * * * *
이 차장은 재준이 찾아오자 손님인줄 알고 친절하게 직접 차를 가지고 왔다. 요즘 부쩍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 오는 걸로 봐서 자기의 인생도 좀 피는 것이 아닌가? 하며 기분이 좋았다.
재준은 이 차장의 행색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사진 속 이 차장은 아주 거만해 보였는데, 이 사람은 생김새만 같을 뿐 거만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다 이 사람은 옷도 중저가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사진 속 명품은 단추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 사람이 정말 사진 속 남자인가 의심이 들을 정도였다.
“변호 맡기시려고 오셨습니까?”
이 차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 좀 있어 보이는 남자가 자기를 뽑아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변호요?”
재준은 이 차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혹시 쌍둥이 입니까?”
재준의 생각에 이 차장이 사진 속 남자가 아니라면 사진 속 남자는 이 차장과 같은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가 쌍둥이가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쌍둥이요? 아닌데요?”
이 차장은 재준이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치만 그에게 무례하게 할 이유는 없기에 끝까지 친절함을 유지했다.
“진짜 아니에요? 혹시 모르는 거 아닙니까? 부모님한테 물어보시고.”
그러자 이 차장이 발끈하며 화를 냈다.
“우리 부모님 그런 분들 아닙니다. 저를 얼마나 열심히 케어해 주셨는데요. 아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시던 분인데요?”
“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재준은 이 남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진을 꺼내들었다.
“그럼 이 사진은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이 차장은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굉장히 억울하고 슬픈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모르는 일인데요? 여기가 어딘가요? 이 여자는 누구죠?”
재준은 이 차장의 표정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이 차장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제 아내입니다.”
“네? 이 여자가 저랑 키스를 하다뇨? 말이 됩니까? 저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요?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네요?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 차장은 지금 상황이 매우 황당했다.
재준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이 남자가 최소 해리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른다? 그것도 표정을 보아하니 진실 같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재준은 이 남자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전체 사진을 본다면 어쩌면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이게 해리의 전체 사진입니다.”
“어디 봅시다.”
이 차장은 해리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왜인지 모를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이 차장은 왜 그러는지 모르는 눈물이 나오자 당황하며 얼른 눈물을 닦았다.
재준은 이 차장이 해리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에 황당하였다. 분명 뭔가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눈물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본적이 없는 여자입니다. 매우 미인인 것은 확실하네요.”
“지금 눈물이 나온 것이 왜 나왔는지 모른다고요? 이상하네요?”
이 차장은 재준의 질문에 매우 당황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모르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니까요. 저도 의문입니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이겠죠. 이 여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재준은 이 차장의 표정을 보고, 그가 최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알겠습니다.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뭘 생각해요? 난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변호 맡기러 오신 거 아니면 다시 오지 말아주세요. 반갑지 않네요. 당신은 얼굴도 모르는 나를 불륜남으로 몰고 있잖아요? 저는 불쾌합니다.”
“아, 그게 아닙니다. 일단 가보겠습니다.”
“네 가주시죠.”
재준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차장은 재준이 빨리 가주기를 바라며 따라 일어섰다.
재준은 문을 나서려다 말고 이 차장을 향해 말했다.
“제 아내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쪽을 고소하고 그러려는 게 아님을 알아주시죠.” “아…… 네.”
재준이 가고, 이 차장은 자리에 앉았다. 허무한 얼굴로.
“왜 죽었지…….”
그리고 이 차장은 울었다. 해리를 위해서.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른 채 한동안 계속해서.
그 모습을 본 사무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차장이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 * * * *
재준은 이 차장에게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서 자꾸 신경 쓰였다. 이 차장에게 뭔가 이득이 될 만한 것을 주면 실수를 만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서를 시켜서 이 차장에게 연락하였다. 바로 회사 내 변호를 맡아달라는 이야기였다.
“네? 그 회사 꽤 이름이 알려진 회사 아닌가요?”
재준의 회사는 아주 유명하진 않고 그냥 중간 정도의 규모이다. 이 차장 입장에서는 아주 대단한 제의임에 틀림없었다. 이 차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승낙하였다.
재준의 회사 사장실, 이 차장과 재준이 다시 만났다.
이 차장은 재준을 알아보고 얼굴을 붉혔다.
“어? 여기 사장님이시군요?”
“네, 뭐 그렇습니다.”
“아, 저번에는 제가 실수했습니다. 저에게 의뢰를 하러 오신 거군요.”
“아닙니다. 그냥 여러 가지 의문이 있어서 갔다가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아, 어쨌든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차장과 재준은 그렇게 같이 일하게 되었다. 재준이 갑이고 이 차장이 을인 상황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사이좋게 한 달이 지났다. 재준은 사실 이 차장을 곁에 두고 지켜보고 싶었다. 이 차장이 정말 해리를 모르는 건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더 일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같이 있는 한 달 동안 이 차장을 의심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차장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결론까지 이어졌다. 사실 두 사람은 워낙 죽이 잘 맞았던 사이니까.
준수는 두 사람이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매우 당황하였다. 둘이 왜 그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둘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준수로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다른 방도도 딱히 없었다.
재준과 이 차장이 잘 지내고 있을 때, 갑자기 일이 터졌다. 바로 비서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날 사장님이 왔다 가시고 우리 변호사님이 한 시간이나 울었잖아요. 감동 먹어서.”
“네? 그날 이 변호사가 울었다고요?” “네, 저는 이 변호사님이 우는 걸 그날 처음 봤다니까요?”
재준은 이 변호사, 즉 이 차장이 해리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해리와 이 차장이 지냈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꿈으로 보게 되었다. 그것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고, 구체적이었다. 그렇게 재준은 이 차장에게 극도로 분노하게 된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