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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96화 (196/200)
  • 196화. 노랑머리는 책임져야지(3)

    노랑머리는 앞서 다른 선생님이 제안했던 대리시험을 하자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생각에도 그게 나은 것 같았다.

    하지만 준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맘때 언젠가 수능 비리가 터진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준수는 수능을 두 번 치른 준희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준희에게 부탁하자. 준희가 수능엔 일가견이 있거든.” “준희? 박준희 말이죠?” “그래, 준희라면 니 부탁을 들어줄 거야. 네게 빚이 좀 있으니까.”

    “빚?”

    준희는 자기 때문에 노랑머리의 성공한 인생이 전부 사라진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는 도움을 주겠다는 말도 한 적이 있었다.

    “응, 니가 잘 되길 바라는 애야.”

    “뭔 빚까지. 준희 검사님께서 도와준다면 진짜 감사한 일이죠.”

    “그래, 그럼 당장 준희에게 가자.”

    “네!”

    두 사람은 서둘러 준희에게로 갔다.

    준희는 노랑머리를 보자마자 그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내가 꼭 대학에 보내줄게요.” “아, 지……진짜로요?”

    “네, 제가 책임지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저야 감사한데…… 혹시 지금 임신 중이세요?”

    준희는 최근 둘째를 임신해서 태교 중에 있었다. 노랑머리는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배를 보니 조금 나와서 그렇게 말했다.

    “네, 마침 아이 낳는 날짜가 수능 치르고 나서 몇 주 후에요. 그동안 태교한다는 마음으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와, 태교…….”

    준희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어차피 태교를 하니까, 그걸 수능 공부로 대신하면 아이도 똑똑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선생님들의 아이들이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곤 하니까. 아주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죠.”

    준희는 이미 집에다 칠판까지 만들어놓고 있었다. 준수가 미리 이야기했었기 때문이었다. 준희가 칠판부터 보여주자 놀란 노랑머리가 뒷걸음쳤다. 사실 그는 공부가 정말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지, 지금 당장요?”

    “빨리빨리 해야 합니다. 지금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잖아요?”

    준희는 하기 싫은 눈치의 노랑머리를 억지로 끌고 갔다.

    노랑머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마냥 슬픈 눈을 하고 준수를 쳐다보았다. 준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게 최선이었다.

    “조금만 참자. 출장 요리사 불러서 매일 맛난 거 해줄 테니 걱정 말고.”

    준수가 말해줄 수 있는 건 그 것 뿐이었다.

    노랑머리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노랑머리는 한 발짝도 집에서 나가지 못한 채 준희와 함께 특훈에 들어갔다. 준희는 태교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열심히 노랑머리를 가르쳤다. 애를 키우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대망의 수능 날이 다가왔다.

    * * * * *

    “내가 말한 거 명심하고 마킹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준희는 만삭의 몸을 하고 노랑머리를 배웅했다. 준희의 아기가 나오면 아마 천재가 나올 것이라고 노랑머리가 그랬다. 그만큼 정성을 다해서 노랑머리를 가르쳤으니까.

    “고맙습니다, 선생님.”

    노랑머리도 준희의 노력에 감동하여 열심히 배웠고, 이제 결전을 앞두었다.

    준수는 두 사람이 갑자기 너무 친한 것이 약간 질투가 났다.

    “이거 내가 소외된 느낌인데?”

    “아이고 아닙니다, 형님. 제겐 형님이 최고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 두 번은 없다! 알겠지?” “네! 선생님! 철썩 붙자!”

    노랑머리는 이마에 엿을 붙이고는 씩씩하게 들어갔다.

    “이거 교회에 가서 기도라도 해야 하나?”

    준희는 그만큼 이 프로젝트에 진심이었다. 완벽한 스파르타식으로 노랑머리를 가르쳤다. 사실 이건 이 차장이 준희에게 해준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준희는 언젠가 이 차장을 찾아가서 작은 보답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준희를 도와줬던 이 차장에 대한 보답으로.

    “잘 될 거야. 이제 가서 좀 쉬어라.”

    “어, 좀 피곤하긴 하네.”

    준수는 준희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따가는 은미가 노랑머리를 마중 나온다고 했다. 사실 은미와 노랑머리는 거의 몇 달 동안 보지 못했었다. 은미도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노랑머리가 시험장에서 나왔다.

    “자기야!”

    은미가 노랑머리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두 사람은 견우와 직녀 못지않게 서로를 얼싸안고 입을 맞췄다. 수능을 마치고 나오는 고3 학생들이 넋 놓고 쳐다볼 정도였다.

    “시험 잘 봤어?”

    은미는 노랑머리와 한참 키스를 주고받고 실컷 재회를 한 뒤에 이렇게 물었다.

    노랑머리는 은미에게 귀엽게 웃어주었다.

    “응, 잘 봤지. 시험지는 잘 봤어. 으하하.”

    “뭐야?”

    노랑머리는 시험을 잘 보긴 했다. 그게 노랑머리가 가진 상태에서는 최선의 점수였다. 대학에는 턱걸이로 들어갈 정도의 수준. 조금은 불안한 점수지만, 어쨌든 그의 능력 선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 * * * *

    준희는 노랑머리의 시험을 도와주면서 자꾸 이 차장이 생각났다. 그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오재훈이 그가 잘 지낸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재훈 몰래 그가 사는 곳을 알아보았다.

    이 차장은 검사를 그만두고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사실 그게 이 차장의 진짜 인생이었다. 원래부터 그는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런 그에게 당치도 않는 부와 명예가 주어졌으니 부작용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이곳인가?”

    준희는 이 차장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출산이 임박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가뿐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사무장이 딴 짓을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꼴을 보아하니, 사무실에 손님도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 차장이 최근까지 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자기가 근무했던 검찰청 근처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데, 그는 지금 서울에 개업했다. 부모님이 하도 서울에 차리라고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부모님은 지방에서 국밥을 팔아 아들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래서 더 지방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서울 변두리에 사무실을 차리게 되었다.

    “어? 서울 시장님 사모님이시네?”

    이 차장이 준희를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준희는 회귀 후 초반 이 차장을 본 뒤 처음으로 그를 본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우와 실물이 더 예쁘시다. 임신 중이시네요? 그럼 우유를 사와서 드려야겠네!”

    사무장이 촐싹거리며 준희를 맞이했다.

    이 차장은 준희를 벌써 알아보았었다. 박준수의 동생, 자기에게 화를 냈던 꼬맹이, 태권도 사건을 혼자 해결한 대단한 중학생, 오재훈의 아내 등등 준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준희가 잘 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뻤었다. 자기가 잠시 가르쳤던 제자라서 그런 것인가? 사실상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그 감정은 남아있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차장은 준희가 회귀하기 전에도 준희를 많이 아끼고 좋아했었다.

    준희도 이 차장이 폭주하기 전까지는 그를 많이 좋아했었다. 둘은 서로 말도 잘 통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준희는 더 이 차장에게 애틋하고 그랬다.

    “잘 컸네. 닭꼬치 먹던 꼬맹이가.”

    “어? 날 기억하세요?”

    이 차장은 준희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대체 왜 그런 것인지 본인도 알지 못하였다.

    “검찰청에 쳐들어왔던 그 꼬맹이잖아?” “우와 기억력 좋으시네.” “어려서부터 맹랑하더니, 정말 잘 컸어.”

    이 차장은 그때부터 준희를 좋아했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냥 좋았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여긴 와 왔어? 자네도 변호사 자격이 있는데?”

    이 차장은 준희가 온 것 자체가 좋았다. 언젠가 한번은 보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죠. 변호 부탁드리러 온 거 아닙니다.” “그럼?”

    준희는 무슨 핑계를 댈까? 하다가 결국 지금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냥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차…… 아니 이창민 변호사님을 만나고 나서 검사가 되기로 생각했거든요.”

    “그래, 그 태권도 사건은 내가 봐도 대단했지.”

    “그래서 그냥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같이 식사할 사람이 없더라구요.”

    그래, 밥 한 끼는 사드려야지. 그래야한 했다.

    “후후, 나도 마침 식사를 하려던 참이야.”

    “그럼 지금 가시죠. 한우로 사드릴게요.”

    “아니, 그건 그렇고 자네 신랑이 나를 안 좋아하는데 괜찮겠어? 아마 우리가 만난 거 알면 쫓아올지도 몰라.”

    “괜찮아요. 제가 꽉 잡고 있거든요.”

    “하하, 그럴 것 같더라니.”

    이 차장과 준희는 근처 한우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만나온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고 밥을 먹었다. 준희는 그 이후 몇 번 더 이 차장을 찾아가서 밥을 사주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에게 마음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 * * * *

    수능 발표 날이 다가왔다. 노랑머리의 성적은 앞서 답안지로 맞추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어떻게, 잘 되었어?”

    “그냥 예상한 대로 나왔지.”

    그러자 준희가 팔짱을 끼고 왔다 갔다 하였다. 뭔가 문제가 많은 듯 근심어린 눈빛이었다.

    “그 성적으로 대학을 가긴 어려울지 몰라. 아주 전략적으로 해야 해.” “이 정도 한 것도 기적이거든요? 아니 나보고 공부를 더 하라는 건 아니죠? 나 공부를 하느니 그냥 신부로 살랍니다. 평생 수절하고 살랍니다.”

    노랑머리는 시험지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 지긋지긋하게 공부를 했으니, 연필만 봐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저도 재수는 없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혹시 지방대는 안 된다고 한 건 아니죠? 지방대라면 가능성이 있거든요.”

    “지방대요? 아우 좀 그렇지만 한군데 정도는 넣어보도록 하죠.”

    준희는 노랑머리의 성적을 가지고 가장 좋은 곳에 넣으려 애썼다. 아슬아슬하게 합격하더라도 합격만 하면 되니까 상향지원을 하고, 넣으면 될 것 같은 곳에도 넣고 하며 나름 신중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대학 합격 발표가 시작되었다. 노랑머리는 상향지원을 한 곳은 전부 떨어지고 하향지원을 한 곳이 겨우 붙었다. 상향지원한 곳 중 두 곳에 예비 합격자 명단에 올랐지만 합격할만한 등수가 아니었다.

    “합격이다!!!!!”

    노랑머리와 이은미가 서로를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두 사람은 합격 확인을 받아서 바로 아버지에게 향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지방대는 안 돼!”

    “선생님 공증까지 마친 거 잊으신 건 아니죠?”

    “그래도 난 별로야. 지방대는 졸업하고 나서.”

    그 모습을 보던 준수가 혼자 피식 웃고는 아버지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예비합격한 곳에 합격하면 그땐 딴소리하시면 안 됩니다?”

    “거긴 확률이 없다면서요?”

    “그니까 합격하면 딴소리 안하시는 겁니다?”

    “그래, 그러지.”

    준수는 씨익 웃었다. 이제 며칠 후면 벌어질 일 때문이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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