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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76화 (176/200)
  • 176화. 이사장님의 꿈(1)

    “여보세요.”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방금까지 운 듯한 목소리였다.

    “준수 씨, 나 과장인데요.”

    나 과장은 이 사장님 밑에 있는 사람으로 이 사장님의 최측근이다.

    “아! 네. 근데 이 새벽에 무슨 일이세요?” “이 사장님이 지금 위독하거든요.” “네? 지금 어디 계신데요?”

    나는 전화를 받으며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많이 다급한지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다.

    “여기 한국대 병원입니다.”

    “사고인가요?” “암입니다.” “네?”

    이 사장님은 최근 암에 걸려서 투병 중이었다 하였다. 요즘 내가 한창 바쁘기 때문에 내게 알리지 말라는 특별지시가 내려졌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다.

    * * * * *

    한국대 병원.

    이 사장님이 계신 곳은 내가 전에 봉사를 했던 그 병동이었다. 암에 걸렸으니……

    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고 병실에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벌컥.

    “이 사장님!”

    1인 병실, 한쪽에 홀로 누워있는 이 사장님은 오랜 기간 투병을 해온 듯 부척 수척해져 있었다.

    “어, 준수야.”

    이 사장님이 나를 보고 반가운 듯 고개를 드는데,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5개월 정도 이 사장님을 보지 못했는데, 그 사이 너무 많이 야위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말씀 안하셨어요?”

    “어, 너 바쁘잖아.”

    이 사장님은 말에 힘도 없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던 이 사장님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 상태는 어떠세요?” “어, 수술하면 괜찮아진데. 나름 괜찮아 좋아.”

    “아, 다행입니다.”

    이 사장님은 수술하기 전 항암치료로 많이 수척해지긴 했지만, 경과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나면 전처럼은 아니겠지만,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말도 했다. 다행이었다. 그럼 왜 새벽에 갑자기 부른 건가?

    “어, 근데 오늘 내가 수술을 하거든. 수술이 잘 될 거라고 하긴 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너한테 회사를 맡기고 유서를 작성하려고.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어휴, 그럴 리가 있습니까? 잘 되겠죠.”

    “그래,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알았지? 나 죽으면 니가 내 대신 회사를 맡아서 해줘. 우리 애들은 아직 어리니까 너가 우리 애들 좀 챙겨주면 되잖아.”

    “휴,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꼭 잘 될 겁니다.”

    이 사장 같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회귀의 반지라도 줘서 다시 살아나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내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이 사장이 말했다.

    “나는 한평생 알차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살아도 이거보다 더 잘살 것 같지 않아. 나름 만족한 삶을 살았다.”

    “그럼 앞으로의 꿈은 없으십니까? 그런 걸 이루기 위해서는 꼭 다시 일어나셔야죠.”

    “하하, 그래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어.”

    “그게 뭔데요?” “방송사를 차리는 거야.” “아…….”

    “뭘 아야? 내가 못할 것 같아? 내가 회사명을 왜 미디어로 했는데? 원래 그쪽으로 하려고 했었다고.”

    이 사장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이렇게 그냥 죽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역사를 이룰 사람이다.

    “그럼 꼭 해내셔야죠. 그러려면 우선 빨리 완쾌가 되셔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러고 싶구만. 그럼 내가 또 부탁을 하지.”

    “무슨 부탁이요?”

    “내가 암을 이기고 일어나면 나를 도와서 방송국을 만들겠다고 해.”

    “아…….”

    “뭘 아야? 안 할 거야? 안 하면 나 그냥 죽는다?”

    “네?” “나 일어나라면서? 못 다 이룬 걸 생각하니 이대로 못 죽을 것 같아. 갑자기 말이야.”

    사람은 워낙 그렇다. 목표가 생기만 없던 힘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하. 이해합니다. 그러면 꼭 일어나셔야겠어요.”

    “그니까 너가 도와준다고 약속해야 일어난다니까?”

    “네네, 그럴 테니까 얼른 털고 일어나시지요.”

    “휴.”

    이 사장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내가 버틴 게 너 때문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 네가 필요한데도 그렇지 않다고 나를 눌렀었어.”

    이 사장은 지난 순간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음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나는데, 그 속엔 항상 준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가 도와준다면 꼭 일어나서 방송국을 차릴 거야. 케이블이지만 정말 대단한 방송국을 말이야.”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었다. 그때 케이블 방송국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곳이 많았으니까. 그만큼 어려운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앞으로 케이블이 주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 케이블 쪽이 활성화 될 겁니다. 그러니 이 사장님의 꿈도 헛된 것이 아니지요.”

    “오, 니가 그리 말하면 꼭 되드라? 나 너 믿어도 되는 거지?” “그럼요. 그러니 꼭 일어나세요.”

    “그래, 알았어.”

    이 사장은 곧 방송국 사장님이 된 사람처럼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이 사장은 내게 잘 부탁한다고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 사장의 수술이 진행되었다. 성공적인 수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이 되어도, 일주일이 지나도 이 사장은 깨어나지 않았다.

    * * * * *

    이 사장이 깨어나지 않은 채 한 달이 지났다.

    나 과장이 내게 찾아왔다. 서류와 변호사를 대동하고 있었다.

    “이 사장님의 유언에 따라서.” “아니, 잠깐만.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았잖아요.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벅찬 상태입니다. 이 사장님 깨어나실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죠.”

    “이 사장님이 한 달을 기한으로 정하셨습니다. 사실 지금 이 사장님이 안 계서서 회사가 진짜 어려운 지경입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D미디어는 내가 돌아보지 못하는 동안 조금 쇠퇴한 상태였다. 이사장이 과감하게 내놓은 걸그룹이 망하였고, 보이그룹도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가고 있는 그때에 이 사장이 병원에 입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회사의 상태는 거의 망조에 가까운 지경이었다. 뭔가 변화하지 않으면 곧 무너질 것 같았다.

    “ 이사장님이 깨어나시면 어쩔 건데요?” “이 사장님의 직위는 그대로 두시고 회장님 회사에 인수합병이 된다면 우리 쪽의 급한 불도 끌 수 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 과장은 내게 회사를 얹어서 정상화 시킬 생각인 듯 했다. 하지만 내실이 무너지고 있는 회사를 인수합병만으로 정상화 시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가만, 그럼 제가 그렇게 한다고 칩시다. 그 이후에는 어찌 됩니까?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하려는 건가요?” “그건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나 과장이 어영부영 대꾸하였다. 이 사장이 나 과장을 신임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사장이 이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2019년이 되어서야 그가 죽는다는 걸 안다. 그때, 해리를 케어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니까 내가 그 윗선이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네, 그렇죠.”

    “그럼 우선 현금화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현금화해서 가져오세요.”

    “네? 그게 무슨? 설마 들고 튈?”

    “저기요. 나 박준수에요.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얼만지나 알아요?” “휴, 알죠. 알긴 하죠.”

    나 과장은 굉장히 돈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아니, 돈을 좋아한다고 해야 하겠다.

    “이 사장님이 내게 전권을 맡긴 상황이니, 돈을 가져오세요. 최대한 많이 현금화해서요.” “네네, 알겠습니다. 대신 각서를 좀 써주시겠어요? 이 일은 당신이 다 한 일이니 나는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는 걸요.”

    “그러지요.”

    나 과장은 금방 종이를 가져와서 내게 내밀었다. 그게 후에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나 과장은 생각보다 빨리 일을 처리했고 곧 회사에서 현금화할 수 있는 최대치를 내게 가져왔다.

    나는 현금을 가지고 당장 주식투자를 했다. 그때 무슨 주식이 뛰는지는 이미 데이터가 충분하게 있기 때문에 현금을 불리는 일은 아주 쉬웠다. 곧 원금의 두 배가 넘는 수익이 배당되었다.

    “돈은 꽤 모였는데, 이 사장님이 얼른 일어나셔야 할 텐데.”

    나는 이 사장의 명의를 이용해서 주식으로 돈을 불렸다. 사실 현금으로 해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돌려주기 쉽도록 그렇게 하였다. 후의 일을 생각하면 천만 다행이었다.

    그때, 비서실에서 급히 호출이 왔다. 이 사장의 측근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장님이 깨어나셨답니다. 지금 당장 와달라고 하십니다.”

    “어, 알았어요. 휴 다행이다.”

    나는 얼른 정리하고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 * * * *

    벌컥.

    병실 문이 열리자마자 이 사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 준수야. 왜 이리 늦었어?”

    “괜찮으세요? 정말 괜찮으신 거죠?”

    “괜찮지.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네.”

    이 사장이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이 사장을 끌어안고서 잠시 동안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에요. 꼭 일어나실 줄 알았어요.”

    “응, 나도 그럴 줄 알았어.”

    “후후, 농담도 하시는 걸 보니 다 나으셨네요.”

    “농담 아니야! 소풍 가서는 사고가 나도 소풍 전날에 죽는 일은 없지.”

    이 사장은 방송국을 만드는 일을 소풍에 비유하며 말했다. 그의 말을 알아챈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니가 부추긴 일이야.”

    “네, 그래서 제가 준비를 좀 하고 있었어요.”

    나는 주식 증권이 든 가방을 이사장에게 내밀었다. 이 사장은 안에 내용물을 확인하고서 무엇인지 궁금한 듯 쳐다보았다.

    “이게 뭐지? 증권 아닌가? 내 이름이네?” “네, 이 사장님 이름으로 사놨던 증권이 두 배로 올랐습니다.”

    “오, 안 그래도 내 들었어. 니가 회사의 자본금에 손을 댔다고?”

    “네, 방송국 만들려면 자본금이 필요하니까요.”

    “그래? 그럼 이게 두 배니까 100억인가?”

    나는 이 사장의 말에 놀랐다. 지금 가져 온 주식은 80억이기 때문이었다.

    “네? 40억이니까 80억이죠.”

    “뭐? 아닌데? 50억 가져갔다고 하던데?”

    “아닌데요? 제가 받은 건 40억이었는데요?”

    분명 나 과장이 40억을 주었고 그걸 2배로 불려서 80억이 되었다. 이 일을 하느라고 회사일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하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장 나 과장 불러와.”

    이 사장은 비서에게 나 과장을 불러오라고 했지만, 비서는 난감한 듯 얼굴을 붉혔다.

    “나 과장님 출장가신다고 미국에 가셨는데요?”

    “뭐? 언제?”

    “며칠 전에요. 조용히 다녀오신다고…… 박준수 씨가 가라고 했다고 했어요. 모든 건 박 회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각서까지 내밀던데요?”

    나 과장이 10억을 들고 도주했다. 모든 책임을 내게 씌우고서.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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