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168화 (168/200)

168화. 박준수에게 반지가 있다고? (4)

“지금부터 박준수의 옆에 사람을 붙여두는 거야.”

박준수의 옆에는 미용실 식구들도 있고, 회사의 직원들도 있다. 집에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있다. 그 세 집단 모두에 사람을 심어놓으려는 심산이었다.

“지금부터? 오재훈이 죽이고 난 뒤가 아니고요?”

“그래서 니가 하수인거야. 오재훈이 죽으면 그 전으로 회귀할거 아냐? 그래서 일 처리하고 반지는 또 숨기겠지.” “그렇네요.”

이 차장은 박준수가 반지를 숨겨놓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손에만 끼고 있지 않을 뿐이지, 박준수가 분명 회귀를 하고 있으니까.

“그러면 그 한참 전부터 사람을 붙여놓아야지, 회귀를 하든 말든 계속해서 붙여놓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반지를 딱 끼면 그때 반지를 휙 빼앗아야지.”

회귀한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니까, 항시 사람을 붙여두는 거다.

“오 그러면 내일 당장이 될 수 있겠네요.”

“그래, 아무튼 우리는 오재훈만 손봐주면 되는 거야. 나머지는 박준수가 나설 거고, 우리는 놈이 오재훈을 살리던 죽이던 상관없이 반지만 손에 얻으면 되는 거고.”

“그렇게 반지를 얻고 나서 오재훈은 살려두는 건가요?”

재준은 사실 오재훈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오재훈이 자기에게 막대했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지만, 그건 잘못해서 그런 거니 아무래도 괜찮았다.

“오재훈이 있는 이상 내가 다음 서울시장이 되기 힘들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조금?” “이 새끼, 너 나 안 찍고 그 자식 찍었냐?”

“아뇨, 나는 선거 안했는데요?” “후, 너는 농담도 모르냐?” “그렇군요.”

재준은 어느 순간부터 앞뒤가 꽉 막힌 사람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이 차장은 이번 반지만 얻어내면 재준에게 반지를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차라리 아기를 하나 입양해서 그 아기의 손에 끼워두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재준과의 인연도 서서히 접어야겠다고 느꼈다. 해리 때문에라도 빨리 재준을 멀리해야 했다.

* * * * *

“와하하하하.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네요.”

재준의 반지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노랑머리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사실 밤에 그 생각이 나서 혼자 미친 듯이 웃었었다.

“그러니까. 그놈이 명석한 놈이었는데 바보가 되어있더라니까.”

“해리라는 여자가 팜므 파탈이네요. 남자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어요.”

“그런 것 같아. 나도 그렇게 될 뻔 했으니까.”

사실 나도 인생이 망가졌었다. 두 번째 회귀하기 전 해리의 손아귀에 있을 때, 내 동생의 인생을 돌보지 않았었다. 나름 위한다고는 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해리에게 영혼을 빼앗기면 인생까지 빼앗기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얼마나 다행이냐. 회귀해서 짝을 잘 만나서 말이야.”

“그러니까요. 이게 다 형님 덕분입니다.”

노랑머리는 늘 준수에게 시나리오를 가져와서 확인하곤 했다. 잘되는 영화를 알아보는 데는 회귀자만큼 정확한 게 없으니까.

“니가 똑바로 살아서 그렇지. 회귀했다고 다 잘사는 건 아니더라. 나도 첫 회귀는 망쳤잖아.”

“맞아요. 아 저번에 그 친구 있잖아요. 작곡가 친구.”

“어,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아뇨, 녀석이 잘나가더니 타락해가지고 약에 손댔어요. 지금은 집도 다 팔고 시골에 가서 사는가 봐요. 애인도 도망가고 개랑 둘이서 산대요.”

노랑머리가 회귀의 반지를 준 그 친구, 그는 자기에게 보물이 있는 것을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에구, 그니까 사람은 성공해서 더 잘 살아야 해.”

“맞습니다.”

“근데 가끔 사람보다 개가 낫더라.”

우리 강아지 장군이는 가끔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지금 보니 재준보다 더 똑똑한 것 같다.

“하하, 그렇죠. 그 친구 개는 아파서 골골거린대요. 그거 때문에 힘들어해요.”

“잘 돌봐줘.”

“네. 돈은 월급처럼 나오니까. 걍 잘 살아요.”

“나중에 한번 보자고 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라고 해주고 명함도 건네주고.”

“네.”

후에 이 명함 건넨 일덕에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그렇게 한참이나 노랑머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게 닥칠 일도 모른 채 말이다.

* * * * *

따르르릉.

새벽, 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소리는 좋지 않은 소식과 함께 온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오빠아아.”

준희가 울고 있다. 그때처럼 또 울고 있다.

오재훈은 새벽 운동을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였다. 고의성이 다분한 교통사고.

“후, 반지를 또 사용해야 하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장군이의 팔에 껴있는 반지를 빼서 들었다.

찌릿.

뭔가 내게 경고를 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보니 장군이가 내 팔을 손톱으로 긁었다. 그땐 장군이를 혼냈었지만, 장군이는 아마도 내게 일이 생길 것을 알고 그런 것 같았다. 사람보다 나은 놈이 정말 맞았다.

나는 반지를 꺼내 들고 오재훈을 만났던 그 시점으로 돌아갔다.

위이잉.

익숙한 두통 후, 내 앞에는 오재훈이 있었다.

“형님, 제가 매일 새벽에 운동을 다니고 있어서요. 요즘 아기 때문에 몸이 너무 안 좋아요.”

“육아 스트레스를 좀 풀고 가라고, 내가 자네를 구해주는 거잖아.”

오재훈은 오늘 나와 술을 마시던 중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날 그를 보내지 않으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새벽까지 죽자 살자 술을 마셨다. 아내들이 번갈아 전화를 걸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책임을 질 테니까, 걱정 말고 먹어.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책임지는 거야. 자네 먼저 일어나면 나는 절대 책임 안 져.”

“아이고, 형님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죽자 살자 술을 마셨다. 그때까지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마누라한테 죽으던지, 술에 쪄져서 죽던지 하빈다. 나는 더 못마시빕니. 형님.”

오재훈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일어났다. 혀가 마비된 듯 보였다.

사실 나도 벌써 취해있었지만, 오재훈이 사고 나는 시점에서 한 시간은 자나야 했기에 꾸역꾸역 참아냈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났고, 그를 구했다고 생각한 시점에 우리 둘 다 미역처럼 늘어져 있었다.

“으아, 나도 죽겠어. 비서 좀 불러줘.”

“형님 비서는 극한직업이빈다? 아 혀가 꼬혀효.”

“오늘 특별히 부탁했지이.”

내 비서가 근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타났다. 나는 술에 잔뜩 취해서 비서에게 친한 척을 했는데, 그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 듯 경직되어 있었다. 그게 뭔지 그때 알았어야 했다.

“술에 많이 취하셨습니다.” “어, 우리 둘 다 우리 집으로 좀 보내줘.”

“네.”

내 비서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꿀꺽.

비서가 침을 삼켰다. 긴장한 것이다.

비서는 우리 두 사람을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업다시피 해서 들어가는 중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으응, 괜찮아.”

비서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내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쓰윽 뺐다.

“뭐하는 거야?”

순간 정신이 확 들었지만, 비서가 이미 반지를 빼낸 후였다.

“이게 정말 손에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비서는 도망치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뒤를 쫓아갔지만, 스텝이 꼬여버렸다.

“아악! 거기 서!”

뒤늦게 김설아가 쫓아 나왔지만, 비서는 이미 집을 나가고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반지가…….”

회귀의 반지가 결국 또 넘어가버렸다.

* * * * *

“으하하하하하.”

이 차장이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회귀의 반지를 다시 얻었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했다.

“진짜 녀석에게 그게 있었네요. 저는 반신반의 했거든요.”

그러자 이 차장이 인상을 쓰며 재준을 바라보았다.

“내가 맞다고 했잖아. 정황증거 몰라? 증거가 없어도 정황만으로 확실했다고.”

“네, 암튼 이제 속이 후련하시겠어요.” “그래, 이제 놈에게서 반지를 뺐으니까, 오재훈을 죽일 일만 남았어.”

“그놈을 또 죽여요? 어휴.”

이 차장은 재준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재준은 이 차장의 표정에 기가 죽었다.

“이번엔 다시 못살려. 반지가 없잖아. 그니까 저번처럼 그놈한테 부탁해. 아주 제대로 해냈더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요새 니 회사 말이야. 너무 하락하고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재준의 회사는 업계 2위에서 5위 밖으로 밀려났다. 한참 잘 나간다 싶었는데, 금방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 차장은 재준이 김주원에 이어 자기의 정치 자금을 대어줘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조금 쓰였다. 그것뿐이다.

“요즘 해리가 이혼하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아…….”

이 차장은 순간 찔렸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해리가 이 차장에게 자꾸 결혼하자고 졸랐었지만, 딱 잘라서 안 된다고 했던 이 차장이다. 해리는 말했다. ‘대통령의 정부가 고재준의 마누라보다 낫다’고.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리가 고재준과 헤어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고재준과도 반지 여정을 같이 하기로 했으니까.

“재수 씨, 아니 양해리 씨가 요즘 잘 나가니까, 잠깐 그러는 거야. 금방 수그러들 테니까 걱정 말고 회사에 신경 써.”

“네, 그래야죠.”

“근데 재수 씨는 요즘 뭐해? 밖에 안 나오는 것 같던데?”

해리는 요즘 이 차장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중이었다.

“모르겠습니다. 꿈을 꾸고 나서 신경질을 내곤 해요.”

“꿈?”

“화가 난다네요. 꿈을 꾸면요.”

“그게 무슨 소리지?”

사실 해리는 요즘 박준수가 두 번째 회귀하기 전의 꿈을 꾸는 중이었다. 즉, 해리와 박준수가 연인 사이였던 그날의 기억들이 꿈으로 발현되는 시기인 것이다. 해리는 박준수가 자기와 함께 지내며 헌신을 다했던 모습들을 꿈으로 보면서 몹시 화가 났다. 이것이 회귀 전 기억들인지, 아니면 그저 꿈일 뿐인지 헷갈렸지만,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설아의 인생이 정말 내 인생이었어?”

해리는 김설아처럼 살 수 있었던 것을 본인 스스로 차버렸다는 생각에 매우 화가 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지만, 자꾸만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 너무 짜증났다.

“그만, 그만 나타나라고!”

해리가 거부하면 할수록 박준수와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꿈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너무 헌신적인데다, 자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살피는 박준수의 모습에 새삼 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수록 괴로움이 더해갔다. 그래서 밖에 잘 안 나가는 중이었다.

* * * * *

꿈으로 회귀 전의 기억들을 보는 것은 오재훈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 이상 회귀하여 생명을 살린 사람들은 그 전의 기억들이 꿈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리도 그러했고, 오재훈도 지금 막 그러는 중이었다.

오재훈은 바로 전에 죽은 기억들을 꿈으로 꾸고서 발작을 일으켰다. 준희가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왜 그래요?”

“내가 죽었어, 내가!”

오재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