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되는 놈은 트렁크에서도 세상을 움직인다(2)
전화기가 트렁크에 있다! 한참 전에 회장님이 억지로 건네주었던 휴대폰을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었다.
“분명 여기에 있을 거야.”
아까부터 발아래에 있던 검은 가방 안에 그 전화기가 있을 것이다. 나는 발을 열심히 움직여서 가방을 들어 올렸다.
있다! 가방 속에 전화기가 있다!
가방을 열고 얼른 전원을 켰다. 문자 수십 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모두 회장님이 보낸 것이었다. 문제는 배터리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얼른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 사람! 왜 이제 전화를 하는 겁니까?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죄송합니다. 저 지금 납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 좀 구해주세요. 배터리가 얼마 없습니다.”
“뭐요? 갑자기?”
회장님은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지금 어디입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서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차 번호는.”
나는 차의 색깔과 차번호를 불러주었다. 회장님은 갑작스러웠지만 군소리 않고 메모를 하였다.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겠으니까 기다려요.”
회장님의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전화기가 끊겼다.
회장님은 전화를 끊자마자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수색하기에 나섰다. 같은 시각 김설아의 신고로 내 차 번호판에 수배령이 떨어졌다. 회장님은 회사 소속의 화물차와 택배차에 수배령을 내렸다.
“휴, 근데 대체 누가 나를 납치한 거지?”
이제 이 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내가 왜 납치를 당한건지 궁금해졌다.
* * * * *
재준은 김설아를 태운 차가 목적지에 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보낸 차사고 대기조가 근처에서 그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 너도 뼈를 깎는 고통을 느껴봐.”
그러다 문득 녀석이 회귀의 반지를 사용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게 이 차장이 놔두지 않을 테지만 그에게 약속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차장은 한 번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시각 매우 바빴기 때문에.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어, 바쁘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거지?”
“곧 일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그래, 한 번에 성사되면 고맙고, 안되면 내게 바로 와.”
“네, 혹시 녀석이 반지를 달라고 떼써도 절대 주지 마셔야 합니다.”
“걱정 마.”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통화가 끝난 이 차장의 앞에는 해리가 있다.
이 차장의 주도로 해리가 드라마 주인공이 될 것 같았다. 그 일로 둘이 또 만난 것이다. 재준은 자신이 진짜로 경계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모른 채 어리석은 과정만 밟고 있다. 해리는 그가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 동안, 이 차장에게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
재준은 직접 사고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서 사고가 날 현장 근처로 향했다.
* * * * *
차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사고 지역에 도착한다. 그때, 차 넘버를 알아 본 화물차 기사가 급히 클락숀을 울렸다.
“어? 그 차 넘버랑 같은데? 차종도 맞고? 오예! 오백만원!”
회장님은 그 차를 찾는 사람에게 오백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업 총수에게 오백만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화물차 운전자에게 오백만원은 아주 큰 금액이다. 기사들은 그 차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실 경찰들보다 더 눈에 불을 키고 있었을 것이다.
빠아앙.
해결사는 뒤에 오고 있는 화물차가 울리는 클락숀 소리를 듣고 길을 비켜주었다.
“빨리 멈춰라 빨리.”
“뭐야?”
해결사가 길을 비키자 화물차가 앞서가더니 점차 속도를 줄였다. 해결사는 황당해 하며 차를 옆으로 몰았는데, 해결사의 화물차가 그 앞을 또 막아섰다.
“뭐냐고?”
해결사는 속도를 줄였다. 화물차에 개겼다가 사고라도 나면 박준수는 물론이고 자기의 목숨도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해결사의 목표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김설아를 가장한 박준수를 데려다 놓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화물차가 갓길에 주차하고, 해결사도 따라서 주차했다. 해결사는 품에 칼을 숨기고 차에서 내렸다.
* * * * *
빠아앙.
분명 큰 차의 클락숀 소리가 들리더니, 차가 멈추었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살려줘! 사람 살려!”
해결사가 막 차에서 내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마침맞게 옆에 차가 지나가며 빵 소리를 냈다. 덕분에 안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가 화물차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칼을 보여주며 적당히 협박해서 보내려는 요량이었다.
“뭐야 당신?”
해결사가 말하자 운전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현재 위치를 알려주며 오백만원을 얻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회장님은 얼른 그 장소로 경찰을 보냈다. 마침 김설아의 신고로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라서 경찰이 근방에 계속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난 그쪽만 잡아두면 되는 거라서요.” “뭐? 그게 무슨 소리지? 죽고 싶나?”
해결사가 칼을 보여주자 운전자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나는 그냥 저 차만…….”
하는데 차가 흔들거렸다. 안에서 몸을 굴려가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운전자가 손가락으로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뭐……뭡니까?” “넌 알거 없어.”
해결사가 얼른 차 트렁크에 다가가자 운전자가 얼른 차 문을 열고 키를 뽑아 들었다.
“이거라도 가져가야지.”
해결사는 트렁크를 열려다 말고 그를 보고 뛰어갔다.
“이 새끼 죽고 싶어?”
해결사는 품에서 칼을 꺼내들고 운전자를 향해 쫓아갔다. 운전자는 놀랐지만 그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차로 달려갔다. 운전자는 차에 들어가서 차 문을 잠갔다.
“문 열어!”
“내가 미쳤수?”
해결사가 차에 칼을 들이밀었지만 이미 차 문이 닫힌 상태였다.
“너 죽인다!”
화가 난 해결사가 화물차 바퀴를 칼로 쑤셨다.
펑.
화물차 바퀴가 터져버렸지만, 안에서 잠근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운전자는 떨리지만 침착하게 112로 전화를 걸었다.
“살인자에요 살인자!”
해결사는 남자가 전화를 거는 것을 보고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지금 잡혀봐야 자기만 납치범으로 잡혀갈 것이 뻔하였다. 차 키는 화물차 운전자가 가졌고 그걸 타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길가는 차에 손을 들었다.
웬 화물차가 멈추었다. 그는 사실 앞선 화물차의 동료로 이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찾아 온 것이었다. 그는 차에 전기 충격기를 가지고 다니는 중이라 서슴없이 달려왔다. 운전자가 무기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본 해결사는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하는 것을 깨닫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남자가 도망치는 것을 확인한 첫 화물차 운전자가 키를 들고 나와 트렁크를 열어주었다.
“으아!”
트렁크가 열리자 저절로 곡소리가 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그제야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삐용삐용.
경찰차가 오는 것을 본 해결사는 더 빠르게 도망쳤다. 두 번째 화물차 운전자가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저 놈이 범인입니다!”
경찰차가 해결사를 쫓아가고, 해결사는 도로 한복판을 도망 다녔다. 참으로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남자는 곧 경찰에 연행되었다.
같은 시각, 사고 다발지역에서 내 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앞 도로 상황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차가 사인이 온 거라고 착각하고 차를 몰았고, 급기야 4중 추돌 사고가 났다.
재준은 멀리서 이 상황을 보며 뭔가 잘못 된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급히 차를 돌려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나는 경찰차에 탄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해결사는 입을 다물었고, 모든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재준의 차가 눈에 들어왔다.
재준도 차에서 경찰차를 보다가 안에 탄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이제 우리가 완벽한 적이 되는 일,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 *
재준은 이 차장을 만나서 일이 어그러졌음을 보고했다.
이 차장은 사실 이 일이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었다. 그는 오재훈만 없애면 되니까.
재준이 이 차장에게 물었다.
“회귀 버스 태워주실 수 있으시죠?”
“글쎄, 너는 너무 과한 짓을 한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그리고 그자는 왜 김설아가 아닌 박준수를 납치한 거지? 제대로 된 해결사가 아닌 거 아니야?”
“아뇨, 그 사람은 그 업계에서 알아주는 해결사입니다. 이번일이 아마 첫 실패일 겁니다.”
“그니까 왜 그 첫 실패가 하필이면 니 일일까? 이번 계획은 너무 나갔어.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니, 그건 아니죠. 제가 어떻게 계획한 일인데!” “어쨌든 간에 그건 잘못된 일이야. 돌려서 다시 한다고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요?”
“다른 계획을 짜봐. 좀 더 완벽한 계획을.”
이 차장은 사실 재준을 놀리는 중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재준에게 협조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재준이 멍청하게 굴어서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더 컸다. 해리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서였다.
재준은 며칠 사이에 이 차장의 태도가 변한 것을 깨닫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이 차장이 괘씸하고 미웠다. 그럴수록 박준수를 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켜져 갔다.
* * * * *
위이잉.
병원에 누워있는데, 익숙한 두통이 몰려왔다. 누가 회귀를 하였다.
“재준이 회귀했겠지?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그가 회귀한 것을 깨닫자마자 나는 병원에서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회귀자는 바뀌기 전 기억과 바뀌고 난 기억을 모두 갖게 된다. 어쨌거나 재준과 내가 완벽한 적이 된 것은 확실한 일이다. 누구도 바꾸지 못하는 분노가 서로를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트렁크에서 상처를 꽤 많이 입었었는데, 씻은 듯이 나았다. 재준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싶었다. 어쨌든 없던 일로 돌려줬으니, 내 쪽에서도 뭔가 선물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차를 타려는데, 문득 회장님의 휴대폰이 생각났다. 회장님이 아니었으면 차 트렁크에서 영락없이 사망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회귀 반지를 갖고 있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 보답으로 회장님에게 왔던 수많은 문자들에 답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띵동 띵동.
휴대폰을 켜자마자 문자가 수십 통이 왔다. 다 회장님의 문자였다. 심지어 죽었냐고 묻는 문자까지 있었다. 이제 나는 재준과 이 차장과 적이 되었다. 그 말은 김주원과도 적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면 그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 사실 김주원에게 발을 빼려고 많이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아무 때나 발을 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기 위해서.
“회장님.”
“아, 이 사람이! 살아 있었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