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월드컵의 여신
월드컵 거리 응원이 한참일 때, 해리가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이다. 해리는 예전 내가 무당을 통해서 조언한대로 한창 멋을 내고서 거리 응원에 나섰다. 그녀의 얼굴과 몸매는 미스코리아를 통과할 정도로 완벽 그 자체였기 때문에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그녀의 과거는 이미 사람들이 다 알고 넘어간 일이었다. 아니 몇 년이 지난 즈음에는 다들 잊어버린 뒤였다. 그 상태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다. 월드컵 거리 응원에 온 여자들 중 가장 예쁜 여자들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던 그 시절 특수를 제대로 누리는 것이다. 가수 민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해리도 월드컵 응원녀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해리는 정말 행복했다. 자기가 꿈꾸었던 일들이 전부 현실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꿈도 잠시 재준의 태클이 걸려왔다.
“너 정말 그러고 다닐 거야? 너무 과하게 벗고 다니잖아!”
재준은 해리가 거의 벗고 다니는 것 같아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재준에게 해리는 마누라와 같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벗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둘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기에 간섭이 엄청났다. 해리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지금이 아니면 나는 영영 연예인이 되지 못해! 전에 미스코리아 때 하도 멍청한 짓을 해서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해리의 말은 맞는 말이다. 미스코리아 때 정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썼기에 그 파장이 엄청났다. 사실 해리는 그때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그치만 재준 때문에 참고 넘겼다. 재준을 사랑해서도 참았지만, 재준이 따라 죽을까봐 참은 것도 있었다. 재준의 집착이 그 정도였다.
“그래, 그렇지만 너는 내 아내가 될 사람이야. 네가 너무 과한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재준은 진심으로 해리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리가 연예인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해리가 유명해져서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운 까닭이었다.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는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서럽기까지 했다.
해리도 재준을 사랑하지만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다. 해리는 가질수록 더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준수가 그토록 큰 사랑을 주었음에도 재준을 선택할 만큼,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재준은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집착을 하는 것이다.
“날 방해하면 못 참아. 재준 씨가 아무리 내게 잘해줘도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어. 그게 바로 연기자가 되는 것이야. 그걸 이루지 못하게 막으면 재준 씨를 보지 않을 거야. 지금 내 발목을 잡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라고!”
해리의 경고, 무섭도록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하는 경고는 재준을 슬프게 했다. 하지만 재준은 해리를 막을 생각이다. 일반인들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재준은 그 방법을 아니까.
* * * * *
“반지를 또 사용하고 싶다고? 그 대가는?”
이 차장은 반지를 그냥 사용하게 할 사람이 아니다. 재준도 그에 따른 대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글쎄요? 무슨 대가를 원하시는지?”
“다음에 내가 갑자기 부탁을 하게 되면 군소리하지 말고 들어주는 걸로 하지.”
“아, 그럼 그때는 회귀를 한 상태겠군요? 그래서?”
다음에 이 차장이 회귀를 하고 그때 뭔가를 부탁하려는 수작이다. 아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건 묻지 말고 그냥 하라고. 알겠어?”
“네, 그러죠. 그럼 제가 부탁하는 건 들어주시는 건가요?”
“그래, 말해봐.”
“해리를 저번 월드컵 응원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주세요.”
“응? 겨우 그거야?”
“네, 해리가 유명해지는 것이 싫습니다.”
재준의 부탁을 들은 이 차장이 피식 웃었다. 재준이 해리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도 웃기고, 사랑한다면서 상대가 잘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도 웃기다. 재준의 사랑법은 뭔가 모자른 사람의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 차장님만 믿겠습니다.”
“이제 곧 물러날 거야. 이 차장이라고 불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군.”
이차장은 곧 검찰차장에서 물러나고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퇴가 먼저이다.
“네, 이제 곧 정치인이 되시겠네요. 저는 계속해서 차장님의 도우미가 될 것입니다.”
“그래, 고마워.”
이 차장은 그 길로 바로 회귀를 하였고, 해리의 응원을 막게 된다. 해리가 어디론가 갈 때마다 경찰서에 가게 한다거나 접촉사고를 낸다거나 해서 모든 응원 경로를 막은 것이다. 재준은 해리의 인생이 바뀐 것에 만족하며 그녀와 결혼을 꿈꾸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 일로 우울증에 걸린다. 자기가 계획한 것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다른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보니 우울한 것이다.
결국 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극도의 우울증에 빠졌다.
“저 자리는 내 자리였어. 웬 미친놈들이 막지 않았다면 분명 내 차지가 되었을 거야! 저기 가기 위해서 내가 어떤 짓까지 했는데!”
“니 몫이 아니었던 거지. 그냥 나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 응?”
“내가 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못간걸 알고도 행복할 수 있겠어? 눈앞에서 엄청난 걸 놓쳤는데 내가 즐거울 수 있겠어? 결혼해서 행복하겠어?”
“그래도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그럴 수 있어. 내가 너 하나 평생 공주처럼.”
“공주?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는 이제 끝났어. 영원히 연예인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어떻게 해? 그게 내 탓이야?”
“당신 탓이야! 당신 옆에 없었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재준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월드컵 여신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재준은 끝까지 해리를 그냥 두었다. 그리고 해리는 비실비실 말라갔다. 종국에는 뼈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말랐다.
“제발 먹어. 왜 안 먹으려고 그래? 죽을라고?”
“죽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어. 이대로 행복하지가 않아.”
해리는 이후 계속해서 거식증에 걸렸고 결국에는 식물인간처럼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준은 그제야 해리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 2003년이 되고 나서야 그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다 돌려놓을게. 제발 죽지 마.”
“그냥 날 죽게 내버려 둬.”
해리는 엄청난 질투심에 거식증에 걸렸다. 월드컵 여신이 된 다른 연예인을 보면서 그 질투심에 미쳐간 것이다.
재준은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해리에게 꿈을 빼앗는 일이 어떤 일인지 깨달은 재준은 그제야 이 차장을 찾아갔다.
“바빠 죽겠는 거 안 보여? 여긴 왜 온 거지?”
“바빠도 제 말 좀 들어주세요.”
2003년에 이 차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가 한창 선거 준비에 바빴다. 바로 다음날 선거일이 다가왔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었다.
“내일, 내일 와. 지금 니 말 들어줄 여유 1분도 없으니까.”
“내일이면 해리가 죽을지도 몰라요.”
“내일 죽어도 또 살릴 수 있다는 거 모르나?”
“아,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죠.”
재준은 이 차장을 두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 해리가 죽었다.
“왜 죽어. 그까짓 연예인이 목숨보다 좋았냐?”
재준은 고통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준수가 해리의 장례식에서 울었던 그때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울었다. 그치만 방법이 없지 않다. 이 차장을 찾아가면 된다.
* * * * *
이 차장은 선거 참패를 당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바로 오재훈에게 당한 것이다. 너무 화가 난 이 차장은 바로 회귀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재준이 나타났다.
“회귀하게 해주세요. 나를 회귀하게 해달라고요.”
“그럴 순 없어. 반지는 나와 김주원만이 만질 수 있어.”
“내가 가야 한다구요. 가서 해리를 구하고 먼저 결혼하고 해야 해요.”
“내가 너를 태우고 갈 수는 있어.”
이 차장은 자주 회귀를 하면서 남을 같이 데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그 과정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말이다.
“날 데리고 회귀한다는 말인가요? 그게 가능합니까?”
“어, 실수로 회귀할 때 만졌는데 같이 가더라고.”
“그럼 나 좀 데리고 가줘요.”
“그럼 내가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것도 두 번 빚을 졌지.”
“네, 무조건 할 겁니다. 데리고 가주기만 하면 뭐든 할 겁니다.”
“근데 너 정말 많이 이상해졌어. 전에는 착한 것 같았는데 요즘엔 좀 다크해.”
이 차장은 재준을 살펴보았다. 양해리가 죽었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재준까지 엉망으로 변한 모습을 보니 연애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는 여자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건 쉽게 되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차장님도 마찬가지에요.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시죠.”
“그래? 당연하지 차기 대권주자인데. 암튼 내일 같이 가자고.”
“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이 차장은 재준을 데리고 회귀하였다. 그들이 회귀한 시점은 바로 월드컵 전이다. 이 차장은 오재훈을 제거하기 위해서, 재준은 해리를 살리기 위해서.
* * * * *
“결혼을 한다고?”
재준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 결혼한다고 했다. 흔한 청첩장도 없이 말이다.
“그래, 해리와 결혼하기로 했어.” “지금? 당장?”
재준은 뭐가 그리 급한지 남의 결혼식을 취소시키고 자기의 결혼식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취소시킨 사람에게는 큰돈을 지불하고 말이다.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해리는 그게 좀 짜증났지만, 드레스가 이뻐서 참았다고 했다.
“어, 그냥 사람 안 부르고 단촐하게 치르기로 했는데, 내가 니 결혼식에 갔으니까 너도 와주었으면 좋겠어.”
얼마 전에 나와 김설아가 결혼을 하였다. 재준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해리와 함께 참석하였다. 해리는 하얀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와서 민폐 하객으로 불렸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김설아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어, 그래. 가야지 축하한다.” “꼭 와줘.”
쫓기듯 하는 결혼, 그 이유가 뭘까? 매우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해리가 월드컵 여신이 된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재준이 해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회귀를 한 것임을.
조금 웃기는 것은 재준이 회귀를 해서 겨울 연정을 자기가 맡으려고 또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때도 커피 때문에 재준이 밀려나게 된다. 자기가 커피 때문에 밀려났다는 것을 그때도 몰랐다고 한다.
해리가 월드컵 여신이 되고, 유부녀 신분으로 연예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재준은 해리가 무슨 짓을 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게 왜 그런지 알았기 때문에 그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하지만 얼마 뒤 그가 저지른 일은 도를 넘어섰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