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악당과 악마(2)
“너, 이 새끼! 의도가 뭐야?”
재준이 내 멱살을 쥐고 물었다.
나는 재준의 손을 풀며 그를 토닥였다.
“미안, 그냥 너무 기가 막히게 죽었잖아. 황당해서 한 말이야.”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말해주고 있다. 자기가 아내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는 오늘따라 심경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도 황당해. 아내를 그렇게 보낸 사람에게 너무 그러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
뻔뻔한 자식이다. 놈의 가증스러운 표정은 고스란히 내 사무실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그래 미안하다. 주식은 조만간 정리해서 넘기도록 할게.”
“고맙다.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밥은 무슨. 아내가 그렇게 되었는데…….”
내 말을 들은 재준이 조금 슬픈 표정을 연기했다. 연기력이 꽤 좋았다.
재준은 사실 그런 놈이 아니었다. 내가 첫 회귀 때 그를 찾아간 것도 놈이 나쁜 놈이 아닌 걸 알아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해리를 만나고 바뀌었다. 그게 첫 회귀 때의 일이다. 이번에도 그는 해리를 만나고 바뀌었다. 해리 때문에 아내를 죽이기까지 한 쓰레기로 바뀐 것이다. 그에게 해리는 악마로의 전환을 하게 하는 스위치인 셈이다.
재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며칠 전 아내를 잃은 뒷모습이 아니다. 아주 신이 나 있다. 그가 가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다 노랑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준과 이 차장이 분명 한통속이 되었어. 우리가 예상한 것이 맞았어.”
“와 그 쓰레기들. 어떻게 사람까지 죽이냐.”
“놈들을 그냥 둘 순 없는데, 한통속이 되도록 놔둔다면 분명 더 큰 일이 벌어질 거야.”
“그러게요. 쓰레기들이 모여 있으면 파리만 꼬이지.”
“뭐 방법이 없나?”
“이간질을 시켜보면 어떨까요?” “이간질? 오, 그 셋을 따로 만나서?”
“네, 따로 만나서 이간질을 시키는 거예요. 그게 은근히 잘 먹힐 수도 있어요. 특히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들에겐 더욱.”
“좋은 생각이야. 당장 이 차장부터 만나야겠어.”
나는 서둘러 이 차장에게 연락하였다.
* * * * *
“오랜만이네?”
이 차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제 내가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일에 방해되는 인물일지도 모르니.
“네, 잘 지내셨죠?” “어, 오재훈만 날뛰지 않으면 나는 괜찮아.”
이 차장의 말은 오재훈을 자신의 라이벌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조력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말이다.
“이 차장님만 하겠습니까?”
“그래, 용건이 뭔지 빨리 말해봐.”
나는 우선 침을 한번 삼켰다. 조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레이스를 죽이신 거죠?”
내 말에 이 차장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하였다. 사실을 인정하는 제스처로 딱이다.
“무슨 말이야?”
“부탁했더니 죽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재준이가.”
“뭐? 그 새끼가 정말 그랬어?” “네, 증거도 있습니다.”
“정말이야?”
나는 사무실에서 가져 온 테이프을 내밀었다. 노랑머리가 재준과 나의 대화를 적절하게 편집해 준 상태였다. 애매하긴 해도 이 차장이 속을 정도는 된다.
이 차장은 테이프를 지켜보다가 빼서 던져버렸다.
“그 자식이 대체 왜 너한테 말한 거지?”
“그런 방식으로 나도 죽일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거죠. 겁을 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미친 새끼네 그거.”
“근데 정말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정치하시는 분이 이런 일에 얽매이시면 안 되죠.”
내 말에 이 차장이 눈을 까뒤집으며 말했다. 눈으로 나를 죽일 기세였다.
“그래서? 증거 있어? 내가 했다는 증거가 있어?”
“그 곳에 그레이스를 부른 건 이 차장님이시잖아요. 아닌가요?”
앞서 나는 그레이스의 사고 경위를 전해 들었다. 그레이스를 그곳에 가게 만든 것이 이 차장이고, 아마 그곳에 킬러를 부른 것은 재준일 것이다. 대충 그 정도까지 파악하고 이차장을 만났다.
“이 씨….”
“재준이 킬러를 고용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킬러를 지금 찾고 있구요.”
나는 앞서 만났던 흥신소 덩치들에게 부탁해서 재준의 모든 행동에 대해 조사하라고 일렀다. 그의 모든 것을 조사하다보면 킬러의 정체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재준에게 물었더니, 아주 날뛰더라구요. 자기는 다 관련이 없다면서 말이죠.”
“그럼 그게 다 내가 했다는 말인가? 그 새끼가 죽고 싶은가 보구만.”
“글쎄요. 그걸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은 하게 만들었지만요.”
“그 새끼 못쓰겠네. 상대하지 말아야겠어.”
좋아, 계획대로 대답하는군.
“그런 회귀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니가 뭔데 내게 그런 명령을 하지? 그레이스는 죽어 마땅한 여자야. 오죽하면 남편이 죽여 달라고 했겠어?”
“제가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느끼셨겠지만 반지는 스스로 움직입니다. 그건 아시죠?”
“그래, 그래서?”
“반지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반지 스스로 자각하게 되면, 분명 일이 터질 겁니다. 반지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한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너는 반지가 무서워서 소유하지 않는 거고, 나는 반지가 안 무서워서 계속 소유하는 거야. 반지가 살아있다고 했지? 반지도 자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만 개짓거리를 하지.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알겠지?”
이 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보고 나가라는 제스처이다.
“네, 아무튼 그런 짓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다시 하지 마셔야 해요.”
“알았어. 네 충고는 받아들이도록 하지. 내가 또 그런 짓을 한다면 니 소원 하나를 들어주도록 하지.”
“네, 꼭 명심하셨으면 좋겠네요.”
“아, 시끄러워. 이만 가봐야 하지 않나?”
이 차장이 내 이야기는 듣기 싫은 듯 말하자, 더 있지 못하고 나왔다. 아무튼 이 차장과 재준의 사이를 갈라놓는 데는 성공한 듯 했다.
* * * * *
다음 차례는 김주원이다.
“오, 안 그래도 보고 싶었다네. 미국 진출의 신화를 썼다고? 진짜 대단해.”
“과찬이십니다.”
김주원은 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그날 911 사건이 터지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간 거겠지?”
“네, 911 테러 장소에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김주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를 구하러 갔다가 얻어걸린 거라고?”
“네, 운이 좋았죠.”
“그렇네, 운이 좋아 자네.”
“별거 아니었어요, 그냥 진심은 통한다는 느낌?”
“그래, 알았어. 가봐.”
나는 나가려다 말고 김주원을 다시 쳐다보았다.
김주원은 왜 자길 보느냐며 눈으로 질문을 했다. 나는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고 테이블 뒤쪽에 앉았다.
“회귀자인 회장님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건 아십니까?”
김주원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내 말뜻을 전부 알아듣고 고민을 하던 터였다.
“아시다시피 반지는 스스로 진화하는 아이에요. 반지가 가진 능력을 전부 이용하고 죽지 못할 정도로 반지의 규칙이 있어요. 그 규칙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중이고요.”
“그래, 뭔가 허를 찌르는 느낌이 들게 하더라.”
“그리고, 이 차장이 반지로 사람을 죽이는데 썼데요. 그건 아십니까?”
이 차장이 김주원에게 상의를 하긴 했겠지만, 요새 한창 혼자 활동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김주원은 그 사실을 자세히 몰랐다. 그냥 그럴 거라고 짐작만 하던 상태였다.
“어, 그래. 죽이는 데에 쓴 것 까지는 몰랐어.”
“모르신 게 아니고 그냥 방치하신 거죠. 그 사람 정도가 너무 지나쳐요.”
“내가 이야기해도 들어먹지를 않아. 사람까지 죽였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군.”
김주원은 돈에 욕심이 많을 뿐, 나쁜 짓을 할 위인이 못된다. 특히 살인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대로 두지 마세요. 그냥 있다가 회장님에게까지 해가 끼칠 겁니다.”
“그래, 알겠어. 고마우이.”
“그리고 반지로 회귀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세요. 그러다가 큰일 나요.”
“그래야지. 당분간 회귀를 할 일은 없을 거야.”
“반지를 악용한 사람만 벌을 받아야지요. 회장님까지 벌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김주원도 사실 많이 죄를 짓고 살았지만, 벌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있다고 하더라고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 용건 끝났으면 가봐.”
“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주원과 헤어지고 나가는데, 김주원이 혼자 중얼거렸다.
“당분간 이 차장을 멀리해야겠구만.”
그의 혼잣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세 사람의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들의 몰락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 * * *
2001년 막바지, 회사의 사업도 안정화가 되어가고 미용실도 제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의 상황처럼 미용실에서 연예인이 한 명 빠져나가게 되었다. 주변에 미용실이 많이 생기면서 우리 샵의 입지가 떨어진 것이다. 미용실 사업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연예인이 필요하다. 연예인을 통해서 유행이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조 원장과 정 원장, 김 실장과 이은서, 류사희 등을 불러서 이 사태를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했다.
“박 원장님은 너무 바빠서 그런 거 할 여유가 없잖아. 드라마 스타일 말이야.”
정 원장(정 선생)은 틈틈이 드라마 스타일까지 맡아서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정 원장의 미용실에는 스타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런저런 것을 하느라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특히 드라마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기 때문에 그런 걸 하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바쁘긴 한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요즘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중이라서 여유가 조금 생겼다. 뭔가를 한다면 지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류사희가 거들고 나섰다.
“저도 바쁘지만 드라마 쪽은 항상 다니는 편이에요. 연예인들이랑 친분이 있어야 하니까요.” “맞아. 요즘 우리 박 쌤이 너무 연예인들이랑 안 친해. 김설아만 따라다니느라고.”
그러자 다들 웃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나도 저번에 주말드라마 헤어를 잠깐 했는데 정말 빡세긴 하더라구요. 우리 애 얼굴을 못 봤어.”
조 원장은 틈나는 대로 다 하려고 노력중이다. 워낙 욕심이 많은 분이니.
“그럼 드라마 피디에게 연락해서 드라마 쪽 헤어를 맡게 해달라고 해봐야겠네.”
“그래요. 박 원장님이라면 다들 쌍수들고 환영할거야.”
조 원장은 내 실력을 많이 인정해주고 있다. 가끔 조 원장이 한 원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 제가 받은 드라마부터 좀 보시겠어요? 이렇게나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어떤 게 흥행할지 모르니 난감할 때가 있어요.”
류사희가 가방 속에서 시나리오를 잔뜩 꺼내왔다. 내년 라인업이 된 드라마들이 가방 속에 수두룩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보물을 찾아냈다.
“이거다! 이거 꼭 해요. 사희 씨!”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