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미용재벌-144화 (144/200)

144화. 악당과 악마(1)

다음 날, 재준은 김주원과 이 차장이 있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도 함께였다.

김주원과 이 차장은 재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신들에게 손해가 가지 않게 해주겠다는 재준의 말을 믿고 있었다.

“어서 오게나.”

김주원이 재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김주원은 대충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이 차장도 방금 김주원에게 전후사정을 들었다.

“중대 결심을 하셨다고?”

이 차장은 재준을 쉽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네, 제 말을 하기 앞서서 약속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반지를 주는 것 외에는 전부 해줄 생각이야.”

김주원이 잘라서 말했다. 반지를 빼앗길 생각이 1도 없는 표정도 여전했다.

그건 이 차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주원과 이 차장 사이는 아직까지 견고했다.

“반지를 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지를 이용하는 것은 맞고요.”

그 말은 반지를 김주원이나 이 차장이 사용해서 재준이 원하는 것을 달라는 이야기다. 그 둘은 가끔씩 반지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라 그의 말에 순순히 응하였다.

“그래, 반지는 늘 이용해야 하니까, 자네 소원도 들어 줄 수 있을 거야.” “뭔지 들어보시고 대답하셔도 될 텐데요.”

“사람 죽이는 거 아니면 다 가능한테 뭐가 걱정이야?”

“사람 죽이는 거 맞습니다. 그레이스를 죽여 달라는 이야기죠.”

그러자 이 차장이 재준을 발로 확 깠다.

퍽. 윽.

재준은 이 차장의 발을 맞고 아파서 바닥을 굴렀다. 범인을 수없이 때려 본 솜씨였다. 아주 매서운 발차기였다.

“개 같은 놈이 뭐라고? 내가 니놈 살인 청부를 받아줄 정도로 한가해 보이냐? 그만 떠들고 가라. 니놈 제보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살 수 있어. 반지로 몇 번 다시 살아난 것 잊었어?”

이 차장이 짜증을 내며 돌아섰다. 그러자 재준이 이 차장의 다리를 붙잡았다.

“얼마 전 은행 강도 살인사건 아시죠?”

그러자 이 차장이 궁금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게 뭐?”

“그때 그 장소에 그레이스를 부르면 됩니다. 제가 총을 가지고 사람을 시켜서 그레이스를 쏠 거거든요. 그 놈들이 총기를 난사할 때 맞춰서 쏘면 됩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김주원이 박수를 쳤다.

“허허, 저놈 난놈이네.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럼 과거로 가서 그레이스를 그 장소에 가게 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자네한테는 따로 연락을 해서 사고가 날거란 것 만 알려주면 되는 거고?”

이 차장은 어느새 재준의 계획에 푹 빠져 있었다. 이제 아무 때나 원하는 인간을 죽일 방법이 생긴 셈이다. 악마와 악당이 만난 셈이다.

“네, 제가 늘 생각해오던 방법입니다. 회귀의 반지만 손에 얻으면 꼭 하려고 한 계획입니다.”

재준은 역시 악당이었다.

재준은 회귀하기 전에도 악당이었다. 그걸 당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문제였다. 재준이 악당이 된 것은 해리 때문이었다. 해리가 워낙 가스라이팅을 하며 남자를 갖고 놀았고, 거기에 나는 놀아난 거고, 재준은 녹아든 것이다. 나는 해리의 그런 행동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재준은 해리의 모든 것을 믿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고, 회귀 후에도 그렇게 되는 중이다. 해리가 악당을 제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아이디어도 해리가 낸 아이디어였다. 둘이 뉴스를 보면서 저 자리에 그레이스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해리가 말한 것이다. 재준은 저 자리에 그레이스를 넣을 방법을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못한 것이고, 그걸 그레이스가 행동하도록 이끌었다.

“완벽한 계획이야. 자네 말대로 해야겠어. 그 여자 없애버리고 싶었거든. 정말이야.”

이 차장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악마의 미소였다.

재준은 그레이스가 말한 내용을 저들에게 들려주었다. 김주원과 이 차장은 당장 가서 각자 데리고 있는 사람들을 경질했고, 몇 번의 고문(?) 끝에 그레이스가 심어놓은 사람을 찾아냈다. 그레이스는 도전도 하지 못하고 작전에 실패했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일이 탄로 난 것을 깨닫고 길길이 날뛸 무렵, 이 차장이 회귀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 두통이 몰려왔다.

* * * * *

“누가 또 회귀를 한 것 같네.”

익숙한 두통, 아마 회귀를 한 자들은 전부 이 두통을 겪을 것이다. 나는 그게 회귀자의 두통임을 알았지만, 나머지들은 그걸 모를 것이다. 노랑머리에게는 알려주긴 했지만, 그도 이게 그 두통이란 것 알까?

누가 회귀를 한 것은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두 사람 중 한명이 한 것이겠지. 이번엔 어느 시대로 갔을까? 궁금해 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랑머리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 내가 이상해서 그런데 그레이스가 그 고재준의 그 여자 맞죠?” “어, 왜?”

“그 여자가 죽었다네요?”

“뭐? 언제?” “아는 배우가 그레이스 이야기를 해서 알았어요.”

“그렇군.”

그레이스가 죽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기준엔 좋은 소식이다.

“근데 이상한 게, 그 얼마 전 은행 강도 총기사건 알죠? 거기서 세 명이나 죽었데.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서울 사는데 거길 왜 갔지?” “뭐?”

그레이스는 그 사건 때 죽지 않았다. 내가 뉴스를 봐서 기억한다. 그때 죽은 사람은 그냥 평범한 은행 직원이었다. 그리고 두 명이다. 세 명이 아닌, 두 명.

“그거 분명 두 명 죽은 사건인데?” “그죠? 나도 그렇게 알았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설마 이 차장 그 새끼가 관련된 건가?” “어, 얼마 전 회귀자의 두통이 찾아왔었어. 그때 간 것 같은데?”

“오 그때 이틀 전인가? 맞죠?”

노랑머리도 그때 두통을 느꼈고, 내가 한 이야기를 들은 상태니 깨달았던 모양이다.

“어, 그랬어.”

“뭔가 이상한데? 정말 회귀자 이 차장이 한 짓인가?” “분명 바뀌긴 했으니 둘 중 하나가 개입되어 있을 테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갔을까?”

“아뇨, 두 사람은 절대 반지를 양보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욕심 많은 사람들.”

“그나저나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야.”

“그러니까요, 회귀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다니. 악마네.”

누구는 회귀를 이용해서 사람을 살리고, 악마는 그를 이용해서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반지는 사라져야 한다.

“저들은 이미 사람의 정도를 넘어섰어. 악마에 가깝지.”

“정말 그래요.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하지?”

나는 잠시 저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레이스가 죽어서 얻을 이득이 없다. 단지 얄미워서? 그레이스는 저들의 상대가 되질 않는데 굳이?

“근데, 그 사람들이 그레이스를 왜 죽인거지? 저들에게 이득이 없잖아.”

“그러게요. 왜 죽였을까? 그레이스는 이제 끈 떨어진 상태인데.”

이 차장과 김주원 입장에서는 그레이스가 싫긴 해도 없애버릴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이득을 얻는 사람은 있지. 재준이 그레이스를 싫어하거든.”

“엥? 그렇네. 고재준이 이득을 봤네.”

“그럼 설마 고재준과 이 차장이 손을 잡은 건가?”

절대 손을 잡지 말았으면 하는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다.

“엥? 설마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조심해야겠다.”

“나도 내가 회귀자인 걸 들키지 말아야겠어요.”

일단 가장 확실한 것은, 고재준이 이 일을 사주했을 거란 것, 그리고 김주원과 이 차장이 고재준에게 반지를 주지는 않았을 거란 것이다. 즉 죽음을 의도한 것은 고재준이고, 실행한 것은 이 차장이나 김주원인데, 이 차장이 갔을 확률이 높다.

“반지가 점점 역겨워지는군.”

* * * * *

“정말 황당한 일이야. 어떻게 강도가 그 꼴보기 싫은 년을 죽여줄 수 있지? 너무 황당해.”

해리는 그레이스가 죽은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고마운 일이지. 그 강도가 잡히지 않아야 할 텐데.”

강도가 잡히면 자기들이 그레이스를 죽이지 않았다고 할 테니, 재준의 입장에서는 잡히지 말아야 한다.

“응? 사람을 죽였으면 잡혀야지.”

“어, 그렇지.”

재준은 강도가 잡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덕분인건지, 그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았다.

“이제 우리도 정식으로 부부가 될 수 있는 거지?”

해리는 재준의 손을 꼭 잡고 물었다. 그레이스가 죽기를 바라고 또 바랬던 그녀는 재벌 사모님을 꿈꿨다.

“응, 그래야지. 근데 좀만 더 있자. 2002년은 되어야 좀 덜 민망하지 않겠어?”

“그래, 그래봤자 얼마 안 남았지.”

재준은 이때 결혼을 미룬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핑크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남을 죽이면서까지 얻은 사랑의 빛은 핑크가 아니었다.

* * * * *

나는 그레이스의 죽음이 재준과 이 차장이 저지른 짓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었다.

마침 내 의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재준에게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전화였다.

“무슨 일이야?”

내 말투는 차가움을 넘어 경멸에 가까웠다.

원래부터 재준을 싫어한 탓도 있지만. 아내를 죽게 한 재준의 악마성에 경멸을 느꼈다.

“우리가 좋은 사이가 아닌 건 맞지만, 이거 너무 차가운데?”

재준은 그럼에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네가 기분이 나쁘던 말던 나는 지금 최고로 기쁘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가 죽은 것이 뭐 그리 좋단 말인가.

“나 바쁜 건 너도 알 테고, 용건이 뭔지 빨리 좀 말해줬으면 해.”

그러자 재준도 웃음기가 싹 가신 표정으로 말했다.

“앞서 블랙컨슈머 사건은 내가 미안했다. 마누라가 좀 너무 했어.”

“아니야. 덕분에 네 회사에도 타격을 주고, 나름 괜찮았어.”

내 말에 재준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마누라가 허망하게 죽고, 이제 내가 정식으로 회사를 맡아서 하게 되었어. 그레이스가 원래 대주주였는데, 내게 이양되었지.”

재준과 그레이스는 서로 사망 시, 주식을 양도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였다. 그건 그레이스가 생각한 것이었다. 후에 반지를 가져오면 재준을 죽일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한 셈이다.

“축하할 사안은 아닌 것 같군.”

“뭐, 그러던가.”

“네게 우리 주식이 있다고 하더군? 그걸 내게 양도할 생각이 없나? 그래서 만나자고 했어.”

재준은 회사에서 제대로 입지를 굳히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그레이스가 워낙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녀의 자리를 메꾸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 대답에 답변해 주면 양도하도록 하지.”

“그래, 뭐든 물어봐.”

“너는 아내가 죽을 것을 알고 주식 양도 각서를 쓴 것 같네? 설마 아내 죽음에 관여한 건가? 혹시 거기에서 사고가 날 걸 미리 알고 아내를 거기로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하, 미안해 망상이 과하지.”

내 말을 들은 재준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치, 네가 시간 여행자도 아니고.”

재준은 내 말에 다시 얼굴을 붉혔다. 오늘따라 심경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그럼 주식을 양도하는 건가?”

재준이 묻자 내가 다시 물었다.

“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다면 아내를 죽여 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한 건가? 그 대답을 해주었으면 하는데?”

재준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내게 달려들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