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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41화 (141/200)
  • 141화. 가 기자를 잡아라(2)

    나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두 사람이 한꺼번에 대답하였다.

    “형법 제 398조!”

    “사자 명예 훼손!”

    “아.”

    사자 명예 훼손은, 말 그대로 죽은 자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뜻이다. 가 기자가 산 사람은 잘 건드리지 않았는데, 죽은 사람은 가끔씩 데리고 와서 낚시 기사를 쓰곤 했다.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이 배영숙이다.

    “배영숙 선배님 말씀이죠?”

    김설아가 배영숙을 거론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영숙…….”

    배영숙은 원래 안다영과 같이 언급되던 배우다. 배영숙은 안다영보다 훨씬 선배지만, 인기는 그보다 없었다. 외모나 연기력에서 조금 딸렸다. 그래서 원래 안다영의 비디오가 더 유통되는데, 나 때문에 안다영이 빠지게 되자 그녀의 이름이 도마 위에 올랐다. 나 때문에 배영숙이 좀 더 고통 받은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게 되고, 모든 기자들의 농락 대상이 된다. 제2의 이양, 제2의 L양, 제2의 어쩌고…… 내 탓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긴 한다. 아니, 많이 미안하다.

    “미친 새#. 죽은 사람을 왜 그렇게 못살게 굴어?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나라도 정말 죽고 싶었을 거예요. 저번에 그 사건 때, 나도 죽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에구 설아 씨.”

    나는 김설아를 안아주며 쓰다듬어 주었다.

    앞서 김설아의 스토커가 비디오를 언급하며 우리를 협박했을 때, 김설아가 받은 정신적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힘들었다고 하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런 걸 만드는 놈도 문제지만 유통하는 것들도 문제입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비디오랑 그걸 유통하는 놈들을 싸그리 잡아서 혼내줘야 하는데, 누구도 그런 것을 하지 않아요. 그냥 숨기에 바빠요.”

    오재훈이 분노하며 말했다.

    “나중에 그런 놈들 단체로 고소를 해서 벌금을 왕창 먹였으면 좋겠어요.”

    김설아가 흥분하며 말했다.

    “가 기자 그자식이 배영숙씨를 욕한 건 수도 없으니까, 아주 혼꾸녕을 내줄 수 있겠네요.”

    그러자 오재훈이 고개를 저었다. 김설아의 말이 틀린 것이다.

    “사자 명예 훼손은 죽은 사람이 실제로 한 것을 유포한 죄에 대한 건 없어요. 죽은 사람이 생전에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말한 것에 대하여 죗값을 물게 하는 겁니다.”

    죽은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기사화 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좀 전에 살펴 본 바로는 몇 개가 그에 속하는 것 같았다.

    “아, 그렇군요.”

    “그럼 형량은 어떻게 됩니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이하의 벌금뿐입니다.”

    배영숙이 죽기 전까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너무 적은 형량이다. 죽어서까지도 고통 받고 있는 그녀의 아픔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 너무 작은 거 아닙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죠.”

    “그럼 아무나 고소할 수 있습니까?” “아뇨, 사자 명예 훼손은 친고죄에 해당합니다. 죽은 사람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이 직접 고소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의를 얻어야 하죠.”

    “음, 그럼 배영숙의 친척을 알아봐야겠네요.”

    그러자 김설아가 말했다. 김설아는 배우들과 관계가 좋아서 배영숙과도 연락을 했던 사이였다.

    “내가 배영숙 씨 전에 살던 곳을 알아요. 거기 가면 소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그렇겠네요. 고마워요 설아 씨.”

    “뭘요. 배영숙 선배님에게 그런 짓을 하는 놈을 벌주는 건데요.”

    우리가 꽁냥거리고 있자, 오재훈이 헛기침을 하며 준희의 손을 잡았다.

    “저 우리 준희가 무리하면 안 되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알았어.”

    “오빠, 나는 배영숙 씨한테 악플 단 사람들 리스트를 작성해 볼 생각이야. 그 놈들 전부 고소를 해줘야 속이 후련하겠어.”

    “그래, 하는 김에 그렇게 하자.”

    준희는 오재훈과 같이 씩씩대며 나가고, 나와 김설아는 배영숙 씨가 생전에 살았던 곳으로 향했다.

    * * * * *

    “이곳인데 집을 부셨네요.”

    배영숙씨가 살던 집은 건물 자체를 다 부수고 재건축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아, 이러면 우편물 같은 건 얻어 볼 수 없겠네요.”

    “그러니까요. 어쩌죠?”

    “일단 주변 상인들을 만나보죠.”

    우리는 주변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릴 보다가 김설아를 알아보고 눈빛이 달라졌다.

    “오메, 김설아 씨 아잉교?” “안녕하세요. 사장님.”

    “뭐 드릴께예. 뭐든 말씀하이소? 다 공짜라예.”

    “호호, 아닙니다. 저 물건 아니고 뭐 좀 여쭈어 보려고 왔어요.”

    “뭡니까? 뭐든 말씀만 하이소.”

    “배영숙 씨 아시죠? 그 분에게 친척이 있나 해서요.” “아, 그 자살한 분 말씀잉교. 뭐 그라니 빌라를 팔은 거지예. 저 빌라 팔 때 남동생이 와서 팔았다 카든데.”

    “아 남동생이 있습니까?”

    내가 갑자기 끼어들자 가게 주인은 다시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저 건물 짓는 건축주가 그 사람과 거래를 했겠네요. 그 분은 남동생의 연락처가 있겠네.”

    “그렇네요. 사장님 감사해요. 많이 파세요!”

    김설아가 생긋 웃으며 말하자 사장의 눈도 금세 반달눈이 되었다.

    “네, 고맙습니다 사장님.”

    내가 말을 마치고 김설아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우리 앞을 막아섰다.

    “사진 한 방만 남기고 가이소.”

    “호호, 네에.”

    그렇게 사장님께 사인까지 해드리고 가게를 나왔다.

    * * * * *

    건축주는 김설아를 보자마자 아주 반가운 듯 맞아주었다. 역시 스타가 좋긴 좋다. 아무에게도 제지라는 것을 당하지 않는다.

    “동생 전화번호를 주면 김설아 씨 전화번호를 주나요?”

    건축주가 능글거리며 말했다.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참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필요하시면 약혼자인 제 전화번호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건축주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여기 전화번호가 있네요.”

    건축주는 휴대폰에서 얼른 전화번호를 찾아서 내밀었다. 우리는 얼른 그 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배영숙 씨 동생이신가요?”

    우리 말을 들은 상대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수 십 번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기를 꺼두기가 일쑤였다.

    “아니, 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배영숙 씨를 지우고 싶은 게 아닐까요?”

    배영숙의 동생인 배영석은 그녀가 자살한 후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누나와 연결된 모든 것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남인 것처럼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 누나는 주홍글씨와 같았다.

    “그럼 접근 방식이 따로 있죠.”

    “어떻게요?” “경품 당첨?”

    “어머.”

    예상대로 배영숙의 동생은 동네 마트에서 준다는 경품을 받으러 나왔다. 우리는 그에게 줄 경품을 사서 나갔다. 그보다 먼저 나온 것은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배영석이 누나를 잊고 싶어서 최근 개명 신청을 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누나가 배영석의 학비를 대고 그를 위해 희생했음에도 누나를 잊으려 했을 만큼.

    * * * * *

    “저는 누나를 지웠습니다.”

    배영석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누나잖아요. 당신의 학비를 대주었던 누나.”

    내 말을 들은 배영석은 눈을 한참 감았다가 떴다. 분노를 삭힌 듯 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죠?”

    배영석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안다. 나도 과거에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 때문에 고통 받았었고, 내 동생은 아버지 때문에 장애를 입었다. 아버지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 되었다고 느꼈고, 원망이 컸었다. 하지만 회귀 후 아버지도 그저 열심히 살려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잘 된 지금은 그 기억도, 원망도 전부 사라진 뒤였다. 원망을 가지고 있으면 내 삶 전체가 불행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원망은 그만 두셔야 편해집니다. 누나도 영석 씨에게 피해가 갈 줄은 몰랐을 겁니다.”

    아버지는 준희가 다쳤을 때도 후회했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후회했다. 이미 늦었긴 했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며 울부짖었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죠? 내가 당했던 고통을 알기나 합니까? 당신같이 잘 나가는 사람이 대체 뭘 알죠?”

    배영석은 누나에 대한 원망을 내게 쏟아 부었다. 그의 마음을 알기에 묵묵히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김설아가 소리쳤다.

    “저도 잠시나마 유언비어에 몸살을 앓았어요. 그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그런 일을 겪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아세요? 그때 든 생각은 누가 그 비디오를 없애주었으면 했어요. 제발 그 비디오를 없애주었으면, 그러면 수십억이라도 줄 수 있다고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김설아 씨도?”

    배영석은 설아의 말에 놀랐다. 아무 걱정도 없어 보였던 김설아도 누나처럼 그런 일을 겪을 뻔하였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그런 일을 서슴없이 말해주는 김설아의 착한 마음씨에 놀랐다.

    “그럴 뻔했죠. 비디오 자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설아 씨는 잠도 자지 못했어요.”

    김설아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누가 편히 잘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그 영상을, 그 수치심을, 그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배영숙 선배님의 동생이잖아요. 그분을 위해 싸워주셔야죠. 이렇게 도망 다닐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혼내줘야죠. 죽었어도 계속해서 기자 나부랭이의 헤드라인에 놀아나는 것을 지켜보지 말아야죠. 놈들의 펜대에 더 이상 유린당하게 두어서는 안 되잖아요.”

    “나도 그거 보면서 힘들어요.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죽은 사람인데?”

    “사자 명예 훼손이라고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그걸 제안하려고 온 거예요.”

    “사자 명예 훼손요? 그런 게 있습니까?”

    배영석은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하긴, 큰돈이 되지 않는 소송에 발 벗고 나서 줄 변호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네, 그건 친족이 허락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허락해 주시고 놈들을 혼내주라고 사인만 해 주시면 우리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배영석이 고개를 저었다. 자포자기한 표정이었다.

    “사실 전에 그 비슷한 걸 의뢰하려 했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일에 돈을 쓸 바엔 돈을 모아서 악착같이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 있던 준희가 소리쳤다.

    “누가 그따위 소릴 합니까? 막돼먹은 자식 같으니라고.”

    준희가 씩씩대자, 그 옆에 오재훈이 앉아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워워, 우리 색시 흥분하면 아기가 들어.”

    나와 김설아는 그 둘을 보고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웩.

    배영석은 오재훈을 보자마자 그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오재훈 씨가 사건을 맡아주시면 하겠습니다.”

    그러자 준희가 배영석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그건 곤란하죠! 그게 말이 됩니까?”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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