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블랙컨슈머(3)
“네, 김주원이라고 아시죠? 그 사람이 큰돈을 주고 부탁하더군요. 자신의 회사에서 김치냉장고가 나오는 시점에 터트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에 김주원까지 연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우선 김주원이 만약 이 일에 개입되어 있다면 곤란하다. 왜냐면 그가 반지를 사용해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이번 일에서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
“김주원은 이번에 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유? 그건 아니지!”
양 기자가 화를 냈지만 절대 그를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
“제가 은혜를 갚을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우리 아버지가 그 밑에 있는 거 아시잖아요.”
“아, 아우 씨. 그래도 그건 좀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IMF때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그때 정말 힘들게 일어서셨는데, 또 그런 아픔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그런 쓰레기를 그냥 둬유? 그건 아니지.”
양 기자는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자 슬금슬금 다가온 이은서도 끼어들며 말했다.
“맞아요. 요즘 김주원 인상이 꼭 신창원 같다니까? 으 뭔가 소름끼쳐.”
“너는 구석에 숨어있으라고 했잖유.”
“숨어있는 거야 이게!”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번에 그분이 저한테 의뢰한 일을 하던 중, 상대가 제 작업을 눈치 채고 맞불을 놓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어떻게 한 건지 그 사람 회사에 검사가 들이닥치고, 그래서 혼줄이 나는 걸 본 적 있어요.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날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김주원이라면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사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자와 적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의 짓거리를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그에게도 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럼 그냥 둬야 하나? 아…… 그건 너무 억울한데.”
양 기자가 고민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도 일개 기자에 불과하다. 짬밥이 좀 되고 직급이 좀 높을 뿐이다. 그도 함부로 덤볐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일단 지금은 그냥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형님. 그런 사람은 저번처럼 치밀하게 준비하고 벌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응, 나도 그런 생각이에요. 저번에도 아슬아슬 했잖아요. 그 무서운 것들보다 더한 사람 같은데? 김주원은 더하면 더했지 못할 사람 같지 않아요.”
“그래, 나도 들은 바가 있긴 해. 그치만 내가 그냥 둘 것 같수? 언젠가는 혼내줄 거유. 그땐 말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네, 그땐 안 말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럼 김주원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과 녹음한 걸 가지고 경찰에 출두하세요. 경찰서는 강 경감 있는 데로 가야 할 거유.”
강 경감, 강철수를 이르는 말이다. 강철수는 그때 이후로 성공적인 승진을 하더니 최근 경감을 달았다. 그 전에 결혼도 하였다. 출세를 하더니 결혼도 못할 것 같은 그가 결혼에 아기 아빠까지 되었다. 잘 된 일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론 많이 변한 그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으, 그 미친놈 만나러 가면 나는 안 갈거야.”
“요즘엔 정상이유. 결혼해서 아기도 낳을 건데?”
“헉, 누군지 불쌍하네. 돌아이를 남편으로 두었어.”
“그럼 지금 가면 될까요?”
여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는 은서만 빼고서 같이 경찰서로 향했다.
* * * * *
“여, 이거 정의의 사도들이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어?”
강철수가 우리를 반기며 말했다. 신수가 훤해진 강철수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매일 고기를 먹는 듯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까닭이었다.
“우리 사고를 좀 치러 왔슈. 각오는 되어 있슈?”
“그럼요. 아주 각오 제대로 하고 있죠.”
강철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전처럼 웃는 모습을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였다.
“이 여자가 사기꾼이라고?”
강철수가 여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여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얼른 강철수를 붙잡고 말했다.
“사기꾼은 아니고 내부고발자라고 해두죠.”
내 윙크를 본 강철수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내부 고발자. 이리 오시죠.”
“네.”
그렇게 여자는 강철수의 비호를 받으며 경찰서로 들어갔다. 우리는 조사가 진행되어 윗선에 전달되기 전까지 방송을 시작하면 된다. 마침 7시 뉴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양 기자의 아랫사람들이 방송 장비를 가지고 몰려왔다. 금방 방송 준비가 되었고, 양 기자가 눈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섰다. 그걸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이은서는 안 온다고 하더니 어느샌가 와서 우리를 돕고 있었다.
“블랙컨슈머는 제품을 구매한 뒤 고의적으로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자를 뜻합니다. 여기 블랙컨슈머 한 사람이 경찰서에 출두하였는데, 그 사람에게 고의적 루머를 조작하라고 의뢰를 한 사람들을 고발하려고 출두하였다고 합니다. 즉, 블랙컨슈머가 한 짓을 누군가가 사주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저, 양 기자가 급히 출동하였습니다. 지금 그 사람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경찰서에 찾아왔습니다. 경찰서 담당 형사를 만나보겠습니다.”
양 기자의 마이크 앞에 강철수가 아닌 다른 형사가 섰다. 강철수는 직급이 높아서 직접 사건을 맡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는 덜덜 떨고 있었다.
“허, 지……지금 블랙컨슈머로 돈을 벌고 있다는 여성 한 분이…… 겨,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였습니다. 여성에게 일을 의뢰한 사람이 꽤 많아서, 사……사건이 아주 크게 번질 것 같습니다.”
양 기자는 잔뜩 신이 나서 말했다. 희한하게도 마이크를 잡으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그 의뢰자 중 대기업의 사람도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그러자 경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가 쳐다보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바라보았다. 그는 충격적이게도 강철수였다. 설마?
“대기업의 사람은 어.업.없습니다. 다만 식당과 빵집, 치킨집 등 대형 음식점등을 운영하는 사람이 대부부부부부분이었습니다.”
경찰은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강철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강철수가 시킨 일인 것인가? 정말 그러한가?
양 기자도 당황한건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하나쯤 혼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샌가 쏙 빠진 것이다.
“아, 그렇군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서 남을 망하게 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의 민낯을 철저하게 밝혀내어 벌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지금 수사 중이라서 자세한 것은 마마마말씀드리리릴 수 없스스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찰이 가고 양 기자가 다시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지금 생방송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자세한 사안은 9시 뉴스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양민호 기자였습니다.”
양 기자는 방송을 마치자마자 흥분하여 강철수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내가 강철수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아니, 그건 조사를 해도 빠져나갈 거야. 미리 컷해야 수사도 잘 되는 거야. 아마 검찰에 넘어가면 거기서 커트할 걸?”
맞는 말이긴 하다. 아마도 검찰수사로 넘어가게 되면 그 선에서 대기업 일은 정리 될 것이다.
양 기자가 달려와서 강철수를 붙잡고 흔들었다.
“너,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슈? 대체 그 강직한 강철수는 어디 간 거야?” “조금씩 변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그러자 강철수가 내 손을 뿌리치며 손을 털었다.
“미안합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강철수의 말에 양 기자와 나는 허탈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은서가 달려와서 강철수의 머리통을 쳤다.
탁.
“이 아저씨 쓰레기 다 됐네?” “야!”
강철수가 이은서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우리가 나서서 둘을 겨우 떼어놓았다.
“놔! 저런 새끼는 경찰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고!”
“니가 뭘 안다고 떠들어?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
강철수는 이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일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난리를 쳐봤자 얻을게 없다는 소리다. 그럼 강철수에게 약속이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음에 있을 일에 또 그러지 못하게 말이다.
“좋아요. 지금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칩시다. 그럼 다음에 또 그럴 겁니까? 당신이라는 사람이 그런 쓰레기라는 거 우리가 인정하고 상종 안 하면 되는 거냐고요? 당신은 비열한 사람이란 거 인정하냐고요?”
나는 일부러 강철수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가 정의로웠던 사람이기에 이런 말에 발끈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강철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주먹으로 쳤다.
퍽.
그러자 은서가 나서서 강철수를 붙잡으려 했고, 양 기자가 먼저 강철수를 붙잡았다.
“말이면 단 줄 알아?”
그래, 걸려들었네. 내 판단대로 강철수는 아직 정의로움이 남아있다.
“그럼 다음에는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요. 오늘 맞은 건 그 약속의 의미로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입술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돌아섰다. 강철수는 오늘의 일을 계기로 한 번은 나를 도울 것이다. 그 이유야 어쨌든, 한 번은 꼭 도와줄 것이다.
* * * * *
블랙컨슈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그 일로 중단되었던 방송도 나가게 되었다.
“정말 잘 되었슈. 착한 사람들의 등 쳐먹는 짓은 이제 더 일어나면 안 될 거유.”
“맞아요. 정말 잘못한 사람들만 벌을 받아야죠. 나쁜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미리 막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방송 이후.
여자에게 당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났고, 여자는 저들에게 합의금을 전달하며 모두 마무리 되었다. 사실 합의를 할 수 없는 것이, 저들은 이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려고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가 이 방송을 보고 살기로 했다고 한다.
방송으로 인해서 블랙컨슈머를 대처하는 방법 등이 공유되었고, 다들 의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2011년 강남일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블랙컨슈머 사건이 미리 예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고, 죽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걸 미리 막았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물론 그레이스도 소환되었고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자주 가던 곰탕집 사장님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방송을 본 김주원이 내게 연락을 했다.
* * * * *
“그걸 기획한 것이 자네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레이스를 잡기 위함이었죠.”
“그럼 그 여자가 내 이름도 말했겠네?”
“네, 그랬죠. 제가 미리 막아두었습니다.” “허허, 그랬구만. 고맙네. 내가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 뭐 원하는 것이 있는가? 물론 반지는 빼고 말이야.”
김주원은 그 와중에도 반지를 지킨다. 김주원은 반지의 제왕 속 골룸처럼 되어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이 하나 있긴 합니다.”
“뭐지?”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