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모든 것이 없던 일로(6)
반지는 내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 케이스에 있으면 금방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5분전으로 회귀했음에도 어지러움증은 여전했다. 아니, 누군가의 회귀를 따라 갔을 때랑은 또 달랐다. 좀 더 아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5분을 회귀한 뒤 얼른 움직였다. 한시가 급하다.
나는 그 길로 노랑머리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노랑머리는 며칠 사이에 힘들었던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무슨 할 말인지 몰라도 저 은미한테 가봐야 해요.” “금방이면 되니까, 조금만 있어봐.”
노랑머리가 나를 쳐다보자,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보여주었다.
“전에 끼던 반지네요?”
“어, 그랬지.”
노랑머리는 내가 그런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이게 회귀의 반지거든.”
“네? 회귀 뭐요?”
“이걸 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농담하지 마요.” “농담 아니야. 진짜야.”
내 말에 노랑머리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진심으로 이러는 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요? 이걸 나한테 준다는 건가요? 나보고 회귀를 하라고?” “어, 사실 나는 너한테 이걸 줄 기회가 있었지만, 주지 않았어.”
“그랬죠. 반지는 늘 이 손에 끼워져 있었으니까.”
“그래,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글쎄요?” “너와 같이 한 것들이 전부 사라지기 때문이야.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돌아가니까.”
나는 울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눈물이 터져 나와 흐르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노랑머리도 내 마음을 느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아…….”
“그래, 이걸 끼고 가면 니 인생을 바꿀 수 있어.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 네가 사라지겠지. 넌 다른 길을 가고 있을 거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나는 잠시 동안 울었다. 그를 이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싫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그가 바꿔야 한다.
노랑머리도 내 마음을 알고 눈물을 훔쳤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한결 같았으니까.
“그래서, 너에게 주지 않았어. 하지만 니가 얼마나 은미 씨를 원하는지 알았고, 그걸 해줄 것은 내가 아니라 너 자신이란 것을 깨달았어.”
“그래요. 내가 바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이제 이 반지를 네가 가져가. 그리고 가자마자 반지를 던져버려. 그러면 반지는 사라질 거야.”
반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면 안 된다. 김주원이나 그레이스 같은 사람에게 반지가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지를 소멸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 어차피 그 시대에도 회귀자는 존재할거니까. 굳이 반지를 하나 더 만들 필요는 없다.
“지금 가서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알아봐. 과거로 돌아가서 네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방법들을 말이야.”
“그러면 은미를 가질 수 있겠네요. 부자 사위를 마다하진 않겠죠.”
“그래, 가서 전과자도 하지 말고, 대학도 다녀. 뭐든, 네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
“난 뭐든 할 수 있겠어요. 뭐든. 미용사 말고도 뭐든.”
“그래, 변호사나 검사도 할 수 있을 거야. 원한다면 말이야.”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해요.”
“그럼 당장 가서 준비를 하자. 서둘러야 해. 내게 반지가 있는 것을 알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거든.”
“누가? 누가 말입니까?” “김주원과 이 차장, 그레이스랑 재준이.”
“엥? 그들도 회귀자에요?”
“어, 암튼 빨리 가자. 준비를 하자마자 가봐야지.”
“네, 알겠어요.”
그렇게 노랑머리와 내가 함께 회귀 준비를 하였다. 그는 5살 즈음으로 회귀를 할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경제 상황과 주식 투자, 부동산 등등 모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전부 망라해서 캡슐에 넣었다. 마침 내게 캡슐이 있었기에 준비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반지를 그의 손에 주려는데,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을게요.”
“그래, 넌 나를 잊으면 안 된다.”
다시,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았다. 이제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노랑머리는 울고 있었다. 나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전부 없던 일로 되는 것이 슬픈 까닭이었다.
“모든 것이 없던 일로 된다고 해도 나는 잊지 않아요. 그러면 된 거잖아요.”
“응, 나도 너와 함께 한 일들을 잊지 않을게. 그리고 꼭 내일 나를 찾아와. 그 전에는 내가 널 모를지도 모르잖아.” “네, 꼭 성공해서 찾아갈게요.”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빼서 노랑머리에게 주었다. 이제 정말 그와 나의 교차점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나와 함께한 인생보다 훨씬 멋진 인생을 말이다.
* * * * *
같은 시각, 재준과 그레이스가 김주원을 찾아갔다. 둘이 한참 싸우고 난 뒤였다.
김주원은 재준과 그레이스가 같이 온 것이 못마땅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둘 다 골탕을 먹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지 케이스를 가져왔으니, 우리랑 손을 잡으시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나 보군? 나는 그레이스가 아닌 자네랑만 거래를 하였는데?”
“그레이스랑 저는 한 몸입니다. 부부니까요.”
“허허, 그렇구만. 그래 그럼 일단 반지를 좀 보여줘.”
김주원은 반지가 사라진 것을 알고 펄펄 뛸 부부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재준은 가지고 온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가짜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반지를 본 김주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반지가 있을 리가 없는데 왜 있는 거지? 하면서.
“어, 이거 반지가 두 개네.”
김주원이 반지를 만지려고 하자, 그레이스가 얼른 반지를 빼앗아 들었다. 반지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그럼 보여드렸으니 거래가 성사 된 것이지요?”
김주원은 자신의 반지를 한 번 보고, 재준이 가져 온 반지를 보았다. 분명 다르다. 저 반지는 전에 자신이 만들었던 그 반지 같은 게 아닌가?
“그런데, 반지의 빛이 다른데?”
김주원은 반지가 바꿔치기 된 것을 확신하고 말했다. 분명 자신이 손에 끼고 있는 반지와 저 반지는 다른 빛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리에요. 반지는 내가 회귀하고 한 번도 벗지 않았…….”
그레이스가 반지를 꺼내 들고 말하다가 멈췄다. 그녀가 보기에도 반지가 달랐다. 분명 빛이 달랐다.
“뭐야? 반지가 정말 다른 거야?”
재준이 반지를 빼앗아들고 김주원의 반지와 비교하였다. 분명 다르다.
“가짜 반지네.”
“네? 제가 이 반지로 얼마 전에 회귀를 하였다니까요?”
“그럼 지금 껴봐.”
김주원이 도발하듯 말했다.
김주원의 말을 들은 그레이스가 얼른 반지를 껴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정말이네?” “뭐야? 야 이 멍청아. 반지 어딨어?”
“니가 어짼거 아니야? 아까 반지 때문에 싸울 때 니가 바꿔치기 한 거잖아!”
“내가 그럴 정신이 어딨냐고? 그때부터 쭉 니가 가지고 있었잖아!”
둘이 미친 듯이 싸울 기세를 보이자, 김주원이 막아섰다. 김주원은 자신의 반지를 박준수에게만 주었었다. 즉, 반지를 바꿔치기 한 것은 박준수라는 말이다.
“그만들 하고, 니들 싸울 때 누가 또 있지 않았어?”
“그때, 박준수가…… 설마?”
“그자식이 내 반지를 만지진 않았는데? 그리고 무슨 수로 금방 반지를 만든다는 거야? 거기다 그 놈도 회귀자라고?”
“아닌데? 회귀자 아닌데?”
김주원은 둘을 보며 혀를 찼다. 둘이 그러고 있는 것이 너무도 멍청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박준수를 불러서 물어보면 될 것을.” “아, 그래 그러자.”
“놈이 반지를 가져갔으면 직접 차고 있겠지.”
“아닌데요? 반지 케이스를 가져갔으니 숨겨두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사람을 시켜서 놈의 집을 샅샅이 수색하던지!”
김주원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저들에게 말한다면, 사기를 쳤다고 할 테니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반지가 스스로 사라진다는 걸 알고, 시도한 사기극이 아니었던가?
“그러세요! 저는 놈의 집을 전부 수색할 테니, 회장님은 놈을 불러서 붙잡아 놓으세요.”
“나는 놈의 주변까지 전부 찾아볼게!”
재준과 그레이스가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외쳤다.
김주원은 내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져 있었다.
* * * * *
회장님의 호출을 받은 건, 노랑머리에게 반지를 건네주고 난 뒤였다.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서둘러 회장실로 향했다.
“그들이 다녀갔군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능청맞은 얼굴로 말했다.
김주원은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다 내 손에는 반지도 없다. 대체 반지가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반지를 바꿔치기한 게 자네인가?” “네, 제가 바꿔치기 했습니다.”
“그럼 반지는 어딨나?”
“반지는 스스로 사라졌죠.” “뭐?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자네는 반지를 바꿔치기 하려고 거길 간 게 아니었어?”
정황상 반지를 바꿔치기 하려고 갔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지를 바꿔치기 하려고 간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손에 반지 케이스와 가짜 반지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죠.”
“그게 무슨 말이지?”
“걔들이 반지를 두고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그레이스가 반지 케이스를 열어서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수시로 확인하더군요.” “어, 의심이 많은 여자야. 골 때리는 여자야.”
김주원은 그레이스를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오늘 일을 봐서 더욱 더. “그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거 아닙니까? 갑자기 반지가 사라지면 제가 뭐가 됩니까?”
“무슨 뜻이지?” “제 옷에 반지가 있잖아요. 가짜 반지가요.”
“아!”
“반지가 사라지면 제 몸을 수색할 게 아닙니까? 그럼 제 몸에 가짜 반지가 있다는 걸 알거고, 그렇게 되면 반지를 없애려는 계획은 일단 된다고 쳐도, 저들이 제가 회귀자라는 것을 눈치 채겠죠.” “그래, 그 멍청이들은 자네가 회귀자라는 것을 전혀 모르더라고.”
김주원은 아까 저들이 말하던 것을 떠올리며 비웃었다.
“그럼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 반지를 바꿔치기 해서 그냥 가게 만들어야겠죠.”
“그래, 그게 좋은 방법이네.”
“어차피 제 손에 반지가 주어져도 저는 반지를 가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반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라지겠지.”
“그래서 없는 거죠. 저들에게 반지를 가져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더라구요.”
“그랬겠구만.”
“이제 저는 가 봐도 되겠죠?”
“그래, 의심해서 미안하구만.”
“괜찮습니다. 회장님이 의심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요.”
“그래, 허허.”
그렇게 김주원과 대화를 마쳤다. 김주원은 재준과 그레이스를 만나서, 내게 반지가 없다는 것을 전했다. 저들도 내 집과 주변을 전부 샅샅이 뒤졌지만, 반지 케이스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그럴 줄 알고 반지 케이스를 얼른 조 이사에게 준 덕분이었다. 조 이사만 신난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안 준희가 저들을 미워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저들은 당대 최고의 검사가 되고, 후에 영부인이 될 내 동생에게 단단히 찍혔다.
그리고 다음날, 노랑머리가 찾아왔다. 미용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