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회귀의 반지를 사수하라(1)
“아직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고 했어.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아, 네네. 잘하셨어요.”
그레이스는 오아영에게 찾아와서 회귀의 반지를 재사용 할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회귀의 반지가 가진 능력이 워낙 대단하기에, 그걸 가지게 되면 세상을 다 얻을 수 있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김주원에 버금가는 욕심쟁이가 나타난 것이다.
“김주원 회장이 알면 화를 내겠네요.”
“그래, 아마 그 사람이 알면 죽이려 들지도 몰라.”
오아영의 말은 내 뼛속에 깊이 새겨졌다. 김주원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치자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얼른 가져다줘야겠어요.”
“응, 내가 그레이스에게 빨리 남에게 줘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할게.”
김주원의 귀에 그레이스의 일이 들어가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반지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반지는 살아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진화를 할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 소멸사건도 어쩌면 반지가 스스로 진화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럼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 사람은 조금 더 있어야 찾아올 텐데 큰일이네요.”
“뭐 운이 거기로 가기를 바래야지.”
“남편에게 반지를 넘기면 안 된다는 말은 꼭 하세요. 남편이 회귀를 한 걸 알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둘러대라고 하세요.”
“걱정 마. 내가 말 빨은 좋으니까.”
오아영은 그 후 그레이스에게 몇 번이나 반지를 넘길 것을 회유하였다. 그레이스는 아무에게나 반지를 넘길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 와중에도 다행히 남편에게는 절대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 * * * *
서태지 컴백 기사가 나기 바로 전날까지, 나는 사람을 시켜서 그레이스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레이스는 반지를 넘기지 않은 듯 했다. 그렇게 날짜가 되었고, 암 환자의 아들이 내게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믿을 수가 없군요.”
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믿어서 오신 거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믿는 것조차 황당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그 사건도 미리 알고 막으신 거지요?”
“네, 부분적으로만 알아서 다 막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
나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버스에서 절규하는 애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잘하신 일입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회귀하실 의향은 정하신거지요?”
아들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미 결정은 한 모앙이었다. 눈물도 얼핏 보였다. 어머님이 위급하신 듯 했다.
“네, 당장 해야 할 판입니다. 어머님이 오늘내일 하세요.”
“아, 근데 저도 어머님이 원래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걸 살렸어요. 지금도 건강하시니 걱정 마세요.”
어쩌다보니 회귀한 덕에 어머님을 살렸지만,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아, 그럼 장례식도 다 치룬 상태에서 회귀하신 거군요?”
“네. 아드님처럼 회귀의 목적이 어머님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살렸습니다.”
“부럽습니다.”
아들은 짧지만 진심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드님도 곧 그리 될 건데요.”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합니까?”
“우선 제가 알려드리는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세요.”
“그래서요?”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곳에서 그레이스정이라는 여자에게 어머님 메이크업을 맡기세요. 죄송한 말이지만,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말도 함께요.”
“하…… 네.”
그레이스에게 지금 남자의 사정을 알리는 길은 이길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어머님 영정사진은 어차피 찍어야 하는 거고, 회귀를 하게 되면 그것은 해프닝에 불과하게 된다.
“그렇게 주변에서 자꾸 본인의 사정을 알리고,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도 좀 흘리시고요.”
“그러면 됩니까?”
“네. 그러면 그 여자가 회귀를 해주는 반지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걸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마시고요.”
“그래야겠죠. 내가 바보는 아니랍니다.”
남자는 지금 말을 대충 듣고도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했다. 생각보다 더 현명한 인물이다.
“이렇게 소개를 해주는 대가가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반지를 당신에게 넘깁니까?” “네, 저에게…… 아니 일단 제가 갖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그럼 당신은 반지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까?”
남자는 내 중심을 꿰뚫어 보려는 듯 물었다. 후에 안 일인데, 그의 직업은 검사였다. 아니 그때는 은퇴를 하였으니, 변호사라고 해야 하겠다.
“네, 저는 없습니다. 일단은 그래요.”
“그렇군요. 그럼 제 임의대로 당신에게 보답을 해야겠네요.”
“네?”
“보답은 제 마음입니다만?”
“하하, 네 뭔지 모르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후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10년 전쯤으로 회귀를 할 생각입니다.”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좀 더 길게 잡을수록 이득인데? 그는 왜 짧게 잡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네, 공부를 더 하고 싶지는 않군요.”
남자는 그때 사법고시를 패스했다고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나는 품에 가지고 있던 캡슐을 꺼내 들었다. 알다시피 이건 내가 회귀할 때 입에 넣었던 그 물건과 비슷하게 제작한 캡슐이다.
“그럼 저도 보답을 해 드리죠.”
“이게 뭡니까?”
“이건 최근 20년 동안의 경제 상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가시면 큰 부자가 되실 겁니다.”
“하하, 저는 부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을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의 꿈은 생각보다 훨씬 원대한 것이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잘한 일 중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02년까지였다.
“그럼 반지를 받자마자 당신에게 연락을 하면 됩니까?”
“아니, 반지를 받으시고, 회귀를 하셔서 할 것 다 하신 후에 바로 내일 이곳에서 만나서 제게 주시면 됩니다.”
“아, 그럼 바로 내일, 아니 제 체감상은 10년 뒤가 되겠군요.”
“네, 그렇죠.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만납시다.”
그렇게 남자는 그 길로 바로 어머님을 모시고 그레이스에게 갔다. 어머니는 정말 죽어가는 몰골이었다.
남자는 그레이스에게 자신의 사정을 밝혔고, 그레이스는 그에게 반지를 주며, 다시 돌려 줄 것을 요구했다. 남자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는 바로 반지를 받았다. 그렇게 또 한 사람이 회귀를 하게 되었다.
* * * * *
“회장님, 약속대로 회귀의 반지를 드리겠습니다.”
“오호? 정말인가? 역시 자네는 탁월해.”
김주원은 눈에서 하트가 나올 지경이었다. 아내와 아이들, 손주까지도 제치고 반지를 사랑하는 김주원, 그의 욕심은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네, 내일 약속장소에서 반지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래? 정말 고마워. 내 자네가 하는 일은 무조건 돕겠네.”
김주원은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될 수도 있다.
“아닙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걸요.”
“그래, 이야기 들었어.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있더구만.”
“회장님에 비하면 저야 뭐…… 하하.”
“허허, 아무튼 내 조금씩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으니, 뭐든 말만 하게나.”
“네, 정 힘들면 한 번씩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김주원이 내 손을 잡았다.
“어? 내일 자네도 나올 생각인가?”
“네? 제가 있어야 그 사람을 알아볼 텐데요?”
그 남자가 누구인지 나만 알고 있으니, 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야. 자네는 굳이 나올 필요 없을 거야. 내가 직접 반지를 회수할거야.”
하지만 김주원은 이미 내 뒤를 밟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아, 그럼 저는 쉬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쉬게나 쉬어.”
김주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김주원은 나를 온전히 동료로만 보지 않았다. 반지를 몇 번씩 사용한 또 다른 경쟁자로만 볼 뿐이었다. 그걸 그의 눈빛과 행동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그를 다시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 * * *
“어머니, 저 왔어요.”
일에 치어서 집에 들어간 날보다 못 들어간 날이 더 많았다. 오늘은 꼭 집에 가겠다고 생각하고 집에 들어갔다.
“쉿, 조용히 해. 준희 과외 공부중이야.”
“네? 학교 합격한지가 언제인데 과외라뇨?”
“사법고시 과외 니가 소개해줬잖아?”
“네? 제가 언제요?”
그때, 준희의 방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왔다. 남자를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당신이 여기 왜?”
“내가 보답하겠다고 했잖습니까?” “그게 준희 과외라구요?”
그러자 준희가 나왔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나 2차 합격한 것도 다 이 선생님 덕분이잖아. 왜 모른 척 해?”
“니가 사법고시 2차 합격했다고? 진짜야?”
“왜 저래? 미친 거야?”
준희가 머리 옆으로 손가락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진짜로 황당해서 미칠 것 같았다. 모든 상황이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이 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꼭 은혜를 갚는 사람입니다.”
“헉, 감사합니다. 정말.”
그러자 남자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황당할 지경이었다.
“감사하면 한턱 쏘시죠. 아니지, 내가 은인에게 한턱 쏴야하는 건가?”
“아, 물론이죠! 어서 가시죠.”
나는 일단 그에게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같이 나섰다.
* * * * *
“조용한데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웬일인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나섰다.
남자는 자신의 고급 승용차로 나를 안내했다. 차는 고급 승용차로, 그 시절 고위급 간부나 기업의 사장 이상 급이 타고 다니는 차다. 전에 그를 봤을 때와 너무도 달라져 있다. 회귀의 효과겠지.
차에는 비서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다가 그를 보고 벌떡 일어나 나왔다. 비서는 그에게 90도로 인사하였다. 이상한 일이다.
남자와 함께 차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동안 엄청난 일이 있던 모양입니다.”
“그랬죠. 판도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 그렇군요. 성공적인 회귀셨네요.”
남자의 손에는 아직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지금 반지를 전하면 약속위반인가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장소로 나올 겁니다. 그분에게 전해드리면 됩니다.”
그 장소로 가는 동안 남자가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을 제대로 역전한 스토리였다.
그리고 다음날,
남자는 약속대로 그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납치를 당하고 만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