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상호 전쟁(1)
한 원장이 부를 줄 알고 대기하고 있던 나는, 조 원장을 호명하자 당황스러웠다.
노랑머리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더 흥분하며 주절거렸다.
“뭐야 지금?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조금 기다려 봐.”
한 원장은 내 눈치를 한번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 원장이 내 아내이니까, 아를 낳고 난 뒤에 내를 대신해서 미용실을 이끌어줄 기다. 그라고 박준수가 우리 미용실을 전국적 규모로 확대시킬 기다.”
한 원장의 말에 직원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자 그라믄 둘 다 나와 보그라.”
조 원장과 내가 대답을 하고 나갔다.
한 원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실직적인 오너는 박준수씨가 하는 거고, 미용실 운영에 관한 것만 분담해가 조 원장이 하는 기다. 박준수가 오너인기라. 알긋재?”
한 원장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조 원장이 먼저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였다. 조 원장은 임신한 몸이라 힘들어서 금방 인사만 하고 내려왔다.
“자, 박준수 사장님이 야그를 할 차례다.”
한 원장이 나를 직접 데리고 앞에 세웠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미안타. 자가 그냥 넘기는 건 절대 안 된다 캐서, 니가 실질적인 사장이니 닌테 다 맡기는 기다.”
“네.”
한 원장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멀쩡한 미용실을 넘기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닐 테지. 그래서 사업화 시키고 난 뒤 지분을 주기로 한 건데, 그럼에도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미용 관련 사업으로 중소기업 이상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건 다들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용 재료를 유통하는 것과 미용실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 원장님과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업화시키기는 하지만, 한 원장님의 지분이 상당하기 때문에 한 원장님의 지위도 같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원장님이 그걸 조 원장님에게 양도하신 것 같군요.”
“그래, 그기다.”
“원래 미용실 상호를 저희 회사의 이름과 같이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지금 조금 어긋난 것 같네요. 좀 더 상의를 하고서 최종적인 사안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내 말에 큰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저는 여기 모인 분들을 전부 원장님으로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각 지역에서 최고로 잘하는 미용실이 되기 위해서 모두 힘써주신다면, 우리는 미용 업계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다들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 최고가 되는 기다 모두 다.”
짝짝짝짝.
다들 박수를 치며, 오늘 모임의 취지가 끝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자 노랑머리의 옆에 있던 이은미가 소리쳤다.
“결국 미용실 이름은 조 원장님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조 원장님의 브랜드가 되는 거 아닌가요?”
이은미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고, 한 원장과 조 원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거는 아이고.”
“그럼 저는 제 투자금을 회수 할 생각입니다. 저는 조 원장님을 보고 투자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한다, 우리 은미.”
이은미의 말에 다들 술렁거렸다.
조 원장은 목이 타는지 음료수를 들이켰고, 한 원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조 원장이 나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브랜드화 하는데 있어서 네이밍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용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미용실과 기업의 이름을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국 이름은 아니더라도, 이니셜이라도 넣곤 했다.
“조만간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려고 합니다. 그 제품에 저희 미용실 상호와 같은 이름을 넣어서 출시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거든요.”
“그래, 그라믄 우야꼬?”
“우선 미용실 브랜드명을 공모하고, 거기서 뽑힌 몇 개의 이름을 가지고 여기 계신 분들의 투표로 직접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라믄 되겠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에는 동의하재?”
한 원장은 이은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이은미도 이런 방식에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미용실의 새로운 이름을 정하게 되고, 그 이름을 토대로 회사명도 재정비하게 되었다.
새 미용실 상호는 여러 이름 중 가장 좋은 이름 다섯 개로 압축되었다.
(스타일 업), (조앤박), (조스타일), (JP헤어), (더 꾸밈) 으로 정해졌다. 그 후 투표를 해서 그 중에서 (조스타일)과 (더 꾸밈)으로 압축되었다. 사실 조스타일은 너무 조 원장 위주라서 선택하고 싶지 않았는데, 조 원장을 따르는 무리가 꽤 있어서 어거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조 원장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정치 질을 서슴치 않았고, 그 때문에 조스타일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행동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나머지 좋은 이름을 놓치고 말았다.
“조 원장 그렇게 안 봤는데, 좀 그렇네.”
노랑머리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욕심이 있는 사람인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그것이 그 분의 매력이고, 덕분에 그 정도의 위치에 올라간 것이다. 나무랄 것도 없었다.
“한 원장님이야 최고의 위치에 올라갔으니 욕심이 없겠지만, 조 원장님은 다르지. 내게 다 넘기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거야.”
“다 넘기는 것이 아닌 거 알면서 그러는 거잖아요. 치사하게.”
“뭐, 일단 우리 쪽에서는 참고 넘기는 게 맞아. 그게 예의고.”
“쳇, 네. 그치만 우리 쪽에서도 이제 손을 써야 하잖아요. 조스타일은 좀 그렇잖아요. 죠스바도 아니고 이상해.”
“그래, 나도 액션을 취할 생각이야.”
상호가 조스타일이 된다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 회사명이 이상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요?”
* * * * *
“아, 그건 정말 이상한데요? 이름 자체가 이상한데? 사람들이 왜 그걸로 뽑았죠?”
상호 투표상황을 전해들은 김설아가,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원장님을 봐서 그랬겠죠. 미용실이 원래 한 원장님 소유니까요.”
사실, 한 원장이 개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조 원장이 아무리 난리쳐도, 한 원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죠. 사실 투표한 본인들의 인생과도 직결된 거잖아요? 그런 투표에는 더욱 신중해야죠.”
“그니까요. 나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홍보할 수도 없구요.
그치만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봐요. 이쪽에서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향후 모든 사업에서도 밀릴 거예요. 사실상 사장이 바뀌는 지경까지 간다고 봐요.”
김설아의 판단은 옳았다. 이번 투표는 향후 모든 사업의 주도권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한 원장과 이런 식으로 싸우게 되는 건 원치 않아서 지금까지 미룬 거였는데, 결국 한 번은 해야 하는 싸움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싸울 수는 없어요. 너무 좋아하는 분이라서 더욱요.
“그죠. 싸우는 방법으로 이기면 내분이 일어날 거예요. 두 개로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죠.”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럴 거면 그냥 혼자 나와서 차리는 게 낫고요.”
“간접적으로 접근해야 될 문제예요. 대놓고 싸우지 말고, (더 꾸밈)이라는 이름이 낫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어여쁜 설아씨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보낸 것이 아쉬웠다.
“이제 그런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 이야기 하죠. 오늘 촬영 어땠어요? 사람들이 잘해주던가요?”
“네, 오래전부터 알아 온 사람들처럼 잘 맞아요. 준수씨 말처럼 저랑 잘 맞더라구요.”
“다행이네요.”
나는 김설아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녀를 보면 웃을 수밖에 없다.
“조만간 B팀 감독님이 오신 다네요. 조감독하고 있는 드라마 끝나야 온데요. 그 분 오시면 좀 더 바빠질 듯해요.”
“그 감독님이 하고 있는 드라마가 뭐죠?”
드라마를 찍는 감독의 일정이 빠듯해지면, 제 2감독을 따로 지정해서 찍는데, 그걸 B팀이라고 한다. 그 감독도 원 감독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가 현재 찍고 있는 드라마가 뭔지 알아야, 그의 역량을 알아볼 수 있다.
“복수열정요. 이번 주에 끝난 다네요.”
“아, 그럼 좋은 분이네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뭔가 생각이 딱 떠올랐다.
“아! 그거 결말이 미용실 차리는 건데?”
“네? 결말이 벌써 유출되었나요?”
그 시절은 결말 부분은 거의 생방송 수준으로 찍곤 했다. 마지막회 방송을 앞둔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촬영을 할 정도였다. 결말이 나왔을 리가 없다. 내가 이미 보았던 거다.
“그거 이용하면 되겠네요!”
“네?”
“결말에 미용실을 차리는데 그 미용실 상호를 (더 가꿈)으로 하면 되겠어요!”
“어?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네, 그 방송 날짜가 투표 전날이니까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연락을 해볼게요. 어, 근데 상호 나가면 법에 걸릴지도 모르겠는데요?”
그 당시 ppl은 법에 걸리는 행위이다.
“아뇨, 아직 법인 설립이 되지 않아서 걸리는 건 없어요. 그리고 그 상호는 제가 한참 전에 상표 신청을 해둔 거라 법적인 제재도 없을 겁니다.”
“그럼 당장 연락해보죠.”
김설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내 옆에 있으면, 기업 총수는 물론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 *
드라마 감독은 내 소문을 드라마국 CP를 통해서 들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드라마는 주인공이 미용을 해서, 미용사들이 꼭 챙겨보는 드라마다. 우리 미용실 사람 중 60퍼센트 이상이 결말을 봤고, 80퍼센트 이상이 소문을 통해서 결말을 알았다. 그들은 드라마의 결말에 동요하고 있었다. 내가 의도를 하고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내 쪽의 상호가 더 좋은 거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하지만, 조 원장의 정치 질이 만만치가 않았다. 조 원장은 직원들 하나하나를 만나서 회유하고 다그쳤다. 후에 이걸 안 한 원장이 화를 내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한 원장이 개입하지 않았다. 덕분에 직원들 절반이 조 원장의 편이 되었다.
투표 약속 날, 결과는 딱 절반씩 나왔다. 50대 50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결과였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패배를 맛보았을 것이다. 내가 뭔가를 했기 때문에 절반씩 나왔다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기 뭐고? 이라믄 곤란한데…….”
한 원장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만 하더니, 결과를 보고 뭔가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한 원장이 투표하면 모든 게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조 원장은 한 원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자기가 투표하면 되겠네. 그럼 다 끝나네?”
“엥?”
한 원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한 원장이 직접 나를 쳐내고 싶지 않아서 조 원장을 이용한 건데, 이런 식으로 직접 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내는 몬한다. 아 몰라. 그냥 반반씩 하든지.” “이 양반이?”
조 원장은 짜증을 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가장 뒤쪽에 홀로 앉아있는 20대 초반의 여자를 쳐다보며 픽 웃었다.
“저 아이, 이번에 스텝으로 뽑은 아이인데 저 아이에게 마지막 투표를 맡기는 건 어떨까요?”
조 원장이 가리키는 아이를 본 나는 승리할 것을 확신했다.
회귀해서 미용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