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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미용재벌-102화 (102/200)
  • 102화. 암을 이기려면 회귀를 하셔야죠(1)

    “어? 안나라?”

    그녀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 안나라였다. 그녀가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 얘 알아요? 얘 진짜 귀엽죠?”

    돼지엄마가 안나라의 몸을 주물떡대며 말했다. 그의 행동은 초면인 내가 봐도 불쾌했다. 나는 돼지엄마의 손을 떼어내고는 그를 밀쳤다.

    “숙녀에게 그렇게 함부로 손을 놀리시다뇨?”

    “뭐야? 이 새끼가?”

    돼지엄마가 화를 내며 내게 덤비자, 노랑머리가 그를 붙잡았다. 노랑머리의 억센 표정을 본 돼지엄마가 눈을 깔았다.

    “에이 #바.”

    “안나라씨?”

    “어?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죠?”

    안나라는 그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20대 초반의 귀엽고 깜찍한 안나라는 딱 봐도 연예인 감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서 안나라에게 내밀었다.

    “저 D미디어라고 아세요?”

    “어? 거기 김설아 소속사 아니에요?”

    “네, 제가 거기서 일을 조금 하고 있어서요.” “와, 네네.”

    “안나라씨랑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연락 주시겠어요?”

    “아, 네네. 알겠어요.”

    “이야, 역시 박 쌤.”

    그렇게 탑연예인이 되는 안나라와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D미디어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연예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돼지엄마를 혼내주는 모습을 후에 그녀의 아버지가 듣게 되는데, 그게 계약을 성사시키는 가장 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휴, 목적은 달성하셨네.”

    “응, 고마워. 같이 와줘서.”

    “나름 재밌었어요. 그 춘미? 춘자? 그 사람도 멋지고.”

    그때, 내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임춘재! 화순 연쇄살인범의 이름말이다.

    “아! 생각났다!”

    “엥? 뭐가?”

    “나 강철수 좀 만나고 올게!”

    “아니, 그 미친놈을 왜 또 만나요?”

    노랑머리는 강철수를 너무 싫어한다. 그건 강철수도 마찬가지다.

    * * * * *

    강철수에게 전화를 걸자, 잠복근무를 하고 있다며 길 한복판으로 불렀다. 잠복근무를 하는 강철수는 꼬질꼬질 자체였다. 강철수는 아무리 꼬질꼬질해도 거지같지 않았다. 굳이 거지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 대장급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만큼 그에게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임춘재! 임춘재에요!”

    나는 강철수의 옆에 앉자마자 말했다.

    강철수는 이름을 말하라며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왔기에, 내 말이 누굴 가리키는지 금방 알아들었다.

    “임춘재? 이름 특이해서 금방 잡겠네.”

    “그죠? 이름이 특이하죠? 지금은 아마 20대에서 30대쯤 될 거예요.”

    “야 너!”

    강철수가 난데없이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다음엔 대가없이 정보를 주기 바란다. 알겠어?”

    “아, 네 그럼요.”

    “그냥 정의롭게 하자고, 재고 그러는 거 딱 질색이야.”

    “넵! 알겠습니다.”

    나는 강철수를 주려고 가지고 간 캔 커피를 내밀었다. 강철수는 커피를 보고는 시답잖은 표정을 지었다. 후에 안 일인데 그는 커피보다 박카스를 더 좋아한다.

    차 앞으로 웬 마른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강철수가 내 손에 든 커피를 휙 낚아채더니 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지나가던 마른 남자에게 그걸 내밀었다. 둘이는 잠깐 인사하였고, 남자의 얼굴은 황달이 온 듯 노랬다.

    강철수가 곧 다시 들어왔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누구에요?”

    “어, 전에 같이 일한 형사인데, 간암이야.”

    “아…….”

    “병원비를 보태고 싶은데 한사코 거절해서,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주는 중이야.”

    “그렇군요.”

    “아프면 뭘 자꾸 주고 싶어지잖아. 그 사람 인생을 돌려놓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자꾸 줘야지.”

    나는 그때 회귀의 반지가 생각났다. 아마 저 사람도 회귀의 반지가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로 돌아가서 건강검진을 하면 살 수 있겠죠?”

    “그렇겠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지.”

    “아 그거네요.”

    “엥? 뭔 소리야 갑자기?”

    그레이스정이 갖고 있는 회귀 반지를 빼앗기 위해서는 그녀가 반지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져야 한다. 그녀의 앞에 암 환자가 나타난다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반지를 건네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면 된다.

    “저 이만 가볼게요. 꼭 임춘재를 잡으셔야 합니다!”

    “그래, 걱정마. 내가 놈을 꼭 잡아서 족칠 거니까. 그래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편하게 갈 수 있어.”

    강철수는 다짐을 보여주듯이 주먹을 꼭 쥐었다. 그의 기개라면 충분히 임춘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차를 나왔다.

    * * * * *

    “암 환자, 암 환자를 만나야겠네.”

    나는 서둘러서 한국대 병원으로 향했다. 차에서 가위와 바리캉을 챙겨 들고서.

    한국대 병원의 간호사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 주었다.

    “아! 그 미용사 선생님이시구나?” “네, 안녕하세요.”

    “그때, 사람들이 선생님 때문에 많이 행복해 하셨어요. 저희도 덩달아 행복했을 지경이었죠.”

    “아이고, 아닙니다. 과찬이세요.”

    내가 병원에서 환자들 머리를 잘라준 일은 병원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환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신경질적으로 변하는데, 머리를 예쁘게 한 덕에 전반적인 신경질이 줄어들었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슬기로운 병원 생활인 것.

    “오늘, 혹시 봉사하시러 오신건가요?”

    “네, 저번에 암 병동에는 안가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죠, 그분들은 머리가 다 빠지시는 분들이라서요.”

    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하면서 머리가 거의 다 빠지기 때문에 그냥 빡빡 미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니 전문 미용사의 손길을 굳이 원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내가 가지 않았을 뿐, 머리를 자르길 원한 사람은 찾아 왔었다. 그 수가 적긴 했지만.

    “그래도 예쁘게 미는 걸 원하시지 않을까요? 좀 더 정성스럽게요.”

    “아, 그럴까요?”

    “네, 오늘은 암 환자들의 머리를 손봐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저희야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는 친절하게 웃으며 나를 암 병동으로 안내했다.

    암 병동에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빠박이였다. 저들에게 머리를 해 준다고 해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하나둘씩 내게 다가왔다. 머리가 없더라도, 깔끔하게는 있고 싶은 마음으로 온 것이다.

    “저 머리카락 열 가닥이 자꾸 거슬려서 그런데 보기 좋게 좀 해주세요.”

    환자1은 긴 머리카락 몇 개가 거슬리게 나 있었다.

    “아 네! 이리 앉으시죠.”

    “뽑기엔 아깝잖아요. 그냥 뽑아버리면 그마저도 안 자랄까봐 무서워요.”

    “그죠, 제가 봐드릴게요.”

    환자1의 머리는 들쑥날쑥 나 있어서 보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전체 머리를 같은 길이로 만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가위질을 얼마 하지 않았음에도 금세 깔끔해 졌다.

    “우와 정말 깔끔해졌어요.”

    “그죠?”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곧 퇴원할건데 나가서 따로 손보지 않아도 되겠네요.”

    환자1은 기분이 좋아서 돌아갔다. 곧 퇴원을 한다고 하니, 회귀의 반지를 건넬 대상은 아닌 듯 했다.

    환자1은 가자마자 다른 환자를 데리고 왔다. 그분은 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어서 체스판 같은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보기 좋지 않았다.

    “내가 데리고 왔어요. 이 사람 머리는 나보다 이상하죠?”

    “아, 아닙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 날 텐데요.”

    그래, 이 사람에게 반지를 주면 되겠어. 나는 그에게 반지를 건넬 생각을 하며 머리를 만졌다.

    “안 나면? 안 나면 책임지나?”

    환자2는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이해가 된다. 많이 아프면 예민해지니까. 하지만 그에게 반지를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반지를 손에 얻는다고 해도 불만이 많을 사람으로 보였다.

    “책임은지지 않지만요. 오늘은 예쁘게 해 드리지요.”

    나는 그렇게 그를 안심시키고 머리를 만졌다. 전체 머리를 박박 미는 것이 최선이지만, 바둑이 머리보다는 나았다. 그도 나름 만족하고 돌아갔다.

    그 후로도 몇 명을 잘라주었지만, 다들 회귀의 반지를 주기엔 뭔가가 맞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한 두 시간이 끝나가는 무렵,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아들이 찾아왔다.

    “저, 저희 어머니 머리를 좀 해드리고 싶은데요.”

    “아, 네네. 이리 오시죠.”

    아들은 어머니의 머리를 해 드리는 동안 옆에서 붙어서 정성으로 돌봤다. 머리를 다 만져드릴 때까지 머리카락이 하나도 묻어있지 않을 정도였다.

    “어머니, 정말 예뻐요.”

    “그래? 퇴원하면 파마도 할까 하는데? 해줄 거지?”

    “그럼요. 끝내주게 이쁜 파마 해드릴게요.”

    아들은 어머니를 보며 웃고 있다. 그런데 왜 내 눈엔 우는 걸로 보일까? 곧 퇴원을 하는 거면 암이 나았다는 것인데, 왜?

    아무래도 이 모자에게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들어봐야겠다.

    “저 담배 태우세요?”

    “아, 아뇨. 담배 안 핍니다.”

    “우리 아들 담배 끊었어요!”

    아들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걸 봐서는 어머니 때문에 안 피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내가 실수한 것이구나 싶었다.

    “아, 그럼 커피나 한잔 사주시죠? 머리 값으로 말이죠?”

    나는 아들만 보이게 윙크를 했다.

    아들은 내 윙크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네, 그럽시다. 어머니, 잠시 다녀와도 되겠지요?”

    “그래, 커피 많이 사드리고 와라.”

    “네, 다녀올게요.”

    착.

    꼴깍꼴깍.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캔 커피를 뽑아서 마셨다.

    그와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커피만 홀짝였다.

    그러다 아들이 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할 말이 있으신 거죠?”

    다크서클이 늘어져있는 그의 얼굴로 보아, 다년간 피로가 쌓여있는 것 같았다.

    그라면, 회귀를 원할 것이다. 그의 성실하고 착한 행실로 보아하니 내게 반지를 다시 주는 일도 문제가 없을 걸로 보였다. 김주원 같은 사람에게 반지를 주면 절대 다시 돌려주지 않을 건데, 그는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그에게 말을 해야 한다.

    “흠흠, 저…….”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가 먼저 말했다.

    “어머니 다 나으신 거 아닙니다. 6개월 선고 받았어요.”

    “아…, 그렇군요.”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나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물어보려던 게 그거 아니었어요?”

    “네, 그거 아닙니다.”

    “그럼 뭔가요?”

    “어머니 살리는 방법이 있는데, 무조건 하시겠습니까?”

    그는 내 말을 짐작조차 못한 듯 놀라서 물었다.

    “정말 살릴 수 있습니까?” “네, 대신 제 조건을 들어주셔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조건?”

    그는 내 말에 잠시 주춤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한숨을 쉬는 그가 언뜻 이해되질 않았다.

    “왜, 안내키신가요?”

    “그런 제안 많이 받았습니다.”

    “네?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구요?”

    “네, 커피는 사드렸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들은 차갑게 변한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대로 그를 보낼 수는 없다!

    회귀해서 미용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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