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대박나는 제품(1)
탁탁탁탁. 탁탁탁탁.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공항을 뛰어다닌 끝에 조셉을 찾아냈다.
조셉은 구원자라도 만난 듯 나를 보고 달려들어 안겼다.
“준수 아이 미스유.”
“왜이래 징그럽게.”
“준수 덕분에 서울에서 잘 놀다 가.”
“그래, 다행이네.”
“좀 더 있으려고 했는데, 파덜이 허리허리 하라고 해서 가. 준수랑은 술 한 잔도 못 마셨네.”
“아서라. 나까지 술 마시면 넌 고주망태가 되지.”
“고추망, 뭐? 하하 한국 고추는 너무 매워. 입에 불나는 줄 알았어.”
조셉은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는 것이 좋은 듯 한참을 떠들었다. 나는 조셉과 약속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이거 꼭 몸에 차고 다녀, 나도 어렵게 구했거든.”
“이거 방탄초키?”
“응, 방탄조끼. 매일 입고 다니라고, 알았지?”
“오케이. 매일 팬츠는 안 입어도 이건 입을게.”
“아 으으. 그건 뭔 개그니.”
“나! 또 놀러올게.”
“그래,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비행기 값은 대준다, 내가.”
“와우 준수 멋져.”
“그리고 내가 방탄조끼 사준 거는 아빠한테도 비밀이야. 알았지?”
“오케이. 우리 둘만 아는 걸로.”
조셉은 나에게 방탄조끼를 받아 들고 한국을 떠났다.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 총기 사건이 일어났고, 다행히 방탄조끼를 입고 다닌 덕분에, 조셉은 죽지 않았다. 조셉은 약속대로 내가 입으라고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일이 되었다.
조셉은 내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일을 잊지 않았고, 후에 나의 제품이 미국으로 진출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 * * * *
“준수씨, 회사 사무실 계약 했고, 조만간 공식적으로 출범해도 될 것 같아.” 김 실장이 나를 찾아와서 그 동안에 있던 일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김 실장과 조씨, 대머리 이사는 회사 창업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었다. 덕분에 나의 회사는 어렵지 않게 출범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 무렵 벤처 붐이 일어났던 시기라서 여러모로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미용실 창업 문제만 남았다.
“미용실 프렌차이즈가 원래 목표였잖아, 준수씨.”
“그렇긴 한데. 지금 당장 차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 그건 준수씨 결정이긴 한데, 회사 설립되는 것은 한 원장님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네, 그래야겠죠.”
그때, 한 원장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아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어쩐 일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서 뭐하노. 니 우리 아들한테 뭘 어쨌노?”
“왜요?”
“울 아들이 인자 정신 차린다카데? 죽을 뻔 했다 아이가? 그 이후로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그카든데? 니 덕분이라카데?”
“아, 하하. 그냥 미국이 워낙 총기 사건이 많아서 방탄조끼 가끔 입고 다니라고 했죠.”
“야야, 니 내 아들 목숨까지 구한기가? 이노무자슥.”
한 원장은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그동안 고마웠던 일들을 포함해서 아들 일까지 고마운 듯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그러자 김 실장이 나를 쳐다보며 빨리 말하라며 부추겼다. 나는 그걸 말할까말까 하며 고민했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그라고 내 야그 들었다. 니가 내 외로울까봐 조 원장이랑 내를 붙여줄라 칸 거 말이다.”
한 원장은 이제 지구의 반이라도 때어 줄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들을 구해주고, 아내를 구해주고, 미용실을 대박나게 해 준 내가 아들만큼이나 예뻐 보이는 건 당연했다.
“뭐든 말해보그라. 내 다 들어주꾸마.”
김 실장은 나에게 당장 이야기하라며 옆구리를 찔렀고, 나도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용실을 그만두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아직 이사장의 화가 풀리지 않았기에,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한 원장을 붙잡아야 했다.
“저 미용 회사 창업해도 되겠습니까? 미용실은 그대로 다니고요.”
“아유 그게 아닌데.”
김 실장은 내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답답한 나머지 그렇게 말했다. 한 원장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 니 능력이 그래 출중한데 해보고 싶은 거 다 해야지. 대신 예약 손님은 제대로 소화하고 해야한데이.”
“네. 그럼 회사 설립 일에 참석해 주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당연히 가야지.”
“감사합니다!”
나는 아버지같이 의지했던 한 원장이 허락해주자, 그게 기쁜 나머지 소리를 쳤다. 한 원장은 내가 그토록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축하한데이.”
* * * * *
“자 이제 가위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모두 앞에 있는 리본을 잘라주세요.”
신촌, 꽤 큰 규모의 건물, 적지 않은 규모의 번듯하게 차려놓은 사무실.
나와 노랑머리, 은미, 은미의 아버지와 조씨, 대머리 이사, 김 실장까지 전부 모여서 커팅식을 진행했다. 핵심 인물만 모여서 간소하게 치러지는 중이었다.
싹둑, 싹둑.
짝짝짝짝.
“이제 역사가 시작되는 건가?”
“이제 시작했을 뿐인걸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몰라요? 누구나 시작은 미약한 법이랍니다.”
끼이익 쿵.
저벅저벅.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원장이 들어왔다.
“벌써 다 끝난 기가? 누가 찾아 와가꼬 늦었다 아이가? 들어 오이소.”
또각또각.
문으로 들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김소연 한의사였다.
“김소연씨. 여긴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미용실에 찾아갔더니, 여기 있다고 해서요.”
“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김소연 한의사 몰라?”
김소연은 커팅 된 리본을 보고는 오늘이 이 사무실의 시작임을 금방 깨달았다. 거기다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듯한 사무실 모습을 보며, 내가 그때 큰 소리 친 것에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초대하려고 했는데…….”
“신생되는 회사인건 알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군요. 구체적인 사업 방향 같은 것도 아직 미미하실 거구요.”
“사업 방향은 제가 정하는 거구요. 원래 시작은 미약한 거라잖아요?”
“아무리 첫 달 매출을 전부 저한테 준다고 했어도, 믿음직스럽지가 않아요.”
김소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 동요하고 있었다. 첫 달 매출을 전부 준다니? 은미는 이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여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첫 달 매출을 전부 그쪽에게 준다고요?”
“네. 제 제품 출시 첫 한 달 매출 말입니다.”
나는 김소연에게 약속한 계약 조건에 대해,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는데, 그걸 자기 입으로 와서 떠들자 당황하였다.
“제품이 워낙 좋아서 그래요.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제품입니다.”
“고마워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황한 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여자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첫 달 매출을 전부 주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대머리 이사가 말했다.
“동물 실험이무 마친 거시무니까?”
“네. 인체 실험도 이미 마친 상태입니다.”
“그러무 샘플이 있으시무니까?”
역시 화장품 업계 탑을 찍은 사람이라서 대응이 좋았다. 모든 제품의 출시에 앞서서는 샘플을 풀어서 반응을 보는 것이 먼저다. 그게 제품화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샘플을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아직 개인적인 실험을 한 상태라서, 샘플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샘플을 이용해서 이은미를 설득시키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은미가 요새 살이 쪘다고 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은미씨가 먹어보면 되겠네. 그 샘플 말이에요.”
“아니 제가 실험용 쥐 입니까? 아직 정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을 뭘 믿고.”
그러자 김소연이 발끈하며 말했다.
“저기요. 제가 제 명예를 걸고 약속할 수 있어요. 이 제품은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살도 많이 빠질 거구요.”
“네, 저도 그거 알……, 아니 믿습니다.”
나는 그 제품을 희수를 통해서 미리 써보았기 때문에 알지만, 일단 믿는다고 하는 수밖에.
“나도 해 보겠습니다. 그 실험.”
조씨가 갑자기 나섰다. 그는 퇴직을 한 후 살이 많이 쪄 있었기 때문에, 좀 빼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김소연이 워낙 이뻐서 합류하였다고 한다.
“좋습니다. 은미씨 빠지고 조 이사님 합류해서 진행하죠.”
“나도 하죠. 여자가 주 고객일 텐데 내가 해야죠.”
“그럼 두 분은 제가 직접 관리해 드리도록 하죠.”
김소연은 자신의 제품이 걸린 일을 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의사로써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
“그럼 우리는 그 동안 회사에서 생산할 제품들을 정리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정해서 김소연씨에게 브리핑을 하는 걸로 하죠.”
“네. 근데 신제품은 제 것만 신제품인건가요? 그 회사에서 만든 다른 신제품은 없으세요?”
“아 아직까지는…….”
조씨가 자신감 없는 얼굴로 말하였다. 나는 이 시점에서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없는 신제품을 있다고 하고 싶었다.
“있습니다. 신제품.”
“준수씨, 그건 신제품이라기보다는 신기술인데?”
내가 말하는 것이 머리 붙이는 그 기술이라고 생각한 김 실장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제품을 곧 생산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신제품 정해서 같이 브리핑 할 겁니다.”
나의 말에 다들 못 믿는 눈치였지만. 노랑머리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네, 있습니다. 믿어 주시죠!”
노랑머리는 진짜 믿음 하나로 나의 말에 동참했다.
김소연은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의심해봐야 나아질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그 브리핑 듣는 걸로 하시죠.”
김소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목례를 하고서 사무실을 나갔다. 그녀도 자신의 인생이 달린 일이기에, 까다롭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 *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모인 사람들.
각자 새로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미용, 화장품 관련 제품들의 현재 상황, 앞으로의 전망 등을 전부 알아보고 난 뒤에 모이기로 하였었다.
“미용 쪽 새로운 제품은 스뜨레이뜨를 넘어설 만한 것이 거의 없으무니다.”
대머리 이사는 이쪽 동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다들 반박할만한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미용 제품은 이미 다 정해져 있잖아요. 펌, 염색, 커트 등에서 매직 스트레이트 하나 더 얹어진 셈인데, 거기서 뭐가 더 나오겠어요.”
김 실장은 미용 재료만 수십 년 한 사람이다. 그의 판단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자 노랑머리가 대꾸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의 말이 아니었으면 반전은 없었을 것이다.
“코팅은 왜 빼요? 로레# 코팅은 진짜 좋던데.”
김 실장은 노랑머리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로레# 정도의 회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막 시작하는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코팅 같은 건, 파마약에 넣는 것에 익숙해서 고급화가 힘들다고 하던데, 로레# 정도로 고급화와 대중화에 성공한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김 실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더 단호했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거네요. 신제품 금방 만들 수 있겠어요!”
다들,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쳐다보았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듯 소리쳤다.
“대박 나는 제품 만들 수 있어요!”
회귀해서 미용재벌